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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과 풍속
 양력으로 3월4일 (이번주 일요일)이 바로 정월 대보름이다.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의 음력 정월 보름인 1월 15일을 말한다.
대보름날은 우리 민족의 밝음사상을 반영한 명절로 다채로운 민속이 전한다.
중국에서는 이 날을 상원(上元)이라 하는데,
도교적인 명칭으로 천관(天官)이 복을 내리는 날이라 한다.
여기에 중원인 7월 15일, 하원인 10월 15일을 합하여 삼원이라 부른다.
 
이 밖에도 원소절(元宵節), 원석(元夕)이라 하며,
일본에서는 소정월(小正月)이라 하여 공휴일로 정해 명절로 삼고 있다.
 
 
 
쥐불놀이 하면 고향 마을의 형이나 아저씨가 만들어준 구멍이 숭숭 내어진 깡통에 철사끈을 달아 불쏘시개(특히 광솔: 소나무의 가지 공이에 불을 붙인 것)를 넣고 윙윙 소리내어 돌린다.

 

 

대보름날의 각종 풍속은 전체 세시풍속 중 1/4이 넘을 정도로 풍부한데 설 풍속을 합치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이것은 정초와 대보름 명절이 우리 민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이들은 상호 유기성을 가지기 때문에 정월중에 많은 세시행사가 모여 있다.

정월에 드는 설과 대보름은 상호보완적으로 설날이 개인적 · 폐쇄적 · 수직적이고,

피붙이의 명절임에 반해 대보름은 개방적 · 집단적 · 수평적 · 적극적인 마을공동체 명절로 두 관념이 교차하며 달의 생성과 소멸주기에 따라 긴장과 이완, 어둠과 밝음, 나에서 우리로 교체 · 확장되는 일원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한국의 명절 중 정월 대보름의 예축의례와 상대적인 명절로 수확의례인 8월 한가위의 보름 역시 만월을 통한 풍요관념을 보여준다.

대보름은 상징적인 측면에서 달 ·여성 ·대지의 음성원리(陰性原理)에 의한 명절로 달은 곧 물의 여신이므로 대보름과 농경문화는 밀접하다.

땅과 달을 여성으로 여긴 것은 오랫동안 전해온 지모신(地母神)의 생산력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태종실록"에 전하는 경기도 연안부의 용갈이, 용경(龍耕)풍속이나 《동국세시기》에 전하는 홍주의 용경과 용알뜨기 민속, 영동지방의 용물달기 등은 용신(龍神)신앙이 농경의례와 밀접함을 보여준다.

줄다리기 역시 용사(龍蛇) 신앙의 한 표현이다.

따라서 대보름 달빛은 어둠과 질병, 재액을 밀어내는 밝음 상징이므로 동제(洞祭)를 지내고 개인과 집단적 행사를 한다.

전하는 말에는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든가 “중국 사람은 좀생이 별을 보고 농사짓고, 우리나라 사람은 달을 보고 농사짓는다”는 것은 한국과 중국의 문화유형이 다름을 말해 준다.

개인적인 기복 행사로는 부럼깨물기, 더위팔기, 귀밝이술마시기, 시절음식인 복쌈이나 묵은 나물먹기와 달떡을 먹는 것이 있으며,

줄다리기 · 다리밟기 · 고싸움 · 돌싸움 · 쥐불놀이 · 탈놀이 · 별신굿 등은 집단의 이익을 위한 대보름 행사다.

 

 

마을의 수호신에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의.

동신제(洞神祭)라고도 한다.

 

동제를 지내는 목적은 온 마을 사람들이 질병과 재앙으로부터 풀려나 농사가 잘 되고 고기가 잘 잡히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어서, 건강과 풍요로 집약될 수 있다.

동제의 역사는 문헌기록을 통하여 《삼국지》나 《후한서(後漢書)》의 <동이전>에 전하는 삼한(三韓)의 제천행사에까지 소급할 수 있다.

이 제천행사는 봄에 씨를 뿌릴 때 하늘에 제사하고,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 들이고 나서 하늘에 감사하는 국중대회(國中大會)로서,

연일 음주 · 가무(歌舞)를 한 것 등으로 보아 오늘날의 규모가 큰 동제와 비교될 수 있다.

 

동제의 종류는 제의 시기에 기준을 두면 춘제(春祭)와 추제(秋祭)로 구분되고,

제를 지내는 목적에 기준을 두면 기풍제(祈豊祭) · 풍어제(豊漁祭), 천연두가 들어오지 않게 하여 달라고 빌던 별신(또는 별신굿), 호환(虎患)을 막기 위해서 하던 호환굿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또한 동제 대상신의 성격에 따라 산신제 · 서낭제 · 용신제 · 천신제 · 부군제 등이 병행될 수도 있다.

동제는 대체로 정월 14일 밤에 지내는데,

동제 7∼15일 전에 마을 사람들이 제관을 선출하고,

제관들은 동제를 올리는 날까지 금기(禁忌)하며 지낸다.

동젯날은 제물을 신당에 차리고 자정이 되면 초헌(初獻) · 아헌(亞獻) · 종헌(終獻)을 한 후 독축(讀祝)하여 소지(燒紙)를 올리고 끝낸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은 제주집에 모여 회식하며 마을일을 의논한다.



정월 대보름날(음력 1월 15일) 아침에 하는 풍속.

 

아침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동네 사람을 만나는 대로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게” 하고 더위를 팔면 그 해 여름은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 날은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을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고 도리어 “내 더위 먼저 사가게” 하며 응수하는데,

이것을 학(謔)이라고 한다.

 

이 풍속은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더위 파는 방법으로 대보름날 아침에 대나무쪽에 가족의 이름을 적어 동전을 종이에 싸서 길바닥에 버리면 누구든지 먼저 줍는 사람이 더위를 먹는다고 한다.

가축의 더위를 면하는 방법으로는 해뜨기 전에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를 꺾어서 목에 걸어두고,

소에게는 왼새끼를 꽈서 몸에 매어주며 “올해는 더위 먹지 말라”고 외치면 여름 내내 더위를 피할 수 있다고 한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上元]에 개를 굶기는 풍속.

 

이 날 개에게 음식을 주면 1년 내내 파리가 많이 꾀고 개가 쇠약해진다는 속설이 있다.

이 풍속은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하루 종일 개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이 아니고 오후쯤에 먹이를 준다.

이 풍습에서 잘 먹어야 할 명절에 오히려 굶주린 사람을 상원견(上元犬)에 비유하여 “개 보름 쇠듯한다”고 하는 속담이 생겼다.

 


농업을 천하의 대본으로 삼아 온 한국에서는 풍년을 비는 여러 가지 행사가 있었는데,

특히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상원(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헌 수수비를 가져다 밭에 거꾸로 꽂아 놓은 후 절굿공이나 떡메를 가지고 가서 밭 네 귀를 찧고 다닌다.

이것은 밭에 있는 병충을 없애고 여름에 비가 와도 밭두렁이 무너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또 이때에 오줌동이를 지고 가서 밭에 뿌리면서 "두더지 잡자, 굼벙이 잡자"고 외치고,

밥을 가져다 밭 네 귀에 놓아 두면 병충이 없어지고 농작물도 잘 자란다고 전한다.

 

상원날에 차례를 지낸 다음 콩 · 팥 · 조 · 수수 · 녹두 · 목화씨 등 밭작물을 가지고 가서 밭 귀퉁이에 묻는데,

그렇게 하면 묻은 곡식이 잘 자라서 풍년이 든다고 한다.

또 풍흉을 점치는 방법도 있다.

정월 대보름 달맞이 때 떠오르는 달의 빛 · 모양 · 높이 · 윤곽 등으로 그 조짐을 안다고 하는데,

농촌에서는 오늘날도 하고 있다.

 

음력 정월에 벌이는 쥐불놀이도 기풍행사인데,

이것은 잡귀를 쫓고 신성하게 봄을 맞이한다는 뜻도 있으나 잡초를 태움으로써 해충의 알을 죽여 풍작을 기원하는 의미도 들어 있다.


정월 대보름날 달을 보고 소원을 빌고, 농사를 점치는 세시풍습.
대보름날 초저녁 홰에 불을 붙여서 될 수 있는 대로 달을 먼저 보기 위하여 뒷동산에 올라간다.

보름달이 솟을 때에 횃불을 땅에 꽂고 합장하여,

풍년 · 과거급제 · 결혼 등 제각기 소원을 빈다.

그러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믿었다.

 

보름달을 보고 1년 농사를 미리 점치기도 하는데 달빛이 붉으면 가물고, 희면 장마가 있을 징조라고 한다.

달의 대소 ·고저로도 점을 쳤는데,

북쪽으로 치우치면 두메에 풍년,

남쪽으로 치우치면 바닷가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

 

달의 사방이 두꺼우면 풍년이 들 징조이고,

얇으면 흉년이 들 징조이며, 차이가 없으면 평년작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달집태우기’에서 그 타는 모양을 보고도 풍흉을 점쳤다.

 

음력 정월 보름날에 어린아이나 병이 들어 마른 사람이 여러 집[百家]을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다가 먹는 풍습.
절구통을 뉘고 그 위에 개와 마주 걸터앉아 빌어온 밥을 개에게 한 숟갈, 자기가 한 숟갈 하는 식으로 떠먹으면 건강해지고, 다시는 앓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학자 유득공(柳得恭)이 지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 실려 있는 습속이다.
백가반은 귀하게 자라는 아이를 천하게 길러야 건강하게 크며, 앓고 난 사람도 천하게 먹어야 빨리 회복하여 건강해진다는 바람에서 나온 듯하다.

 

 


경북 안동 ·의성 등지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 밤에 부녀자들이 하는 민속놀이.
기와밟기라고도 한다. 단장한 젊은 여자들이 공주를 뽑아 자신들의 허리를 굽혀 그 위로 걸어가게 하는 놀이로, 놀이 지역은 금남(禁男)의 지역으로 선포된다.

 

놋다리밟기는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공주와 함께 청주를 거쳐 안동지방에 파천(播遷)하였을 때, 마침 개울을 건너게 되었는데 마을의 소녀들이 나와 등을 굽히고 그 위로 공주를 건너게 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한다.

놀이는 정초부터 시작하여 상원야(上元夜)에 절정을 이루는데,

상원날 저녁 젊은 여자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 노래를 부르면 그 소리에 마을의 부녀자들이 모여들어 놀이가 시작된다.
우선 모두 일렬로 늘어서서 허리를 굽힌 뒤 앞 사람의 허리를 두 팔로 감아 안고 미리 선발된 공주를 등 위로 걸어가게 하는데,

공주는 노래 소리에 맞추어 느린 걸음으로 전진한다.

이때 공주가 쓰러지지 않게 양 옆에서 시녀 두 사람이 손을 높이 들어 잡고 부축한다.

공주가 등 위로 지나간 사람은 다시 앞으로 가서 허리를 굽혀 열이 끊이지 않게 한다.

경우에 따라 놋다리패는 몇 개나 있어 서로 만나기도 하고 길을 비켜주면서 밤늦도록 즐긴다.


노래를 부르는 순서는 맨 앞에 선 창립(創笠)들이 선창하면 뒤에 따르는 사람들이 후렴을 받아 하는데,

노래의 곡목은 시집살이 노래 ·베틀가 등 다양하다.

창립은 40∼50대의 손자와 외손자를 본, 인생의 복을 다 갖춘 부인들만이 설 수 있다.

이 날 창립의 위엄은 대단해서 금남의 지역을 얼씬거리는 남성이 있으면 혼을 내어 쫓아 버리거나 뺨을 때려도 무방하였다.

이 놀이의 특징은 대보름날 보름달 아래서 부녀자들이 놀던 놀이라는 것과, 조선시대의 엄격한 사회제도에서도 여성이 남성을 쫓아내고 놀이를 즐겼으니,

여성 해방의 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구(器具)의 사용은 없고 옷도 평상시 그대로이다.

 

 

정월 대보름날 밤에 다리[橋]를 밟는 전통적인 민속놀이.
답교(踏橋)라고도 한다.

 

이수광(李光)의《지봉유설(芝峰類說)》에 의하면 다리밟기는 고려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하나, 이것은 중국의 풍속이 고려에 전해진 것이다.
일찍이 중국의 옹낙(雍洛)이 쓴 《영이록(靈異錄)》을 보면 “당(唐)나라에서 정월 보름을 중심으로 3일간 야행을 허가하였더니 남녀들이 놀러다니는 거마(車馬)가 길을 메웠다”고 하였으며,

육계굉(陸啓宏)의 《북경세화기(北京歲華記)》에는 “정월 보름날 밤에 부녀자들이 모두 집에서 나와 다리를 거닐었다”고 하였고,

우혁정(于奕正)의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에는 “정월 보름날 밤에 부녀자들이 서로 이끌고 나와 거닒으로써 질병을 없애는 것을 주백병(走百病)이라 한다” 하였다.

이 밖에도 중국에는 다리밟기에 대한 많은 문헌이 있다.


다리밟기가 조선시대에 더욱 성행하였고, 다리를 건너는 방법도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다리 셋을 건너는가 하면, 제일 큰 다리나 가장 오래 된 다리를 자기 나이 수대로 왕복하였다.

지방에 따라 왕복을 1회로 치는 곳과 왕복을 2회로 간주하고, 나이가 홀수일 때는 1회를 다리 아래로 돌아오는 곳도 있었다.

이렇게 다리를 밟으면 1년 내내 다리[脚]에 병이 없고, 12다리를 건너면 12달의 액을 막는다 하여 남녀노소 ·상하귀천의 구별 없이 하였다.


혹자는 교(橋)가 우리 말로는 다리[脚]로 발음되므로 여기에 연관시켜 자기 나이 수만큼 다리를 밟으면 다리가 튼튼해지고 모든 액을 면한다고 하여 여러 곳의 다리를 찾아다니며 밟았다 한다.

후에는 보름날 너무 많은 사람이 나와 매우 복잡하였으므로 부녀자들은 16일에 다리밟기를 하고,

양반들은 상민들과 몸이 부딪치는 것이 싫어 14일에 다리밟기를 하였는데,

이것을 ‘양반 다리밟기’라 하였다.

 

 

동전을 땅바닥에 던져서 맞히는 정월 대보름 놀이.
척전놀이라고도 한다.

 

대개 12∼13세 안팎의 아이들이 몇 명 모여 담 밑 같은 곳에서 땅바닥에 반달 모양을 그려놓고 그 안에 동전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을 파놓는다.

제각기 약 5∼6 m 떨어진 거리에서 구멍을 향하여 한 푼씩 던져 구멍에 들어간 것을 첫째로 하고,

구멍에 가까운 것부터 순서를 정한다.

첫째가 여러 사람의 돈을 모아 한 손에 가지고 구멍으로 던져 구멍에 들어간 돈만 가지고 나머지 돈 중에서 한 푼을 지정하여 이 돈을 맞히는 아이가 가진다.

돈 대신 까팡이를 동전만하게 만들어서 하기도 한다.

 

 

농촌에서 정월 첫 쥐날(上子日)에 쥐를 쫓는 뜻으로 논밭둑에 불을 놓은 세시풍 속의 한가지 놀이로서

이날은 마을마다 청소년들이 자기네 마을에 있는 논두렁이나 밭두렁에다 짚을 놓고 해가 지면 일제히 불을 놓아 잡초를 태운다.

 

불은 사방에서 일어나 장관을 이루는데, 이것을 쥐불놀이(鼠火戱)라 한다. 아이들은 "망월이야"하고 외치면서 밭두렁과 논두렁, 마른 잔디에 불을 붙인다.

이 쥐불놀이는 쥐구멍 속에 든 쥐를 잡고 마른 풀에 나붙은 해충을 죽이기 위한 것이다.

이 쥐불의 크고 작음에 따라 그해의 풍흉, 또는 그 마을의 길흉을 점치기도 한다. 불의 기세가 크면 좋다하여 이날은 각 마을이 서로 다투어 가며 불기세를 크게 하는 풍습이 있다.

 

그리고 다른 마을 사람들과 대응하여 쥐불을 놓기도 하는데 한쪽 마을의 쥐불이 왕성하여 모두 타버리게 되면 쥐들은 기세가 약한쪽 마을로 옮겨가게 되며 불의 기세가 큰 마을 팀이 승리하는 것으로 된다.

 

이긴 편의 쥐가 진 편으로 몽땅 쫓겨가게 되어 이긴편 마을에서는 농작물에 해를 입지 않게 된다고도 한다.

자정이 되면 사람들은 모두 자기 마을로 돌아가며 들판에 놓은 불은 끄지 않는다.

이날 들판에 불을 놓는 까닭은 쥐의 피해가 심하므로 쥐를 박멸하기 위함과 논밭의 해충과 세균을 제거하고 마른풀 깍기의 일손을 덜며, 또 새싹을 왕성하게 함이라고 한다.

 

아마도 옛날에는 근세와 같이 농작물의 종자를 개량하거나, 농약과 재배기술이 발달되지 않아 기후환경과 주변 영향에 따라 농사의 풍흉이 크게 좌우되었으므로 민속에 대한 믿음과 해학, 그리고 전래가 강했으리라 믿으며

이 쥐불은 <동국세시기>에도 충청도 풍속에는 떼를 지어 횟불을 사르는데,

이를 훈서화(燻鼠火), 즉 쥐불이라 하였다.

 

이러한 쥐불놀이는 함경도에서 부터 전라도에 까지 전국적으로 존속하는 풍속이다.

근래에는 농촌에 청소년이 부족하고 도시로 이농하여 농촌에서의 쥐불놀이는 점차 보기 드물게 되었으며

필자 자신의 기억으로도 쥐불놀이 하면 고향 마을의 형이나 아저씨가 만들어준 구멍이 숭숭내어진 깡통에 철사끈을 달아 불쏘시개(특히 광솔: 소나무의 가지 공이에 불을 붙인 것)를 넣고 윙윙 소리내어 돌린다.

 

  

함남 북청군 일대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며칠 동안 연희된 사자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

놀이의 목적은 벽사진경(邪進慶)에 있는데, 벽사할 능력을 가진 백수(百獸)의 왕 사자로 잡귀를 몰아내어 마을의 평안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놀이의 비용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벽사를 해준 후에 받는 돈과 곡식으로 충당하였다.

놀이의 기원에 대하여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이사부(異斯夫)가 지금의 울릉도인 우산국(于山國)을 칠 때 나무로 만든 사자를 이용하였다는 기록이 보이고,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향악잡영(鄕樂雜詠)》 5수(首) 중에서 산예(猊)는 사자춤을 가리킨 말이다.

 
놀이는 음력 정월 14일 밤 달이 뜬 뒤부터 시작되는데, 이보다 앞서 여러 마을의 장정들 사이에 치열한 편싸움이 벌어진다.

싸움이 끝난 후 서당 · 도청의 넓은 마당에 술과 음식을 차려 먹고 마신 뒤 해산하고, 그 후에 사자놀음이 시작된다.

16일 이후에는 초청한 유지의 집만 순회하는데, 잡다한 놀음패 중에서 무용단이 먼저 벽사를 표시하는 춤을 춘 후 퇴장한다.

 

그 후에 본격적인 사자놀음이 전개되는데,

내용은 애원성 · 마당놀이 · 사자춤 등으로 형성된다.

먼저 쾌자(快子)를 입은 여인이 등장하여 경복궁춤 · 애원성춤 · 성주풀이춤을 추고, 다음에 양반 · 하인(꼭쇠)이 등장하는 마당놀이로 넘어가는데,

양반의 명령에 따라 사당춤 · 무동춤 · 곱사춤 등을 춘다.

한참 후에 사자가 등장하여 여러 가지 재주와 춤을 보이다가 기진하여 쓰러진다.

이 때 대사가 등장하여 사자를 살리려고 반야심경을 외지만 살아나지 않고,

의원이 등장하여 침을 놓으면 사자가 다시 일어나 춤을 추고,

여기에 사당춤 · 상좌(上佐)의 승무 등이 어울리는데,

사자가 퇴장하면 동리 사람들이 등단하여 ‘신고산타령’을 부르면서 군무를 한다.

 
북청사자놀음은 1945년 8 ·15광복 이후 함북에서 월남한 연희자들이 공연하다가 1967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기능 보유자는 윤영춘(尹迎春:사자 앞채역) · 김수석(金壽石:사자 앞채역) · 변영호(邊永鎬:악사) · 동성영(董誠英:사자 앞채역) · 여재성(呂在性:사자 뒤채역) · 전중식(全仲植:악사) · 전광석(田光石:칼춤) · 이근화선(李根花善:사당춤) 등이다.

 

  

황해도 장연 지방에서 정월 대보름에 즐겨온 민속놀이.

행사에 앞서 벌이는 윷놀이를 통해서 그해 농사의 흉풍을 점치는 까닭에 이와 같이 부른다.

또 이 놀이에는 씨 뿌리는 동작이 주요 부분을 이루고 있어 '종군(種軍)놀이' 또는 '부종군(付種軍)놀이'라고도 한다.


정월 초 열흘께에 이르러 마을 사람들은 이 행사를 이끌어 갈 '소탄관'(소를 타고 지휘하는 관원이라는 뜻)을 뽑고 여러 가지 준비에 들어간다.

대보름날 아침 '산패'와 '들패'로 나눈 마을의 젊은이들은 각기 2~3명의 대표를 뽑으며,

이들은 수숫대로 만든 작은 윷을 가지고 시절윷놀이를 벌인다.

 

사람들은 자기들 대표가 윷가락을 던질 때마다 응원의 함성을 지르고 농악대는 잦은 가락을 울려서 분위기를 돋운다.

승리는 미리 작정해둔 점수를 먼저 딴 쪽에 돌아가는데 산패가 이기면 밭농사가, 들패가 이기면 논농사가 잘 되며 양쪽이 비슷한 점수를 얻으면 두 가지 농사가 다 잘 되리라 여긴다.


윷놀이가 끝나면 사람들은 소탄관을 앞세우고 행렬을 시작한다.

소탄관은 꽃으로 꾸민 구럭을 쓰고 짚으로 뜬 부채를 든 모습으로 소를 타며,

소도 가지각색의 천과 꽃으로 치장을 한다.

이어 농악대가 늘어서고 농악대 뒤로 쟁기 · 호미 · 괭이 · 도리깨 · 광주리 따위의 가장물을 메거나 든 사람들이 따른다.


한 사람이 나서서 “에기혀 에헤야 방아로구나/이게 누구의 방아인가/단군 어른 조작 방아일세…” 하고 방아타령을 메겨나가면 사람들은 한 구절이 끝날 때마다 “에헤야 방아로구나” 하며 받는다.

메기는 사람은 이어 농사를 지어나가는 과정과 함께 풍년을 맞는 기쁨을 즉흥적으로 엮어나간다.

이들이 읍에 이르면 구경꾼들이 환성을 질러 맞는다.

옛 동헌 앞 마당에 이르러 소탄관이 “춘분이 되었으니 밭 갈고 씨 뿌리세” 하면 사람들은 “예 해야지요” 답하고 이어 농부가를 부른다.

가을걷이와 마당질을 하는 동작으로 넘어가 ‘풍년맞이’로 들어가면서 이 놀이는 절정에 이른다.


관중들 중에 놀이판에 끼여들어 사자춤판을 벌이는 사람도 있다.

놀이가 끝나면 사람들은 마을로 돌아와 새벽까지 춤추고 노래부르며 즐긴다.

시절윷놀이는 농사의 고달픔과 풍년의 즐거움이 함께 표현된 농민들의 큰 잔치이다.

 


 

한국에는 예로부터 정월열나흗날 저녁에 장수를 빌어 오곡밥이나 약식을 지어먹고 아침에는 귀밝이술[耳明酒]을 마시며,

새벽에 부럼을 까서 이를 튼튼하게 하고 종기를 예방한다는 풍습이 전한다.

이들 절식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오곡밥[五穀飯] : 쌀 · 차조 · 차수수 · 팥 · 콩 등 5가지 곡식으로 밥을 짓는다.

    오곡밥은 이웃과 나누어 먹으면 좋다고 하며, 또한 이 날에는 하루 9끼를 먹어야 좋다고

    한다.


복쌈 : 취나물을 볶고 김을 구워 취나물과 김으로 오곡밥을 싸서 먹는다.

    쌈을 먹으면 부(富)를 쌈 싸듯이 모을 수 있다는 풍습에서 나온 것이다.


귀밝이술 : 대보름날 아침에 가족이 모여 웃어른이 찬 술을 한 잔씩 따라주며 마시게 하는
    데, 이렇게 하면 귀가 밝아진다고 한다.


진채식(陳菜食) : 진채란 묵은 나물을 뜻하는 것으로, 호박고지 · 박고지 · 말린가지 · 말린
    버섯 · 고사리 · 고비 · 도라지 · 시래기 · 고구마순 등 적어도 9가지 나물을 볶아서 먹는다.
    진채식을 먹으면 그 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부럼 : 대보름날 아침에 눈 뜨는 즉시 호두·잣·밤·땅콩 등의 견과를 껍질째 깨물면서 "1년 12
    달 무사태평하고 부스럼 뾰루지 하나 나지 맙시사" 하고 축원을 한다.

    부럼은 부스럼에서 온 말이며,

    부럼 깨무는 풍습을 고치지방(固齒之方:이를 단단히 하는 방법)이라고도 한다.

 

 

한국 전통의 찹쌀 ·차조 ·붉은팥 ·찰수수 ·검은콩 등을 섞어 5가지 곡식으로 지은 밥.
음력 정월 대보름날의 전통적인 절식(節食)으로 지방에 따라 약간 다른 점도 있다.

오곡밥의 혼합비율에 대하여

《정조지(鼎俎志)》에는 좁쌀 · 기장 · 멥쌀 각각 2되, 수수쌀 5홉, 붉은팥 7홉, 검은콩 2홉을 섞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찹쌀 · 찰수수 · 흰팥 각 2되, 차조 1되, 좋은 물콩 5홉, 대추 1되의 비율로 섞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모두 잡곡을 주재료로 한 밥이며,

위의 기록으로 보아 오곡밥에는 찹쌀과 멥쌀 어느 것이나 형편대로 썼고, 대추를 섞어 짓는 것도 의례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근래에는 반드시 앞에서와 같은 비율로 오곡밥을 짓지 않고 그 중 2∼3가지는 다른 재료로 하여 별식으로 지어 먹는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음력 정월 대보름의 절식은 약반(藥飯:약밥)이라고만 하여 오곡밥이 대보름날의 절식이라는 말은 없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본래는 약밥만을 대보름의 절식으로 하였으나 시대가 지나고 생활양식이 달라지면서 약밥보다는 풍습적인 오곡밥으로 바뀐 것이다.
만드는 법은,

먼저 콩을 물에 담가 불리고 팥은 삶아 건지며, 찰수수와 차조 ·찹쌀을 씻어 일어 놓는다.

찹쌀 · 팥 · 콩 · 찰수수를 고루 섞고 받아 놓은 팥물에 맹물을 보태어 보통 밥을 지을 때보다 물을 적게 잡아 소금을 물에 섞어 밥을 짓는다.

밥이 끓어 오르면 좁쌀을 얹고 불을 줄여서 뜸을 천천히 들인다. 뜸이 다 들었을 때 주걱으로 골고루 섞어서 그릇에 푼다.

 

 

음력 정월 보름(상원날)에 김이나 마른 취에 밥을 싸서 먹는 풍속.
취 · 호박고지 · 고비 · 고사리 · 도라지 · 가지 · 시래기 등을 가을에 말려두었다가 볶아서 먹고, 밥을 싸서 먹거나, 김을 구워서 쌌는데,

개성 등지에서는 들깻잎으로 싸서 먹기도 한다.


복쌈은 여러 개를 만들어 그릇에 노적 쌓듯이 쌓아서 성주님께 올린 다음에 먹으면 복이 있다고 하는데,

때로는 복쌈 쌓듯이 돌을 노적처럼 마당에 쌓아놓고 풍작을 기원하기도 한다.
상원날에는 이 밖에 명이 길다 해서 국수를 먹기도 하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여 말려놓은 나물을 삶아먹는 등의 풍속이 있다.

 

 

음력 정월 보름날 아침에 마시는 술.

이명주(耳明酒) · 명이주(明耳酒) · 치롱주(治聾酒) · 총이주(聰耳酒)라고도 한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풍속으로, 정월 보름날 아침에 데우지 않은 술(청주) 한 잔을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그해 1년 동안 즐거운 소식을 듣는다고 하여 남녀노소 모두가 마셨다.

 

 

음력 정월 보름날 밤에 까먹는 잣 · 날밤 · 호두 · 은행 · 땅콩 따위의 총칭.

대개 자기 나이 수대로 깨문다.

여러 번 깨물지 말고 한 번에 깨무는 것이 좋다고 하여 한번 깨문 것은 껍질을 벗겨 먹거나 첫번째 것은 마당에 버리기도 한다.

깨물면서 1년 동안 무사태평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며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기원한다.

이렇게 하면 1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으며,

이가 단단해진다고 한다.

보름날의 부럼을 위해서 14일 밤에는 미리 과실을 준비해 두고, 땅속에 묻은 밤을 꺼내어 깨끗이 씻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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