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생물의 이름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찬찬히 내력을 더듬어 보면,
그렇게 불리게 된 수긍할만한 나름의 연유가 있다.
그 연유는,
곧 인간과 바다생물의 접촉 역사다.
해서, 그 이름들엔 바다생물에 대한 인간 지식이 압축돼 있다.
다양한 바다생물의 이름 유래를 살펴보면서 그들을 새롭게 이해하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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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청어

선비가 즐긴 진짜 푸른 생선
겨울철에 말리면 과메기로 변신

 
  냉동창고에 보관 중인 청어.

청어는 등 푸른 생선 중 우리 민족과 가장 친숙한 어종이다.
그래서인지 선조들은 청어를 '진짜 푸르다'는 의미에서 '진청(眞鯖)'이라 불렀다.

등 푸른 생선들은 수면 가까이서 헤엄치기 때문에 활동성이 좋아 육질이 단단하다.
영양면에서도 양질의 단백질은 물론 EPA DHA 등의 불포화지방산을 비롯한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돼 노화 방지와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한나라 성제(成帝) 때 사치스런 생활로 이름났던 5명의 제후들이 청어를 즐겼다 한다.
귀한 물건을 가리킬 때 쓰는 '오후청(五侯鯖)'이란 말은 여기서 비롯됐다.
그런데 우리 나라 연안에서는 청어가 흔하게 잡히는 편이어서인지 선조들은 청어를 두고 가난한 선비를 살찌우는 고기라는 뜻으로 '비유어(肥儒魚)'라고 불렀다.
오후청으로 귀하게 대접받던 청어가 비유어로 불린 것은 의미 부여의 역설이다. 선비들이 현실의 어려움을 '제후의 음식'을 통해서 잠시나마 잊고자 했던 게 아닐까.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서도 이런 역설을 엿볼 수 있다.
실직한 남편이 아침을 굶고 출근한 아내의 점심상을 차리며 남긴 메모인 '왕후의 밥, 걸인의 찬…'에 깃든 마음 씀씀이가 그러하다.
가난에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추스려 행복으로 이끄는 단련의 계기로 삼으려는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넉넉한 삶의 지혜가 녹아 있다.

겨울 한철 청어가 많이 잡히자 선조들은 배도 따지 않은 채 바람이 잘 통하는 해안가 덕장에 걸어두고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며 자연 건조시켰다. 이를 청어의 눈을 꿰어 말린다 하여 '관목(貫目)'이라 불렀다. 이 '관목어'가 겨울철 입맛을 돋우는 포항 지방 특산물인 '과메기'의 어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청어가 우리 나라 근해에서 잡히지 않자 꽁치 말린 것도 '과메기'로 통용되고 있다.

 
글∙사진 : 박수현 / 국제신문 사진부 기자

한국해양대학교 해양공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수중잠수과학기술을 전공했고,남극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1,300회 이상의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보고 경험한 바다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저서로는 [수중사진교본],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바다이야기], 제 24회 과학기술도서상을 수상한 [재미있는 바다생물이야기], 2008년 환경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바다생물 이름풀이사전],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북극곰과 남극펭귄의 지구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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