상상하기 어려운 지옥훈련

 

 

ssu훈련SSU는 1950년 부산에서 특수공작대로 창설됐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SSU의 활약상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 부대를 지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요즘 모병은 현역 해군을 대상으로 지원자를 받거나 신병을 대상으로 한다.

올해의 경우 600 여명이 지원했다.

그러나 SSU는 대원을 선발하는 기준이 무척 까다롭다.

이들을 대상으로 턱걸이(8개 이상), 팔굽혀펴기(30초 내 26개), 수영(2가지 이상 영법), 구보, 윗몸일으키기 등 기초체력을 평가하고,

잠수사로 적격인지 여부를 평가하는 2차 특수신체검사를 받는다.

3차는 지원의지와 인성, 담력, 용모 등을 보는 면접이다.


팬티차림으로 차가운 물 속에서 기절

 

ssa 훈련장이렇게 선발된 인원(올해 90명) 가운데 10주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하는 이는 절반 정도밖에 안된다.

 

공기잠수(SCUBA) 교육, 탐색·인양·결색 등의 구조이론 등도 쉽지 않지만,

 

‘지옥훈련’이라 불리는 기초 체력훈련을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훈련은 아침 6시부터 밤 8시까지 숨쉴 틈 없이 진행된다.

2주일 안에 최소 6km 이상을 수영해야 하며, 7주째가 되면 매일 20km의 구보를 하게 된다.

9주째엔 악명높은 ‘기수 PT체조’를 하는데 이는 기수 숫자(올해 45기)에 1000을 곱한 횟수를 하는 것이다.

이 10주 과정을 마치면 체력적으로 최상의 상태가 된다고 한다.

 

구타가 없는 대신 엄격한 과실제도를 둬 탈락자를 가려낸다.

안전수칙을 어기거나 절도, 도박 등의 과실을 범하는 교육원생은 탈락하게 된다. 교육훈련대에 따르면 요즘엔 체력은 좋으나 의지력이 약해 탈락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간혹 자기 한계를 극복하겠다고 노력하다가 한도를 넘어 다치는 경우도 있다.

일단 SSU 대원으로 선발되면 사회에 나가서도 써먹을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익히기 때문에 피나는 훈련을 견디려다가 사고를 당하게 된다는 것.

SSU대장인 정운채 중령은 80년 이 교육을 받았다.

당시 44명이 입교했지만 17명만 수료했다.

“훈련받던 중 차가운 물속에 팬티만 입고 잠수했는데 너무 추워 기절한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수료 2주 전에 병원에 실려갔는데 군의관이 ‘훈련 더 받으면 죽는다’면서 입원하라고 하더군요.

입원하면 탈락하기 때문에 저는 입원할 수 없다고 버텼어요.

그러자 지휘관들이 상의해서 통원치료를 하라고 하더군요.

다행히 마지막 2주간은 기술적인 교육이 중심이어서 무사히 수료할 수 있었습니다.”

해군에 입대해서야 SSU의 존재를 알게 돼 지원한 이호준(21·세종대 휴학중) 상병은 4주째 교육을 받다 너무 힘들어 포기할 생각이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상의했더니 그렇게 힘들면 포기하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다음날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잠수기술은 사회에 나가서도 써먹을 수 있으니 참고 견디라는 거예요.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고 했어요.

육체·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여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격려와 훈련관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훈련을 마쳤습니다.

그때 버티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초등교육은 장교와 하사관이 함께 받고,

병은 따로 받는다.

 중등·고등·특수 과정은 장교와 하사관만 받을 수 있다.

 

 수심 50m 이상 잠수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 중등과정까지는 천해 잠수사로 불린다.

 

 고등과정 이상의 교육을 받고 수심 100m 이상 잠수 가능한 이들을 심해 잠수사라고 부르는데,

 

포화잠수교육을 받는 특수과정까지 마치려면 보통 10년 정도 걸린다.

 

그 위에 잠수감독관 교육 과정이 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인양작업SSU 대원들은 수중에서 최정예라는 자부심 외에는 진급이나 수당 등에 큰 이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런 힘든 일을 자원했고,

어떤 만족을 얻는가.

경남 통영 한산도 출신으로 해난구조대 부장을 맡고 있는 심해잠수사 박현동(朴賢東) 소령은 “어려서부터 물을 좋아했는데 특히 해난구조 분야는 남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분야여서 도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도달하지 못한 세계,

볼 수 없고 체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 늘 동경하고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그런 세계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거지요.”

이번 반잠수정 인양작전 때 잠수했던 심해잠수사 한종호(韓鍾鎬·30) 중사는 해군에 입대해 처음엔 미사일 유도사로 복무하다 SSU의 존재를 알고 지원했다.

"작전 중에는 굉장히 힘들다.

그러나 작전에 성공했을 때의 짜릿한 쾌감 때문에 다시 힘든 일을 계속한다”고 말했다.

수중폭파2원사나 준위 등 십수년 경력의 SSU대원들은 작전이나 훈련 도중 물밑에서 ‘아찔한’ 고비를 수없이 넘긴 이들이다.

 

이상후(李尙厚·50) 준위는 74~76년 신안 앞바다 유물 인양작업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파도가 높고 조류도 강한 악조건에서 작업을 했는데,

어민들이 쓰다 버린 어망에 걸려 위험에 처했다는 것이다.

어망은 해난구조대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장애물이다.

움직일수록 몸에 더 잘 감기는 특성 때문에 빨리 제거하지 않을 경우 그대로 수장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동료의 도움으로 살아나긴 했지만 그는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간담이 서늘해진다고 했다.

그는 그런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준 것은 무엇보다 정신력이라고 강조했다.

박소령도 “SSU 대원 역시 평범한 인간이라면서

다만 어떤 정신 자세로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특수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으로 나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SSU 대원들이 사기를 잃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강한 동료애결속력 때문이다. 그것은 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황에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운채 중령은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작전시에는 엄격하지만 평소에는 가족처럼 지내려 한다”면서 평소의 SSU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SSU대원으로 있다가 희생된 사람들을 부대원들이 잊지 않도록 현충일에는 단체로 국립묘지를 방문하고,

 평소에 유가족들과도 교분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대원들은 ‘내가 죽어도 SSU가 가족을 책임진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SSU가 거둔 성과 중 부대원들이 지금도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은

 1993년 10월 침몰한 서해 카훼리호의 시체인양 작전이었다.

 전남 부안군 위도 앞바다는 조류가 빨라 작업이 더뎠고,

유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10월14일 급기야 위도 주민들은 SSU, UDT 등 구조대원들이 작업을 성실하게 하지 않는다고 집단적으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당시 해난구조대장으로 급파됐던 진교중 대령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수사들은 1시간 잠수하면 최소한 5시간 이상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쉴 새 없이 작업에 투입해야 했다.

시체를 모두 인양하고 부대로 복귀한 뒤에도 위도주민들의 오해는 풀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진대령은 우연히 당시 위도 청년회장인 장영수씨를 만나 인사를 받게 됐다.

사건 당시 오해가 있어 군인들에게 함부로 했노라고 사과를 해온 것.

진대령은 장씨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사고 당시 강한 조류와 불투명한 시계 등으로 인해 작전이 지연돼 안타까웠습니다.

그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작업을 종용하실 때는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일이 끝나고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들으니

저희들은 국민들에게 뭔가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들어 더할 수 없이 기쁩니다….”

당시 교육대장이었던 정운채 중령은 교육생들을 데리고 현장에 투입됐다.

10월 10일 사건 당일은 일요일이었고

월요일부터 교육생들을 데리고 제주도 실습을 갈 계획이어서 교육생들의 외박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투입 명령을 받자 걱정이 앞섰다.

깜깜한 바닷속에서 시체를 안고 올라와야 하는 작업인데,

이제 갓 훈련을 받은 이들에게 어떻게 그 일을 시킬지 답답하기만 했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건 제일 먼저 뛰어든 잠수사가 성공하면

다른 잠수사들도 모두 성공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제일 우직하고 다이빙 잘하는 교관을 먼저 잠수시켰습니다.

그런데 몇 분 뒤 그가 시체 한 구를 안고 물 위로 힘차게 솟구치는 겁니다.

얼마나 기뻤던지….”

부양선인양94년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건,

작년 여름 지리산 폭우 때 실종자 구조작업 등 재난의 현장에는 언제나 SSU가 빛을 발했다.

1년에 2회 정도 100여명씩 투입돼 한강 정화 활동을 벌이는 것도 SSU의 자랑거리다.

매년 수중정화작업에 참여 해 왔던 정운채 중령은 “6~7년 전만 해도 한강에는 고기가 별로 살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에는 맑은 물에 사는 쏘가리가 있어 놀랐다”

 정화작업 덕분이 아니겠느냐고 자랑스러워했다.

이런 작업들로 인해 SSU는 몇 년 전 모 신문사가 주최한 환경대상을 받았고,

그동안 받은 감사장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SSU는 한강 정화활동과 함께 교각의 불량유무를 점검하는 일도 하고 있다.

96년 감사원과 서울시청의 요청으로 한강 교각의 물 밑 상태를 수중카메라로 촬영해 주기도 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이 작업의 필요성이 제기 됐던 것.

94년에는 전국 국도의 18개 교량을 검사해 주기도 했다.


수심 150m, 관절 통증과 식욕부진


포화잠수챔버압력의 힘이 실제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위해 기자가 챔버 안에 들어가 봤다.

영국에서 전문 잠수감독관 교육을 받은 SSU의 신무영(申茂榮·35) 소령은 해저 10m 수심의 압력을 넣겠다고 했다.

챔버의 문을 닫고 함께 탄 잠수사들과 얘기를 나누려 했다.

그러나 곧 귀가 먹먹해지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동승한 잠수사들은 손으로 코를 막고 숨을 힘껏 쉬어 귀로 공기를 내보내는 ‘펌핑(Pumping)’을 계속하라고 했다.

그런데 한쪽 귀로만 공기가 새나가고 한쪽은 계속 먹먹해 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감기 탓이었다.

동승자 중에 감기 걸린 이가 있으면 평상시보다 훨씬 빨리 바이러스가 번식돼 모두 감기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귀가 쨍쨍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머리가 멍해져 오자 갑자기 겁이 났다.

챔버 조종실의 신소령에게 그만 하라고 하고 몇 분간의 감압과정을 거쳐 챔버 밖으로 나갔다.

겨우 수심 5m의 압력을 받았을 뿐인데도 그런 변화가 있었다.

간단한 체험이었지만 수심 150m 깊이의 압력 조건은 상상을 초월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챔버21실제 150m 바닷속으로 잠수했다가 챔버 속에서 감압과정을 거쳤던 한종호 중사의 얘기다.

16대기압의 압력은 1cm2의 면적에 16kg의 압력을 받는 상태입니다.

이때는 1대기압 상태에서보다 4∼5배 힘이 더 듭니다.

관절 부분이 접힐 때마다 아파왔습니다.

150m에서 잠수사는 혼합기체(헬륨 95%, 산소 5%)를 마셔야 하므로 대기중에서보다 6∼7배 빨리 체온손실을 느껴 추위를 쉽게 느낍니다.

식욕도 거의 없고 밥알을 씹으면 고무를 씹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32℃의 고온, 70% 이상의 습도 때문에 항상 피부가 끈적끈적하고 불쾌지수가 높습니다.

헬륨을 마시면 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나는 도널드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챔버 조정패널의 생환지원사와 교신도 쉽지 않습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마련이지요.

이런 상황에는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없으면 버티기 어렵습니다.”

포화잠수 5회 기록을 갖고 있는 이상훈(33) 상사는

“챔버 안에서는 될수록 말은 짧게, 목적어 중심으로 얘기한다.

소설책이나 감상용 책은 답답해서 읽지 못한다.

차라리 과학책이나 수학 정석 같은 걸 본다.

집중이 잘 안되는 환경에서 오히려 집중할 거리를 찾는 거다.

성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현상도 있다” 라고 말했다.

따라서 챔버 내에 혹은 수중에서 감압없이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기간도 한정돼 있다.

영국이 48일간의 실험에 성공했고,

노르웨이는 24일,

우리 해군은 15일 체류에 성공했다.

챔버 조종실의 생환지원사는 24시간 대기하면서 챔버 속 잠수사들의 안전을 체크하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거의 100% 들어준다.

그러다 보니 장난기 있는 잠수사들은 간혹 빨랫감을 챔버 속에 갖고 들어 갔다가 이중 현창(챔버 밖과 안에서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을 통해 슬그머니 밖으로 내 놓기도 한다.

이처럼 어려운 포화잠수를 한 번 하고 나면 체중이 4∼5kg 줄어 든다.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약 2개월간의 휴식이 필요하다.

만약의 위험으로 부터 잠수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해군은 해양의학적성훈련원(해의원, 원장 김희덕 중령) 소속 잠수군의관들을 두고 있다.

포화잠수를 하기 전후 잠수사들은 해의원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동식챔버김희덕 해의원장의 얘기다.

“챔버 내부를 가압할 때 그 안의 잠수사들은 누구나 잠수병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현기증 졸림 등이 나타나는 고압신경증후군, 어깨 무릎 고관절 손목 등에 통증이 오는 가압관절통 등의 우려가 있습니다.

감압시에는 감압병 저체온증 호흡곤란 등의 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요.

이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잠수 전에 철저한 신체검사를 하고,

사후에도 계속 발병 여부를 관찰해야 합니다.

그래서 해의원은 24시간 비상연락망으로 연결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포화잠수를 하고 난 잠수사는 얼마간 자신이 포화잠수를 했다는 표시를 달고 다닌다고 한다.

거기에는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 두는데,

만약 자신이 쓰러지면 곧바로 연락해 달라는 것이다.

그만큼 포화잠수는 위험하다.

SSU대원들은 일반 잠수시에도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상처를 입기 일쑤다.

특히 고막파열 가압 관절통 등은 잠수사들의 ‘직업병’으로 여겨질 정도.

생명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히면

신경성 위장병에 걸릴 수도 있다.

SSU에서는 잠수사들이 챔버 속이나 물 속에서 위험에 처할 경우 스스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도록 인체의 생리적 현상이나 압력 내성 등을 가르치고 있다.

해의원에서도 이들에게 간호사 못지 않은 의료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의무교육을 하고 있다.

 

문제는 장비의 완벽도다.

 

그래서 진교중 대령도

“SSU 대원들의 능력은 최상급이다.

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장비의 신뢰도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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