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옛 도주(島主)들의 가문인 '종씨(宗氏)'의 조상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송씨(宋氏)'라는 기록이

조선 시대 문헌에서 발견됐다.?

 

 

대마도 전문가 황백현 박사는 1일 "조선 중기 동래부사였던 박사창이 편찬한 <동래부지> (東萊府誌, 1740년) 기록을 보면,

'대마도주 종씨는 원래 한국의 송씨'로 적혀있다"고 밝혔다.

황 박사는 대마도인들의 한어(韓語)를 연구해 학위를 받았고, 저서로 <잃어버린 우리 땅 대마도> 등이 있다.

 

황 박사에 따르면 <동래부지>의 대마도 항목에 '대마주는 옛 계림(鷄林ㆍ신라)에 예속돼 있었으나 어느 때 왜인이 점거했는지는 알 수 없다.

.

.

.

(중략)

.

.

.

세상에 전하기를 도주 종씨는 그 선조가 원래 우리나라 송씨로, 대마도에 들어가서 성을 종씨로 바꾸고 대대로 도주가 됐다'고 기록돼 있다.

또 내용 중 화지산(현 부산 부산진구 위치) 항목을 보면,

'구전에 대마도주 종씨의 조상도 이 산에서 장사 지냈다 하나 지금은 그 곳을 알 수 없다.

도술가가 말하기를 정씨(鄭氏)의 자손은 큰 벼슬을 맡은 자가 많고,

종씨 역시 대대로 도주를 세습하니 그 귀함이 비슷하다'고 적혀있다.

 

황 박사는 "이 같은 기록은 대마도주들이 '일본인 종씨'가 아니라 '한국인 송씨'이며, 초대 대마도주의 묘역도 대마도가 아닌 부산 땅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일본 대마시가 초대 대마도주로 추앙되던 종중상(宗重尙)에 대한 관광안내판의 내용을 바꾼 점을 이상하게 여겨 문헌조사에 들어가 이 같은 기록을 찾아냈다.

 

황 박사는 "그 동안 유명 관광지인 이즈하라시 카마자카 전망대 안내판에는 '종중상이 초대 도주'라고 적시돼 있었으나, 지난해 초대 도주가 종중상이 아니라는 내용이 적힌 새로운 안내판이 설치됐다"며

"종중상의 무덤이 대마도에 없는 것은 대마도 도주가 객지인이었고, 당시 풍속에 따라 사망후 시신을 고향 선산인 부산 화지산에 묘를 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역사학계는 대마도주 종씨의 시조에 대해 1245년 대마도의 권력자 아비류씨족을 토벌한 종중상으로 보고 있으며,

그의 본명은 코레무네 시게히사(惟宗重尙)였으나, 첫 글자인 유(惟)자를 생략해 씨족의 명칭이 생긴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황 박사는 이 같은 내용과 함께 대마도가 과거 마한ㆍ신라ㆍ고려ㆍ조선의 영토였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문헌을 정리한 단행본 <대마도 통치사>를 발간할 계획이다.?

 

한국일보 <부산=강성명기자 smkang@hk.co.kr>

[이달의 역사]1월 1일이 새해 첫 날이 된 사연 1월 1일이 새해 첫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 날은 과연 누가, 언제 정한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기원전 46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기원전 46년, 로마가 사용하던 달력은 1태양년의 길이가 부정확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귀족들이 멋대로 달력을 운용해 일 년의 길이가 67일이나 어긋나는 일까지 생겼다.

당시 로마의 정권을 잡고 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 100년~BC 44년)는 혼란을 야기하는 달력을 고치기 위해 고대 이집트의 태양력을 도입하게 된다.

율리우스는 달력을 고칠 때 세계 학문의 중심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천문학자 소시게네스(Sosigenes, ?~?)에게 자문을 받았다.

그는 이집트에서 사용되던 달력을 바탕으로 만든 태양력으로 달력을 고치도록 제안했다.

최종적으로 율리우스는 1년의 길이를 365.25일로, 춘분날을 3월 23일로 정했다.

매년 춘분날이 같도록 만들기 위해 4년마다 2월의 날수를 하루 더하는 윤년을 두었다.

이 달력을 ‘율리우스력’이라 하며 기원전 46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하던 태양력의 원조인 율리우스력은 로마를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됐고, 현재의 달력인 태양력을 사용하게 된 계기가 됐다.

율리우스력은 1태양년 길이가 실제보다 11분 12초가 길기 때문에 128년이 지나면 하루의 차이가 생긴다.

율리우스 이전 로마 사람들은 한해의 시작 달이 3월이고 마지막 달이 2월이었다.

하지만 율리우스가 1월을 한 해의 시작 달로, 마지막 달을 12월로 고쳤다.

윤년 때 추가되는 하루는 두 번째 달인 2월에 넣었다.

또한 율리우스력 이전에는 1년이 355일이었기 때문에 365일로 늘어난 10일을 열두 달 안에 다시 배치해야 했다.

이때 한 달을 30일, 또는 31일로 재구성했는데, 그 기준으로 주먹이 사용됐다.

주먹을 쥐었을 때 검지 손가락 뼈를 1월로 기준을 잡고, 이를 시작으로 뼈가 튀어나온 달을 31일, 안으로 들어간 달을 30일로 오늘날처럼 배치했다.

하지만 율리우스력이라고 완벽한 달력은 아니었다.

1582년이 됐을 때 13일 정도의 차이가 생겨 춘분날이 3월 10일로 옮겨갔다.

당시 교황이었던 그레고리 13세는 종교적 행사로 지키는 부활절의 날짜가 제정 당시와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달력을 개정하게 된다.

우선 1년의 길이를 실제의 길이와 거의 같게 365.2425일로 사용하기 위해 100년마다 윤년을 1회씩 줄여 400년간 97회의 윤년을 두었다.

또한 춘분날을 3월 10일에서 부활절 제정 당시의 날짜인 3월 21일로 돌아오게 했다.

이를 위해 1582년에는 10월 4일 다음날을 10월 15일로 정해 사용했다.

이 달력을 ‘그레고리력’이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인 태양력의 근원은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하던 달력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집트인들은 달력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집트인들은 처음에는 달의 운행만을 고려해 만든 달력을 사용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달의 모양이 바뀌는 주기는 한 달의 길이 단위로 쓰였다.

이집트인들은 달을 관찰해 달의 모양이 완전히 바뀌는 주기가 약 29일 13시간 정도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다 시리우스의 움직임과 나일강의 범람 등을 관찰하며 태양력을 사용하게 됐다.

시리우스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항상 관측하던 별들 중 행성을 제외한 가장 밝은 별이었다.

시리우스는 하루에 한 번씩 동쪽 지평선에 떠올라 서쪽으로 진다. 매일 떠오르는 시리우스가 ‘언제’ 떠오르느냐가 계절과 관련이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에 시리우스가 동쪽 지평선에 나타나면 곧 나일강의 범람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365일이 지나면 또 다시 똑같은 현상이 반복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한 달의 길이를 30일로 하고 1년의 길이를 365일로 하는 최초의 태양력을 사용했다.

이들은 1년의 길이를 3개의 계절로 나눴다.

나일강이 범람하는 시기를 ‘아케트(Akhet)’, 물이 빠져서 파종하는 시기를 ‘페레트(Peret)’, 곡식이 자라고 추수하는 시기인 여름철은 ‘쉐무(Shemu)’라 정했다.

각 계절을 30일이 한 달 단위로 된 네 달로 배열하고 한 달은 다시 1주에 10일씩 3주로 나눠서 구성했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달력과 비교하면 ‘아케트’는 ‘6월 15일~10월 15일 경’, ‘페레트’는 ‘10월 15일~2월 15일 경’, ‘쉐무’는 ‘2월 15일~6월 15경’에 해당한다. 한 계절은 4달, 일 년은 12달이며 일 년의 날짜 수는 360일이었다.

360일과는 별도로 5일은 당시 종교적 대상으로 믿던 ‘오시리스(Osiris)’, ‘이시스(Isis)’, ‘호루스(Horus)’, ‘네프티스(Nephthys)’, ‘세트(Seth)’ 라는 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축제일로 정했다.

이와 같이 360일과 5일을 합쳐 1년의 길이를 총 365일로 정해 사용했고 오늘날과 같이 4년마다 별도로 윤년을 두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달력의 1년이 시작되는 날이 4년마다 하루씩 밀려나게 돼 고왕국 말기쯤(기원전 2,081년경)에는 무려 5개월이나 밀려났다.

이때 만들어진 이집트력이 율리우스력에서 그레고리력으로 두 번에 걸쳐 개정되며 지금의 달력에 이르게 됐다.

1월 1일이 새해의 시작이 된 것은 율리우스 덕분이지만, 현재 달력의 시초는 이집트인들이 나일강의 주기적인 범람과 시리우스의 이동을 관찰해 얻어낸 과학의 산물인 것이다.

글 : 이용복 서울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

2013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더욱 밝고 희망찬 일들이 가득하길 바라며 집 안 분위기를 바꿔보자.

복을 부르는 인테리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공간은 현관.

금전운이 좋아지는 현관 연출법을 알아봤다.


 

general_image

그림 작품은 권유미 작가의 '해피룸'(아트리에, www.artrie.com).

 

현관문에 작은 종을 달아준다


실내의 나쁜 기를 분산시키고 약하게 하는 데는 청량한 소리의 종이 제격. 현관문에 종을 달아놓으면 집 안의 좋은 기운이 상승된다.

밝은 분위기의 그림

밝은 색상과 분위기의 정물화 혹은 풍경화 액자를 현관에 걸어놓으면 현관으로 들어온 안 좋은 기를 부드럽게 순환시켜 복을 더해준다.

손님을 위한 슬리퍼를 준비한다

현관에 놓아둔 슬리퍼는 남의 도움을 받도록 해준다. 남편의 직장 혹은 사업운을 더하고 싶다면 손님용 슬리퍼를 반드시 준비하도록 한다.

현관 조명은 밝은 상태를 유지한다

현관이 항상 밝아야 밖에서 들어오는 행운이 순조롭게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따라서 불이 켜지는 시간이 짧은 센서 조명이라면 시간을 길게 조정하고 어두운 편이라면 밝은 조명으로 교체한다.

반짝이는 유리 장식품

현관에 투명한 유리, 크리스털, 수정 등의 장식품을 놓아두면 좋은 기운을 더할 수 있다. 단,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잘 닦아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다.

황금색 소품으로 재운을 더한다

황금색은 재운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색상. 금색 프레임의 액자, 금색 소품 등을 현관에서 보이는 곳에 놓아두면 금전운을 더할 수 있다.

 

general_image

현관에 관엽식물 화분을 놓아둔다


현관에 관엽식물 등 푸릇푸릇한 화분을 놓아두면 생동감을 더해 집 안에 좋은 기운을 끌어들인다.

●현관에서 보이는 창문에는 블라인드 혹은 커튼을!

현관에 들어섰을 때 보이는 창문에는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하는 것이 필수. 커튼이나 블라인드가 없는 창문은 금전운을 약하게 한다.

general_image

 

●●현관 서쪽에 노란 꽃을 놓아둔다


 

현관을 기준으로 집 안의 서쪽에 노란색 생화를 꽂아두면 금전운을 상승시킨다. 예로부터 노란색은 금전운을 높여주는 색으로 여겨졌는데, 조화가 아닌 생화를 활용해야 운이 더해진다.

<■기획 / 신경희 기자 ■진행 / 조연우(프리랜서) ■사진 / 이주석 ■스타일리스트 / 심희진(트위니, 031-712-5177), 최희림(어시스트)>

출처: 레이디경향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