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를 말려서 만들었다는 뜻인 관목에서 유래 하고 있으며
관목의 '목'이 포항지방의 방언으로 "메기" 라고 발음되어,
관목이 "관메기"로 변하고,
다시 "ㄴ"이 탈락 되면서 "과메기" 로 굳어졌다고 한다."
과메기는 영일만 근해에서 잡히는 대표적 어종인 청어를 말려 만든 이 고장 특유의 전통적인 토산품 즉 건강식품으로 그 유래와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고장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지역에 청어가 예로부터 오랫동안 잡혀 왔으나, 조선시대 때 進貢品으로 선정된 관련 식품은 연일과 장기 두 곳 뿐인 것으로 나타 났다.
1832년과 1871년의 <읍지>에 다같이 기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매년 겨울이면 청어가 반드시 맨 먼저 여기서 잡힌다고 하는 데,
먼저 나라에 進獻한 다음에야 모든 읍에서 이를 잡았다.
잡히는 것이 많고 적음으로 그 해 (오는 해 겨울을 가르킴)의 풍흉을 짐작했다」
(<동국여지승람><영일현>注津條)라는 기록은
영일만 앞바다에 청어가 많이 잡혀 형산강 하류에까지 올라왔음을 지적해 주는 훌륭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동해안의 청어잡이가 이 고장의 청어잡이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이 고장과 청어 사이에 이루어진 특별한 역사적 사연을 말해주는 史話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進貢品이 바로 청어(비웃)을 말려서 만든 貫目(관메기→과메기)이다.
말린 청어 또는 건청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나,
만드는 과정에서 특별히 붙여진 이름으로 이해된다.
貫目은 오늘날 이 고장에서 '과메기'라고 부르는 이 곳 주민의 애호를 받고 있는 건 식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름철의 '포항물회'와 함께 포항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겨울철의 향토식품이 되고 있다.
식품으로의 청어는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와서 남겨진 기록이 적지 않은 것 같다.
<屠門大嚼> (1611) 이 청어(비웃)에 관한 설명을 보면,
「北道에서 나는 것은 外皮가 검고 뱃속이 붉으며,
全羅道에서 잡히는 것은 慶尙道의 것보다 작고,
경주 근해에서는 2월에야 잡히고 맛이 극히 좋다.
예전에는 천한 물고기더니 고려 말년에는 쌀 한 되에 마흔 마리만 줌으로
<牧인集>에서 李穡이 한탄하기를 "세상이 어지럽고 흉년이 들어 百物이 凋殘함으로 청어마져 드물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李瀷의 <星湖僿說>(1763년경)에는 청어에 관한 설명을
「지금 생산되는 청어는 옛날에도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해마다 가을철이 되면 함경도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형태가 아주 크게 생겼다.
추운 겨울이 되면 慶尙道에서 생산되고,
봄이 되면 차츰 전라도와 충청도로 옮겨 갔다.
봄과 여름 사이에는 황해도에서 생산되는데 차츰,
서쪽으로 옮겨감에 따라 점점 잘아져서 친해지기 때문에 사람마다 먹지 않는 이가 없다」고 하였다.
이와같이 <성호사설>시대의 청어는 서해의 청어이다.
이 서해 청어를 가리켜 서울 지방에서는 '비웃'이라 부른다.
<名物紀略>(1870년경)에 의하면, -청어는 값싸고 맛이 있어 서울의 가난한 선비들이 작 먹는 고기-라고 지적하고 비어로 표기하였다.
이렇듯 선비들을 살찌게 하는 물고기이니 '비웃'이 된 것이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많이 잡히던 영일만 동해의 청어가 근래에 희귀해져서,
오늘날 시장에 나오는 대부분의 것이 북태평양 원양어선이 잡아오는 청어로서 맛이 훨씬 떨어진다.
貫目은 음력 동짓달 추운 겨울에 잡힌 청어를 배를 따지도 않고 소금도 치지 않고 그냥 온마리들을 엮어 그늘진 곳에서 겨울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말려 만드는 것인데,
곧 냉훈법으로 얼렸다 녹혔다를 반복해서 얼말린(냉결건조) 식품이다.
이같은 방법은 부엌은 밤에 차고 밥짓는 동안은 열과 연기로 따뜻해진다. 아궁이에 송엽을 땔때 부엌 안은 연기로 자욱하게 되고 자연 통풍의 필요가 생긴다.
채광을 겸한 그 통기구가 추녀 바로 아래에다 뚫은 살창이다.
그곳이 바로 청어의 건조장,
비웃 몇 두름을 겨우내 그 설창에 걸어두면 냉결건조 되고 송엽의 향연으로 훈제되어 이른 봄에는 빳빳한 貫目이 되는 것이다.
조상의 味覺과 삶의 지혜가 한층 돋보이는 장면이다.
李圭景의 <五州行文長箋散稿>에도 "청어는 연기에 그을려 부패를 방지하는데 이를 烟貫目이라" 썼고,
<음식디미방>(1670년경)에 "말린 고기를 오래 두려면 연기를 쒸워 말리면 고기에 벌레가 안난다"고 한 것이 이렇하니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閨閤叢書>(1815년경)에 "비웃 말린 것을 세상에서 흔히들 貫目이라 하니 잘못 부름이요.
정작 관목은 비웃을 들어 비추어 보아 두 눈이 서로 통하여 말갛게 마주 비치는 것을 말려 쓰며 그 맛이 기이하다"고 한 것과
<笑天笑地>에 「동해안 지방의 한 선비가 겨울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해안가를 걸어 가다가 민가는 보이지 않고 배는 고파오고 있었는데,
해변가를 낀 언덕위의 나무에 고기의 눈이 나무가지에 끼인 채로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찢어 먹었는데 너무나 맛이 좋았었다.
과거를 보고 내려온 그 선비는 집에서 겨울마다 생선 중 청어나 꽁치를 그 방법대로 말려 먹었다」는 기록은 관목의 명칭에 대한 의미를 밝혀 주는 것으로 이채롭다.
다른 지방에서도 청어가 많이 잡혔으나 유독 이 고장과 장기 지방의 청어가 관목으로 진상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연유에서 일까?
앞서<성호사설>에서 시사한 바와 같이 청어의 맛이 그 질이나 기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경상도 동해안 특히 영일만 연안에서 잡히는 경울 청어가 최상품의 것이 된 것이다.
이러한 청어는 다른 생선과는 달리 특이한 불포화 지방산을 함유하고 있어서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에 특효가 있는 優良 수산식품으로 오늘날 판명되고 있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청어가 잘 잡히기 않기 때문에 그 대용으로 꽁치를 얼말려 과메기를 만들어 먹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 대용 식품이 옛날 청어관목 못지 않는 맛을 내며 인기있는 식품이 되어 가고 잇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이 고장 특유의 역사적 지혜와 산물로서 그 맥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꽁치도 핵산이 많이 함유된 건강에 유익한 수산식품으로 꼽히고 있으며,
꽁치는 서리가 내려야 제맛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역시 겨울의 꽁치로 만든 과메기는 청어 과메기 이후 이 고장의 토산식품으로 손색이 없게 된 것이다.
현재 장기 지방에서는 과메기를 만들지 않고,
유일하게 구룡포 지방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여 전통적 향토식품으로 오늘에 계승, 발전되고 있기 때문에 구룡포의 과메기는 더욱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