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U 대원들은 수중에서 최정예라는 자부심 외에는 진급이나 수당 등에 큰 이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런 힘든 일을 자원했고,
어떤 만족을 얻는가.
경남 통영 한산도 출신으로 해난구조대 부장을 맡고 있는 심해잠수사 박현동(朴賢東) 소령은 “어려서부터 물을 좋아했는데 특히 해난구조 분야는 남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분야여서 도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도달하지 못한 세계,
볼 수 없고 체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 늘 동경하고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그런 세계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거지요.”
이번 반잠수정 인양작전 때 잠수했던 심해잠수사 한종호(韓鍾鎬·30) 중사는 해군에 입대해 처음엔 미사일 유도사로 복무하다 SSU의 존재를 알고 지원했다.
"작전 중에는 굉장히 힘들다.
그러나 작전에 성공했을 때의 짜릿한 쾌감 때문에 다시 힘든 일을 계속한다”고 말했다.
원사나 준위 등 십수년 경력의 SSU대원들은 작전이나 훈련 도중 물밑에서 ‘아찔한’ 고비를 수없이 넘긴 이들이다.
이상후(李尙厚·50) 준위는 74~76년 신안 앞바다 유물 인양작업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파도가 높고 조류도 강한 악조건에서 작업을 했는데,
어민들이 쓰다 버린 어망에 걸려 위험에 처했다는 것이다.
어망은 해난구조대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장애물이다.
움직일수록 몸에 더 잘 감기는 특성 때문에 빨리 제거하지 않을 경우 그대로 수장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동료의 도움으로 살아나긴 했지만 그는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간담이 서늘해진다고 했다.
그는 그런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준 것은 무엇보다 정신력이라고 강조했다.
박소령도 “SSU 대원 역시 평범한 인간”이라면서
“다만 어떤 정신 자세로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특수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으로 나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SSU 대원들이 사기를 잃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강한 동료애와 결속력 때문이다. 그것은 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황에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운채 중령은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작전시에는 엄격하지만 평소에는 가족처럼 지내려 한다”면서 평소의 SSU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SSU대원으로 있다가 희생된 사람들을 부대원들이 잊지 않도록 현충일에는 단체로 국립묘지를 방문하고,
평소에 유가족들과도 교분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대원들은 ‘내가 죽어도 SSU가 가족을 책임진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SSU가 거둔 성과 중 부대원들이 지금도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은
1993년 10월 침몰한 서해 카훼리호의 시체인양 작전이었다.
전남 부안군 위도 앞바다는 조류가 빨라 작업이 더뎠고,
유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10월14일 급기야 위도 주민들은 SSU, UDT 등 구조대원들이 작업을 성실하게 하지 않는다고 집단적으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당시 해난구조대장으로 급파됐던 진교중 대령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수사들은 1시간 잠수하면 최소한 5시간 이상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쉴 새 없이 작업에 투입해야 했다.
시체를 모두 인양하고 부대로 복귀한 뒤에도 위도주민들의 오해는 풀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진대령은 우연히 당시 위도 청년회장인 장영수씨를 만나 인사를 받게 됐다.
사건 당시 오해가 있어 군인들에게 함부로 했노라고 사과를 해온 것.
진대령은 장씨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사고 당시 강한 조류와 불투명한 시계 등으로 인해 작전이 지연돼 안타까웠습니다.
그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작업을 종용하실 때는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일이 끝나고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들으니
저희들은 국민들에게 뭔가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들어 더할 수 없이 기쁩니다….”
당시 교육대장이었던 정운채 중령은 교육생들을 데리고 현장에 투입됐다.
10월 10일 사건 당일은 일요일이었고
월요일부터 교육생들을 데리고 제주도 실습을 갈 계획이어서 교육생들의 외박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투입 명령을 받자 걱정이 앞섰다.
깜깜한 바닷속에서 시체를 안고 올라와야 하는 작업인데,
이제 갓 훈련을 받은 이들에게 어떻게 그 일을 시킬지 답답하기만 했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건 제일 먼저 뛰어든 잠수사가 성공하면
다른 잠수사들도 모두 성공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제일 우직하고 다이빙 잘하는 교관을 먼저 잠수시켰습니다.
그런데 몇 분 뒤 그가 시체 한 구를 안고 물 위로 힘차게 솟구치는 겁니다.
얼마나 기뻤던지….”
94년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건,
작년 여름 지리산 폭우 때 실종자 구조작업 등 재난의 현장에는 언제나 SSU가 빛을 발했다.
1년에 2회 정도 100여명씩 투입돼 한강 정화 활동을 벌이는 것도 SSU의 자랑거리다.
매년 수중정화작업에 참여 해 왔던 정운채 중령은 “6~7년 전만 해도 한강에는 고기가 별로 살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에는 맑은 물에 사는 쏘가리가 있어 놀랐다”며
정화작업 덕분이 아니겠느냐고 자랑스러워했다.
이런 작업들로 인해 SSU는 몇 년 전 모 신문사가 주최한 환경대상을 받았고,
그동안 받은 감사장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SSU는 한강 정화활동과 함께 교각의 불량유무를 점검하는 일도 하고 있다.
96년 감사원과 서울시청의 요청으로 한강 교각의 물 밑 상태를 수중카메라로 촬영해 주기도 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이 작업의 필요성이 제기 됐던 것.
94년에는 전국 국도의 18개 교량을 검사해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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