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장호준 (aqualux199)  

 

      

       ▲ 태양과 갯민숭 달팽이(nudibranch) 수심 15미터

       울릉도 능걸.

       갯민숭달팽이 몇 마리가 해초에 붙어서 교미를 시도하고 있고,

       수면 위에는 태양이 어른거리고 있다.

       갯민숭달팽이의 크기는 어른 엄지 손가락정도이다.

       이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패각이 없지만 독성물질을 지니고 있다.

       종에 따라 날개 짓을 하는 것이 있는데,

       이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스패니쉬 댄스라 부르며 그 몸짓이 매우 아름답다.  

       니코노스v 15mm 광각렌즈로 잡았다.

      ⓒ 장호준

 

울릉도

 

열대지방의 바다 속을 처음으로 본 것은 영화를 통해서였다.

그때 내 나이 열네댓 살 무렵이었다.

고향 냇가에서 찰방거리며 배운 개헤엄으로 무장한 나는

여름이면 도시의 복판을 가로지르는 용두방천에서 멱을 감고는 했다.

그러나 신천은 몇 년이 흐르자 오수가 흘러 넘쳐

악취가 풍기는 물로 변해 사람들은 코를 쥐고 신천을 피해 다녔다.

경제성장이 지상과제였던 시절에 우리가 겪어야 했던 세월이었다.

 

물론 지금 신천의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팔뚝만한 잉어들이 떼 지어 몰려 다니는 게 보인다.

강산이 또 한 번 변한 것이다.

그러나 그 물에서는 이제 아무도 놀지 않고 낚시조차 드리우지 않는다.

 

열대 바다 속을 보며 언젠가 한번 저 바다 속으로 가리라 마음먹었던 것을 그 후에 나는 경험 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체험한 열대의 바다는 단숨에 나를 매료시켜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그 바다보다 더 좋은 우리의 바다가 있다.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꿀리지 않는 경치를 자랑하는 바다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나는 제주바다의 연산호 밭을 보고 감격에 겨워하는 이스라엘에서 온 해양생물학자도 알고 있고,

제주바다에 홀랑 빠져 아예 서귀포에 뿌리를 내린 독일인도 알고 있다.

그는 스쿠버다이빙 가게를 내서 자국의 다이버들에게 지금도 제주바다를 맘껏 뽐내고 있다.

 

제주를 마음 깊이 사랑하는 이 독일인 앞에서 환경을 훼손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가 누구이던 간에 불호령이 떨어진다.

서귀포 문섬의(모기가 많다고 해서 모기문자 蚊섬) 새끼섬이나,

한개창(크다는 뜻의 '한'과 웅덩이라는 개창이 어우러진 이름)에 가면,

그 독일인을 찾아온 유럽의 코쟁이 다이버들을 수시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아마 그런 사람들도 울릉도에 데려가 울릉 바닷속의 물맛을 살짝 보여 준다면,

제주와 울릉도 사이에서 큰 갈등을 겪을 것이며,

어쩌면 다시는 울릉도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제주의 수중이 알록달록 화려하다면 울릉도는 우람하다.

울릉도나 제주도는 우리나라 스쿠버 다이버들에겐 한 없는 긍지의 섬이다.

 

1970년대에 울릉도에서 다이빙을 체험한 한 다이버는 말한다.

 

"바닷가에서 술 묵다가요, 안주 모자라면 두 말할 거 없심데이, 

창 들고 스킨으로 살짝이 들어가서 팔뚝만 한 거 몇 마리 잡아 오마 안 되능교.

고기가 버글버글 했심데이.

이따만한 돌돔과 혹돔들이 구딩이, 구딩이(바위사이)  박히 있었구마."

 

물론 이 때쯤 그 말을 듣고 있던 그 시절을 체험하지 못한 우리 애송이 다이버들은 부러워서 침을 흘렸다.

혹돔은 그 기괴한 생김새와 크기로(성어는 1m에 20kg 이상 나간다) 다이버들이 보고 싶어 하는 어종이지만 새끼는 몰라도 성어는 경계심이 많아서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20~30m 수중 암초지대에 서식하는 이 붙박이 물고기는 그 크기가 우리나라

연안에서 제일 크다.

그러나 울릉도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울릉도는 비단 물 속만이 아니다.

물 밖 경치도 황홀하다.

 

        

       ▲ 혹돔

       한 다이버가 혹돔을 안고 있다.

      혹돔의 혹은 암놈이나 새끼에게는 전혀 발달하지 않는다.

      손암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혹돔을 류어(瘤魚)라고 이름 붙이고

      참돔, 감성돔과 함께 도미류로 묶어 놓았지만 도미류는 아니다.

      놀래기아목 놀래기과에 속해서 분류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다이버가 안고 있는 혹돔은 다 자란 놈이 아니다.

      이들이 다 자라면 1m가 넘는다.

      뿔소라를 한입에 바수어 먹을 만큼 턱 힘과 이빨이 강하다.

      ⓒ 도현욱

 

방어 떼

 

울릉도 저동항 앞 죽도 옆 쌍정초 포인트로 이동 중인 배 위에서였다.

쌍정초는 수면에 거의 맞닿아 있는 수중암초지대다.

식민지 시절을 연상시키는 일본어로는 '오끼니시'라 불리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 해양지명위원회에서 우리 관할해역에 있는 수중산맥과 암초지대에 대하여

처음으로 네 곳의 해저지명을 확정해 고시했다.

강원도 동해시 묵호등대 앞바다의 찬물내기초와 쌍정초, 포항 호미곳의 교석초, 울진군 후포와 울릉도의 중간지점쯤에 있는 왕돌초가 그것이다.

이중 왕돌짬 혹은 왕돌초는 다이버들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모터보트가 요란하게 행진하는 죽도 옆 바다 쌍정초에는 그 부분 만을 냅다 흔들어 놓은 것처럼 하얀 포말이 일고 있었다.

갈매기 수 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흰 포말 위를 부산히 날고 있었다.

 

"장관이군."

우리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하자,

보트를 몰던 다이빙 가게 주인이 대답했다.

"지금 바다 위 아래로 일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바다 속에서는 멸치 떼를 잡아 먹으려고 방어(농어목 전갱이과)가 그 뒤를 �고 있고 ,

바다 위에서는 갈매기가 멸치 떼를 �고 있지요.

흰 포말은 멸치 떼의 몸부림입니다."

그러나 정작 장관은 그 다음에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보트가  쌍정초위에 자리를 잡자 우리는 서둘러 바다로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봤다.

수천마리의 방어가 눈을 반짝이며 떼 지어 몰려가고 있는 것을.

그들은 해저의 구릉을 타며 위로 솟구쳤다가 다시 아래로 내리 꽂히고 그러다가는 다시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돌았다.

아래서 올려다 본 은백색의 배 부분이 햇빛을 따라 어지럽게 번쩍였다.

몸 중앙을 가로지르는 희미한 노란색 띠가 제복을 연상케 했다.

아마 초원을 질주하는 기마병들의 모습이 저와 같았으리라.

 

우리는 이 장관을 얼을 놓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놈들은 거의 60-70cm 족히 넘을 듯이 보였다.

오년 이상 자란 놈들이다. 

물론 보르네오 섬 옆의 말레이시아의 시파단이라는 섬에서 잭피쉬(전갱이류)와 바라쿠다 떼들의 군무를 본 적이 있었지만,

내나라 내 땅에서 그토록 장엄한 광경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같이 떨어졌던 다이버들도 모두 얼이 빠져 카메라는 뒤로 한 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카메라에 이 광경을 담기보다는 우선 가슴 속에 주워 담기가 더 바빴던 것이다.

 

다이빙을 마치고 배 위에 올라오고 나서도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막무가내 회칼과 초장을 준비해서 배 위에서 학수고대하고 있던 친구들은 우리가 모두 빈손으로 올라오자 툴툴거리며 시비를 걸었다.
 

"짜석들, 다이빙도 할 줄 모리민서…"

구시렁구시렁…….

그러나 아무도 대꾸도 않자 곧장 분위기 파악을 하고는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퇴직금 탈탈 털어 다이빙 장비를 사서 다이빙을 배웠다는 김군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는 그때 갓 서른이 넘은 다이버였다.

 

"이 맛에 다이빙을 하긴 하는데…"

그는 사람 됨됨이가 하도 여물고, 성실해서 클럽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떠맡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몇 푼 안 되는 수입에서 떼 낸 용돈은 무조건 다이빙에 투자를 하는 사람이었다.

이미 이들에게 다이빙은 취미를 넘어서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 시절  다이빙은 우리들 삶의 가장 큰 기쁨이요, 목적이었던 것이다.

 

       

        ▲ 울릉도 도동항

        1999년 7월에 찍은 사진.

        앞에 그림 같은 바다가 펼쳐지고 그 속에 바다 이야기가 있다.

        ⓒ 장호준

 

도동항

 

많은 다이버들이 다이빙과 직업으로 삼았다.

가장 쉽게 다이빙을 직업으로 삼는 방법은 다이빙 가게를 여는 것이었다.

그 중 몇몇은 대단히 성공해 해외에도 여러 군데 리조트를 만들어 운영하며 모국의 다이버들을 유치했다.

그러나 열정만을 가지고 뛰어 들어 국제 낭인이 된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니 굳이 다이버에 국한할 일은 아니다.

 

이제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바탕 삼아서 서서히 물속 깊숙이 빠져 보자.

 

나이트 다이빙이 있다.

말 그대로 세상이 잠든 한밤 중에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밤을 맞이하고 있다.

밤은 휴식과 충전의 시간이다.

하지만 그런 제한의 시간일수록 바다 속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

사위는 적막하고 밤바다는 검다.

 

그 검은 바다가 통째 울렁이는 속으로 다이버들은 들어 간다.

물론 다들 가슴에 묻은 꿈이 다르고 같은 곳에 떨어져도 개인이 보는 바다는 다 다르다.

자, 그 밤바다 깊숙이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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