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의나라 필리핀의 수중세계 (수심15미터)

             필리핀 어디에서나 만날수 있는 수중세계이다.

             ⓒ 장호준

 

나이트다이빙, 그 네 번째 이야기

 

육 년 뒤에 나는 다시 B를 만났다.

그는 필리핀의 한 섬에서 수중가이드를 하고 있었다.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른 다음이었기에 우리는 서로 못 알아 봤었다.

그러나 어디에선가 풍기는 B의 불안함이 내 기억을 되돌렸다.


"전에 서귀포에 만났던 B가 아니요?"


그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나는 대번에 그가 무엇을 경계하고 있는지를 알았다.

내게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달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입을 닫았다.


누구에게나 초보 다이버 시절에 그와 비슷한 일들을 겪는다.

물론 B가 평균보다 조금 독특한 일을 당했다고 해도

그것은 얼마든지 우리가 크면서 겪는 성장통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었지만

B는 다른 것 같았다.


나는 B에게서 B의 과거를 불러내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주위에서 들려오는 말들로 제주에서의 그 일 이후의 B의 생활을 유추했을 뿐이었다.

그는 필리핀의 물에 빠져 교사직을 그만 두었고,

드디어 필리핀에서 다이빙 숍을 차렸으나 일 년만에 거덜을 내고,

수중가이드로 몸을 의탁하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나는 그렇게 알아들었을 뿐이다.

우리는 그냥 한번 스친 다이빙 동지였을 뿐이니까.


그러나 그 시간의 변화를 보는 내 눈은 인생과 그 인생을 움직이는 마음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다.

 

            

             ▲ 하강중인 다이버들 (수심30미터)

             사이판 심연으로 떨어지는 다이버들...

             서로가 손을 맞잡고 내려가고 있다.             

             ⓒ 장호준

 

B와 나는 다이빙 가이드와 손님으로서 만난 것이었다.

정확히 우리는 문섬 한개창에서 서로 서 있었던 반대편 자리에 선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나이트다이빙을 나갔다.

마치 과거를 되짚어 가는것 처럼…….


아직 거기는 필리핀에서도 보리깡촌이라 모든 시설이나 장비가 부족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런 점에 우리는 더욱 더 큰 매력을 느껴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낡고 작은 방카(필리핀 전통 보트) 한 대에 올라타고 우리는 다이빙을 나갔다.

 

         

          ▲ 필리핀 전통선 방카

          이배는 글 속에 나오는 배 보다는 몇배나 큰 배이다.

          ⓒ 장호준

 

하늘이 유달리 깜깜한 날이었다.

시간도 초저녁이었다.

B가 다소 쑥스러운 표정으로 우리 일행에게 브리핑을 했다.


"지금 가는 곳은 수심이 깊지 않아요.

수심 10미터 정도입니다.

우선 내려가시면 먼저 한 곳에 모이세요,

둥글게 원을 지어 모여서 자기 가슴이나 배에다 플래시헤드를 갖다대고 원을 그리세요,

바다 속에 반짝이는 무수한 작은 불빛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로 떨어지자 마자 바닥에 닿아서 모이기는 커녕 그대로 떠내려 가기

시작했다.

조류가 비 온 뒤의 도랑물이 흘러가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모두가 흩어져 제각기 날아 가고 있었다.

겨우 바닥에 내려 연산호에 의지를 하거나 사슴뿔 산호의 가지를 잡았으나 가지가 부러지고 연산호가 뜯기는 상황이었다.

바닥에서는 사막에 태풍이 부는 광경을 연상시키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모래와 부유물들도 조류에 휩쓸려 나르고 있었다.

우리는 촬영을 포기하곤 제각기 살 길을 찾아 올라 왔다.

         

"미안합니다. 여기는 처음이라 이 근처 어디에 떨어져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깜깜한 밤,

모두 다 흩어지는 바람에 플래시 불빛에 의지해 한 시간만에 다이버들을 모두 건진 후,

배에 올라와 겨우 한숨을 돌리는 우리에게 B는 몹시 미안해 했다.

돌아 오는 길에는 또 엔진이 고장 나서 수리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결국은 우리 손으로 고쳐서 돌아왔었다.

방카의 선장도 다이빙을 모르는 필리핀의 애송이 청년이었다.


자연은 항상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기에 돌연한 변화에 대응을 못 했다고 해서 B를 탓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모자라고 부족한 시절이었기에 우리는 대충이라는 것에 익숙해서 점검에 소홀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우리는 그곳을 떠났었다.

B는 새까맣게 탄 모습으로 우리를 전송하러 부두에까지 나왔다.


"아니 우짜다가 이 길로 들어왔어요?"


B와 내가 둘이 되었을 때 물었다.

종내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인생은 도전이라고 전에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B가 웃는 것과는 달리 목소리는 화가 난 것처럼 말했다.

B는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을까?

나는 그의 개인적 절망과 삶의 굴곡을 확실히 알지 못했다.


"글쎄요, 내가 그랬던가요?"


나는 얼른 입을 닫았다.

무엇이 B를 바다로 끌어내었을까.

그는 예전과는 달리 매사를 과단성과 자신감으로 대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지만,

나는 자꾸만 그의 모습이 무엇엔가 쫓기는 불안한 소년처럼 보였다.

 

        

         ▲ 방카로 접근하는 다이버

         항구가 없어 밀물에 다이버들이 방카로 가기 위해 물속을 걸어 가고있다.

         ⓒ 장호준

 

배 위에 올라가기 전에 B가 나를 한쪽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는 주머니에서 비닐봉지에 싼 물건을 끄집어 냈다.

눈처럼 흰 주먹만 한 조개였다.

개오지였다.


"이것 가져 가세요.

이런 것 좋아하시잖아요.

미처 삶지를 못했는데 한국에 가시거든 바로 끄집어내서 조치를 하세요."


그리고는 얼른 그걸 내 다이빙 가방에다 집어 넣었다.


나는 그걸 가지고 와서 아파트의 베란다에 내어놓곤 까맣게 잊었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인가 온 집안에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무엇이라 표현하기에도 어려운 냄새였다.

하여간에 이 세상에서 그토록 고약한 냄새는 없을 것이다.

며칠을 냄새의 근원을 찾지 못해 끙끙거리던 식구들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온 집안을 다 뒤져

베란다 한쪽 구석에서 내용물이 썩어가는 개오지를 발견했을 때는 구더기에 쌓여 있었다.


개오지를 찾아서 맑은 물에 말끔히 씻어도 그 냄새가 다 가시지 않아 개오지는 그 희디흰 눈부신 몸으로 다시 두 달간이나 베란다에서 이국의 바람을 맞아야만 했었다.


내가 열대지방 다이빙투어에 나가서 유일하게 관심을 두는 것이 있다면 이런 조개류이다.

물론 그것들은 이미 오래 전에 잡혀서 가공되어진 것들이다.

이런 조개들은 껍질에 묻혀있던 세월의 흔적들이 깔끔하게 닦여 나가 그 가치가 오히려 떨어지지만 우리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런 것 뿐이었다.


그러나 개오지는 달랐다.

처음부터 희디흰 제 색깔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껍질에 어떤 잡것도 묻어 있지 않았다.

눈처럼 흰,

눈부신 색깔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귀에 대면 말할 것도 없이 바다의 소리가 들렸다.


B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일 년쯤 지난 뒤였다.

그즈음 나는 한 다이빙전문 잡지사에 글을 써오고 있었는데,

서울에 올라온 김에 들른 거기서 B의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요번에 난 필리핀 사고 소식 들었어요?"
"무슨 사고인데요?"


버릇대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내 친한 친구이자 다이빙버디였던 Y와 다이빙 사부였던 S의 죽음 이후 생긴 버릇이었다.


이야기의 내용인 즉슨 필리핀의 한 섬에서 다이빙 시합이 벌어져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다이빙 시합이라니?"


그들은 탱크를 메고 무리하게 수심을 탔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암암리에 다이빙 시합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몇 미터나 들어 갔는데?"
"백 미터나 들어 갔다는데요."
"도무지 거기까지 왜 들어 갔는데?

아니 다이빙 이론이 다 빠싹한 사람들 아니요?"


숨을 쉬지 않고 수심을 타는 프리다이빙(영화 <그랑부루>에 나오는 다이빙)과 압축공기를

갖고 숨을 쉬는 스쿠버다이빙은 근본이 틀린다.

미 해군 잠수 매뉴얼은 스쿠버다이빙의 한계 수심을 40미터로 잡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30미터 만 내려가도 질소마취가 와서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대체 거기까지 왜 들어갔을까?

다이빙이론이 그들을 비켜 가리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아직도 잠수의학이나, 잠수 생리학에서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많이 있다.


"그래 누가 죽었어?"
"B라 하던데…….

한 사람은 하체가 마비되었고……."
"B가 누구야?"


내가 무심결에 물었다.

그러고 나는 깜짝 놀랐다.

B는 내 기억 속에서 스위치만 누르면 금방 돌아오는 사람은 아니었다.


"제주도에서 교사를 하던 사람이라 하던데요."


나는 B의 개인사를 모른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실도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없다.

그가 왜 다이빙에 집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가 다이빙으로서 자신을 나타내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그 이후의 일도 모른다.

다만 또 하나의 인연이 마지막 희미하게 남은 불씨처럼 사그라졌구나 하는 두렵고 쓸쓸한 기분이었다.

작가: 장호준 (aqualux199) 

 

        -= IMAGE 1 =-

      ▲ 가시복어 (수심 30m)
        상처를 입었는지 어린 가시복어 한 마리가 겁먹은 듯 모래 바닥 위에 엎드려있다.

        제주 서귀포 가린여
        ⓒ 장호준

 

        -= IMAGE 2 =-

      ▲ 가시복어

        가시복어는 우리의 재촉에 못이겨 잠시 포즈를 취했으나,

        이내 제자리로 돌아갔다.
        ⓒ 장호준 

 
        -= IMAGE 3 =-

      ▲ 가시복어 (수심 15m)

        가시복어가 자신의 위엄을 보이려고 몸을 공처럼 부풀리고 가시를 세웠다.

        제주 문섬
        ⓒ 장호준 


 

나이트다이빙

 

나이트다이빙이 있던 날 아침,

다이빙을 하기 위해 숍으로 가니 선객 몇 명이 숍의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이빙은 자주 하셨나요?"

숍의 사장 겸 알아주는 수중사진가이자 가이드이며 허드레 일꾼인 K가 선객들에게 물었다.

다이빙을 앞두고 몹시 들떠서 즐겁게 재잘거리던 선객들이 숍으로 들어선 나를 힐끔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들릴 듯 말 듯 대답했다.

"예, 조끔, 다이빙을 한 지는 좀 됐고요."

우리는 단번에 이 사람들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

물론 이는 그들의 다이빙경력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선객들은 다이빙을 시작한 지는 몇 년이 되었지만 막상 물속에 들어가 본 횟수는 가물에 콩 나듯 했다는 말이었다.

나도 선객들처럼 손님과 숍의 사장으로써 K를 처음 만났었다.

그리고 15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우리는 물속의 동지가 되었다.

K가 내게 다가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형님 이 분들하고 같이 들어가야 되겠수다."
물속나이는 내가 아래지만 속세 나이는 내가 위다보니 형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K가 조심스럽게 말한 이유는,

오늘 나의 다이빙 목적이 이 사람들로 인해서 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종종 맞딱드리는 일이지만 외면 할 수 도 없는 일이었다.

선객들은 부부와 그의 처남, 친구로 구성된 팀이었다.

이들 5명의 손님과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낮 다이빙을 했다.

그러던 중 이들이 휴식시간에 우리의 나이트다이빙 계획을 듣고는 이왕 나선 김에 정말 하는 것처럼 한 번하고 싶다면서 나이트 다이빙에 동참하기를 원했다.

내겐 난감한 문제였다.

자신들은 모르고 있지만 결국 내가 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은 뻔하기 때문이었다.

이게 초보자와 다이빙하기를 꺼리는 이유다.

그 때 나는 전시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한 탕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K에겐 돈이 걸린 문제였다.

K에게는 생활의 근본문제였다.

물속 상황에 따라서지만 이들은 아직 초보라 K혼자서는 5명을 다 감당할 수 없다.

"조졌다."
물론 이는 내가 속으로 한 말이었다.

이미 온전한 한탕은 물 건너 간 것이다.

"내가 앞장 설 테니 형님이 후미를 맡아 줘요."
K가 말했다.

물론 나는 낮 다이빙에서 충실히 이 임무를 수행했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 개개인의 다이빙능력도 파악해 뒀다.

나는 그중에 가장 약해 보이는 B의 주의를 돌며, 집중관찰, 감시, 보호했다.

B도 이런 나의 마음을 느꼈는지 내 옆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B는 제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으며,

자신의 나머지 일행 4명을 제주도로 초청한 사람이었다.

그는 왠지 잠수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주 얌전하게 보이는 사람이었다.

내 눈에 그는 잠수를 무서워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나머지 일행을 초청한 사람답게 명랑하고 대범하게 동해서 자신의 일행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힘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의 상황을 일행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입장이었던 셈이었다.

한탕의 다이빙을 마치고 올라왔을 때 B는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머지 일행은 한껏 흥분해 방금 지나온 나이트다이빙의 비경을 복기하고 있었다.

"너무너무 좋았어요, 정말 꿈속 같아요, 호박돔 봤어요? 그 물고긴(쏠베감펭) 이름이 뭐예요? 우와 정말 아름다웠어! 김 선생님은 어땠어요?"
이들은 수도권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30대 초반의 선생님들이었다.

"저는요, 무조건 사장님 오리발만 보고 죽어라고 따라갔어요. 오리발 놓치면 죽는다 싶어서요,

호호호, 나는 사장님 오리발 본 것 밖에 생각 안 나요, 뭐가 뭔지…. 그래도 하여간 좋았어요, 당신도 좋았지?"
일행 중 여 선생님 한 분이 한 말이었다.

 

         -= IMAGE 4 =-

       ▲ 나이트 다이빙 (수심 20m)

         다이버가 연산호를 촬영하기 위해 코를 박고 있다.
         ⓒ 장호준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30분간 휴식을 한 우리는 서둘러 물로 뛰어들 준비를 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썰물이 많이 진행되어 수위는 파식대에서 1m정도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바다에는 검은 액체의 덩어리가 일렁거리는 것 같았고,

바람 속에는 태초의 냄새가 묻어나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장비를 점검하고 물로 뛰어 들게 한 후 마지막으로 K와 내가 뛰어 들었다.

진행방향은 첫 번째 탕과는 반대방향이었다.

시야는 5m정도,

부유물들이 딱딱한 안개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B에게 입수 사인을 보냈으나,

B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볼 뿐이었다.

B는 입수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몇 번을 시도하다 힘만 뺀다는 걸 알고는 포기한 상태였다.

스쿠버를 한다는 사람이 입수를 포기하고 남의 도움을 기다린다는 것이 기가 찰 노릇이었으나,

그 시절을 겪은 나로서는 못 본 척 할 수도 없었다.

B는 두 번째 탕을 피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혼자 밖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일행 때문에 억지춘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흥분하여 호흡이 거칠어지면 입수는 안 된다.

사람들이 하나 둘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도리없이 나는 B의 다리를 잡고 물속으로 끌어 내렸다.

이는 순전히 오리발 힘으로만 해야 했다.

물속이지만 진땀이 나는 일이었다.

등허리를 타고 땀이 흘렀다.

힘들게 입수를 끝내고 K가 등에 진 탱크 위에 묶어 놓은 파이로트 플래시의 번쩍이는 불빛을 보며 사람들이 일렬 종대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선두에 K가 서고 그 뒤로 일행들이 따랐고 내가 후미에서 따라 갔다.

가시거리 5m,

앞서가는 K의 몸이 보이지 않고 오리발만 보인다.

우리가 따라가는 속도를 조금만 늦춰도 순식간에 오리발도 회색의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것이다.

마치 4차원의 공상과학 영화에서 처럼….

미약한 조류가 우리가 진행하는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이도 오리발질에 힘을 빼는 역할을 했다.

수심 10m를 유지하며 우리는 첫 번째 모퉁이를 돌았다.

한개창을 빠져나와 문섬의 바깥쪽을 돌고 있는 것이다.

외해로 나선 것이다.

절벽의 정상이 차츰 낮아진다.

아무래도 앞서 가는 K의 속도가 빠르다.

K의 다리는 오랜 물질로 근육이 붙었고 속도도 붙어서 자신이 보통으로 하는 오리발 질이 남은 온 힘을 다해 따라 간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는 듯했다.

여선생이 죽어라고 따라갔다는 말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수심은 20m를 넘고 있었다.

내 앞에 가던 2명 중 1명의 이상한 동작이 눈에 띈 것은 그때였다.

플래시 불빛 속에 B는 몸을 곧추세우고 물에 빠진 사람처럼 손으로 허공을 움켜 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즉시 B에게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그사이 B와 함께 가던 동료는 나와 앞서가던 K를 번갈아 보며,

망설이더니 뒤를 나에게 맡기고는 K를 따라 갔다.

나도 잠깐 갈등을 느꼈다.

앞서가는 K에게 이 상황을 알리면 좋겠지만,

B를 두고 그를 따라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를 따라 가서 알리려 해도 죽을 힘을 다해야 할 것이었다. 물속에선 육지에서처럼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나는 K에게 알리는 것을 포기했다.

잠깐 사이 K일행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둘이 남은 것이다.

나는 돌아서 정지 신호를 보내며 B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 쥐었다.

그리고 B의 게이지를 들여다 보았다.

남은 공기는 100 bar, 수심은 23m, 이상은 없었다.

공기잔량이 조금 적었지만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B의 얼굴에다 플래시를 비춰보았다.

숨은 매우 가쁘게 쉬고 있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럼 이유는 하나다.

그는 겁을 먹은 것이었다.

공포에 빠진 것이다.
패닉현상이었다.

B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한 노릇이었다.

플래시를 비춰 그를 봤다.

그는 가슴을 쥐어 뜯고 있었다.

낮이라면 서로를 바라 볼 수도 있지만 지금은 어둠이 지배하는 밤이다.

이미 그가 놓아버린 플래시는 몸에 아무렇게나 달려 불빛만이 심연을 향해 흔들거리고 있었다.

B가 가슴을 쥐어 뜯다가 마우스피스를 떼어 내려고 했다.

'저걸 떼어내면 끝이다.'

나는 결사적으로 달라 붙었다.

한손으로 B의 손을 제지하며 목덜미를 움켜잡고 강하게 압박하며 플래시를 B의 눈에다 비췄다가 다시 부릅 뜬 내 눈을 비추며 온 몸으로 부르짖었다.

'조용히 나를 따르고,여기는 수심 20m 아래고,당신은 죽을 수도 있다'고....

그를 안고 바로 상승할 수도 없었다.

이는 더욱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바로 수면으로 올라 갈 경우 우리의 현 위치는 의지 할 데 없는 외해의 복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경우 B는 전적으로 내게 의지 할 것이고,

조류라도 만난다면 나 혼자서 그를 안고 섬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밤을 떠돌아야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오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온몸을 흔들며 사인을 보내자 돌아 갔던 B의 눈동자가 다시 제 자리를 찾는 것 같았다.

나는 즉시 돌아서서 서서히 수심을 낮추며 왔던 길을 되짚어 섬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의 손목을 부러져라 잡고서 수시로 흔들면서였다.

물에서 건져내 놓은 B는 파식대의 한 쪽 구석에서 한참 동안을 켁켁거렸다.

수경 속으로 들어간 물은 그의 눈을 빨갛게 만들었고,

코로 들어간 물은 그의 폐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나도 한 동안 늘어져 있다가 일어났다.

묵묵히 내 장비를 챙기고 B의 장비를 풀었다.

한참이 지나 그가 한 숨을 돌리는 것 같아서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요? 왜, 그랬어요?"
확인이 필요했다.
"가슴이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사람이 머리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공포는 무섭다.

한참 후에 올라 온 B의 일행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물론 B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B는 그것을 불명예로 생각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K의 눈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나는 K를 조용한 곳으로 끌었다.
"형님 우째 됐시우?"
나는 간단히 사정을 설명했다.

포인트에 도착해서 뒤 따라오던 일행이 없어서 K도 많은 갈등을 했을 것이다.

돌아가야 하나?

그대로 진행해야 하나?

갖은 나쁜 상념에 시달렸을 것이다.

물밥을 먹는 물쟁이들이 안고 있는 숙명이다.

다음날 날이 밝자 우리는 B의 일행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문섬을 다시 찾았다.

다이빙이 시작되고 B는 내 옆에 바짝 붙었다.

B와 나는 연인처럼 잠수시간 내내 손을 잡고 다녔다.

B의 일행들이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가던 날

숍에서 새로 온 초보다이버들에게 뻥을 치고 있던 나를 B가 불러 냈다.


"고마웠어요. 참말로 고마웠습니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앞으로도 할 거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는 그를 다시 바다에서 만나게 되었다.

 

        -= IMAGE 5 =-

      ▲ 연산호 (수심 35m)

       초대형 특급태풍에도 살아 남은 놈이다.
       ⓒ 장호준 

작가: 장호준 (aqualux199)

 

       

      ▲ 노랑가시돔 (수심 13미터)

       문섬 북쪽의절벽,

       노랑가시돔 한마리가 연산호의 군락위를 지나고 있다.

       한개창에서 절벽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가다 보면 만나는 지점이다.

       시야 5미터 정도

       ⓒ 장호준

 

한개창

 

한개창은 문섬에서 새끼섬과 일직선상에 있다.

서로 돌아 앉아 있는 것이다.

한개창에서 입수하여 오른쪽 어깨에 문섬을 메고 돌아 가든, 왼쪽 어깨에 메고 돌아가든 수심도, 절벽

의 경사도 급하다.

양쪽 절벽에는 연산호와 감태가 평화롭게 어우러져 있고 또 이들이 품고 있는 각종 붙박이 물고기들이 연년세세 그 생명을 이어 오고 있는 곳이다.

 

       
   

      ▲ 한개창

        한개창의 파식대위로 파도가 들어오고있다.

        썰물 때가 오면 물이 현재의 높이에서 2 미터 이상 빠진다.

        ⓒ 장호준

 

        

        ▲ 한여름의 새끼섬

        한여름의 새끼섬 국내외의 많은 다이버들이 파식대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 장호준

 

 

한개창의 파식대도 꽤 넓어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

한개창의 파식대에서 바다를 보고 서면 정면으로는 범섬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서귀포의 해안선이 바다와 같이 달리는 것이 보인다.

이 파식대가 있는 왼쪽으로는 갯바위들이 있어서 간혹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다이빙을 하는 다이버들을 쳐다 보는 눈이 편할 리는 없다.

 

그들 중 누군가 한 번 그런 불안을 비친 적이 있었다. 

“물 속에 들어가면 낚시 바늘이 보이지 않나요? 고기는 좀 있어요?”
이는 다이버들이 낚시꾼들의 낚시를 방해하지 않느냐는 말을 우회적으로 묻는 것이었다.

 

“여긴 작은 고기는 좀 있어도 큰 고기는 없어요. 낚시 바늘도 보이지만 우리는 피해 다녀요.” 

차마 나는 고기를 �아 버렸다는 말을 못했다.

낚시 바늘이 숨어 있는 미끼를 물고기가 먹으려고 하는 데,

안 봤다면 모르지만 사람이라면 보고 어찌 지나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물고기가 낚시를 무는게 보여요?”
“그럼요, 미끼 주위에 몰려 미끼를 뜯어 먹고 있는 게 보이지요.”


물론 그는 더욱 더 불안해진 얼굴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 갔다.

 

         

         ▲ 연산호 (수심 20미터)

         스트로브에 노출된 붉은 맨드라미산호 주위에 뿌연 부유물들이 보인다.

         ⓒ 장호준

 

다이버들을 태운 배가 어둠을 뚫고 밤바다 속으로 들어섰다.

모두들 플래시를 껐다 켰다 하면서 말없이 바다를 바라 보고 있었다.

한개창까지는 불과 육칠 분이면 닿는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차다.

낮 다이빙과는 달리 카메라도 바로 쓸 수 있도록 조립을 마친 상태이며, 잠수복도 모두 입은 상태였다.

 

우리는 도착하는 즉시 마지막 점검을 하고 바다로 뛰어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허공에 뿌린 플래시의 불빛이 깜깜한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 간다.

 

어둠 속에 일렁이는 검은 바다,

우리가 탄 배가 머리로 한줄기 뿜으며 한개창에 닿았다.

바닷물이 한개창 파식대와 같은 높이로 출렁인다.


“지금이 만조 시간입니다. 물이 빠지고 있지만 남는 장비는 조금 위쪽에다 놓으세요.”

 

가이드가 소리치며 배에서 뛰어 내렸다.

배가 파식대에 선체를 대어 장비를 내리게 끔 하기 위해 파식대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가속기를 죽어라고 밟는다.

엔진이 켕켕거리며 비명을 지른다.

우리는 서둘러 탱크를 내리고 가방들을 챙겼다.

배는 장비를 내리고는 바로 항으로 되돌아간다.

선장은 다이빙이 끝나고 핸드폰을 날리면 서둘러 이곳으로 다이버들을 실러 올 것이다.

 

밤바다를 마주하고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낮에는 느끼지 못하는 마음이다.

파도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다.

구름에 달이 간다.

검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서서히 달아 오른다.

 

마지막 점검을 하던 몇 사람이 점검을 멈추고 바다로 뛰어 들었다.

물론 아직 장비는 착용하지 않고 잠수복만 입은 상태로 뛰어든 것이다.

나도 뛰어 들었다.

그들은 플래시를 바닥으로 비추며 시야를 가늠해 보고 있었지만 나는 하늘을 보고 큰 대짜로 방자하게 드러누웠다.

몸은 잠수복의 부력으로 인하여 물 위에 떠서 일렁이는 물결 따라 흔들거린다.

 

목덜미를 파고 드는 차가운 바닷물의 감촉에 온몸이 상큼하게 긴장하지만 그도 잠깐이다.

그리고 나는 무아지경에 빠진다.

자연 속에 나는 혼자이고, 우주 속에 내가 잠기는 순간이다.

이 순간이야말로 아무데서나 마주할 수 없는 자연과 교감하는 순간이요,

자연 속에 내가 묻히는 순간이다.


“빨리 나와요, 들어 갑시다.”

 

가이드가 우리를 재촉했다.

 

우리 여덟 명은 두 팀으로 나눠 같은 방향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문섬을 오른쪽 어깨에다 메고 나가기로 약속을 한 것이다.

반환점은 탱크의 공기를 50bar(대부분 총량200bar)를 남겨 놓은 상태에서,

나머지 양의 반이 떨어지기 전이다.


“수심을 깊게 타지 마세요, 20미터 이하론 내려가지 마세요. 알았지요.”


가이드가 당부한다.

그러나 피사체를 따라 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깊은 수심을 예사로 타게 된다.

 

다이빙 숍에서 가이드와 다이버들의 관계는 단순히 고객과 상인의 관계만이 아니다.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고객들은 가이드와 만나기도 전에 이미 관계가 맺어져 있는 수가 많고.

설령 처음에는 고객과 상인으로 만났다고 해도 다이빙 특성상 다이빙 도중에는 가이드의 인솔을 절대적

으로 따라야 하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초보 시절에는 자연히 스승과 제자의 사이가 되는 것이고,

그 시절이 끝난다 해도 이들은 끈끈한 동지애로 맺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물 속에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아 주지 않을 수가 없는 마음이 된다.

그러나 이는 마음이다.

사고가 나면 철저히 혼자서 헤쳐 나와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상대를 도와 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장비를 지고 차례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다이버 마다 하나씩 들고 있는 플래시 불빛이 바다 속에서 이리저리 엉킨다.

나이트다이빙에는 보통 한 사람이 두 개씩의 플래시를 들고 들어간다.

물론 하나는 예비용이다.

나는 카메라의 스트로보에 하나를 매달았고 하나를 손에 들었다.

물론 플래시는 끈으로 잠수복의 캬라비나에 연결되어 있어서 손에서 잠시 놓치더라도 바다 밑바닥으로 떨어져 가라앉지는 않는다.

우주인들이 물 속이 무중력 상태와 비슷하다고해서 물 속에서도 훈련을 받는다지만 무중력은 아니다.

잠수복도 수심 십오 미터 정도를 내려가면 수압에 의해 찌그러져 부력도 없어져 버린다.

 

잠시 물 속에서 대오를 정비한 우리는 가이드의 탱크 뒤에 꽂아놓은 파일럿 램프의 회전불빛을 따라 하강하기 시작했다.

일단 잠수가 시작되고 나면 귀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자신이 내뿜는 숨소리와 간혹 귀 속을 흐르는 물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다.

이윽고 이 소리에 익숙해지고 나면 아무 소리도 없는 침묵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물고기들은 이 속을 부산히 움직이고 있고,

다이버들은 보이지 않는 유체에 저항을 받는다.

이는 아주 대수롭지 않게 느끼기 쉽지만 가벼이 넘어 설 수 없는 힘이다.

다이버는 모든 행동을 천천히 하라고 교육을 받는다.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또한 물결을 타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의 힘으로는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

 

한개창의 입수지점의 수심은 대략 십삼 미터 정도다.

들물과 날물일 때 간만의 차가 거의 2미터를 넘는 것을 감안하면 수심은 아래 위로 이 정도의 깊이를 가감해 줘야 한다.

플래시를 비추자 감태와 산호 뒤로 숨어 눈을 붙이고 있는 쥐치가 눈에 들어오고, 

노랑가시돔이 오밤중의 불청객들을 보고 눈알을 굴린다.

제법 큰 호박돔 한 마리가 플래시 불빛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문섬의 맨드라미를 닮은 연산호는 그 색깔이 강렬하다.

보라색, 분홍색, 하얀색, 붉은색, 아기의 팔뚝을 닮은 희디 흰 줄기에 이런 형형색색의 꽂을 피워 내놓으면 가까이 하기도 전에 사람들의 마음은 어느새 취한다.

무척추 동물, 강장동물문 등 전문가가 아니면 무슨 소리인지 모를 말들이 산호를 설명하고 있고,

이들은 새우나 게, 플랑크톤을 잡아먹고 사는 엄연히 동물군에 속하는 생물이지만,

언제 봐도 이들은 내게 있어 꽃이다.


수심 이십 미터,

손바닥만한 불빛을 보자기처럼 펼쳐놓고 우리는 우리만의 세계에 몰입하고 있었다.

플래시의 빠알간 불빛 속에는 자다가 깬 고기들이 허둥지둥 거리며 사태를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갑자기 우리를 앞서 가던 가이드가 플래시를 좌우로 빠르게 흔든다.

급히 오라는 신호다.

그가 흔들다 불빛이 멈춘 곳에는 솔베감펭 두 마리가 여유 있게 쏠종개들을 몰아가고 있었다.

         

         ▲ 솔종개를 노리는 솔베감펭

         쏠종개를 몰고가는 쏠베감펭

         ⓒ 장호준

 

나는 천천히 내려가 솔베감펭이 급히 빠져 나올 수 없도록 출구를 막은 뒤 카메라의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맞추어 놓고 앵글을 잡기 시작했다.

그 순간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쏜살같이 내려와 불문곡직하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일행이지만 그날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가이드가 내려와 그를 제지하려는 것을 나는 말렸다.

내 초보시절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 속에도 예절이 있다.

남이 촬영하고 있는 자리에 끼어드는 것은 물 속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남이 데려온 모델을 허락 없이 찍어도 안 된다.

어디까지나 먼저 시작한 사람이 찍고 난 다음 찍으러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사진 한 장이 눈 앞에 팔락거리는데,

아직 그런 법도를 알 리 없는 청년이 앞뒤를 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세상이 잠든 밤, 서귀포 항, 한 귀퉁이, 수심 이십 미터의 바다 속에 흔들거리는 불빛 받쳐 놓고 몇 사람이 둘러 앉아 바다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첫 탕은 그런 대로 끝났지만,

 

아무래도 약하다 싶었던 일행 중의 한 사람이 곧이어 들어간 다음 탕에서 기어이 사고를 내고

말았다.

 

(계속 이어집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