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관객의 사랑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는 다소 과장된 설정이 나온다.

주한미군이 버린 포르말린이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 치명적인 돌연변이 괴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고, 관객들 역시 영화를 위한 장치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공장이나 의약품 폐수가 실제 강이나 바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학계의 지속적인 관심사였다.

지금까지 산업체나 정부 관계자들은 "막대한 양의 물에 희석되면 약품이나 폐수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스웨덴 연구진이 이런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스웨덴 우메아대 연구진은 지난 15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미 과학진흥협회 연례 학술대회에서

"의약품 공장 근처의 하천에 사는 유럽 퍼치(민물고기의 일종)가 인간이 신경안정제를 복용했을 때처럼 변하고, 그 결과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연구결과는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신호에 실렸다.


이들은 신경안정제로 널리 사용되는 '옥사제팜'을 생산하는 유럽 지역의 공장을 대상으로 주변 하천 물고기들의 습성과 생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해당 지역에 폭넓게 서식하는 유럽 퍼치의 생활 방식이 다른 지역과 상당 부분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유럽 퍼치는 먹이사슬의 아래쪽에 위치한 온순한 물고기다.

집단으로 모여 사냥을 다니며,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옥사제팜 생산 지역의 유럽 퍼치 중 상당수는 떼로 모여 다니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외부 활동에 지나칠 정도로 호기심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를 옥사제팜이 유럽 퍼치의 '사회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사회성 결여는 사람이 옥사제팜을 장기적으로 복용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의 하나다.

연구팀은 "무리에 흥미를 잃고 홀로 떨어져 나온 유럽 퍼치는 기존에 먹지 않던 먹이나 다른 동물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나타냈다"면서,

"집단으로 모여 있을 때보다 포식자에게 노출되기 쉬운 것은 물론 기존에 다니지 않던 곳까지 홀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생물종을 만들어 내거나 변이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밝혔다.

이어 "옥사제팜은 유럽 퍼치로부터 특정한 종류의 두려움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공업용 폐수 처리 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1970~80년대에 광범위한 생태계 교란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천으로 흘러 들어간 폐수가 증발해 비로 내리면서 하천 뿐 아니라 지상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신문사.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토요판 / 생명] 조홍섭의 자연 보따리

상쾌한 아침 샤워가 심각한 수질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샴푸의 세제 성분이나 물 낭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몸을 단장하는 데 쓴 화장품이 강으로 씻겨 들어가 새로운 환경오염을 부른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사향노루는 멸종위기여서 보기도 힘들지만 합성 사향은 화장품과 세제, 비누 등에 널리 쓰여 세계적으로 해마다 수천톤이 생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 사향 성분은 물에 녹아 수생생물의 지방조직에 축적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합성 사향을 장기간 몸속에 축적한 물고기를 먹어도 괜찮을까?

그 사람이 임신부라면? 또 합성 사향과 함께 물속에 들어간 수많은 다른 화학물질이 예상치 못한 상승효과를 일으킨다면?

'약물과 개인용품(PCPPs)'에 의한 새로운 환경오염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개인이 건강을 위해 먹는 약이나 몸을 단장하려고 쓰는 화장품에 들어 있던 화학물질은 결국 환경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쓰는 약만 해도 4000종이 넘는다.

약은 우리 몸에서 모두 분해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배설되고 또 생물활성이 늘어난 대사물질로 바뀌기도 한다.

약 성분은 하수처리장에서도 잘 분해되지 않아 한강에서도 10여종의 약 성분이 검출되고 있다.

약물 말고도 향수, 샴푸, 햇빛차단제, 살충제, 식품첨가물, 커피의 카페인, 니코틴 등 우리가 내보내는 화학물질은 수천가지가 넘는다.

여기에 축산농장에서 다량의 항생제스테로이드를 쓰고 제약회사 공장에서도 배출물이 나온다.

물론 환경에서 이들 물질의 농도는 매우 낮다.

그렇지만 워낙 환경에 유입되는 양이 많고 하수처리장에서 효과적으로 제거하지 못하는데다 환경과 인체에 끼칠 영향이 불확실해 세계적으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항생제 성분이 내성균을 부르고 경구피임약 성분이 수컷 물고기에게 암컷 성징이 나타나게 하는 알려진 문제 말고도 불길한 조짐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항우울제 성분이 조개의 산란행동을 교란하고, 어떤 심장병 약 성분은 수생동물이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기능을 가로막는다.

특히 평생 물속에서 살아야 하고 화학물질 세례를 피할 수 없는 물속 동물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큰 관심거리이다.

얼마 전 스웨덴 연구진은 긴장과 불안장애 처방약 성분인 옥사제팜이 미량이라도 물고기의 행동에 큰 변화를 부른다는 실험 결과를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최근호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민물 농어를 길러 행동변화를 관찰했는데,

보통 조심스럽고 무리지어 먹이활동을 하는 이 물고기가 도심 하천 수준의 약물이 포함된 물속에서는 대담해지고 먹이를 빨리 먹으며 사회성이 떨어져 홀로 사냥하는 행동을 보였다.

옥사제팜은 농어에게 사람과 비슷한 효과를 냈던 것이다.

이런 행동변화는 하천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

먹이 섭취량이 늘어나면 동물플랑크톤이 줄어들어 식물플랑크톤이 번창하는 사태를 불러올 수 있고, 반대로 조심성이 떨어지면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확률이 늘어난다.

게다가 옥사제팜 말고 다른 미량 화학물질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우리의 하천은 점점 '화학물질 수프'처럼 바뀌고 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하천생태계와 인간의 건강에 끼칠 영향이다.

하지만 현재 전문가들의 일치된 답변은 '모른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사,조홍섭 환경전문기자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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