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재미시요람]

 

물고기를 최초로 식량으로 이용한 민족은 고대 중국이었다.
지금부터 약 5만 년 전에 중국의 동굴에서 거주하던 종족들은 장어를 식량으로 이용한 다음 뼈를 갈아서 장식품과 낚시로 이용했다고 한다.
약 1만 년 전부터는 민물고기를 소금에 절여 장시간 보존하는 방법도 개발하였다.

은나라 시대에는 금속으로 낚시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주나라 시대에는 물고기의 신선도를 식별하는 관직도 있었다고 한다.


'양양기구전'이라는 책에 의하면 오나라 때는 이미 활어의 수송 방법까지 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였다고 하면,

그들은 서서히 홍해나 지중해를 거쳐 아시아.유럽 대륙으로 진출했을 테니까,

중국보다 먼저 식용한 곳이 있었겠지만,

유물.유적과 기록상으론 중국이 최초이다.

 

cafe. daum.net /bungbi  에서 志草 님이..

 

세상에 나가 큰 뜻을 펼친다는 잉어

 

잉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매운탕일까?

아니면 산모의 보양식 재료일까?

 

예로부터 지금까지 잉어는 보양식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잉어의 의미는 등용문으로 통한다.

즉 세상으로 나가 큰 뜻을 펼친다는 의미다.

 

삼진기(三秦記)에 "용문의 잉어"

곤륜산에서 흐르는 물은 적석산을 통하고 나서 용문폭포를 이루는데,

이 폭포 밑에는 해마다 많은 잉어들이 모여 이 폭포를 뛰어 오르려고 하는데,

이 폭포를 뛰어 오르면 용이 된다고 하여 등용문이라는 말이 생겼다.

 

등용이란 크게 출세했다는 의미로 이때부터 약리도(躍鯉圖-잉어가 하늘로 뛰어오르는 모습 )를 그렸고,출세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전통 때문에 선비들의 방에는 잉어를 그린 그림을 붙여 놓고 과거 공부를 하면서 장원급제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치르던 창덕궁 영화당 옆 부용지의 축대에는 선비들의 장원급제를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잉어 조각이 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와 달리 물속으로 들어가는 잉어의 모습을 그렸다니 우리와 정반대의 모습니다.

 

잉어는 또 복을 가져다 주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는데,

임산부가 잉어 꿈을 꾸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고,

관직에 있는 사람은 크게 출세한다고 하였으며,

사업가는 사업이 크게 번창한다고 전해져 온다.

 

그밖에 효제도(孝悌圖)라는 민화에 보면 효를 표현할 때는 항상 잉어를 그린다.

이렇게 잉어가 효를 상징하게 된 것은 바로 <오행행실도>에 수록된 왕상의 효행담 때문이다.

왕상은 효성이 지극하여 계모가 추운 겨울에 잉어를 잡아오라고 하자,

강가로 나가 얼음을 깨자 쌍잉어가 뛰어 올라 계모를 잘 봉양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나라로 전파되어 잉어는 효자를 대변하는 물고기로,

엄동설한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병든 부모님을 봉양하는 이야기는 전국에 걸쳐 많이 전해진다.

잉어가 보양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조상과 잉어사이에 얽힌 사연 때문에 잉어를 먹지 않는 집안이 있다.

바로 파평 윤씨와 평산 신씨 잡안이다.

 

파평 윤씨의 전설은 여러 가지가 전해져 오는데,

윤씨의 시조 윤신달이 어부에게 잡혀 온 큰 잉어를 이상히 여겨 돈을 주고 사서 집 앞마당에 연못을 파서 잉어를 놓아주자 천둥번개 소리와 함께 잉어가 용으로 변하여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것이다.

그 후 몇백년이 지난 후 윤씨 후손이 왕을 모시고 피난을 가기 되었는데,

강물이 가로 막혀 더 이상 가지 못하자 잉어들이 나타나 다리를 놓아주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윤씨 조상은 양쪽 겨드랑이에 여든 한 개의 잉어 비늘이 있었다고 한다.

또 발에는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일곱 개의 별과 손에는 윤자 무늬가 있었다고 한다.

 

또 윤관장군일대기를 보면,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강가에 이르렀을 때 잉어떼의 도움으로 무사히 강을 건너 탈출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또 평산 신씨는 신립장군의 동곳(쌍투를 튼 후에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장식)이 잉어 뱃속에서 나왔다고 먹지 않는다고 한다.

 

잉어는 용왕의 아들로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반드시 보은을 하는 물고기로 전해져 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신을 해치려고 한 사람에게 반드시 복수를 하는 물고기로 전해져 온다.

이렇게 잉어의 앙갚음 때문에 잉어를 먹지 않는 집안이 바로 영월 엄씨이다.

정양리에 전하는 이야기로 잉어를 잡아 끊인 물을 먹은 개가 죽자 그 물을 버렸는데,

그곳에 이름 모를 풀이 나서 그 풀을 먹은 소가 또 죽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또 잉어를 즐겨 잡는 사람이 잉어로 둔갑하여 고생했다는 이야기 등....

잉어는 다른 물고기와 달리 신성시 한 것 같다.

 

잉어는 등용문을 통과하여 용이 되는 물고기로 선비들 주변에 늘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연적이나 벼루 등에 잉어의 문양을 넣어 사용하였다.

또 복을 부르는 물고기로 상징되었기에 패물함이나 반닫이 등의 자물쇠를 뛰어 오르는 잉어 모양으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늙은 잉어가 변해서 용이 된다고 믿으면서 잉어같이 생긴 용을 만들고 그렸는데,

그것을 어룡(魚龍)이라고 부른다.

 

출처: http://cfile222.uf.daum.net

 

간조때의 순천만 갯벌

 

수심이 깊은 바다에서는 조석파의 전달 속도가 아주 빠르지만,

수심이 얕아질수록 진행속도는 느려진다.

 

서해의 조석은 태평양에서 발생한 조석이 전파되어 온 것이다.

수심이 깊은 태평양에서 조석은 진행속도가 무척 빠르고 파(波)의 길이가 길지만,

조차는 수십 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수심이 얕은 서해로 조석이 들어오면,

속도가 느려지고 파의 길이가 짧아지는 대신에 진폭이 크게 증가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바다의 수심과 크기, 그리고 조석의 주기가 특별한 조건을 만족하여 일으키는 공명이 있다.

서해바다의 수심과 크기는 조석파가 공명하여 크기가 증가되는 조건에 가깝다.

이에 비해 동해의 수심과 지형은 이런 공명을 일으키는 조건이 아니다.

남해는 서해와 동해의 중간 정도의 조석 특성을 보인다.

 

- 바다의 맥박 조석이야기 (지성사/이상룡, 이석 저)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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