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업그레이드는 끝났다. 당신의 눈을 업그레이드 시켜라!’라고 외치는 영화 아이언맨이 적잖은 흥행을 올리면서 아이언맨의 갑옷 또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수퍼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기존의 수퍼 영웅들은 옷을 단순히 걸치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러나 아이언맨은 힘을 얻기 위해서 옷을 입고 옷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아이언맨의 갑옷은 방탄 효과는 물론, 미사일 등 각종 무기 발사가 가능하며 하늘도 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타고난 신체적 능력이 아닌 장비의 도움으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아이언맨의 갑옷인 Powered Exoskeleton은 말 그대로 강화된 외골격이라는 뜻이다.
즉, 로봇은 스스로 움직이지만 강화복은 인간의 몸에 둘러져서 능력을 향상시키고 보호하는 장비이다.
군사 무기상이었던 주인공이 천재적인 두뇌를 사용해 만든 강화복을 부러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과학적으로 가능한 걸까?
강화복은 현대 기계공학의 정수라고 불릴 만큼 기계공학 기술이 집결된 결과물로,
크게 민간용과 군사용으로 나눌 수 있다.
아이언맨의 갑옷이 그러했듯이 군사용 강화복 위주로 과학적 필요 조건을 생각해 보자.
우선, 총탄이나 폭발에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이 다치지 않아야 하고,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또한 화생방전에서의 보호 능력도 갖춰야 한다.
이런 보호 기능이 없다면 보통 인간 병사를 쓰는 것보다 나은 점이 없다.
이러한 기본 요건을 만족시켰다면,
그 다음은 보통 성인 남성의 근력을 훨씬 상회하는 힘을 갖추어야 한다.
특히 아직까지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는 강화복의 형태로 볼 때 더욱 그렇다.
임무 수행 중에도 무거운 물건을 드는 등의 일에 힘이 필요하지만 강화복의 무게 자체가 사용자의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강화복이란 사용자가 근력을 거의 쓰지 않고도 임무를 수행하게 해줘야 한다.
사실 강화복 연구의 대부분은 이 부분에 집중되고 있다.
힘을 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
동력과 제어가 필요하다.
강화복의 경우는 동력을 자체 내장해야한다.
현재의 강화복들은 자체 동력기관, 전기 배터리, 연료 전지 등을 동력원으로 고려하고 있다.
제어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더욱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강화복은 엄밀한 의미로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에 자연스럽게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컴퓨터로 관절부의 움직임, 근육의 변화, 신경에서 근육으로 흐르는 전류 등을 감지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작동부에 전달한다.
현재는 모터, 유압장치 등을 사용하여 힘을 내는데, 전기활성 고분자 (EAPs : Electroactive Polymers)를 이용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전기활성 고분자란 전기 자극으로 형태가 변하거나 최초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물질을 말한다.
즉 컴퓨터 제어부에서 전기 자극을 보내면 그에 맞춰 움직이는 일종의 인공근육을 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각종 전자장비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
통신 장비, 관측 장비, GPS 등을 모두 강화복에 내장하는 것이다.
광대역전력증폭기, 야시경, 적외선 탐지기, 망원경을 모두 겸한 디스플레이는 물론 거기에 GPS를 결합하면 임무지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작전에 더 효율적으로 임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이 시스템과 무기를 결합하여 더 효과적인 화력 운용이 가능하다.
또한 강화복의 표면에 주변의 환경에 따라 바꿀 수 있는 전자 위장 장비를 부착한다면 작전 수행 능력도 월등해진다.
전자 장비는 외부의 환경 인식 뿐 아니라 사용자의 신체 조건을 감지하고 내부의 온도, 습도 등을 조절하는 데에도 필수이다.
또한 사용자의 심장 박동, 혈압, 체온 등을 항상 기록하여 군인의 경우 상부가 상시 대처할 수 있다.
강화복 기술은 군사용 뿐 만 아니라 민간용으로도 널리 사용될 수 있다.
점점 고령화 사회가 되고 질병과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갖는 사람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인공근육 기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장애인의 의수를 만들 때 손가락이나 손목을 구성하기 위해서나 근육이 퇴화한 노인을 위해서도 인공근육이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이 외에도 각종 전자장비를 갖춘 강화복은 건강 상태를 수시로 확인해 주기 때문에 장거리 등반이나 탐험을 하는 일반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SF소설 혹은 만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강화복은 이제 현실로 성큼 다가 왔다.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각종 연구 재단 등이 강화복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캘리포니아-버클리 대학에서 개발 중인 강화복 블릭스(BLEEX)는 팔이나 다리에 부착하는 강화장비를 이용해 약 4.5kg의 등짐을 져나를 수 있는 체력으로 약 90kg의 중량을 나를 수 있다.
일본은 군사용보다는 노약자 도움용으로 강화복 연구를 하고 있다.
일본의 초고성능 CPU개발로 유명한 회사 사이버다인은 할(HAL)이라는 이름의 강화복을 개발 중이다.
할은 피부의 표면에서 내부의 생체신호를 감지해 기계부를 제어하고, 모터로 손발의 움직임을 도와 고령자의 보행을 가능하게 한다.
미국 국방성은 기존의 랜드워리어(Landwarrior) 계획을 미래 병사 계획으로 개명하고 더욱 본격적으로 군사용 강화복 개발에 나섰다.
이 미래 병사 계획은 앞에서 언급한 거의 모든 요소를 전반적으로 포함한다.
즉, 머리 부분에 적용되는 디스플레이 및 통신 시스템, 무기와의 연동, 자체 동력, 근력 강화 기능 등이 개발 계획의 세부에 모조리 포함되어 있다.
이 계획은 앞서 얘기한 BLEEX 연구팀이나 메사추세츠 공과 대학의 군용 나노기술등도 연계되어 있다. 또한 미 국방성의 하위 기관인 미국방고등연구기획청(DARPA :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는 사르코스(Sarcos) 연구 재단과의 협력 하에 동력 및 제어부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한 강화복의 시범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더 효율적인 군사 무기의 개발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겠지만,
현대 과학의 상당 부분이 무기 개발 과정에서 발전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강화복 관련 기술은 의수, 의족 개발기술과 결합하면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공상의 산물이 현실로 등장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글 : 김창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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