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장호준 (aqualux199)

 

       

      ▲ 노랑가시돔 (수심 13미터)

       문섬 북쪽의절벽,

       노랑가시돔 한마리가 연산호의 군락위를 지나고 있다.

       한개창에서 절벽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가다 보면 만나는 지점이다.

       시야 5미터 정도

       ⓒ 장호준

 

한개창

 

한개창은 문섬에서 새끼섬과 일직선상에 있다.

서로 돌아 앉아 있는 것이다.

한개창에서 입수하여 오른쪽 어깨에 문섬을 메고 돌아 가든, 왼쪽 어깨에 메고 돌아가든 수심도, 절벽

의 경사도 급하다.

양쪽 절벽에는 연산호와 감태가 평화롭게 어우러져 있고 또 이들이 품고 있는 각종 붙박이 물고기들이 연년세세 그 생명을 이어 오고 있는 곳이다.

 

       
   

      ▲ 한개창

        한개창의 파식대위로 파도가 들어오고있다.

        썰물 때가 오면 물이 현재의 높이에서 2 미터 이상 빠진다.

        ⓒ 장호준

 

        

        ▲ 한여름의 새끼섬

        한여름의 새끼섬 국내외의 많은 다이버들이 파식대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 장호준

 

 

한개창의 파식대도 꽤 넓어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

한개창의 파식대에서 바다를 보고 서면 정면으로는 범섬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서귀포의 해안선이 바다와 같이 달리는 것이 보인다.

이 파식대가 있는 왼쪽으로는 갯바위들이 있어서 간혹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다이빙을 하는 다이버들을 쳐다 보는 눈이 편할 리는 없다.

 

그들 중 누군가 한 번 그런 불안을 비친 적이 있었다. 

“물 속에 들어가면 낚시 바늘이 보이지 않나요? 고기는 좀 있어요?”
이는 다이버들이 낚시꾼들의 낚시를 방해하지 않느냐는 말을 우회적으로 묻는 것이었다.

 

“여긴 작은 고기는 좀 있어도 큰 고기는 없어요. 낚시 바늘도 보이지만 우리는 피해 다녀요.” 

차마 나는 고기를 �아 버렸다는 말을 못했다.

낚시 바늘이 숨어 있는 미끼를 물고기가 먹으려고 하는 데,

안 봤다면 모르지만 사람이라면 보고 어찌 지나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물고기가 낚시를 무는게 보여요?”
“그럼요, 미끼 주위에 몰려 미끼를 뜯어 먹고 있는 게 보이지요.”


물론 그는 더욱 더 불안해진 얼굴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 갔다.

 

         

         ▲ 연산호 (수심 20미터)

         스트로브에 노출된 붉은 맨드라미산호 주위에 뿌연 부유물들이 보인다.

         ⓒ 장호준

 

다이버들을 태운 배가 어둠을 뚫고 밤바다 속으로 들어섰다.

모두들 플래시를 껐다 켰다 하면서 말없이 바다를 바라 보고 있었다.

한개창까지는 불과 육칠 분이면 닿는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차다.

낮 다이빙과는 달리 카메라도 바로 쓸 수 있도록 조립을 마친 상태이며, 잠수복도 모두 입은 상태였다.

 

우리는 도착하는 즉시 마지막 점검을 하고 바다로 뛰어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허공에 뿌린 플래시의 불빛이 깜깜한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 간다.

 

어둠 속에 일렁이는 검은 바다,

우리가 탄 배가 머리로 한줄기 뿜으며 한개창에 닿았다.

바닷물이 한개창 파식대와 같은 높이로 출렁인다.


“지금이 만조 시간입니다. 물이 빠지고 있지만 남는 장비는 조금 위쪽에다 놓으세요.”

 

가이드가 소리치며 배에서 뛰어 내렸다.

배가 파식대에 선체를 대어 장비를 내리게 끔 하기 위해 파식대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가속기를 죽어라고 밟는다.

엔진이 켕켕거리며 비명을 지른다.

우리는 서둘러 탱크를 내리고 가방들을 챙겼다.

배는 장비를 내리고는 바로 항으로 되돌아간다.

선장은 다이빙이 끝나고 핸드폰을 날리면 서둘러 이곳으로 다이버들을 실러 올 것이다.

 

밤바다를 마주하고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낮에는 느끼지 못하는 마음이다.

파도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다.

구름에 달이 간다.

검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서서히 달아 오른다.

 

마지막 점검을 하던 몇 사람이 점검을 멈추고 바다로 뛰어 들었다.

물론 아직 장비는 착용하지 않고 잠수복만 입은 상태로 뛰어든 것이다.

나도 뛰어 들었다.

그들은 플래시를 바닥으로 비추며 시야를 가늠해 보고 있었지만 나는 하늘을 보고 큰 대짜로 방자하게 드러누웠다.

몸은 잠수복의 부력으로 인하여 물 위에 떠서 일렁이는 물결 따라 흔들거린다.

 

목덜미를 파고 드는 차가운 바닷물의 감촉에 온몸이 상큼하게 긴장하지만 그도 잠깐이다.

그리고 나는 무아지경에 빠진다.

자연 속에 나는 혼자이고, 우주 속에 내가 잠기는 순간이다.

이 순간이야말로 아무데서나 마주할 수 없는 자연과 교감하는 순간이요,

자연 속에 내가 묻히는 순간이다.


“빨리 나와요, 들어 갑시다.”

 

가이드가 우리를 재촉했다.

 

우리 여덟 명은 두 팀으로 나눠 같은 방향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문섬을 오른쪽 어깨에다 메고 나가기로 약속을 한 것이다.

반환점은 탱크의 공기를 50bar(대부분 총량200bar)를 남겨 놓은 상태에서,

나머지 양의 반이 떨어지기 전이다.


“수심을 깊게 타지 마세요, 20미터 이하론 내려가지 마세요. 알았지요.”


가이드가 당부한다.

그러나 피사체를 따라 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깊은 수심을 예사로 타게 된다.

 

다이빙 숍에서 가이드와 다이버들의 관계는 단순히 고객과 상인의 관계만이 아니다.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고객들은 가이드와 만나기도 전에 이미 관계가 맺어져 있는 수가 많고.

설령 처음에는 고객과 상인으로 만났다고 해도 다이빙 특성상 다이빙 도중에는 가이드의 인솔을 절대적

으로 따라야 하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초보 시절에는 자연히 스승과 제자의 사이가 되는 것이고,

그 시절이 끝난다 해도 이들은 끈끈한 동지애로 맺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물 속에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아 주지 않을 수가 없는 마음이 된다.

그러나 이는 마음이다.

사고가 나면 철저히 혼자서 헤쳐 나와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상대를 도와 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장비를 지고 차례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다이버 마다 하나씩 들고 있는 플래시 불빛이 바다 속에서 이리저리 엉킨다.

나이트다이빙에는 보통 한 사람이 두 개씩의 플래시를 들고 들어간다.

물론 하나는 예비용이다.

나는 카메라의 스트로보에 하나를 매달았고 하나를 손에 들었다.

물론 플래시는 끈으로 잠수복의 캬라비나에 연결되어 있어서 손에서 잠시 놓치더라도 바다 밑바닥으로 떨어져 가라앉지는 않는다.

우주인들이 물 속이 무중력 상태와 비슷하다고해서 물 속에서도 훈련을 받는다지만 무중력은 아니다.

잠수복도 수심 십오 미터 정도를 내려가면 수압에 의해 찌그러져 부력도 없어져 버린다.

 

잠시 물 속에서 대오를 정비한 우리는 가이드의 탱크 뒤에 꽂아놓은 파일럿 램프의 회전불빛을 따라 하강하기 시작했다.

일단 잠수가 시작되고 나면 귀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자신이 내뿜는 숨소리와 간혹 귀 속을 흐르는 물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다.

이윽고 이 소리에 익숙해지고 나면 아무 소리도 없는 침묵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물고기들은 이 속을 부산히 움직이고 있고,

다이버들은 보이지 않는 유체에 저항을 받는다.

이는 아주 대수롭지 않게 느끼기 쉽지만 가벼이 넘어 설 수 없는 힘이다.

다이버는 모든 행동을 천천히 하라고 교육을 받는다.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또한 물결을 타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의 힘으로는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

 

한개창의 입수지점의 수심은 대략 십삼 미터 정도다.

들물과 날물일 때 간만의 차가 거의 2미터를 넘는 것을 감안하면 수심은 아래 위로 이 정도의 깊이를 가감해 줘야 한다.

플래시를 비추자 감태와 산호 뒤로 숨어 눈을 붙이고 있는 쥐치가 눈에 들어오고, 

노랑가시돔이 오밤중의 불청객들을 보고 눈알을 굴린다.

제법 큰 호박돔 한 마리가 플래시 불빛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문섬의 맨드라미를 닮은 연산호는 그 색깔이 강렬하다.

보라색, 분홍색, 하얀색, 붉은색, 아기의 팔뚝을 닮은 희디 흰 줄기에 이런 형형색색의 꽂을 피워 내놓으면 가까이 하기도 전에 사람들의 마음은 어느새 취한다.

무척추 동물, 강장동물문 등 전문가가 아니면 무슨 소리인지 모를 말들이 산호를 설명하고 있고,

이들은 새우나 게, 플랑크톤을 잡아먹고 사는 엄연히 동물군에 속하는 생물이지만,

언제 봐도 이들은 내게 있어 꽃이다.


수심 이십 미터,

손바닥만한 불빛을 보자기처럼 펼쳐놓고 우리는 우리만의 세계에 몰입하고 있었다.

플래시의 빠알간 불빛 속에는 자다가 깬 고기들이 허둥지둥 거리며 사태를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갑자기 우리를 앞서 가던 가이드가 플래시를 좌우로 빠르게 흔든다.

급히 오라는 신호다.

그가 흔들다 불빛이 멈춘 곳에는 솔베감펭 두 마리가 여유 있게 쏠종개들을 몰아가고 있었다.

         

         ▲ 솔종개를 노리는 솔베감펭

         쏠종개를 몰고가는 쏠베감펭

         ⓒ 장호준

 

나는 천천히 내려가 솔베감펭이 급히 빠져 나올 수 없도록 출구를 막은 뒤 카메라의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맞추어 놓고 앵글을 잡기 시작했다.

그 순간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쏜살같이 내려와 불문곡직하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일행이지만 그날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가이드가 내려와 그를 제지하려는 것을 나는 말렸다.

내 초보시절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 속에도 예절이 있다.

남이 촬영하고 있는 자리에 끼어드는 것은 물 속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남이 데려온 모델을 허락 없이 찍어도 안 된다.

어디까지나 먼저 시작한 사람이 찍고 난 다음 찍으러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사진 한 장이 눈 앞에 팔락거리는데,

아직 그런 법도를 알 리 없는 청년이 앞뒤를 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세상이 잠든 밤, 서귀포 항, 한 귀퉁이, 수심 이십 미터의 바다 속에 흔들거리는 불빛 받쳐 놓고 몇 사람이 둘러 앉아 바다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첫 탕은 그런 대로 끝났지만,

 

아무래도 약하다 싶었던 일행 중의 한 사람이 곧이어 들어간 다음 탕에서 기어이 사고를 내고

말았다.

 

(계속 이어집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