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의나라 필리핀의 수중세계 (수심15미터) 필리핀 어디에서나 만날수 있는 수중세계이다. ⓒ 장호준
나이트다이빙, 그 네 번째 이야기 육 년 뒤에 나는 다시 B를 만났다. 그는 필리핀의 한 섬에서 수중가이드를 하고 있었다.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른 다음이었기에 우리는 서로 못 알아 봤었다. 그러나 어디에선가 풍기는 B의 불안함이 내 기억을 되돌렸다. 나는 대번에 그가 무엇을 경계하고 있는지를 알았다. 내게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달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입을 닫았다. 물론 B가 평균보다 조금 독특한 일을 당했다고 해도 그것은 얼마든지 우리가 크면서 겪는 성장통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었지만 B는 다른 것 같았다. 그냥 주위에서 들려오는 말들로 제주에서의 그 일 이후의 B의 생활을 유추했을 뿐이었다. 그는 필리핀의 물에 빠져 교사직을 그만 두었고, 드디어 필리핀에서 다이빙 숍을 차렸으나 일 년만에 거덜을 내고, 수중가이드로 몸을 의탁하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나는 그렇게 알아들었을 뿐이다. 우리는 그냥 한번 스친 다이빙 동지였을 뿐이니까. ▲ 하강중인 다이버들 (수심30미터) 사이판 심연으로 떨어지는 다이버들... 서로가 손을 맞잡고 내려가고 있다. B와 나는 다이빙 가이드와 손님으로서 만난 것이었다. 정확히 우리는 문섬 한개창에서 서로 서 있었던 반대편 자리에 선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나이트다이빙을 나갔다. 마치 과거를 되짚어 가는것 처럼……. 그러나 그런 점에 우리는 더욱 더 큰 매력을 느껴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낡고 작은 방카(필리핀 전통 보트) 한 대에 올라타고 우리는 다이빙을 나갔다. ▲ 필리핀 전통선 방카 이배는 글 속에 나오는 배 보다는 몇배나 큰 배이다. 하늘이 유달리 깜깜한 날이었다. 시간도 초저녁이었다. B가 다소 쑥스러운 표정으로 우리 일행에게 브리핑을 했다. 수심 10미터 정도입니다. 우선 내려가시면 먼저 한 곳에 모이세요, 둥글게 원을 지어 모여서 자기 가슴이나 배에다 플래시헤드를 갖다대고 원을 그리세요, 바다 속에 반짝이는 무수한 작은 불빛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시작했다. 조류가 비 온 뒤의 도랑물이 흘러가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모두가 흩어져 제각기 날아 가고 있었다. 겨우 바닥에 내려 연산호에 의지를 하거나 사슴뿔 산호의 가지를 잡았으나 가지가 부러지고 연산호가 뜯기는 상황이었다. 바닥에서는 사막에 태풍이 부는 광경을 연상시키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모래와 부유물들도 조류에 휩쓸려 나르고 있었다. 우리는 촬영을 포기하곤 제각기 살 길을 찾아 올라 왔다. "미안합니다. 여기는 처음이라 이 근처 어디에 떨어져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모두 다 흩어지는 바람에 플래시 불빛에 의지해 한 시간만에 다이버들을 모두 건진 후, 배에 올라와 겨우 한숨을 돌리는 우리에게 B는 몹시 미안해 했다. 돌아 오는 길에는 또 엔진이 고장 나서 수리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결국은 우리 손으로 고쳐서 돌아왔었다. 방카의 선장도 다이빙을 모르는 필리핀의 애송이 청년이었다. 모든 것이 모자라고 부족한 시절이었기에 우리는 대충이라는 것에 익숙해서 점검에 소홀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우리는 그곳을 떠났었다. B는 새까맣게 탄 모습으로 우리를 전송하러 부두에까지 나왔다. 종내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B는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을까? 나는 그의 개인적 절망과 삶의 굴곡을 확실히 알지 못했다. 무엇이 B를 바다로 끌어내었을까. 그는 예전과는 달리 매사를 과단성과 자신감으로 대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지만, 나는 자꾸만 그의 모습이 무엇엔가 쫓기는 불안한 소년처럼 보였다. ▲ 방카로 접근하는 다이버 항구가 없어 밀물에 다이버들이 방카로 가기 위해 물속을 걸어 가고있다. 배 위에 올라가기 전에 B가 나를 한쪽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는 주머니에서 비닐봉지에 싼 물건을 끄집어 냈다. 눈처럼 흰 주먹만 한 조개였다. 개오지였다. 이런 것 좋아하시잖아요. 미처 삶지를 못했는데 한국에 가시거든 바로 끄집어내서 조치를 하세요." 그러다 어느 날부터 인가 온 집안에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무엇이라 표현하기에도 어려운 냄새였다. 하여간에 이 세상에서 그토록 고약한 냄새는 없을 것이다. 며칠을 냄새의 근원을 찾지 못해 끙끙거리던 식구들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온 집안을 다 뒤져 베란다 한쪽 구석에서 내용물이 썩어가는 개오지를 발견했을 때는 구더기에 쌓여 있었다. 물론 그것들은 이미 오래 전에 잡혀서 가공되어진 것들이다. 이런 조개들은 껍질에 묻혀있던 세월의 흔적들이 깔끔하게 닦여 나가 그 가치가 오히려 떨어지지만 우리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런 것 뿐이었다. 처음부터 희디흰 제 색깔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껍질에 어떤 잡것도 묻어 있지 않았다. 눈처럼 흰, 눈부신 색깔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귀에 대면 말할 것도 없이 바다의 소리가 들렸다. 그즈음 나는 한 다이빙전문 잡지사에 글을 써오고 있었는데, 서울에 올라온 김에 들른 거기서 B의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내 친한 친구이자 다이빙버디였던 Y와 다이빙 사부였던 S의 죽음 이후 생긴 버릇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암암리에 다이빙 시합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아니 다이빙 이론이 다 빠싹한 사람들 아니요?" 갖고 숨을 쉬는 스쿠버다이빙은 근본이 틀린다. 미 해군 잠수 매뉴얼은 스쿠버다이빙의 한계 수심을 40미터로 잡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30미터 만 내려가도 질소마취가 와서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다이빙이론이 그들을 비켜 가리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아직도 잠수의학이나, 잠수 생리학에서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많이 있다. 한 사람은 하체가 마비되었고……." 그러고 나는 깜짝 놀랐다. B는 내 기억 속에서 스위치만 누르면 금방 돌아오는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실도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없다. 그가 왜 다이빙에 집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가 다이빙으로서 자신을 나타내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그 이후의 일도 모른다. 다만 또 하나의 인연이 마지막 희미하게 남은 불씨처럼 사그라졌구나 하는 두렵고 쓸쓸한 기분이었다. 작가: 장호준 (aqualux199) ▲ 가시복어 (수심 30m) 제주 서귀포 가린여 ▲ 가시복어 가시복어는 우리의 재촉에 못이겨 잠시 포즈를 취했으나, 이내 제자리로 돌아갔다. ▲ 가시복어 (수심 15m) 가시복어가 자신의 위엄을 보이려고 몸을 공처럼 부풀리고 가시를 세웠다. 제주 문섬 나이트다이빙 나이트다이빙이 있던 날 아침, 다이빙을 하기 위해 숍으로 가니 선객 몇 명이 숍의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이빙을 앞두고 몹시 들떠서 즐겁게 재잘거리던 선객들이 숍으로 들어선 나를 힐끔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들릴 듯 말 듯 대답했다. 물론 이는 그들의 다이빙경력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선객들은 다이빙을 시작한 지는 몇 년이 되었지만 막상 물속에 들어가 본 횟수는 가물에 콩 나듯 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15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우리는 물속의 동지가 되었다. K가 내게 다가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K가 조심스럽게 말한 이유는, 오늘 나의 다이빙 목적이 이 사람들로 인해서 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종종 맞딱드리는 일이지만 외면 할 수 도 없는 일이었다. 이들 5명의 손님과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낮 다이빙을 했다. 그러던 중 이들이 휴식시간에 우리의 나이트다이빙 계획을 듣고는 이왕 나선 김에 정말 하는 것처럼 한 번하고 싶다면서 나이트 다이빙에 동참하기를 원했다. 자신들은 모르고 있지만 결국 내가 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은 뻔하기 때문이었다. 이게 초보자와 다이빙하기를 꺼리는 이유다. 그 때 나는 전시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한 탕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K에겐 돈이 걸린 문제였다. K에게는 생활의 근본문제였다. 물속 상황에 따라서지만 이들은 아직 초보라 K혼자서는 5명을 다 감당할 수 없다. 이미 온전한 한탕은 물 건너 간 것이다. 물론 나는 낮 다이빙에서 충실히 이 임무를 수행했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 개개인의 다이빙능력도 파악해 뒀다. 나는 그중에 가장 약해 보이는 B의 주의를 돌며, 집중관찰, 감시, 보호했다. B도 이런 나의 마음을 느꼈는지 내 옆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나머지 일행 4명을 제주도로 초청한 사람이었다. 그는 왠지 잠수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주 얌전하게 보이는 사람이었다. 내 눈에 그는 잠수를 무서워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나머지 일행을 초청한 사람답게 명랑하고 대범하게 동해서 자신의 일행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힘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의 상황을 일행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입장이었던 셈이었다. 나머지 일행은 한껏 흥분해 방금 지나온 나이트다이빙의 비경을 복기하고 있었다. 호호호, 나는 사장님 오리발 본 것 밖에 생각 안 나요, 뭐가 뭔지…. 그래도 하여간 좋았어요, 당신도 좋았지?" ▲ 나이트 다이빙 (수심 20m) 다이버가 연산호를 촬영하기 위해 코를 박고 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썰물이 많이 진행되어 수위는 파식대에서 1m정도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바다에는 검은 액체의 덩어리가 일렁거리는 것 같았고, 바람 속에는 태초의 냄새가 묻어나고 있었다. 진행방향은 첫 번째 탕과는 반대방향이었다. 시야는 5m정도, 부유물들이 딱딱한 안개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B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볼 뿐이었다. B는 입수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몇 번을 시도하다 힘만 뺀다는 걸 알고는 포기한 상태였다. 스쿠버를 한다는 사람이 입수를 포기하고 남의 도움을 기다린다는 것이 기가 찰 노릇이었으나, 그 시절을 겪은 나로서는 못 본 척 할 수도 없었다. 흥분하여 호흡이 거칠어지면 입수는 안 된다. 사람들이 하나 둘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도리없이 나는 B의 다리를 잡고 물속으로 끌어 내렸다. 이는 순전히 오리발 힘으로만 해야 했다. 물속이지만 진땀이 나는 일이었다. 등허리를 타고 땀이 흘렀다. 선두에 K가 서고 그 뒤로 일행들이 따랐고 내가 후미에서 따라 갔다. 가시거리 5m, 앞서가는 K의 몸이 보이지 않고 오리발만 보인다. 우리가 따라가는 속도를 조금만 늦춰도 순식간에 오리발도 회색의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것이다. 마치 4차원의 공상과학 영화에서 처럼…. 미약한 조류가 우리가 진행하는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이도 오리발질에 힘을 빼는 역할을 했다. 한개창을 빠져나와 문섬의 바깥쪽을 돌고 있는 것이다. 외해로 나선 것이다. 절벽의 정상이 차츰 낮아진다. 아무래도 앞서 가는 K의 속도가 빠르다. K의 다리는 오랜 물질로 근육이 붙었고 속도도 붙어서 자신이 보통으로 하는 오리발 질이 남은 온 힘을 다해 따라 간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는 듯했다. 여선생이 죽어라고 따라갔다는 말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수심은 20m를 넘고 있었다. 플래시 불빛 속에 B는 몸을 곧추세우고 물에 빠진 사람처럼 손으로 허공을 움켜 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즉시 B에게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그사이 B와 함께 가던 동료는 나와 앞서가던 K를 번갈아 보며, 망설이더니 뒤를 나에게 맡기고는 K를 따라 갔다. 앞서가는 K에게 이 상황을 알리면 좋겠지만, B를 두고 그를 따라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를 따라 가서 알리려 해도 죽을 힘을 다해야 할 것이었다. 물속에선 육지에서처럼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나는 K에게 알리는 것을 포기했다. 잠깐 사이 K일행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둘이 남은 것이다. 그리고 B의 게이지를 들여다 보았다. 남은 공기는 100 bar, 수심은 23m, 이상은 없었다. 공기잔량이 조금 적었지만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B의 얼굴에다 플래시를 비춰보았다. 숨은 매우 가쁘게 쉬고 있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럼 이유는 하나다. 그는 겁을 먹은 것이었다. 공포에 빠진 것이다. B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한 노릇이었다. 플래시를 비춰 그를 봤다. 그는 가슴을 쥐어 뜯고 있었다. 낮이라면 서로를 바라 볼 수도 있지만 지금은 어둠이 지배하는 밤이다. 이미 그가 놓아버린 플래시는 몸에 아무렇게나 달려 불빛만이 심연을 향해 흔들거리고 있었다. '저걸 떼어내면 끝이다.' 나는 결사적으로 달라 붙었다. 한손으로 B의 손을 제지하며 목덜미를 움켜잡고 강하게 압박하며 플래시를 B의 눈에다 비췄다가 다시 부릅 뜬 내 눈을 비추며 온 몸으로 부르짖었다. '조용히 나를 따르고,여기는 수심 20m 아래고,당신은 죽을 수도 있다'고.... 이는 더욱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바로 수면으로 올라 갈 경우 우리의 현 위치는 의지 할 데 없는 외해의 복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경우 B는 전적으로 내게 의지 할 것이고, 조류라도 만난다면 나 혼자서 그를 안고 섬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밤을 떠돌아야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오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즉시 돌아서서 서서히 수심을 낮추며 왔던 길을 되짚어 섬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의 손목을 부러져라 잡고서 수시로 흔들면서였다. 수경 속으로 들어간 물은 그의 눈을 빨갛게 만들었고, 코로 들어간 물은 그의 폐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나도 한 동안 늘어져 있다가 일어났다. 묵묵히 내 장비를 챙기고 B의 장비를 풀었다. 한참이 지나 그가 한 숨을 돌리는 것 같아서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한참 후에 올라 온 B의 일행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물론 B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B는 그것을 불명예로 생각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K의 눈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나는 K를 조용한 곳으로 끌었다. 포인트에 도착해서 뒤 따라오던 일행이 없어서 K도 많은 갈등을 했을 것이다. 돌아가야 하나? 그대로 진행해야 하나? 갖은 나쁜 상념에 시달렸을 것이다. 물밥을 먹는 물쟁이들이 안고 있는 숙명이다. 다이빙이 시작되고 B는 내 옆에 바짝 붙었다. B와 나는 연인처럼 잠수시간 내내 손을 잡고 다녔다. B의 일행들이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가던 날 숍에서 새로 온 초보다이버들에게 뻥을 치고 있던 나를 B가 불러 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는 그를 다시 바다에서 만나게 되었다. ▲ 연산호 (수심 35m) 초대형 특급태풍에도 살아 남은 놈이다. 작가: 장호준 (aqualux199) ▲ 노랑가시돔 (수심 13미터) 문섬 북쪽의절벽, 노랑가시돔 한마리가 연산호의 군락위를 지나고 있다. 한개창에서 절벽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가다 보면 만나는 지점이다. 시야 5미터 정도 ⓒ 장호준 한개창 한개창은 문섬에서 새끼섬과 일직선상에 있다. 서로 돌아 앉아 있는 것이다. 한개창에서 입수하여 오른쪽 어깨에 문섬을 메고 돌아 가든, 왼쪽 어깨에 메고 돌아가든 수심도, 절벽 의 경사도 급하다. 양쪽 절벽에는 연산호와 감태가 평화롭게 어우러져 있고 또 이들이 품고 있는 각종 붙박이 물고기들이 연년세세 그 생명을 이어 오고 있는 곳이다.
"전에 서귀포에 만났던 B가 아니요?"
그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누구에게나 초보 다이버 시절에 그와 비슷한 일들을 겪는다.
나는 B에게서 B의 과거를 불러내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 시간의 변화를 보는 내 눈은 인생과 그 인생을 움직이는 마음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다.ⓒ 장호준
아직 거기는 필리핀에서도 보리깡촌이라 모든 시설이나 장비가 부족하게 보였다. ⓒ 장호준
"지금 가는 곳은 수심이 깊지 않아요.
그러나 우리는 물로 떨어지자 마자 바닥에 닿아서 모이기는 커녕 그대로 떠내려 가기
깜깜한 밤,
자연은 항상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기에 돌연한 변화에 대응을 못 했다고 해서 B를 탓할 수는 없었다.
"아니 우짜다가 이 길로 들어왔어요?"
B와 내가 둘이 되었을 때 물었다.
"인생은 도전이라고 전에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B가 웃는 것과는 달리 목소리는 화가 난 것처럼 말했다.
"글쎄요, 내가 그랬던가요?"
나는 얼른 입을 닫았다. ⓒ 장호준
"이것 가져 가세요.
그리고는 얼른 그걸 내 다이빙 가방에다 집어 넣었다.
나는 그걸 가지고 와서 아파트의 베란다에 내어놓곤 까맣게 잊었었다.
개오지를 찾아서 맑은 물에 말끔히 씻어도 그 냄새가 다 가시지 않아 개오지는 그 희디흰 눈부신 몸으로 다시 두 달간이나 베란다에서 이국의 바람을 맞아야만 했었다.
내가 열대지방 다이빙투어에 나가서 유일하게 관심을 두는 것이 있다면 이런 조개류이다.
그러나 개오지는 달랐다.
B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일 년쯤 지난 뒤였다.
"요번에 난 필리핀 사고 소식 들었어요?"
"무슨 사고인데요?"
버릇대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이야기의 내용인 즉슨 필리핀의 한 섬에서 다이빙 시합이 벌어져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다이빙 시합이라니?"
그들은 탱크를 메고 무리하게 수심을 탔다는 것이다.
"몇 미터나 들어 갔는데?"
"백 미터나 들어 갔다는데요."
"도무지 거기까지 왜 들어 갔는데?
숨을 쉬지 않고 수심을 타는 프리다이빙(영화 <그랑부루>에 나오는 다이빙)과 압축공기를
그런데 그들은 대체 거기까지 왜 들어갔을까?
"그래 누가 죽었어?"
"B라 하던데…….
"B가 누구야?"
내가 무심결에 물었다.
"제주도에서 교사를 하던 사람이라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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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입었는지 어린 가시복어 한 마리가 겁먹은 듯 모래 바닥 위에 엎드려있다.
ⓒ 장호준
ⓒ 장호준
ⓒ 장호준
"다이빙은 자주 하셨나요?"
숍의 사장 겸 알아주는 수중사진가이자 가이드이며 허드레 일꾼인 K가 선객들에게 물었다.
"예, 조끔, 다이빙을 한 지는 좀 됐고요."
우리는 단번에 이 사람들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
나도 선객들처럼 손님과 숍의 사장으로써 K를 처음 만났었다.
"형님 이 분들하고 같이 들어가야 되겠수다."
물속나이는 내가 아래지만 속세 나이는 내가 위다보니 형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선객들은 부부와 그의 처남, 친구로 구성된 팀이었다.
내겐 난감한 문제였다.
"조졌다."
물론 이는 내가 속으로 한 말이었다.
"내가 앞장 설 테니 형님이 후미를 맡아 줘요."
K가 말했다.
B는 제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으며,
한탕의 다이빙을 마치고 올라왔을 때 B는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너무너무 좋았어요, 정말 꿈속 같아요, 호박돔 봤어요? 그 물고긴(쏠베감펭) 이름이 뭐예요? 우와 정말 아름다웠어! 김 선생님은 어땠어요?"
이들은 수도권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30대 초반의 선생님들이었다.
"저는요, 무조건 사장님 오리발만 보고 죽어라고 따라갔어요. 오리발 놓치면 죽는다 싶어서요,
일행 중 여 선생님 한 분이 한 말이었다.
ⓒ 장호준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30분간 휴식을 한 우리는 서둘러 물로 뛰어들 준비를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장비를 점검하고 물로 뛰어 들게 한 후 마지막으로 K와 내가 뛰어 들었다.
B에게 입수 사인을 보냈으나,
B는 두 번째 탕을 피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혼자 밖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일행 때문에 억지춘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힘들게 입수를 끝내고 K가 등에 진 탱크 위에 묶어 놓은 파이로트 플래시의 번쩍이는 불빛을 보며 사람들이 일렬 종대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수심 10m를 유지하며 우리는 첫 번째 모퉁이를 돌았다.
내 앞에 가던 2명 중 1명의 이상한 동작이 눈에 띈 것은 그때였다.
나도 잠깐 갈등을 느꼈다.
나는 돌아서 정지 신호를 보내며 B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 쥐었다.
패닉현상이었다.
B가 가슴을 쥐어 뜯다가 마우스피스를 떼어 내려고 했다.
그를 안고 바로 상승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온몸을 흔들며 사인을 보내자 돌아 갔던 B의 눈동자가 다시 제 자리를 찾는 것 같았다.
물에서 건져내 놓은 B는 파식대의 한 쪽 구석에서 한참 동안을 켁켁거렸다.
"괜찮아요? 왜, 그랬어요?"
확인이 필요했다.
"가슴이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사람이 머리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공포는 무섭다.
"형님 우째 됐시우?"
나는 간단히 사정을 설명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우리는 B의 일행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문섬을 다시 찾았다.
"고마웠어요. 참말로 고마웠습니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앞으로도 할 거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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