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합성 하는 동물 있다? 없다?
1년 동안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는 3.8×1024J라고 한다.
이게 도대체 얼마나 되는 양일까.
인류가 1년 동안 쓰는 에너지가 5×1020J(2005년 기준)이므로 7000년간 쓰고도 남을 양이다.
화석연료 고갈로 에너지 위기를 맞은 인류가 최근 태양에너지 활용에 주목하는 이유다.
사실 생명체는 아주 오래 전부터(대략 36억 년 전으로 추정됨)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왔다.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광합성을 통해서다.
매년 광합성으로 포획한 에너지는 3.2×1021J로 태양에너지의 0.1%도 채 안 되지만,
인류의 에너지 소모량보다는 7배나 더 많다.
물론 인류는 이 가운데 일부를 음식으로 섭취해 삶을 영위해 간다.
광합성하면 식물이 떠오르지만, 광합성의 원조는 단세포 원핵생물인 박테리아다.
식물은 광합성 박테리아를 잡아 먹어 세포내소기관인 엽록체로 만든 진핵생물의 후손이다.
그런데 조류(藻類)의 엽록체를 포획해 광합성을 하는 동물이 있다.
이 녀석의 피부는 물론 초록색이다.
도대체 동물이 어떻게 광합성을 하게 됐을까?
한편 지속적인 인구 증가로 물과 식량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의 과학자들은 건조한 기후에 더 잘 견디면서도 수확량은 50%나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벼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들은 옥수수나 수수의 효율적인 광합성 시스템을 생명공학 기술로 벼에 도입할 계획이다.
물리학자와 화학자들도 광합성의 신비에 매료돼 있다.
최근에는 태양에너지를 거의 손실 없이 포획하는 광합성의 비밀이 양자역학 현상에 있다는 놀라운 실험결과를 얻었다.
이 발견은 효율적인 태양광발전 시스템 설계에도 영감을 줄 전망이다.
똑같이 태양의 세례를 받지만 유독 지구만 생명의 행성으로 만든 광합성.
21세기에 새로 밝혀진 광합성의 비밀을 들여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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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6억 년 전 광합성을 하고 부산물로 산소를 발생시키는 박테리아가 나타 났고 그 뒤 이 박테리아를 포획해 세포내소기관인 엽록체로 만든 진핵생물이 식물로 진화해 오늘날 푸른 지구를 만들었다.
멋진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증명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던 이 가정이 실제 사건이었음을 강력히 지지하는 현상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광합성 능력을 얻기 위한 생명체들의 역동적인 진화의 현장을 들여다 보자.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을 잊고 살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유야 어쨌든 동물인 사람은 먹어야 한다.
문득 이런 꿈을 꿔본다.
‘우리 세포에도 식물처럼 엽록체가 있어서 햇빛만 받아도 포도당이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피부는 다소 징그러운 초록색이겠지만.
식물이나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을 ‘독립영양체’라고 부르고 사람을 비롯한 동물을 ‘종속영양체’라 부른다.
사람이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생산자’인 식물에 기대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말 모든 동물은 종속영양체일까.
육상동물은 그럴지 모르지만 바다에는 동물이면서도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가 있다.
바다에 사는 갯민숭달팽이 종류인 엘리지아(Elysia chlorotica)가 그 주인공이다.
물론 이 녀석의 몸 빛깔은 초록색이다.
세포 속에 엽록체 상주시켜 엘리지아가 실제로 광합성을 한다는 사실은 1970년대 알려졌다.
해조류에 붙어 있는 모습이 얼핏 보면 작은 잎 같지만 꼬물꼬물 움직이기 때문에 ‘기어 다니는 잎’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도대체 어떻게 광합성을 하는지 그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들어와서다.
엘리지아는 광합성을 하는 진핵생물인 바우체리아(Vaucheria litorea)가 먹이다.
바우체리아는 국수가락 같은 형태의 황록조류(藻類)다.
엘리지아는 바우체리아 세포속의 엽록체는 소화시키지 않고 소화관 주변의 세포 안으로 보낸다.
세포에 자리 잡은 엽록체는 수개월 동안 죽지 않고 광합성을 해 포도당을 만들어 낸다.
그 결과 엘리지아는 더 이상 먹이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미국 메인대 생화학·미생물학·분자생물학과 매리 룸포 교수팀은 지난해 11월 18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엘리지아 게놈의 일부를 분석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를 명쾌하게 밝혔다.
엘리지아 게놈에서 포획된 바우체리아의 엽록체가 광합성을 할 때 필요한 단백질의 유전자를 찾아낸 것.
psbO로 불리는 이 유전자는 광합성 과정에서 물을 분해해 산소를 발생시키는 단백질복합체의 구성요소다.
그런데 바우체리아 엽록체의 게놈에는 이 유전자가 들어 있지 않다.
대신 엘리지아 게놈에 이 유전자가 있어 단백질을 만들어 엽록체로 보낸다.
바다에 사는 갯민숭달팽이인 엘리지아는 조류(藻類)인 바우체리아의 엽록체를 세포에 포획해 광합성을 ‘시킨다’.
엘리지아가 바우체리아에 붙어 있는 모습이 나뭇잎 같다.
엘리지아에 포획된 엽록체가 죽지 않고 광합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필요한 단백질을 엘리지아 세포로부터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물인 엘리지아가 어떻게 광합성 관련 유전자를 갖게 됐을까?
연구자들은 “엘리지아와 바우체리아의 psbO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DNA서열이 같았다”며 “이는 엘리지아 게놈 속의 psbO 유전자가 어느 시기에 바우체리아 게놈으로부터 건너왔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엘리지아 게놈 안에 엽록체 활동에 필요한 보케리아의 유전자가 더 들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럼에도 엘리지아를 진짜 광합성을 하는 동물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엘리지아 개체에 포획된 엽록체는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 태어난 투명한 엘리지아는 바우체리아를 먹어야 엽록체를 획득해 녹색이 된다.
또 엘리지아 세포 속의 엽록체는 분열을 하지도 못한다.
결국 엘리지아는 식물이나 조류와는 달리 엽록체와 어정쩡하게 공생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엽록체는 광합성을 하는 기계일 뿐 그 운영의 일체를 주인(이 경우 조류인 바우체리아)에게 일임하고 있다.
그런데 새 주인(엘리지아)이 원래 주인에게서 기계(엽록체)를 뺏을 때 운영 노하우는 극히 일부만 가져온 셈이다.
엘리지아가 진화를 거듭해 언젠가는 바우체리아처럼 세포내소기관으로 엽록체를 거느릴지는 미지수다.
그렇다면 조류나 식물은 어떻게 이런 ‘복덩어리’를 얻게 됐을까.
엘리지아의 광합성 능력 획득 과정엘리지아는 태어날 때 엽록체가 없기 때문에 먹이에서 엽록체를 얻어야 광합성을 할 수 있다.
1 엘리지아 유생(몸길이 0.5mm)은 무색투명하다.
2 몸길이가 5mm 정도가 되면 바우체리아를 먹기 시작한다.
3 5일쯤 지나자 몸에 녹색기운이 완연하다.
4 성체는 잎맥처럼 등에 퍼져 있는 소화관 주변 세포에 포획된 엽록체 때문에 짙은 녹색을 띤다.
광합성 하는 박테리아가 출발점광합성 하면 식물이 떠오르지만 사실 육상식물의 역사는 5억 년도(!) 되지 않는다.
광합성을 하고 산소를 내보내는 최초의 생명체는 약 36억 년 전에 나타난 박테리아로 추정되는데 오늘날 남조박테리아(cyanobacteria)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남조박테리아 흔적은 약 27억 년 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시기에 아메바처럼 생긴 단세포 진핵생물이 남조박테리아를 집어삼킨 뒤 소화시키는 대신 세포 속에 두고 ‘사육’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포획된 남조박테리아는 오랜 세월을 거쳐 변모를 거듭해 세포내소기관인 엽록체가 됐다.
이 과정을 ‘1차 내공생(endosymbiosis)’이라고 부르는데 엽록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가 많다.
먼저 엽록체는 세포핵에 있는 게놈과는 별도로 자그마한 게놈을 갖고 있는데 박테리아처럼 고리모양이다.
또 여기에 있는 유전자의 염기서열도 남조박테리아와 비슷하다.
또 엽록체와 남조박테리아 모두 내막과 외막으로 이뤄진 이중막에 싸여있다.
한편 이 사건이 지구 역사에서 ‘단 한 번’ 일어났다고 보는 이유는 오늘날 존재하는 진핵생물의 엽록체 게놈을 여럿 분석한 결과 모두 하나의 조상에서 가지를 쳐왔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상체(세포가 실처럼 배열된 무리) 남조박테리아인 아나베나는 5000여 개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엽록체는 남조박테리아와 여러 면에서 다르다.
세포에서 엽록체를 분리하면 광합성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형태도 유지하지 못한다.
세포 속에 안주하다 보니 자생력을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게놈도 몰라 보게 퇴화했다.
지난 2001년 게놈이 분석된 남조박테리아 아나베나(Anabaena)의 경우 단백질을 암호화한 유전자가 5366개로 밝혀졌다.
반면 홍조류인 김과(科)에 속하는 포피라(Porphyra purppurea)의 염색체 유전자는 251개에 불과한데 그나마 지금까지 밝혀진 염색체 게놈 가운데 유전자 수가 가장 많은 경우다.
엘리지아가 포획하는 바우체리아 엽록체의 게놈도 겨우 11만5341 염기쌍에 유전자는 139개뿐이다.
이처럼 광합성 박테리아가 진핵생물에 포획된 뒤 엽록체로 바뀌는 동안 유전자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진핵생물의 유전자와 중복된 기능을 하는 박테리아 유전자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진화과정에서 퇴화해 사라졌고 광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상당수도 세포핵의 게놈으로 이동했다.
실제로 식물의 게놈을 분석해보면 남조박테리아의 유전자와 비슷한 종류가 여럿 있는데 대부분 광합성에 관여하고 있다.
물론 세포핵의 게놈에 있는 광합성 관련 유전자가 만든 단백질은 엽록체로 이동해 안으로 들어가 작용을 한다.
평소 바다에서는 남조박테리아의 존재를 느끼기 어렵지만 이들이 급격히 번식한 녹조가 나타나면 하늘에서도 보인다.
남조박테리아 가운데 독소를 내는 종류일 경우 해양생태계에 큰 위협이 된다.
그런데 왜 엽록체는 광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일부를 세포핵의 게놈으로 넘겼을까?
어차피 엽록체 안에서 쓰일 단백질인데 굳이 외부에서 만들어 다시 들여오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아직까지는 그 이유를 명쾌히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내공생 과정에서 세포가 엽록체의 활성에 대한 통제권을 확실히 쥐기 위함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런 추측을 지지하는 생명체가 존재한다.
1차 내공생 시즌2
민물에 사는 아메바의 일종인 폴리넬라(Paulinella chromatophora)는 광합성을 하는 단세포 진핵생물인데 세포 속에 녹색 소시지처럼 생긴 덩어리가 한두 개 들어있다.
시아넬(cyanelle)이라고 불리는 이 기관은 폴리넬라의 광합성을 담당하는데 흥미롭게도 엽록체보다는 남조박테리아와 더 비슷하다.
시아넬에는 남조박테리아 세포벽 성분인 펩티도글리칸이라는 분자가 있어 세포 밖으로 꺼내도 형태를 유지한다.
새로운 유형의 1차 내공생이 진행 중인 원생생물 폴리넬라의 모습.
세포 안에 광합성을 하는 공생체인 녹색의 시넬이 보인다.
폴리넬라가 세포분열을 할 때 시넬 하나가 딸세포로 이동하는 모습.
그러나 자연 상태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시아넬이 보고된 적이 없으며 세포 밖에서 시아넬을 배양하려는 시도도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시아넬은 엽록체보다는 독립성이 있지만 홀로 살 수는 없는 공생체인 셈이다.
미국 비겔로 해양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윤환수 박사는 미국 아이오와대 생물과학과에서 연구하던 2006년 시아넬의 게놈 일부를 분석해 놀라운 결과를 얻어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윤 박사는 시아넬 게놈의 유전자 배열이 엽록체 게놈 보다는 시네코코쿠스(Synechococcus)라는 남조박테리아의 게놈과 훨씬 더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남조박테리아는 크게 알파형과 베타형이 있는데 시네코코쿠스는 알파형에 속한다.
그런데 엽록체의 조상이 되는 남조박테리아는 베타형이다.
따라서 폴리넬라와 시아넬의 관계는 지구 역사상 단 한 번 일어나 엽록체로 이어진 내공생과 무관한 전혀 새로운 스토리다.
독일 쾰른대 연구자들은 지난해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시아넬 게놈을 완전히 해독한 결과를 발표했다.
예상대로 시아넬 게놈의 단백질 유전자 개수는 867개로 엽록체보다 훨씬 많았지만 가장 가까운 남조박테리아인 시네코코쿠스 유전자 개수의 26%에 불과했다.
시아넬 게놈은 아미노산 합성같이 독자생존에 필요한 유전자는 잃어버렸지만 광합성 관련 유전자는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열대열원충이 적혈구 안에 들어 있는 모습.
열대열원충의 색소체는 녹색, 미토콘드리아는 빨간색으로 보인다.
왼쪽은 적혈구 안에 한 마리가, 오른쪽은 5마리가 들어 있다.
광합성 능력을 상실한 색소체는 대신 지방산을 합성한다.
연구자들은 “1차 내공생은 10억 년도 더 전에 단 한 번 일어난 사건으로 보이지만 왜 한 번뿐이었는지는 지금까지 미스터리다”라며 “지금 두 번째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 그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폴리넬라와 시아넬의 공생은 적어도 6000만 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자들은 “진핵생물에 포획된 남조박테리아가 광합성과 관련이 없는 유전자를 잃어버리면서 공생체인 시아넬이 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시아넬이 계속 진화해 엽록체 같은 세포내소기관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시아넬과 엽록체의 결정적인 차이, 즉 광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모두 갖고 있느냐 일부를 세포핵 게놈으로 넘기느냐가 관건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차이가 엽록체로 광합성을 하는 진핵생물의 기원이 되는 내공생이 왜 긴 지구 역사상 한 번만 일어났는가를 이해하는데 실마리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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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어떤 이유에서인지 엽록체가 광합성을 하는 능력을 상실해 다시 종속영양체로 돌아간 경우도 있다.
섬모류나 첨복포자충 등 상당수의 원생생물은 세포내 엽록체가 완전히 퇴화한 상태인 것으로 밝혀졌다.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열대열원충(Plasmodium falciparum)은 특이한 경우로 이 녀석의 세포 안에 들어있는 색소체(더 이상 광합성을 못하므로 엽록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광합성 대신 지방산을 만든다.
호주 멜버른대 식물학부 지오프리 맥패든 교수는 “색소체가 왜 광합성 대신 다른 기능을 맡게 됐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열대열원충의 진화과정에서 엽록체가 광합성을 하는 능력만 잃지 않았어도 지금처럼 모기와 사람을 오가는 기생생물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매년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죽음을 맞는 비극도 없지 않을까.
2차 내공생, 3차 내공생?
원생생물인 하테나와 네프로셀미스는 2차 내공생 시작단계에 있다.
엽록체가 있는 네프로셀미스를 포획한 하테나(1)가 세포분열을 할 때 네프로셀미스가 공조해 분열하지 않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광합성을 할 수 있다(2).
진핵생물이 남조박테리아를 포획하며 시작된 1차 내공생의 결과 탄생한 광합성을 하는 진핵생물은 오늘날 녹조류와 홍조류, 글라우코피타로 불리는 조류로 분화했다. 4억~4억 7500만 년 전에 녹조류의 일부가 진화해 식물이 됐다.
이들의 세포 안에 들어 있는 엽록체는 남조박테리아처럼 이중막으로 싸여있다.
그런데 광합성을 하는 원생생물 가운데는 엽록체가 삼중막, 사중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종류가 꽤 된다.
왜 그럴까?
이들은 과거 어느 시점에서 편모가 둘 달린 원생생물이 녹조류나 홍조류를 잡아먹은 뒤 소화시키지 않고 포획해 진화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핵생물이 광합성을 하는 진핵생물을 포획해 광합성을 하는 새로운 생명체로 변화한 과정을 ‘2차 내공생’이라고 부른다.
2차 내공생을 거친 생물체의 엽록체가 삼중막, 사중막인 것은 사로잡힌 진핵생물이 퇴화하면서 세포막만 남아 원래 엽록체 이중막 위에 덧씌워졌기 때문이다.
원생생물인 하테나와 네프로셀미스는 2차 내공생 시작단계에 있다.
엽록체가 있는 네프로셀미스를 포획한 하테나(1)가 세포분열을 할 때 네프로셀미스가 공조해 분열하지 않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광합성을 할 수 있다(2).
몇몇 원생생물의 세포 안에는 사로잡혔던 녹조류나 홍조류의 퇴화한 세포핵(핵체)이 남아있어 2차 내공생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은편모조류의 세포에는 퇴화한 홍조류의 핵체가, 클로라라크니오피타류에는 퇴화한 녹조류의 핵체가 들어있다.
한편 와편모조류에 속하는 일부 원생생물은 2차 내공생체를 포획한 ‘3차 내공생체’임을 보여주는 흔적이 남아 있다.
지난 2005년 ‘사이언스’에는 2차 내공생이 진행 중인 생명체가 보고돼 화제가 됐다. 일본 쓰쿠바대 생명환경과학부 이사오 이노우에 교수팀은 편모충에 속하는 녹색 단세포 원생생물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하테나’로 명명한 이 녀석이 세포분열을 하면 딸세포 중 하나만 녹색이 되고 나머지는 무색이 된다.
녹색 덩어리의 실체는 엽록체가 아니라 네프로셀미스(Nephroselmis)속에 속하는 광합성을 하는 원생생물의 변형된 형태였다.
연구자들은 “공생체가 없는 딸세포는 종속영양체로 살다가 네프로셀미스를 포획한 뒤 형태가 바뀌면서 광합성을 하는 독립영양체가 된다”며 “사로잡힌 네프로셀미스도 세포핵과 미토콘드리아는 보존하고 있지만 편모나 세포골격을 버리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