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기압 잠수
1대기압 잠수란 잠수사가 주위 압력에 노출되지 않고 다이빙 활동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
최초의 발명은 1715년 lethbridge 시도되었으며,
그후로도 꾸준히 발전되어 1856년에 관절이 있는 잠수복이 고안되었으며,
비로소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사양을 거의 갖추어지게 되었으며,
이제는 마치 우주복과도 유사하게 발전였으며,
1대압 잠수복을 사용하면 300~600 msw정도의 잠수를 가능케 되었읍니다.
그러면 그동안 1대기압잠수의 발전사를 수중세계 의 황승민씨 글을 인용 살펴보기로 하면,
1. 대기압 잠수복의 역사
별도의 공기나 통신 수단이 없이 해저의 보물을 인양하기 위해 제작.
18미터 정도의 수심에서 성공적으로 작업을 수행했다.
제작자인 Lethbridge는 잡지의 기고문에서"최초에 나는 물에 잠긴 도랑 속의 튼 맥주통 속에 들어가 입구를 막고 공기 파이프나 공기의 교환없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해 보았는데 30분간 견딜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 실험 후 런던에 다음과 같은 사양의 통을 주문했다.
나무판자로 길이 190센티미터, 지름 80센티미터의 원통에 강철 테를 두르고,
팔을 내밀 수 있는 구멍2개,
직경4인치,두께1.25인치의 유리창,
상부의 구멍에 연결된 환기 호스,
발치의 배수구멍,
통을 올리고 내릴 로프,
전망창 보호망 등을 장착하고
음성부력을 위한500파운드의 웨이트로
1회에 약 30분씩 12미터까지 잠수가 가능한 장비였다.
이 장비는 1718년 영국의 Vansittart 호가 May 섬 외해에 침몰했을 때 엄청난 양의 은을 인양함으로써 성공적인 작업을 수행했으며,
이후에도 Lethbridge 와 Lowe 는 여러 선박들을 성공적으로 인양했다.
엄격한 의미에서 보자면 이 장비는 팔이 외부로 나가는 부위가 가죽으로 만든 개스킷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완벽한 1기압 잠수복은 아니지만,
해저에서 34분간 의도된 작업을 할 수있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역사에 한 이정표가 되었다.
Lethbridge 이후 1759년 그가 사망한지 80년이 지난 1838년까지 1기압 잠수복에 관한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현재 이 장비는 영국 콘월의 침몰선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2. Taylor, 1838년 (영국)
정교한 관절이 장착된 1기압 잠수복은 Taylor 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수면 공기공급 시스템과 가죽으로 강화하고 방수처리 된 아코디언 방식이 채택됐다.
그러나 수심과 압력에 관한 이해가 부족해 허리부분의 연결부에서 수압이 전달돼 내부 압력이 더 높아지는 경우가 있었고,
관절의 연결부가 약해 수압을 받으면 찌그러졌다.
수중 장비 내부에서 찌그러드는 소리를 들으며 압력을 받던 200년 전의 다이버를 상상해 보자.
최초의 완벽한 의미의 1기압 잠수복은 1856년 시카고 출신의 Lodnl D. Phillips 에 의해 디자인됐다.
그의 장비는 어깨와 팔꿈치,엉덩이와 무릎에 최소 8개 이상의 볼 조인트와 소켓방식이 채용된 관절과,
등에는 부력조절 탱크가 있었고,
1개의 전망창과 상부 두껑,
팔 끝에는 간단한 기계 팔도 설계되어져
오늘날 활용되는 장비의 사양이 거의 갖추어졌다.
장비의 머리부위에는 공기공급과 배출을 위한 2개의 호스와 윈치 연결고리가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허리 높이에 손으로 돌리는 프로펠러와 추가의 기계팔 등 작업범위의 확대를 시도했고, 머리 부위에 부력 탱크를 달았는데 압력을 받으면 찌그려졌다.
그러나 이 장비가 제작된 기록은 없고,
반세기 정도 지나 제작된 다른 1기압 잠수복에서 이때의 아이디어들이 성공적으로 채택됐다.
4. Carmagnolle, 1882년 (프랑스)
1882년 마르세유의 Carmagnolle 형제가 또 다른 1기압 잠수복을 제작했다.
관절은 방수 처리되어 부분적으로 연결된 원형의 조인트가 적용되었는데,
예전의 장비에 비해 운동성이 향상되었으며 각각의 팔 다리 관절에는 최소 4개씩의 조인트를 사용햇다.
이 장비야말로 실질적인 의미의 1기압 잠수복이라 할 수 있다.
특징은 헬멧인데 2인치 크기의 전망창이 25개 있었고,
상부에는 수면에서의 환기를 위한 꼭지가 있었다.
현재 파리의 국립 해양박불관에 전시돼 있다.
바로가기:
http://www.divingheritage.com/armoredkern2.htm
http://www.divingheritage.com/armoredkern2c.htm
뉴저지 출신의 Bowdoin 은 오일이 채워진 로터리 방식의 관절이 채택된 1기압 잠수복으로 특허를 받았다.
이 조인트는 오일을 이용해 내부와 외부의 압력을 일치시킬 수 있었으나 윤활유가 소모되면 관절이 작동되지 않았다.
각각의 팔 다리와 손가락에 총 18개의 관절이 채택되었고,
몸체의 중간을 분리하여 다이버가 들어갔다.
허리와 팔 다리에는 길이를 변경시킬 수 있는 장치가 있어 다양한 신장의 다이버가 사용 할 수 있었다.
4개의 전망창과 가슴에 조명등이 있었으나 설계도로 끝났다.
6. Neufeldt and Kuhnke, 1917년 (독일)
1917년 볼 베어링을 이용해 압력을 분산시키는 관절로 특허를 받은 Neufeldt 와 Kuhnke 는 2세트의 1기압 잠수복을 제작했다.
1924년 독일 해군은 161미터의 수심에서 이 장비를 테스트 했는데,
팔 다리를 움직이기 힘들었고 관절의 고장이 잦았다.
어찌되었든 이 장비는 이전에 도달하지 못했던 수심까지 내려갔고,
독일 해군은 이것을 "장갑다이버"라 불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군에 의해 발견됐고,
소련이 복제품을 만들었다는 미확인 기록도 남아있다.
이 장비는 어깨,허벅지,발목에 관절이 있고 집게 손을 위한 소형의 볼 조인트가 채택됐다.
각 관절들은 볼들을 둘러싼 고무 씰(Seal)로 방수처리 되어 소켓에 연결됐다.
이 관절은 볼 베어링에 의해 연결되어 탈 부착이 용이했고
허리부위에는 공기나 압축공기로 채워지는 균형탱크가 있었다.
Neufeldt Kuhnke 슈트는 1922년 5월 런던 - 봄베이 항로를 운항하던 8,000톤급 S.S.Egypt 가 침몰 했을 때 금괴와 은괴를 인양하는 작업에 투입되어 명성을 얻게 됐다.
당시에는 비록 해저에 내려진 단순한 챔버에 불과했지만,
기계 팔을 사용 성공적으로 금괴를 집어 올릴 수 있었다.
후에는 침수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관절의 수를 팔은 하나,다리는 둘로 줄였으며,
더욱 시간이 흐른 뒤 팔 다리를 모두 없애고 단순한 관측 챔버로 만들었다.
당시의 화페가치로 100만불이 넘는 금괴가 이 장비의 활약으로 인양 됐다.
플로리다의 파나마 시티에 위치한 Man in the Sea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뉴욕의 Vitor Campos 는 오일 방식의 관절이 채택된 1기압 잠수복으로 특허를 받았고,
184미터의 잠수 수심을 기록 했다.
그러나 해당 수심에서 관절이 제대로 작동이 안 되거나 간혹 실험시 제대로 작동했다.
또한 Campos 의 장비에는 안전장치가 있어 관절의 기능에 이상이 오면 자동적으로 물의 유입이 차단됐다.
8. Peress and the Tritonia, 1922년 (영국)
1922년 Joseph Peress 는 최초의 원구형 조인트를 채택한 1기압 잠수복으로 특허를 받았는데,
압력의 전달에 액체를 사용했다.
1925년 최초의 장비가 제작됐지만 작동되지 않았다.
훗일 Peress 는 Type 1으로 알려진 새로운 스타일의 관절을 디자인 했다.
1932년 Tritonia 로 알려진 두 번째의 장비를 완성해 95미터 수심의 Lousitania 호 침몰 현장 에서 훌륭히 작동했고,
이 장비는 현재 여러분이 흔히 알고 있는 JIM I 으로 불리고 있다.
1937년 Tritonia 는 영국 해군광의 실험을 완료했지만 해군은 당면한 심해 장비의 수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주변압 장비(일반 다이빙장비)의 개발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Peress 의 조언은 훗일 그의 수석 다이버의 이름을 딴 JIM SUIT 의 개발에 채택됐다.
Peress의 두 번째 장비는 런던의 영국 과학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유명한 헬멧 제조자인 Galeazzi 는 Neufeldt 의 디자인과 유사한 1기압 잠수복을 만들어 판매했다.
최소25세트 이상의 장비가 만들어졌고 1976년 마지막 장비가 제조됐다.
현재 이태리 해군기지 정분에서 전시용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Lavenna 에 위치한 국립 해저 박물관에도 전시돼 있다.
10. Mikalow, 1952년(미국)
1기압 잠수복 개발사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Oakland Deep Sea Diving School 의 소유주였던, Alfred A, Mikalow 다.
볼과 소켓 조인트를 채택한 그의 장비는 침몰선의 위치 파악과 보물의 인양에 활용됐다.
장비는 300미터까지 잠수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Sanfrancisco Fort Point 근해의 리오데지네이로 호 침몰현장인 99미터의 수심에서 활약했다.
Mikalow 는 손 끝의 기계 팔부위에 교환 부착 가능한 여러 종류의 장비를 개발했고,
`세계의 침몰선'이라는 책자에서 이 장비는 `심해 다이빙 로봇'으로 소개됐다.
호흡과 부력조절을 위해 90 큐빅 피트의 고압 공기 탱크를 장착했고,
발목 가까운 아래쪽에서 개방되어 다이버가 출입했다.
팔과 다리에는 강력한 조명이 부착됐고,
수면과의 통신을 위해 Hydrophone을 채택했다.
1960년대 말 우주과학 연구소인 Litton 에서는 182미터 수심까지 작업가능한 1기압 잠수복 개발을 발표했다.
UX-1인 이 제품은 부피가 변하지 않는 나선형 로터리 조인트를 채택했다.
조인트의 기본 원리는 다이버의 운동해부학 원리와 가장 유사한 동작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기존에 개발된 모든 장비의 성능을 능가했으나 생산되지는 않았다.
1974년 Newtsuit 의 개발에 앞서 Phil Nuytten 이 Litton 슈트의 모든권리를 인수했다.
12. JIM, 1969년 (UK,영국) 진정한 1기압 잠수복 시대의 도래
Underwater Marine Engineering 의 도업자인 Mike Humphrey 와 Borrow 는 1기압 잠수복이 해양산업 분야에 가져올 가치를 인식했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Tritonia 는 글래스고우의 공장에서 극비로 분류되어 보관 중이었는데,
최소한의 보수만 가하면 즉시 다이빙이 가능한 상태였다.
개발도중 오일산유업계의 지원이 끊기자 영국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 했고,
1기압 잠수복의 개발을 전담할 DHB 라는 회사가 구성됐다.
1971년 시제품이 완성되어 1972년 시운전이 실시됐고,
지원 다이버들의 잠수 능력 한계로 인해 첫 다이빙에서는 121미터에서 정지했다.
그 후 1974년 4월 실시된 챔버 테스트에서는 300미터의 압력을 통과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산유업계의 반응은 여전히 미온적이었다.
1975년이 되어 Oceaneering 이 DHB를 인수하고 JIM의 독점권을 가지면서 유명해지게 됐다.
1976년 JIM은 Pan Arctic 의 Helca M25유정에서 5미터 두께의 얼음을 뚫고 채취공으로 4회의 다이빙을 시작했다.
Walt Thompson 이 실시한 첫 다이빙은 149미터 이하에서의 최장 기록을 경신했는데,
275미터에서 5시간30분을 기록하고 ,
이 극지 다이빙에서 JIM은 극저온 심해에서의 작업능력을 증명했다.
산유공의 평균 수온은 영하 5.4도였으나,
JIM 내부 온도는 32도를 유지했으며,
다이버의 보온 장비는 모직 스웨터가 전부였다.
다음해 짐은 300-394미터의 작업 수심에서 평균 2시간 이상 체류하며 35건 이상의 작업을 수행했다.
1981년 짐은 19세트로 불어났다.
초기의 짐은 다이버를 포함 500킬로그램에 달하는 중량과 무게 대비 강도의 우수성으로 마그네슘 합금이 사용되었으며,
부식과 관련한 문제는 주의 깊은 표면처리와 코팅으로 해결했다.
짐은 수중에서 7-15킬로그램의 음성부력을 가지는데,
전방에 밸러스트가 장착되어 수면에서 투하되고 추진기를 이용 분당30미터의 속도로 상승 가능하다.
또한 통신선과 분리 가능한 Umbrical(연결선으로 통신선,공기 공급선)이 장착되어 있으며,
초기의 짐은 어깨,팔,둔부,무릎에 총 8개의 원형 조인트가 있었다.
훗일 마그네슘 합금은 유리섬유로 복잡한 분절 조인트는 인체 역학을 고려한 단순 조인트로 대체되었고,
4개의 전망창은 보다 넓은 시야가 제공되는 1개의 투명 아크릴 창으로 대체되었다.
이 유리섬유 1기압 잠수복은 짐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보다 가벼운 인체형상의 슈트가 알루미늄이나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었고 SAM으로불린다.
알루미늄 모델은 300미터의 수심을 기록했고, 유리섬유 모델은 610미터를 기록했다.
모든 신기슬은 시장성에 의해 평가 받는데 1기압 슈트의 경우 짐이 바로 시장성을 가진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짐 이전에는 그러한 성공적인 사례가 없었으며,
새로운 세대 슈트의 개발 기준이 됨으로써 산유업계에의 지대한 공헌이 증명되었다.
당연히 1기압 슈트라면 짐 과 관련한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현재 여러 가지 사양의 짐이 미국과 영국의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13. WASP, 1978년 (영국)
영국 OSEL 의 Graham Hawkes 에 의해 개발됐다.
그러나 Oceaneering 은 그가 UMEL 근무 중 얻은 정보를 활용했다는 소송을 제기하여 판매를 금지시켰다.
흥미롭게도 그소송 전 WASP 의 계약은 후일 이와 매우 유사한 1 기압 잠수복인 SPYDER를 개발한 Wharton Williams 와 맺어졌었다.
초기의 WASP 2세트는 1978년 완성되어 현장에 투입되었는데,
다리대신 달린 원통형의 하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짐과 매우 흡사했으며,
페달로 조절되는 추진기가 장착되어 기동성이 매우 향상됐다.
짐의 개발자도 추진기의 장착을 시도했지만 예전에 없던 중간 수심에서의 활동력이 성공적으로 실용된 적은 없었다.
Oceaneering 의WASP 는 심해저 바닥의 수리현장에 투입돼 해상 유전에서 29마일 떨어진 652미터 수심에서 150마력의 ROV 와 공동작업으로 파이프 라인을 보수했다.
1970년에 제작되 WASP 에 대응하여 제작된 SPYDER 는 기본적으로 WASP 와 매우 흡사하지만 두가지의 기능이 추가 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빨판으로 수중에서 적당한 대상을 발견하면 달라붙는 것이고,
또 한가지는 유압으로 작동되는 기계 팔로 강약의 조절이 자유로우며 밸러스트 탱크도 부착된 점이다. 현재 Silvercrest사의 2기가 하와이 근해에서 과학 탐사 관련 작업중이다.
15. Newtsuit / Hardsuit, 1985년 (캐나다)
1980년 Phil Nuytten 은 Oceaneering을 떠나 새로운 슈트를 제작했다.
1984년 자신이 받은 특허인 로터리 조인트를 채택한 이 장비는 Hardsuit International 에 의해 제조됐다.
Hardsuit 로 불리는 이 장비는 몸통까지 팔이 구부려져 닿는 진정한 의미의 1기압 슈트이다.
넓은 활동 반경과 다이버만 접근 가능하던 좁은 장소로의 접근이 실현된 장비로,
초기 모델이 뱅쿠버 해양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Newtsuit는 기본적으로 3가지 사양이 있는데 364미터 다이빙이 가능한 Hardsuit 1000과
최근 미 해군에 잠수함 구조 장비로 채택된 600미터급, 그리고 758미터까지 작업이 가능한 장비 Hardsuit 2500 이 그것이다.
Hardsuit 는 다이버의 의도대로 동작되는 16개의 유압식 조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엉덩이 연결부는 거의 움직임이 없다.
양손 끝의 집게는 정교한 동작이 가능하며 2기의 2.5마력 추진기로 작업장의 이동 이나 약한 조류에서 위치를 유지할 수 있다.
자체 호흡장치로 6시간의 작업이 가능하며 보조장비 장착시 48시간의 수중작업이 가능하다.
그러나 추진기에는 보조 전원이 없기 때문에 슈트의 한계수심을 넘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다이버는 허리부위를 통해 출입하며 신장에 따라 슈트의 팔 다리 길이가 조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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