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의나라 필리핀의 수중세계 (수심15미터)

             필리핀 어디에서나 만날수 있는 수중세계이다.

             ⓒ 장호준

 

나이트다이빙, 그 네 번째 이야기

 

육 년 뒤에 나는 다시 B를 만났다.

그는 필리핀의 한 섬에서 수중가이드를 하고 있었다.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른 다음이었기에 우리는 서로 못 알아 봤었다.

그러나 어디에선가 풍기는 B의 불안함이 내 기억을 되돌렸다.


"전에 서귀포에 만났던 B가 아니요?"


그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나는 대번에 그가 무엇을 경계하고 있는지를 알았다.

내게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달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입을 닫았다.


누구에게나 초보 다이버 시절에 그와 비슷한 일들을 겪는다.

물론 B가 평균보다 조금 독특한 일을 당했다고 해도

그것은 얼마든지 우리가 크면서 겪는 성장통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었지만

B는 다른 것 같았다.


나는 B에게서 B의 과거를 불러내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주위에서 들려오는 말들로 제주에서의 그 일 이후의 B의 생활을 유추했을 뿐이었다.

그는 필리핀의 물에 빠져 교사직을 그만 두었고,

드디어 필리핀에서 다이빙 숍을 차렸으나 일 년만에 거덜을 내고,

수중가이드로 몸을 의탁하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나는 그렇게 알아들었을 뿐이다.

우리는 그냥 한번 스친 다이빙 동지였을 뿐이니까.


그러나 그 시간의 변화를 보는 내 눈은 인생과 그 인생을 움직이는 마음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다.

 

            

             ▲ 하강중인 다이버들 (수심30미터)

             사이판 심연으로 떨어지는 다이버들...

             서로가 손을 맞잡고 내려가고 있다.             

             ⓒ 장호준

 

B와 나는 다이빙 가이드와 손님으로서 만난 것이었다.

정확히 우리는 문섬 한개창에서 서로 서 있었던 반대편 자리에 선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나이트다이빙을 나갔다.

마치 과거를 되짚어 가는것 처럼…….


아직 거기는 필리핀에서도 보리깡촌이라 모든 시설이나 장비가 부족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런 점에 우리는 더욱 더 큰 매력을 느껴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낡고 작은 방카(필리핀 전통 보트) 한 대에 올라타고 우리는 다이빙을 나갔다.

 

         

          ▲ 필리핀 전통선 방카

          이배는 글 속에 나오는 배 보다는 몇배나 큰 배이다.

          ⓒ 장호준

 

하늘이 유달리 깜깜한 날이었다.

시간도 초저녁이었다.

B가 다소 쑥스러운 표정으로 우리 일행에게 브리핑을 했다.


"지금 가는 곳은 수심이 깊지 않아요.

수심 10미터 정도입니다.

우선 내려가시면 먼저 한 곳에 모이세요,

둥글게 원을 지어 모여서 자기 가슴이나 배에다 플래시헤드를 갖다대고 원을 그리세요,

바다 속에 반짝이는 무수한 작은 불빛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로 떨어지자 마자 바닥에 닿아서 모이기는 커녕 그대로 떠내려 가기

시작했다.

조류가 비 온 뒤의 도랑물이 흘러가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모두가 흩어져 제각기 날아 가고 있었다.

겨우 바닥에 내려 연산호에 의지를 하거나 사슴뿔 산호의 가지를 잡았으나 가지가 부러지고 연산호가 뜯기는 상황이었다.

바닥에서는 사막에 태풍이 부는 광경을 연상시키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모래와 부유물들도 조류에 휩쓸려 나르고 있었다.

우리는 촬영을 포기하곤 제각기 살 길을 찾아 올라 왔다.

         

"미안합니다. 여기는 처음이라 이 근처 어디에 떨어져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깜깜한 밤,

모두 다 흩어지는 바람에 플래시 불빛에 의지해 한 시간만에 다이버들을 모두 건진 후,

배에 올라와 겨우 한숨을 돌리는 우리에게 B는 몹시 미안해 했다.

돌아 오는 길에는 또 엔진이 고장 나서 수리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결국은 우리 손으로 고쳐서 돌아왔었다.

방카의 선장도 다이빙을 모르는 필리핀의 애송이 청년이었다.


자연은 항상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기에 돌연한 변화에 대응을 못 했다고 해서 B를 탓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모자라고 부족한 시절이었기에 우리는 대충이라는 것에 익숙해서 점검에 소홀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우리는 그곳을 떠났었다.

B는 새까맣게 탄 모습으로 우리를 전송하러 부두에까지 나왔다.


"아니 우짜다가 이 길로 들어왔어요?"


B와 내가 둘이 되었을 때 물었다.

종내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인생은 도전이라고 전에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B가 웃는 것과는 달리 목소리는 화가 난 것처럼 말했다.

B는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을까?

나는 그의 개인적 절망과 삶의 굴곡을 확실히 알지 못했다.


"글쎄요, 내가 그랬던가요?"


나는 얼른 입을 닫았다.

무엇이 B를 바다로 끌어내었을까.

그는 예전과는 달리 매사를 과단성과 자신감으로 대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지만,

나는 자꾸만 그의 모습이 무엇엔가 쫓기는 불안한 소년처럼 보였다.

 

        

         ▲ 방카로 접근하는 다이버

         항구가 없어 밀물에 다이버들이 방카로 가기 위해 물속을 걸어 가고있다.

         ⓒ 장호준

 

배 위에 올라가기 전에 B가 나를 한쪽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는 주머니에서 비닐봉지에 싼 물건을 끄집어 냈다.

눈처럼 흰 주먹만 한 조개였다.

개오지였다.


"이것 가져 가세요.

이런 것 좋아하시잖아요.

미처 삶지를 못했는데 한국에 가시거든 바로 끄집어내서 조치를 하세요."


그리고는 얼른 그걸 내 다이빙 가방에다 집어 넣었다.


나는 그걸 가지고 와서 아파트의 베란다에 내어놓곤 까맣게 잊었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인가 온 집안에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무엇이라 표현하기에도 어려운 냄새였다.

하여간에 이 세상에서 그토록 고약한 냄새는 없을 것이다.

며칠을 냄새의 근원을 찾지 못해 끙끙거리던 식구들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온 집안을 다 뒤져

베란다 한쪽 구석에서 내용물이 썩어가는 개오지를 발견했을 때는 구더기에 쌓여 있었다.


개오지를 찾아서 맑은 물에 말끔히 씻어도 그 냄새가 다 가시지 않아 개오지는 그 희디흰 눈부신 몸으로 다시 두 달간이나 베란다에서 이국의 바람을 맞아야만 했었다.


내가 열대지방 다이빙투어에 나가서 유일하게 관심을 두는 것이 있다면 이런 조개류이다.

물론 그것들은 이미 오래 전에 잡혀서 가공되어진 것들이다.

이런 조개들은 껍질에 묻혀있던 세월의 흔적들이 깔끔하게 닦여 나가 그 가치가 오히려 떨어지지만 우리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런 것 뿐이었다.


그러나 개오지는 달랐다.

처음부터 희디흰 제 색깔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껍질에 어떤 잡것도 묻어 있지 않았다.

눈처럼 흰,

눈부신 색깔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귀에 대면 말할 것도 없이 바다의 소리가 들렸다.


B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일 년쯤 지난 뒤였다.

그즈음 나는 한 다이빙전문 잡지사에 글을 써오고 있었는데,

서울에 올라온 김에 들른 거기서 B의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요번에 난 필리핀 사고 소식 들었어요?"
"무슨 사고인데요?"


버릇대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내 친한 친구이자 다이빙버디였던 Y와 다이빙 사부였던 S의 죽음 이후 생긴 버릇이었다.


이야기의 내용인 즉슨 필리핀의 한 섬에서 다이빙 시합이 벌어져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다이빙 시합이라니?"


그들은 탱크를 메고 무리하게 수심을 탔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암암리에 다이빙 시합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몇 미터나 들어 갔는데?"
"백 미터나 들어 갔다는데요."
"도무지 거기까지 왜 들어 갔는데?

아니 다이빙 이론이 다 빠싹한 사람들 아니요?"


숨을 쉬지 않고 수심을 타는 프리다이빙(영화 <그랑부루>에 나오는 다이빙)과 압축공기를

갖고 숨을 쉬는 스쿠버다이빙은 근본이 틀린다.

미 해군 잠수 매뉴얼은 스쿠버다이빙의 한계 수심을 40미터로 잡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30미터 만 내려가도 질소마취가 와서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대체 거기까지 왜 들어갔을까?

다이빙이론이 그들을 비켜 가리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아직도 잠수의학이나, 잠수 생리학에서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많이 있다.


"그래 누가 죽었어?"
"B라 하던데…….

한 사람은 하체가 마비되었고……."
"B가 누구야?"


내가 무심결에 물었다.

그러고 나는 깜짝 놀랐다.

B는 내 기억 속에서 스위치만 누르면 금방 돌아오는 사람은 아니었다.


"제주도에서 교사를 하던 사람이라 하던데요."


나는 B의 개인사를 모른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실도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없다.

그가 왜 다이빙에 집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가 다이빙으로서 자신을 나타내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그 이후의 일도 모른다.

다만 또 하나의 인연이 마지막 희미하게 남은 불씨처럼 사그라졌구나 하는 두렵고 쓸쓸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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