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장호준 (aqualux199)  

 

    

        ▲ 문섬 (수심10미터)

        달고기와 다이버 달고기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고

        그 옆을 다이버가 온힘을 다해 따라 붙고 있다.

        ⓒ 장호준

 

나이트다이빙에 들어가기 전,

먼저 한 섬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도 서귀포항 바로 코앞에 자그마한 섬,

문섬이 있다. 

 

모기가 많다고 해서 '모기 문' 자를 써서 문섬이다.

문섬은 본섬과 물밑으로 이어진 새끼 섬으로 이뤄져 있다.

크기는 동서가 약 500m 남북이280m 정도고, 해발 75m다. 

채 3만평이 안 되는 이 코딱지만한 섬이 대한민국의 다이버들에게는 성지나 다름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육지(제주도)에서 본 문섬과 새끼섬

        멀리 새끼섬과 문섬이 보인다.

        ⓒ 장호준

 

       

        ▲ 새끼섬

         문섬에서 바라 본 새끼섬

         ⓒ 장호준

 

        

         ▲ 새끼섬의 파식대

         이 파식대 덕분에 많은 다이버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다.

         ⓒ 장호준

 

특히 본섬인 문섬에 붙어 있는 새끼 섬의 파식대(파도에 의해 깎인 평평한 바위)는 넓은 쪽이 20m를 넘고 그 길이가 80m정도여서 한꺼번에 많은 다이버들을 수용할 수 있다.

근방의 섶섬과 범섬도 해안을 따라 파식대가 발달해 있지만 문섬의 새끼섬이 가장 크다.

 

이 파식대는 용암이 분출할 때 나오는 화산암인 조면암질 안산암으로 되어 있다.

그 색깔이 유백색과 회색을 띠고 있다.

해안이 급경사를 이루는 남서쪽 절벽은 주상절리층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후박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원시림이 있다.

섬으로 사람의 출입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도 이 파식대가 맡고 있다.

        

         ▲ 수로 새끼섬과 문섬사이에 있는 수로

         ⓒ 장호준

 

새끼섬과 본섬 사이에 있는 수로는 다이버들을 실어 나르는 뱃길의 역할을 하고 조수가 지나가는 통로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 이 수로는 본섬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어 방파제 역할을 하기도 하며,

외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파도가 좀 있는 날이면 배를 댈 수 없는 다른 섬에 비해 배를 대기가 좋다.

 

예전에는 해녀들의 쉼터와 물질터로 이용 되었던 이 섬은 다이버들이 드나들기 이전에는 낚시터로도 이용되었으나 어느 새 다이버들이 이 섬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낚시와 다이빙의 속성상 공존이 불가능하니,

낚시인들이 이 자리를 피해 더 조용한 곳으로 옮겨간 것이다.

서귀포항의 모든 배들도 이젠 이 자리로는 다이버들 만 실어 나른다.

 

        

         ▲ 배 문섬의 새끼섬으로 접근하고 있는 배

         ⓒ 장호준

 

날씨 좋은 일요일이면 이섬은 다이버들로 북적인다.

여름날 파도가 잔잔한 날이면 여긴 그야말로 파식대가 좁다고 할 만큼 다이버들이 넘쳐난다.

그 중에는 외국인들도 몇 사람 꼭 끼어 있다.

그 만큼 외국의 다이빙계에도 이 섬은 잘 알려진 곳이다.

 

         

          ▲ 파식대위의 다이버들 멀 뒤로 서귀포시가 보인다.

          ⓒ 장호준

 

다이빙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처음 이 곳을 찾았을 때의 묘한 기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서귀포 항에서 1.3km 떨어져 있는 이 자그마한 섬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육지와 절리된 이 섬의 새끼섬엔 다이버들만의 세상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이곳에 다이빙이라는 한 세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별을 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도시의 불빛을 피해 맑은 산 속에 둘러앉아,

천체망원경 하나 세워놓고 밤새 하늘을 관찰하며 꿈을 좇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문득 떠올리며 '아하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고 사람들은 각자의 동굴로 들어가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를 알게 됐다.

 

처음으로 이 섬을 찾았을 때가 겨울이었다.

아무리 제주도라지만 해안의 바닷바람은 매서웠다.

파식대도 하루에 두 번씩 살짝 물에 잠긴다.

다이빙장비를 내려놓고 무심하게 다이빙을 마치고 나면 물은 어느 새 장비를 적시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 두 번씩 어김없이 밀물이 밀려오고 썰물이 쓸려가는 것이다.

 

처음으로 새끼섬에서 뛰어내려 물밑으로 고개를 박던 순간 펼쳐지던 광경을 내 짧은 글 재주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어떻게 새끼섬을 한 바퀴 돌았는지도 모른다.

그냥 멍해진 머리와 째진 눈을 있는대로 뜨고 가이드의 뒤를 따라 다녔다.

물밖으로 나와서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담배 한대 물고 멍하니 앉아 실실 웃기만 했었다.

 

        

        ▲ 연산호와 달고기 연산호옆을 달고기가 지나고 있다. (수심30미터)

        문섬 남쪽절벽

        ⓒ 장호준

 

그때 나는 엉뚱하게도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을 했다.

이 좋은 곳을 한 번 보여 드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엄마에게 이런 내 마음 전했다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 하셨을 것이다.


“니나 많이 해라, 이눔아. 이 미친눔아.”

 

그러나 나는 다시 내 친구들을 생각했고, 내가 아는 사람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생각했다.

물론 보여주고 싶어서다.

나 혼자 하기엔 너무 아까워서다.

 

다이버끼리 말을 나누고 있다.

비 다이버도 한 명 끼어 있다.

물론 이 비 다이버는 나이트다이빙을 모른다.


“어제 나이트 다이빙 했다며?”

“했지.”

“한 탕밖에 안 했나?”
“응.”
“두 탕하지, 하는 김에 하면 돈이 좀 덜 들잖아, 좋더냐?”


이 말을 들은 비다이버의 얼굴이 벌개졌다. 

그리고 나서 그가 엉뚱한 상상을 했던 것을 말로 옮기고 다니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난 적이 있다.

 

나이트다이빙에 필수는 플래시다.

바다 조건의 필수는 조류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버디(짝)가 있어야 한다.

밤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조류에 조금만 사람이 흘러 버려도 큰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밤에 플래시를 켜고 바다에 들어간다는 것은 신기하다. 

달에 사람이 갔다 온지 몇십년이 흘렀다고 해도 그렇다.

달에는 사람이 우주복 하나 입고 돌아 다니지만

바다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이는 수압이라는 물리적인 힘 때문이다.

우리는 우주보다 바다를 더 모르고 있는 듯하다.

 

문섬에서의 나이트 다이빙도 비치다이빙(해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하려면 조심해야 한다.

새끼섬 북쪽의 조류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대마다 바뀌는 조류를 다 알기도 어렵다.

나는 몇 번이나 조류에 밀려 섬에 상륙하는 것을 포기하고 배의 구조를 기다려야 했었다.

 

       

         ▲ 새끼섬 위에서 내려다 본 새끼섬의 남쪽자락

         한 방송국기자가 다이버들을 촬영하고 있다.

        ⓒ 장호준

 

한번은 조류를 만나 바위를 붙잡고 앞으로 근근이 움직여 입수지점으로 돌아왔지만,

몸은 거의 탈진 상태였다. 

쥐가 온 몸에 났다.

이는 배에 의지하지 않고 타인을 의식해서 기죽지 않기 위해 한 행동이지만 위험한 짓이다.

사고는 바로 이럴 때 나기 때문이다.

 

나이트 다이빙 장소는 문섬 한 개창으로 정해졌다.

인원은 총 8명,

입수 시간은 밤 11시. 

2 개조로 나눠 들어가기로 했다.

 

초조하게 11시를 기다리던 우리는 장비를 싣고 부두로 나갔다.

별이 빛나는 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아련하게 울려퍼지는 부두에는 가로등 몇 개가 졸린 듯 서 있다.

다이버들 몇 명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런 풍경에 익숙한지라 누구도 우리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는 부두에 멈춰 각자 장비를 체크했다.

우리를 싣고 갈 배의 엔진소리가 들렸다.

작가: 장호준 (aqualux199)  

 

      

       ▲ 태양과 갯민숭 달팽이(nudibranch) 수심 15미터

       울릉도 능걸.

       갯민숭달팽이 몇 마리가 해초에 붙어서 교미를 시도하고 있고,

       수면 위에는 태양이 어른거리고 있다.

       갯민숭달팽이의 크기는 어른 엄지 손가락정도이다.

       이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패각이 없지만 독성물질을 지니고 있다.

       종에 따라 날개 짓을 하는 것이 있는데,

       이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스패니쉬 댄스라 부르며 그 몸짓이 매우 아름답다.  

       니코노스v 15mm 광각렌즈로 잡았다.

      ⓒ 장호준

 

울릉도

 

열대지방의 바다 속을 처음으로 본 것은 영화를 통해서였다.

그때 내 나이 열네댓 살 무렵이었다.

고향 냇가에서 찰방거리며 배운 개헤엄으로 무장한 나는

여름이면 도시의 복판을 가로지르는 용두방천에서 멱을 감고는 했다.

그러나 신천은 몇 년이 흐르자 오수가 흘러 넘쳐

악취가 풍기는 물로 변해 사람들은 코를 쥐고 신천을 피해 다녔다.

경제성장이 지상과제였던 시절에 우리가 겪어야 했던 세월이었다.

 

물론 지금 신천의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팔뚝만한 잉어들이 떼 지어 몰려 다니는 게 보인다.

강산이 또 한 번 변한 것이다.

그러나 그 물에서는 이제 아무도 놀지 않고 낚시조차 드리우지 않는다.

 

열대 바다 속을 보며 언젠가 한번 저 바다 속으로 가리라 마음먹었던 것을 그 후에 나는 경험 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체험한 열대의 바다는 단숨에 나를 매료시켜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그 바다보다 더 좋은 우리의 바다가 있다.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꿀리지 않는 경치를 자랑하는 바다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나는 제주바다의 연산호 밭을 보고 감격에 겨워하는 이스라엘에서 온 해양생물학자도 알고 있고,

제주바다에 홀랑 빠져 아예 서귀포에 뿌리를 내린 독일인도 알고 있다.

그는 스쿠버다이빙 가게를 내서 자국의 다이버들에게 지금도 제주바다를 맘껏 뽐내고 있다.

 

제주를 마음 깊이 사랑하는 이 독일인 앞에서 환경을 훼손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가 누구이던 간에 불호령이 떨어진다.

서귀포 문섬의(모기가 많다고 해서 모기문자 蚊섬) 새끼섬이나,

한개창(크다는 뜻의 '한'과 웅덩이라는 개창이 어우러진 이름)에 가면,

그 독일인을 찾아온 유럽의 코쟁이 다이버들을 수시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아마 그런 사람들도 울릉도에 데려가 울릉 바닷속의 물맛을 살짝 보여 준다면,

제주와 울릉도 사이에서 큰 갈등을 겪을 것이며,

어쩌면 다시는 울릉도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제주의 수중이 알록달록 화려하다면 울릉도는 우람하다.

울릉도나 제주도는 우리나라 스쿠버 다이버들에겐 한 없는 긍지의 섬이다.

 

1970년대에 울릉도에서 다이빙을 체험한 한 다이버는 말한다.

 

"바닷가에서 술 묵다가요, 안주 모자라면 두 말할 거 없심데이, 

창 들고 스킨으로 살짝이 들어가서 팔뚝만 한 거 몇 마리 잡아 오마 안 되능교.

고기가 버글버글 했심데이.

이따만한 돌돔과 혹돔들이 구딩이, 구딩이(바위사이)  박히 있었구마."

 

물론 이 때쯤 그 말을 듣고 있던 그 시절을 체험하지 못한 우리 애송이 다이버들은 부러워서 침을 흘렸다.

혹돔은 그 기괴한 생김새와 크기로(성어는 1m에 20kg 이상 나간다) 다이버들이 보고 싶어 하는 어종이지만 새끼는 몰라도 성어는 경계심이 많아서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20~30m 수중 암초지대에 서식하는 이 붙박이 물고기는 그 크기가 우리나라

연안에서 제일 크다.

그러나 울릉도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울릉도는 비단 물 속만이 아니다.

물 밖 경치도 황홀하다.

 

        

       ▲ 혹돔

       한 다이버가 혹돔을 안고 있다.

      혹돔의 혹은 암놈이나 새끼에게는 전혀 발달하지 않는다.

      손암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혹돔을 류어(瘤魚)라고 이름 붙이고

      참돔, 감성돔과 함께 도미류로 묶어 놓았지만 도미류는 아니다.

      놀래기아목 놀래기과에 속해서 분류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다이버가 안고 있는 혹돔은 다 자란 놈이 아니다.

      이들이 다 자라면 1m가 넘는다.

      뿔소라를 한입에 바수어 먹을 만큼 턱 힘과 이빨이 강하다.

      ⓒ 도현욱

 

방어 떼

 

울릉도 저동항 앞 죽도 옆 쌍정초 포인트로 이동 중인 배 위에서였다.

쌍정초는 수면에 거의 맞닿아 있는 수중암초지대다.

식민지 시절을 연상시키는 일본어로는 '오끼니시'라 불리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 해양지명위원회에서 우리 관할해역에 있는 수중산맥과 암초지대에 대하여

처음으로 네 곳의 해저지명을 확정해 고시했다.

강원도 동해시 묵호등대 앞바다의 찬물내기초와 쌍정초, 포항 호미곳의 교석초, 울진군 후포와 울릉도의 중간지점쯤에 있는 왕돌초가 그것이다.

이중 왕돌짬 혹은 왕돌초는 다이버들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모터보트가 요란하게 행진하는 죽도 옆 바다 쌍정초에는 그 부분 만을 냅다 흔들어 놓은 것처럼 하얀 포말이 일고 있었다.

갈매기 수 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흰 포말 위를 부산히 날고 있었다.

 

"장관이군."

우리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하자,

보트를 몰던 다이빙 가게 주인이 대답했다.

"지금 바다 위 아래로 일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바다 속에서는 멸치 떼를 잡아 먹으려고 방어(농어목 전갱이과)가 그 뒤를 �고 있고 ,

바다 위에서는 갈매기가 멸치 떼를 �고 있지요.

흰 포말은 멸치 떼의 몸부림입니다."

그러나 정작 장관은 그 다음에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보트가  쌍정초위에 자리를 잡자 우리는 서둘러 바다로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봤다.

수천마리의 방어가 눈을 반짝이며 떼 지어 몰려가고 있는 것을.

그들은 해저의 구릉을 타며 위로 솟구쳤다가 다시 아래로 내리 꽂히고 그러다가는 다시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돌았다.

아래서 올려다 본 은백색의 배 부분이 햇빛을 따라 어지럽게 번쩍였다.

몸 중앙을 가로지르는 희미한 노란색 띠가 제복을 연상케 했다.

아마 초원을 질주하는 기마병들의 모습이 저와 같았으리라.

 

우리는 이 장관을 얼을 놓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놈들은 거의 60-70cm 족히 넘을 듯이 보였다.

오년 이상 자란 놈들이다. 

물론 보르네오 섬 옆의 말레이시아의 시파단이라는 섬에서 잭피쉬(전갱이류)와 바라쿠다 떼들의 군무를 본 적이 있었지만,

내나라 내 땅에서 그토록 장엄한 광경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같이 떨어졌던 다이버들도 모두 얼이 빠져 카메라는 뒤로 한 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카메라에 이 광경을 담기보다는 우선 가슴 속에 주워 담기가 더 바빴던 것이다.

 

다이빙을 마치고 배 위에 올라오고 나서도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막무가내 회칼과 초장을 준비해서 배 위에서 학수고대하고 있던 친구들은 우리가 모두 빈손으로 올라오자 툴툴거리며 시비를 걸었다.
 

"짜석들, 다이빙도 할 줄 모리민서…"

구시렁구시렁…….

그러나 아무도 대꾸도 않자 곧장 분위기 파악을 하고는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퇴직금 탈탈 털어 다이빙 장비를 사서 다이빙을 배웠다는 김군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는 그때 갓 서른이 넘은 다이버였다.

 

"이 맛에 다이빙을 하긴 하는데…"

그는 사람 됨됨이가 하도 여물고, 성실해서 클럽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떠맡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몇 푼 안 되는 수입에서 떼 낸 용돈은 무조건 다이빙에 투자를 하는 사람이었다.

이미 이들에게 다이빙은 취미를 넘어서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 시절  다이빙은 우리들 삶의 가장 큰 기쁨이요, 목적이었던 것이다.

 

       

        ▲ 울릉도 도동항

        1999년 7월에 찍은 사진.

        앞에 그림 같은 바다가 펼쳐지고 그 속에 바다 이야기가 있다.

        ⓒ 장호준

 

도동항

 

많은 다이버들이 다이빙과 직업으로 삼았다.

가장 쉽게 다이빙을 직업으로 삼는 방법은 다이빙 가게를 여는 것이었다.

그 중 몇몇은 대단히 성공해 해외에도 여러 군데 리조트를 만들어 운영하며 모국의 다이버들을 유치했다.

그러나 열정만을 가지고 뛰어 들어 국제 낭인이 된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니 굳이 다이버에 국한할 일은 아니다.

 

이제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바탕 삼아서 서서히 물속 깊숙이 빠져 보자.

 

나이트 다이빙이 있다.

말 그대로 세상이 잠든 한밤 중에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밤을 맞이하고 있다.

밤은 휴식과 충전의 시간이다.

하지만 그런 제한의 시간일수록 바다 속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

사위는 적막하고 밤바다는 검다.

 

그 검은 바다가 통째 울렁이는 속으로 다이버들은 들어 간다.

물론 다들 가슴에 묻은 꿈이 다르고 같은 곳에 떨어져도 개인이 보는 바다는 다 다르다.

자, 그 밤바다 깊숙이 들어가 보자.

세계 최고 다이버는 물속에서 몇분 버틸까? 


작가: 장호준 (aqualux199) 

 

         

         ▲ 하강하는 다이버들 (수심 8미터)

         제주도 문섬,

         다이버들이 바다 밑으로 내려가고 있다. 

         물빛은 푸르고 다이버들의 동작은 한가롭게 보인다.

         그러나 아름답게만 보이는 이곳은 조금만 방심하면 돌이킬 수없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물속에서 사분 오십초를 견디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수심 3m 쯤 내려가 바위를 붙잡고 이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을 세울 때 바깥에서 시간을 재고 있던 우리들은

2분이 지나고 3분이 가까워지자 드디어는 참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 들었다.

혹시나 바위에 붙어서 이 녀석이 죽어 버린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 때문이었다.


기록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
 

영화 <그랑블루>는 프리다이빙에 집착하는 두 다이버에 대한 영화이다.  

거기서 나오는 다이빙은 무호흡 다이빙(freediving)이다.

입수부터 나올 때까지 숨을 쉬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압축공기를 쓰는 스쿠버다이빙과는 다르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몇 개의 프리다이빙 동아리가 있고,

프리다이빙 협회도 두어 개가 있는데,

서로 경쟁이 붙어 서로의 기록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프리다이빙에도 몇 가지 종목이 있다.

불변웨이트 방식과 가변웨이트, 그리고 무제한급이다.

불변웨이트와 가변웨이트는 부력을 이기도록 하는 웨이트를 차고 밑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같지만,

불변웨이트는 바닥에 도착한 뒤에도 차고 올라오고,

가변웨이트는 버리고 올라온다는게 차이점이다.

무제한급은 어떤 방법으로 하던지 관계없다.

그러니까 내려갈 때 하강 썰매를 몇 kg으로 하던지 올라올 때 공기주머니를 부풀려 올라오던지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다.


역대 프리다이빙의 세계기록보유자들인 피핀, 잭 마욜(<그랑블루>의 실제모델) 지안루카 제노니, 타냐 스트리트 등이 각 부문에서 세운 잠수기록은 122m~162m이다.

그들이 그 깊이까지 내려 갔다가 올라오는데,

걸린 시간은 2분에서 3분사이이다.


피핀의 아내도 역시 프리다이빙 세계 챔피언이었다.

그녀는 작년에 다시 기록에 도전하다 목숨을 잃었다.

몇 년 전에는 트라이 믹스 다이빙 (혼합기체통 6-9개를 달고 하는 다이빙) 세계기록 보유자(잠수 깊이 254m)인 영국의 한 다이버가 우리나라에 초청되어

광양만에 침몰한 유조선 인양을 위해 조사를 하다가

그가 세운 기록에 대면 접시물 수준인 수심 35m에서 실종되었다.


이들은 물속에서 대부분 6분 이상을 견디는 폐를 가지고 있다.

보통사람 두세 배 정도의 폐활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물속에서 인간이란 미약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만약에 사고로 일 분 정도 숨을 쉬지 못한다면 누구라도 죽음의 문턱 앞으로 가야 한다.

물론 위에서 말한 사람들이야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는 일반적이 아니니 여기서 말 할 필요는 없다.


바꾸어 말하면 기록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이들이 세운 각종 다이빙 기록은 지금 이 순간에도 깨어지고 있을지 모르니까.


수심 30m서 죽음의 고비 넘긴 다이버


보통사람들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남의 인생을 나의 잣대로 잴 수는 없다.

인생은 지극히 주관적이요,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니까.


내가 아는 어느 다이버는 서귀포 문 섬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공기가 떨어져 버렸다.

당시에 그가 가지고 있던 게이지가 고장을 일으킨 것이었다.

수심은 30m, 그는 당시에는 초보다이버였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공포가 극에 달한 순간,

한 다이버가 옆에 나타났고 그의 도움으로 짝 호흡(마우스피스를 주고 받으며, 서로 번갈아 숨을 쉬는 것)을 하면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날 이후 그 초보다이버는 자신을 구해 준 다이버의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게 이상하게 보였던지 수군거렸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김 교수가 내 보담 두 살 적어요,

그래도 내가 심부름 해줍니데이,

지가 머라카마 내 두 수는 접 어줍니다.

지금까지 같이 다이빙 댕기며 가방모찌 안 함니꺼.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지가 전시회 한다 캄서 돈 모지랜다 카마 돈도 꾸 주고……,"


목숨을 건진 다이버가 자신에게 공기를 나눠 주었던 다이버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 수중동굴 필리핀, (수심 25미터)

       폐스카도르 아일랜드,

       동굴 안쪽에서 앵글을 잡았다.

       다이버와 입구가 실루엣으로 잡혔다.

       ⓒ 장호준

 

농아 다이버들....

수화 이용해 물 속에서 자유롭게 대화


사람이 물 속으로 들어가면 물 속에도 인생이 생긴다.

사람의 삶이 있는 곳에 인생이 있고 추억이 있고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또 사람이 살아가는 사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물 속이다 보니 다이버들끼리의 의사소통은 간단한 수화를 쓴다.

세계 공통의 다이버 수화가 있다.

그 말들은 아주 간단하다.

가령 춥다는 표시는 두 팔을 가슴에 X자로 갖다 대며 떤다거나,

공기가 떨어지면 자신의 목을 손으로 자르는 시늉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긴박한 순간에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수면 위에 떠서 배를 기다리는 시간,

배 위에서 물 위에 떠 있는 다이버의 상태를 확인하려면 말소리는 도달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 손을 머리 위에서 둥글게 맞잡으면,

'괜찮은가?'라고 묻는 말이 되고

상대도 그와 같은 표시를 하면

O.K 즉 괜찮다는 사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도가 한계다.

대부분의 다이버들은 몇 개의 수화방법 외에는 모른다.

또 내가 아무리 잘 알아도 상대가 모르면 쓸 수 없는 것이다.

 

플랑크톤이 많아 물이 흐린 탓에 시야가 상대적으로 막혀 있고,

그로인해 단독행동이 많은 우리나라 다이빙 현실로서는 수화를 쓸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

수화의 필요조건은 일단 보여야 되는 것이니까.


한 번은 농아들과 마주친 적이 있다.

일본의 다이버들이었는데,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여자다이버들이었다.

우리는 같은 버스로 이동을 하게 되어서 필담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나 우리나 영어의 밑천이 빤하다 보니 금방 대화가 바닥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일정에 맞춰 다이빙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동굴 다이빙에서 우리는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농아들이 다이빙을 한다는 것이 다소 신기하기도 했지만,

서로의 일정이 다르다 보니 그때까지는 만나지를 못했었다.


동굴다이빙은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원자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도 농아들이 몇 명 나와 있었다.

우리들은 가벼운 목례를 건네고 가이드의 뒤를 따라 물로 들어 갔다.


가이드 한 명이 앞장을 서고 농아들이 그 뒤를 따르고 다시 우리가 그 뒤를 이었다.

한 명의 가이드다이버가 후미를 맡았다.

그런데 앞에 가던 농아들이 분주히 손발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본 순간에는 '대체 쟤들이 왜 저런 불필요한 동작을 할까? 다이빙에는 아직 초짜들이군'이라는

얼빠진 생각을 했었다.

(초보자들의 특징은 물속에서 쓸데없는 동작을 해서 자신의 힘을 빼는 데 있다.)

그러다가 나는 알았다.

그들은 물속에서 수화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들을 아주 신기해하며 바라 봤던 기억이 난다.

그들에게는 물속도 대화를 나누기에는 육지와 다름없었던 것이다.

물속에서 대화를 자유자재로 나눈다는 것은 대단히 편리하고 안전한 다이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이버에겐 정말 부러운 일이다.

지금은 통신장비가 나와 있지만,

가격이 장난이 아니어서 그림의 떡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농아들은 마치 가벼운 산책을 즐기는 것처럼 온갖 말들을 주고 받고 있었다.


"한 가지 불편한 것이 모든 것이 불편하다는 말은 아닌 것 같군,

맞아 인간 만사 새옹 지마 라더니..."


물론 이 말은 물밖에 나와서 우리 일행이 한 말이다.

새옹지마라는 거창한 말까지야 어울리지 않은 일일지라도

우리는 그들을 부러워하며 아무 말도 못하고 상대적으로 답답한 가슴을 안고 그들의 뒤를 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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