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장호준 (aqualux199)   

 

          

           ▲ 수중비석

           한 여학생 다이버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수중에 세워 놓은 비석이 태풍에 넘어져 있다.

           그 비석을 닦고 바로 세우기 위해 한 다이버가 다가 가고 있다.

           ⓒ 장호준

 

수중동굴

 

제주도 서귀포 다이빙을 이야기하면서 이 이야기를 빠트릴 순 없다.

이는 이미 제주를 찾는 다이버들에게는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내가 다이빙의 모든 것에 대해 반짝이는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그때,

서귀포를 방문한 나는 H씨를 만났다.

 

H씨에게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에는 그나, 대한민국이나 아직 다이빙에는 그리 깊은 발을 뻗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H는 친구와 함께 서귀포 인근 H읍 앞 바다에 다이빙을 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목표로 삼았던 바다 위에 배를 세우고 물로 뛰어 들었다.

 

두 사람은 친구이자 다이빙버디(Buddy)였다.

방향을 잡고 한참을 앞으로 나가던 H씨는 자신의 게이지가 고장이 나서 공기가 조금씩 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같이 가던 버디에게 게이지를 보여주며 "너는 어떡할래?"라고 물었다.

그는 더 이상 다이빙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버디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H에게 올라가라는 수신호를 보내며,

자신은 혼자 있다 가겠다는 신호를 보내 왔다.

 

버디가 회색 빛 공간 저 너머로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는 H는 배 위로 올라 왔다.

그것이 H가 마지막 본 버디의 모습이었다.

배 위로 올라 온 그는 장비를 고치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선장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에게 오더니 자신의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올 시간이 지났지 싶은데……. 우째 됐을까?”

 

H씨도 그제야 자신이 나온 시간을 계산해 보고는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수색이 시작됐다.

 

며칠간에 걸친 수색이 무위로 끝나고 나서도

H씨는 바다에 들어가기만 하면 무의식적으로 버디를 찾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H는 다이빙 숍을 차렸다.

 

“참말로 미치것데요.”

 

        

         ▲ 해파리와 물렁돔

         1미터가 넘는 커다란 해파리 한마리가 물렁돔 떼들에 둘러싸여 이동하고 있다.

         이들은 공생관계이다.

         ⓒ 장호준

 

우리는 그때 서귀포 한 음식점에서  

이제 막 생긴 수중사진촬영대회에 참석해서 그날 촬영대회에 참가를 끝내고

다음 날의 행사에 참가할 준비를 해 놓고

저녁 식사 겸 술자리를 가질 때였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누군가 내게 그 사건에 관해 귀띔을 했고,

그 주인공이 저 분이라고 알려 오는 바람에 그 자리에 있던 H씨에게 나는 체면을 보지 않고 물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게는 그날이 H씨와의 흔치 않는 자리가 아닐까하는 예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H의 얼굴엔 온갖 바다의 표정이 묻어 있었다.

다행히 한잔 술이 H의 마음을 녹였는지,

H는 지겹도록 반복해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을 그 이야기에 대한 대답을 했다.

 

나는 주로 물었고 그는 대답을 했다.

그때는 그 이야기가 내게 아직 전설이 아니었고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의 한 부분인 양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지금까지 있었던 많은 다이빙 사고 중의 하나로서 끝나 버렸을 것이다.

다이빙 사고라고 특별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뭍에서 일어나는 사고나, 물에서 일어나는 사고나,

근본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수색에도 오리무중이었던 버디의 신체가 그로부터 무려 칠 년이 지난 시점에 모습을 나타냈던 것이다.

H씨는 그렇게 찾던 버디를 수심 25미터의 한 수중동굴에서 찾아낸 것이다.

 

“죽었더라도 슈트(잠수복)를 입고 있었으니(슈트에는 부력이 있다.)

당연히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디에도 떠오르지 않으니…….

그것도 미치것고, 유가족들을 보면 면목 없고.”

 

버디는 이미 백골로 변해 동굴의 천장에 붙어 있었지만 H씨가 그를 못 알아볼리는 없었다.

 

“손목과 발목은 동굴바닥에 떨어져 있었어요.

(슈트는 손목과 발목에서 끝이 마감되는 �슈트였다)

웨이트(허리에 차는 중량 납)도 벗은 상태였고.”

 

그 순간 H씨는 다시는 이 지점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버디의 신체에 달라 들어 목을 떼내어 물 위로 올라 왔다.

 

“어떻게 그 동굴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때까지는 나도 거기가 동굴인지는 몰랐어요,

스쳐 지나가는데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하더라고요.”


말을 마친 그가 소주 한잔을 약처럼 목구멍으로 부어 넣었다.

 

자신의 버디는 아마 고기를 쫓다가 그 동굴을 발견하게 되었고,

무심하게 동굴 속으로 들어간 버디는 오리발질을 했을 것이고,

그 결과 떠오른 진흙의 부유물로 인해 입구를 못 찾아  익사했을 것이라고 H는 짐작했다.

 

버디의 장례를 치른 뒤에 장비를 갖추어 다시 수중동굴을 찾아 탐사해 본 결과,

굴은 입구에서 수면 쪽으로 경사지게 오륙 미터 들어가서는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H가 말했다.
“아마 그 동굴이 생기고는 수천 만년 동안 내 친구가 첫 손님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바다에서 동굴 다이빙을 할 만한 장소가 거의 없다.

세계적으로도 마땅한 장소도 그리 많지는 않다.

 

완전한 수중동굴은 아니지만

지하를 흐르는 강으로는 필리핀의 팔라완강,베트남의 손 트라크강과

최근에 영국인 다이버에 의해 발견된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지하를 수 백 킬로미터 이상을 흐르고 있는 아직은 이름을 짓지 않은 강들이 있다.

이 강에는 곳곳에 수중동굴이 무수히 있을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이 강들에도 한국인 다이버들의 발자국이 남을 것이다.

 

아이스다이빙(얼음 밑으로 얼음을 깨고 들어가서 하는 다이빙)과 마찬가지로 동굴다이빙도 많은 위험이 따른다.

위에서 H씨의 버디가 익사한 수중동굴은 사실상 그 길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작은 동굴도 안전줄을 매지 않고 들어 간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 범돔

          제주도 서귀포 칼호텔 앞.

          바닥의 바위가 화산섬임을 증명하고있다.

          ⓒ 장호준

 

그 후에도 대구 K대학의 초대 스쿠버동아리 출신으로 서울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한 여학생이 행사에 참가해서 사고가 났다.

H씨는 그때도 수색에 참가해서 45미터 수심에서 죽어 있던 그 여학생의 시체를 건져 냈었다.


“근데 왜 죽었는지는 몰라.”

 

여학생의 죽음은 확실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묻혔다.

물 속이란 이렇게 그 죽음의 원인조차 당사자가 몽땅 가져가 버리는 수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그 여학생의 부모님을 안다.

세월이 흐를수록 딸과의 추억에 상심하시던 여학생의 어머니로부터 동해안 모처에 세워 놓은 수중비석을 돌보아 줄 수 있겠느냐는 의논을 받은 적이 있다.

업둥이로 금이야 옥이야 키운 외동딸을 보낸 노부부의 슬픔과 그리움 앞에 나는 냉정할 수가 없었다.

 

수중이란 단 몇 분만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드는 곳이다.

 

아이스다이빙에서도 그와 같은 사고가 일어났었다.

얼음을 통해 바닥이 빤히 보이는 자그마한 냇가라 만만하게 생각하고는 안전수칙을 무시하고 안전줄 없이 들어갔다가 입구를 못 찾아 사고를 당한 것이다.

 

미노스의 궁전으로 들어갈 때는 돌아 나올 길을 알려 주는 끈을 가져 가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안타까운 일들만 적었다.

그렇다고 물 속이 슬픈 곳은 아니다.

물론 물 속이 기쁨만이 존재하는 곳도 아니다.

물 속은 그냥 물 속일 뿐이다.

당신이 어떻게 하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물 속은 그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에는 인간의 의지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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