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잠수사들은 보통 3인 1조로 활동한다.
1명은 PTC에서 수중작업을 하는 2명의 잠수사를 돕는다.
수중에서 잠수사는 앞만 볼 수 있는 헬멧을 쓰기 때문에 옆이나 뒤에서 닥치는 위험을 모를 때가 많다.
갑작스러운 장비고장으로 호흡기체 공급이 중단돼 질식할 수도 있고 날카로운 물체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이럴 때 동료애를 발휘해야 한다.
자신의 생명을 지켜 줄 이는 동료 밖에 없기 때문에 동료에 대한 우애가 친형제 이상으로 돈독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작업은 끝났다.
김상사는 장중사와 먼저 OK 수신호(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O자를 만들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편다)를 주고 받았다.
작업을 마치고 ‘챔버 조종실’에 신호를 보냈다.
“OK, 수중작업 완료.”
그 순간 청해진함의 지휘소에서는 함성이 일었다.
이제 함상의 크레인이 반잠수정을 안전하게
인양하는 작업 만 남았다.
김상사와 장중사, 그리고 인원이송기(PTC)에서 작업을 돕고 있던 강동훈 중사는 함상의 챔버 속에서 대기중이던 동료 3명과 합류해 감압과정을 거쳐야 한다.
동료들과 챔버 안에 있던 김상사는 잠시 초조해졌다.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물에서 올라 왔지만 혹시 청해진함의 크레인이 반잠수정을 끌어올리는 도중 결색(結索)이 느슨해져 다시 가라 앉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기다리다 지친 김상사는 챔버의 지휘소인 ‘챔버 조종실’과 몇 차례 교신을 시도했다.
마침내 성공적으로 인양했다는 패널 조정관의 말을 듣는 순간 김상사는 집에 있는 신부를 떠올리고 웃음을 머금었다.
김상사는 지난해 말 결혼식 날짜를 3월14일로 잡았다.
그런데 자신이 근무하는 청해진함이 반잠수정 인양작전에 투입됐다.
날씨가 좋지 않아 인양작업에 실패하고 되돌아 오는 횟수가 늘어나자
결혼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 졌다.
3월1일 6회째 작전을 펼칠 때까지 그는 포화잠수 감독관으로 함상에서 잠수사들을 감독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동안 대부분의 잠수사들이 잠수를 한번씩 한 뒤여서 다음 출항 때는 그가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는 결혼식을 작전이 끝난 뒤로 미루기로 마음 먹었다.
임무가 더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간 날씨가 좋지 않아 배가 기지에 머물게 되자 그는 예정대로 14일 결혼식을 올렸다.
다만 신혼여행만 가지 않고 집에서 출동명령을 기다렸다.
다음날 날씨가 좋아지자 비상이 걸렸다.
청해진함은 다시 출항했고 반잠수정을 무사히 인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상사는 5일 반 동안의 감압과정을 거치고 23일 신부에게 돌아 갔다.
이처럼 심해잠수사들은 목숨을 걸고 심해에 뛰어 들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이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곳이 해군의 특수부대인 SSU(대장 鄭雲埰 중령)다.
주요 임무는 조난 선박과 인명 구조활동, 주요항만의 수중 장애물 제거 등이다.
수중폭파 침투 등의 임무를 맡고 있는 UDT와는 별개의 부대다.
이 부대는 93년 서해 카훼리호 침몰사건 때
단 한 구의 시체도 유실하지 않고 건져 올리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충주호 유람선 화재-침몰 사건, 성수대교 붕괴 사건 등에서도 활약했고,
97년 강릉 앞바다에 좌초한 북한 잠수함과
98년 동해 앞바다에서 발견된 잠수정을 인양했다.
SSU는 이번 반잠수정 인양 작전에 투입됐던 청해진함(함장 禹相睦 중령)과 함께 제 55전대(전대장 陳敎仲 대령) 소속이다.
SSU는 크게 교육훈련대와 구조대로 나뉜다.
구조대원들은 모두 ○○○명.
이 가운데 30여명의 정예 잠수사가 청해진함에 파견돼 있다.
4500톤급 선박구조함인 청해진함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장비를 갖추고 있어,
이곳 심해잠수사들이 수심 300m 포화(飽和)잠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기록은 북해 유전개발 등 상업 목적의 잠수기술이 발달한 영국과 노르웨이, 미국 등 5개국 정도 만 갖고 있다.
최근 들어 미국과 영국 해군에서는 비용이 과다하게 들고,
기술적인 어려움도 있어 포화잠수사를 별도로 두지 않고,
필요할 경우 상업잠수사에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상업적인 심해잠수사가 없기 때문에 해군이 이 역할을 맡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450m 깊이의 실험잠수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기록은 실험 잠수일 뿐이어서,
실제 그 깊이에서 작업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1990년 초 미 해군이 98m 수심에서 선박을 인양한 것이 최고 기록이었다.
이 기록을 이번 인양작업에서 SSU가 깨뜨린 것이다.
“수심 150m에서 10t 이상의 선박을 인양한 예가 없습니다.
이 작업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일본 해군의 대잠초계기(P-3C)가 작업을 내내 지켜 봤을 정도입니다.
인양 관련 뉴스가 전세계로 타전되자,
이를 본 호주와 캐나다의 기업들이 도와 달라는 요청까지 해 왔지만,
SSU는 공익성을 띤 작업만 지원하기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우리 해군의 능력을 아는 러시아와 일본 등의 해군은 잠수기술을 배우려고 함께 훈련하자는 요청을 해 올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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