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프리랜서 강사를 다이빙업계 불황의 희생양으로 삼는가?
(부제; 스쿠바다이버 2003년 5/6월 호의 사설
'심각한 불경기에서 무점포 강사를 보는 시각'에 대한 반론.)
글을 시작하면서
누군가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저 강도의 문화적 폭력’이라고 했다. 국내 다이빙계에서 문화적인 혜택이라야 잡지가 거의 전부라 말할 수 있으니 발행인의 그릇되고 편중된 인식이 다이빙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는 스스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또한 발행인의 말처럼 정부의 규제 없이 자체적으로 규율과 문화를 만들어 가는 다이빙계에서 잡지는 정부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잡지의 기사가 법보다 무서울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발행인의 생각의 방향이 중요한 것이다.
과거의 공이 크다고 현재의 과를 묻어둘 수 없다. 중심을 잃은 주장을 하는 어설픈 시사잡지 보다는, 레저 잡지로 정보와 즐거움을 주는 것이 오히려 다이빙계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발행인이 과연 다이빙계를 위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로 이 번 사설을 썼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난국의 희생양을 찾아 자신의 지지 세력의 결집을 도모하려는 의도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사가 상업지임을 내세워 자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사를 작성해오던 스쿠바다이버가 갑자기 선악을 판별하는 중립적인 심판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철저한 자기 반성과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주장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고 ‘교언영색’일 뿐이다. 물론 나의 주장도 그러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특히 발행인의 주장 중 <홀로다이버>에 대한 의견은 자칫 다이빙 산업의 최종 소비자인 일반 다이버들에게 ‘큰 오해’를 줄 수 있는 말이어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고 하겠다.
누구나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욕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생각하는 방법과 보는 눈이 다를 뿐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나 역시 잡지사를 내거나 무엇을 바꿔보려는 생각은 없다. 누군가 징징거리면 귀찮아도 한 번쯤 쳐다보는 것이 사람의 심리 아닌가? 때 쓰는 심정으로 글을 올린다.
무엇이 문제인가?
불황이다. IMF 때보다 더 불황이라고 말한다. 이런 와중에도 장사가 되는 업종에는 돈이 몰린다. 혹자는 불황이 찬스라며 더 열심히 뛰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황은 그늘일 뿐이다.
나도 다이빙계가 불황이라는 인식을 같이 한다. 그리고 어떻게 든 돌파구를 찾으려는 발행인의 고민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불황 극복의 해법을 찾고있는 ‘발행인의 현실 인식 감각과 글의 논리상 문제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발행인의 주장이 다 그르다는 것은 아니다. 다이빙이 전문다이브숍이 기초와 중심이 되어 발전해야 한다는 등 다이빙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발행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발행인은 다이빙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의 책임이 마치 무점포강사(프리랜서)의 책임이라고 말하며, 그들이 없어지면 다이빙계가 안정되고 활성화 될 것이라는 뉘앙스 마저 풍기고 있다.
발행인은 프리랜서 강사가 필요 이상으로 넘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프리랜서 강사들이 다이빙계의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 점과 그들이 공헌한 점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언급 역시 회피하고 있다.
발행인의 사설을 읽으면서 중세 유럽 흑사병이 돌던 시절 민심 수습을 위해 말도 안 되는 ‘마녀사냥’을 주도했던 당시의 성직자와 귀족들의 모습이 떠올라 몹시 씁쓸했다.
오히려 “리조트의 써비스가 개선되고 손님이 많이 와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수중세계 이선명 발행인의 다소 대책 없는 말이 김풍등 발행인의 논리적이고 차가운 해법보다 양심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프리랜서 강사
프리랜서 강사가 양산된 것은 IMF 이후라는 것이 통설이다. 당시 사회적인 상황과 맞물려 많은 다이버들이 강사 되기를 희망했다. 사실 IMF 이전 경기 호황기에는 강사가 모자를 정도였고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
강사교육 그 자체는 물론, 배출된 강사들의 활동(교재, 자격증, 물품 판매)에 비례해 교육단체의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각 교육단체에서도 앞 다투어 강사를 양산 했다. 그러다 보니 수요 이상의 강사들이 생겼다.
강사가 되기 위해 교육단체(코스디랙터)에 지불한 돈은 교육단체 혹은 코스디렉터들의 든든한 벌이가 되어 어려웠던 시기를 넘길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게다가 다이빙 산업계에서 교육단체의 활동 정도를 한 해 배출된 강사의 숫자로 측정하는 등의 우를 범하기도 했다. ‘강사를 많이 배출하면 열심히 활동한 코스디렉터’라는 말이 통용되었다.
프리랜서 강사들 역시 유점포 강사와 마찬가지로 강사 활동을 통해 다이빙 시장(교육, 장비, 투어)에 지속적으로 ‘돈’을 수혈해왔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프리랜서 강사들을 ‘다이빙계의 암적인 존재’로 정의하고 이들을 없애야 다이빙 몬화가 바로 선다고 말한다면, 이를 반길 프리랜서 강사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발행인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해줄 아무런 객관적인 근거 없이 자신의 주장을 말하고 있다. 프리랜서 강사들이 배출한 다이버가 유점포 강사들이 배출한 다이버들보다 사고율이 높거나, 만족도가 떨어진다거나, 다이빙을 일찍 접는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발행인은 이 같은 자신의 논리 부족이 겸연쩍었는지 ‘선진국의 예’와 ‘다이빙계의 정설’을 내세우며 메우고 있으며, 다이빙의 특수성을 들어 다른 것과의 비교를 거절하고 있다.
시장에 맡기자
프리랜서 강사와 무점포 강사는 시장의 선택이 낳은 결과다. 시장이 선택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은 강제로 없애는 데는 무리가 생길 것이 분명하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무점포 강사와 프리랜서 강사는 존재하고 있으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다이버 역시 적지 않은 숫자일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갑자기 부정하면 어쩌란 말인가? 이는 자칫하면 다이빙계의 갈등과 반목. 혹은 프리랜서 강사가 제도권 밖으로 밀리거나 스스로 나가서 통제 불능의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다.
발행인은 시장의 조정 능력을 무시하고 있다. 강제 조정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다이빙 시장에 강제 조정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나 개인은 없다.
게다가 잡지사는 스스로 생산자이면서 판매자다. 따라서 잡지사가 조정자로 나선다는 불가하다. 정부 또한 같은 위치지만 국민들이 부여한 권위와 권한이 있기 때문에 조정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지금의 발행인의 위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발행인에게 하나
‘현실감 없는 이상을 심어주는 것은 죄악’이라는 말이 있다. 발행인이 진정으로 다이빙계의 앞날이 걱정된다면 어려운 일을 남에게 강요하기 보다는 발행인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고, 보다 현실감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마지막 ‘생각은 바로하고 있자’라는 말은 자칫 헛된 꿈과 희망만 안겨줘 현실과 이상 사이에 있는 강사와 다이버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사도 마찬가지다. 갈라파고스 기사를 보면서 신기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기까지 가는 사람들은 누군가 하면서 속으로 부러워하며 스스로를 자조하는 사람도 있을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실제 갈라파고스는 고사하고 필리핀의 리브어보드 타기도 벅찬 다이버들이 숱하다. 갈라파고스의 비용은 노동자의 평균 월급의 6배가 넘는다고 하지 않는가?
오히려 그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 그 페이지에 국내의 여러 리조트 소개 기사를 싣는 것이 불경기에 잡지사가 다이빙계를 위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배려이고 발행인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번 발행인의 사설은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다이빙계의 화합과 공생의 방법을 모색하여 함께 이겨나가기 보다는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한 지역 사회의 무점포 프리랜서 강사가 다른 지역 유점포 강사의 동기 강사일 수 있다. 교육단체에서 볼 때는 강사는 강사일 뿐 프리랜서 인지 유점포 강사 인지는 둘째 문제다.
그들에게 발행인은 간접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다. 어쩌란 말인가? 무점포 강사들의 자격을 박탈이라도 하고, 무점포 강사와는 어울리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가뜩이나 사분오열된 다이빙계 아닌가? 한 집단을 살리려고 다른 집단을 죽이겠다는 발상은 오히려 모두 죽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일반 다이버들 입장에서도 강사와 회원일 따름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 독자가 발행인의 글을 일고 잘 가르치고 있는 도덕적인 프리랜서 강사를 떠나 능력 없거나 부도덕한 유점포 강사에게 간다면 그 책임을 누가 질것인지 궁금하다.
발행인의 글을 보고 있으면 ‘유점포 강사는 훌륭하고, 무점포 강사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강사’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길가의 포장마차를 무조건 단속하고 벌금을 물리는 방법도 있지만, 더 이상의 포장마차가 난립하는 것을 막으면서 기존의 포장마차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고 도시 환경과 어울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는가?
발행인에게 둘
프리랜서 강사가 문제라면 일단 정확한 <실태 파악>이 우선일 것이다. 발행인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필요하다면 수중세계나 해저여행과도 손을 잡고 모든 교육단체와 수입상들의 협력을 받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프리랜서 강사 혹은 무점포 강사의 문제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다이빙계는 시장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런 데이터도 없으면서 어떻게 대책을 논의하며 앞날을 걱정할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발행인 스스로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프리랜서 강사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발행인이 다이빙계의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의 한가운데 서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다이빙계 내부에 존재하는 악순환의 고리와 문제 해결의 열쇠와 해법을 발행인이 쥐고 있을 지 모른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 앞서 철저한 자기 돌아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거울을 통하거나 주변의 다른 이의 눈을 통해야 가능하다. 발행인이 가지고 있는 거울이 너무 작거나, 볼록하거나 오목하지는 않은지 혹은 주변 사람의 시력이 나쁘거나 보이는 대로 말해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본인만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다이빙계의 대표적인 원로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의 공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지나온 날들을 서서히 정리해야 할 나이에 서있는 두 사람이 정리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갈팡질팡하며 일을 벌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미리 돌아보기
무점포 강사에게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무점포 강사나 프리랜서 강사들에게 책임을 전가 시키고 그들을 매장해서는 안 된다.
지금 다이빙계의 문제는 지금까지 내려오던 업계의 잘못된 관행과 문화에서 필연적으로 생긴 산물이다. 원인은 놓아두고 결과만 탓한다면 이런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전문 다이브숍이 다이빙 교육의 중심이 되고 다이빙 산업의 축이 되야 한다는 발행인의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게 무점포 강사가 사라진다고 성사될 일인가?
이 번 발행인의 사설은 옳지 않은 발상을 가지고 고민을 한 결과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 안에서 발행인이 지적한 다이빙계 문제의 해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힘없는 말단(강사)에서 답을 찾기 보다는 가장 위에서 답을 찾는 것이 보다 이행 가능성이 있고 공정한 답일 것이다. ‘결자해지’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의 다이빙 산업계의 최상층에 있는 사람들은 30년 다이빙 역사 내내 혹은 다이빙이 사업적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 80년대부터 지금까지 다이빙계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이빙 산업의 최상층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득권과 이익을 포기(혹은 줄이려)하지 않고 최하위 종사자들이나 소비자인 다이버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안될 일이다.
발행인의 사설에 대한 구체적인 반론
경험 많은 강사가 훌륭한 강사는 아니다
발행인은 경험 많은 강사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경험 많고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훌륭한 강사가 될 수는 없다.
스쿠바다이빙은 레저다. 즐거워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자격이 된다면 경험 보다는 강사의 마음 가짐과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
학생을 우습게 보고 스스럼 없이 성희롱 하는 경험 많은 강사 보다는 진지하게 학생을 대하고 예의 바른 신출내기 강사에게 학생들은 더 많은 점수를 줄 것이다.
경험이 많은 강사가 책임감이나 윤리의식이 높다고 말할 수 없다. 고참 강사들의 여러 가지 추문이 떠돌고 있는 곳이 다이빙계 아닌가?
이런 저질 강사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다이빙계에서 퇴출 당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것이 잡지의 공익성 아니던가? 이를 개인적인 사생활로 덮어두기에 강사와 학생의 관계는 너무 기울여져 있다.
게다가 학생이 아직 어리고 장소가 이역만리 타향이라면?
발행인에게 나이 어린 막내 여식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녀를 마음 놓고 맞길 수 있는 강사가 주변에 있는가? 그 강사와 여식 단 둘만 해외 투어를 보낼 수 있는가?
내 스스로 주변을 둘러 보아도 마음 놓고 내 처제를 맞길 강사 찾기가 힘든 것이 다이빙계의 현실이다.
발행인이 ‘강사들의 경험’을 중요시 하는 속 사정
발행인이 <강사>보다는 <경험 많은 강사>를 이야기 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발행인 스스로 지금 배출되는 강사들의 수준과 실력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발행인도 얼마전의 사설에서 인정하였듯이 국내에서 배출되는 강사들의 수준이 기준 이하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프리랜서 강사는 수준 이하고 유점포 강사는 수준 이상이라는 주장은 억지다.
이러한 문제점을 발행인이 인식하고 있다면 이에 대한 대대적인 캠페인을 펼친다던가 협력 관계에 있는 교육단체나 장비수입상에 압력을 가하면 되지 않는가?
자격 없는 강사를 만드는 교육단체는 기사화하고 홍보하면서, 그 소속 강사들의 자질과 자격을 운운하는 발행인의 태도는 이율배반 적이다.
절대 불공정 거래가 아니다
발행인은 프리랜서 강사가 점포가 없어서 고정 비용(운영비)이 나가는 유점포 강사에 비하여 가격 경쟁력에서 앞서기 때문에 불공정 거래라고 한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하면 유점포 강사들이 무점포 강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무기인 ‘점포’를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발행인은 점포를 ‘비용이 드는’ 애물단지로 말하고 있다. 오히려 유점포 강사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활용하도록 도와주고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면서 그들에게 기운을 복 돋아 주는 것이 발행인의 우선 해야 할 일 아닐까?
그리고 단지 가격 경쟁력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주장은 시대에 뒤떨어진 발행인의 의식을 대변하는 말이다. 지금의 소비자들은 가격과 함께 써비스를 찾는다.
다이빙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서 입문하는 경우도 많다. 유점포 강사들이 무점포 강사에 비해 월등한 써비스(교육, 회원 관리, 투어 등)를 제공해왔다면 다이빙에 입문하려는 지인에게 유점포 강사에게 배울 것을 적극적으로 권했을 것이다.
요즘 시장은 단순히 가격으로 분석이 불가하다
마레스는 우리나라 최고의 장비 브랜드다. 개인적으로 마레스가 스쿠바프로보다 성능과 디자인이 월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브랜드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다.
마레스가 잘 팔리는 이유는 마레스의 수입상인 대웅슈트의 적극적인 판촉과 깔끔한 일 처리, 철저한 A/S, 자신들이 판매한 물건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지는 그들의 영업 자세와 거기서 나오는 신뢰 때문이다.
나 역시 마레스를 사용하며 판매하고 있다. 주변의 강사들에게도 영업적으로 볼 때 마레스가 우수하다고 이야기해주고 있다.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이익을 조금 줄이더라도 속편하고 안전한 상거래를 택하는 것은 정도다.
기존의 다이버들 역시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스스로 마레스를 선택하고 있다. 그들 입장에서 마레스 장비 가격의 내막을 알 리 없다.
이 같은 다이빙계 소비자들의 소비 형태을 보면서도 모든 문제를 <오직 가격 경쟁력으로만> 풀어나가는 것을 보면 발행인의 시장 해석 방향에 물음표를 달아주고 싶다.
세금 문제를 돌아보자
월급쟁이 때와 프리랜서 강사나 숍을 운영할 때의 가장 큰 차이가 여유 시간과 세금이다. 월급을 받으면 명세서에 세금과 각종 준조세 성격의 내역이 나열 되 있다. 잘 알다시피 월급쟁이들의 세금은 원천징수가 원칙이다.
월급쟁이들은 세금이 짜증나는 존재지 무서운 존재는 아니다.
세금 문제가 모두 깨끗하다면 사업자 등록이 없는 강사에게 물건을 공급하는 업체를 국세청에 고발하면 된다.그렇다면 수입상과 사업자 등록이 없는 강사 모두 세금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히 정리 될 것이다.
왜 이런 간단한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고발은 치사한 것이 아니라 사회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게다가 국내 다이빙계의 분위기로 볼 때 이런 고발은 <치사한> 범주에 끼지도 못한다.
그러하지 못하는 속내는 아마 사업자 등록이 있는 강사에게만 물건을 공급하는 수입상이건, 유점포 강사이건 스스로 세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잡지사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무점포 강사에게만 ‘세금’을 들먹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누가 세금 다 내고 자영업 하나?’라고 말한다면, ‘월급쟁이 해라!’라고 답해줄 것이다.
선진국에 무점포 강사가 없는 까닭은?
발행인은 자신의 논리 근거로 ‘선진국의 예’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한다. 아마도 그 선진국은 미국(혹은 호주)를 뜻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발행인의 예가 일본의 경우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발행인의 주장이 옳을까? 틀리지는 않으나 우리의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 발행인은 선진국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눈에 보이는 현상 만을 가지고 국내와 비교하는 잘못을 자주하고 있다.
먼저, 선진국은 소위 신용사회(신용카드 사회가 아니다)다. 세원 조사가 비교적 철저하기 때문에 세금 계산서 혹은 영수증 없는 거래 하는 일은 드물다. 따라서 강습을 하거나, 장비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업자 등록을 해야 가능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강사들도 적절한 세금을 내야 여러모로 유리하다. 가령 사고가 나도 세금을 많이 낸 근거가 있어야 보상금(보험금)을 많이 받고, 금융 서비스(대출 등)도 세금 낸 근거가 있어야 조건이 유리하다.
따라서 점포가 없으면 자신의 주거지 주소로 사업자 등록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일이 가능하다. 선진국에서 탈세는 악질 범죄에 들어가고 그 벌 또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두 번째로, 선진국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로부터 독립(주거와 생활 모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이빙을 직업으로 삼는 젊은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혹은 재학 중에)하고 일반 숍이나 리조트 등에서 시간제 혹은 말단으로 들어가 경험을 쌓기 시작한다.
이들이 일정 급여를 받으며 경력을 쌓고 강사가 되는 나이가 보통 20대 초반에서 20대 중반 사이다. 미국에서 가게를 열려면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 5만불 이상이 든다. 젊은 나이에 이런 큰 돈을 가진 젊은이들은 드물다.
따라서 기존의 숍이나 리조트에 취직해 경험을 쌓으면서 돈을 모아 독립하거나 아니면 기존의 업체에서 계속 일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숍을 여는 것은 선진국에서 찾기 힘든 예다.
이처럼 선진국과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문화가 다르고 산업 규모와 구조가 차이 난다. 그럼에도 선진국의 예를 들먹이면서 자신의 주장을 편다는 것은 발행인의 스노비즘과 미국 지상주의를 들어내는 말이다. 발행인의 이런 성향은 발행인의 글에 유독 영어가 많다는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
위의 예처럼 선진국(?)은 자연스럽게 신참 강사가 기존의 숍이나 리조트에 들어가게 된다. 발행인의 말처럼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와 같이 도제 생활을 거치면서 노하우 축적은 물론 가게 운영과 영업 방법까지 전수 받는 것이 정답이다.
여기서 발행인이 생각치 못한 것(혹은 눈을 감은)이 그들의 처우 문제다. 선진국의 신참 강사들 혹은 도제들은 정식 직업으로 인정 받고 정당한 대우와 급료, 각종 보험 혜택 등을 일반 직업인과 동일하게 누린다.
국내 현실은 어떠한가? 숍이나 리조트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젊은 강사나 강사 후보생들은 급여나 처우 면에서 선진국과는 비교도 안 될 대우를 받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을 보자. 선진국처럼 기초부터 일을 배우고 노하우를 전수 받기 보다는 잡부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탱크 돌이, 콤프 보이, 운전, 청소, 전화 받기 등의 잡일과 땜빵 강습이 고작이다.
그들을 가르치고 다이빙 시켜준다는 미명 아래 <착취>를 해왔다. 고참 강사나 리조트 오너에게 그들은 열악한 잠자리와 밥 값만 주고 부려먹을 수 있는 존재다. 언제든지 대체가 가능한 닳지 않는 배터리가 이들이다.
혹여 운이 좋아 경험을 쌓고 독립을 하게 되면 영업권을 놓고 다투기 일수다.
좋은 관계로 발전한 예를 30년 레크리에이션 다이빙 역사에서 10개만 찾아보기를 발행인에게 부탁한다.
물론 위와 다르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는 숍이나 리조트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 이런 분위기를 알고 있는 신참 강사나 강사 지망생이 배우는 것 없이 잡일만 하는 ‘이름만 도제’ 길을 걷겠는가?
발행인은 신참 강사들이나 무점포 강사들을 탓하기 전에 이런 악습을 반복하고 있는 기존의 고참 강사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개인 혹은 부모의 능력이 된다면 자신의 숍을 개업할 것이다. 그 능력이 안 된다면 프리랜서 강사 생활을 하는 것이다. ‘프리랜서 혹은 무점포 강사라고 모두 직업이 두 개인 것은 아니다’
시장 유통 구조의 왜곡.
시장의 유통구조는 고정된 정답이 없다. 소비자들의 선택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이 같은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는 어떠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80년대 말 국내에 소개된 편의점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부터다. 불과 십 년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편의점은 대도시 유통업계의 커다란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편의점의 가격이 동네 슈퍼나 대형 할인점보다 비싸지만 오히려 편의점은 날로 늘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구멍가게와 슈퍼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편의점들 들어서고 있다.
발행인의 논리라면 소비자들은 편의점이 아닌 슈퍼나 노점상, 대형 할인점을 찾아야 한다. 편의점은 문을 닿아야 하고 가격의 혼란을 주니까 시장에 악영향을 주는 존재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소비자의 혼란'이라는 것은 발행인이 현시대의 다이버들의 소비 형태와 정보 수집 능력을 과소평가 하거나, 무지하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인터넷과 정보 매체의 발달로 많은 정보가 떠돌고 있다. 주변에서 듣는 말도 있다. 가격의 차이가 있다면 왜 차이가 나는지 판단할 능력 정도는 가지고 있다.
강습비를 A 강사는 50만원, B 강사는 30만원을 받는다면 소비자는 20만원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생각한 후에 선택한다. 즉 20 만원의 기회비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소비자의 결정이지 혼란이 아니다.
한 대에 수천 수억 하는 수입자동차 시장에도 그레이마켓(병행수입)이 존재한다. 발행인의 주장대로라면 정식 수입상들은 다 망했어야 한다. 그런데 정식 수입상의 매출이 월등하다. 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정식 수입차 딜러는 가격 차이를 영업과 서비스 강화를 통해 메우고 있다. 편의점은 24시간 판매와 깔끔한 진열, 지역에 따른 소비자의 구매 습성과 취향을 고려하여 구색을 갖추고 있다. 그 것이 성공의 이유다. 가격이 능사는 아니다.
모 편의점의 히트 상품인 삼각김밥을 보자. 이 삼각 김밥이 성공한 이유는 모양과 종류(맛)의 다양함 때문이지 기존 김밥 가게의 김밥보다 저렴해서가 아니다.
삼각김밥은 3년 동안 53가지 맛의 제품이 출시되었다. 2년 이상 생산되는 제품도 있지만, 종류에 따라 한 달 만에 매장에서 사라진 종류도 있다. 소비자의 취향을 분석하고 연구하여 맞추어 나간 결과 <대박>을 터트리게 된 것이다.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을 가격에 한정시키는 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이론이다. 현재의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과 선택의 기준을 파악하지 못한 체 시장을 분석하는 것은 만용이다.
오히려 혼란은 스쿠바다이버가 조장한다.
스스로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다고 말하는 스쿠바다이버. 다이버들은 스쿠바다이버의 기사와 광고를 많은 참고로 삼고 있다.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다이버도 개중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사는 자사의 광고주와 자사의 이익에 따라서 비중이 결정된다. 잡지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교육단체와 업체도 존재한다.
이에 따른 소비자들의 혼란과 다이빙계에 대한 불신은 누가 책임지는 것인가?
무점포 강사들의 프로의식이 없다
발행인은 프리랜서 강사들의 경험(캐리어)과 강사로서 프로의식이 부족 혹은 일천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점포 강사들은 모두 경험이 뛰어나고 투철한 직업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그러한 객관적인 증거가 있을까?
스쿠바다이버에 기고하는 PADI 코스디렉터 강영천 박사를 보자 (실명을 거론해 죄송합니다).
그는 무점포 강사로서 강사 경력을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당당하게 세계 최고 PADI의 코스디렉터가 되었다.
의사로서 강사로서 풍부한 경험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진료는 물론 스쿠바다이버에 글까지 연재하고 있다.
난 그의 글을 열독하고 있다. 많은 다이버들이 글이나 홈페이지, 진료를 통해서 도움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 분의 도움을 직접 받은 적도 있고 그런 분이 대한민국 다이빙계에 있는 것이 복이라 생각하고 있다.
발행인의 논리가 옳다면 강박사는 무점포 강사이기 때문에 빈약한 캐리어를 가지고 강습해왔을 것이다. 의사라는 탄탄한 직업이 있기 때문에 강사 생활을 책임감 있고, 적극적으로 안 해 왔을 것이다.
그는 의사라는 직업이 있었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수 많은 강습을 해왔을 것이다 (PADI의 코스디렉터가 되려면 우리의 생각보다 많은 엄청난 강습 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는 프로의식도 없으며, 물론 지속적인 교육도 못해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PADI의 코스디렉터가 되었을까? 그를 지금의 자리에 이끈 것은 그가 점포를 소유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책임의식과 다이빙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발행인의 논리대로 해석하면 강박사는 다이빙계(다이빙 인더스트리)의 암적인 존재 <무점포 강사의 국가대표>다. 그런 그를 스쿠바다이버는 그의 기사를 싣고, 그의 글을 연재하고 있는가?
무점포 강사들은 무능하다
강사가 되어 바로 숍을 여는 강사들은 어찌 볼 것인가? 그들은 정식 사업 등록을 하고 숍을 내지만 경험은 일천하다. 그럼에도 유점포 강사니까 고참(?) 프리랜서보다 우수하다고 할 수 있는가?
만약 강사 된지 얼마 안된 사람이 점포를 연다고 상담하면 스쿠바다이버는 말릴 것인가? 그들이 광고를 원하고 잡지의 구독을 원하면 거절할 것인가.
스쿠바다이버의 전현직 기자 세 명 역시 무점포 강사로 프리랜서 강사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다. 무점포 강사 생활을 하던 당시의 글이 기사화되어 스쿠바다이버에 실린 적도 있다.
스쿠바다이버는 무점포 강사들이 문제가 될 것을 예상해서 그들을 흡수하여 문제를 최소화 시키려 그들을 고용했는가? 아마도 그들의 능력을 보고 채용했을 것이다.
발행인의 말대로라면 그들은 모두 프로 의식도 없고, 무책임한 사람들 아닌가? 그런 인물들을 고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스쿠바다이버 기자의 조건이 무책임과 직업정신 결여인가?
안전과 교육의 질
유점포 강사에서 배운 다이버가 프리랜서 강사에게 배운 다이버 보다 안전하고 즐거운 다이빙을 하고 있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막연히 그렇다는 것이다. 사고자의 다수가 무점포 프리랜서에게 교육 받았다는 객관적인 데이터가 있는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사고가 잦은 것은 국내 다이빙계의 총체적인 문제다. 그럼에도 발행인은 프리랜서 강사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있다.
강사는 점포의 유무에 관계없이 교육단체에서 강사의 자격이 있음을 인정해준 것이다. 그 것은 교육 단체의 권한이지 잡지사의 권한이 아니다. 잡지사의 역할은 다이버들에게 교육의 기준을 알려 다이버나 강사 지망생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점에서 잡지사가 자유롭지 못하다. 객관적인 기준이나 양심 보다는 잡지사나 발행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사가 작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정녕 발행인이 교육의 질이 걱정된다면 최소한 스쿠바다이버에 광고하는 BSAC, SDD, SSI, NASDS, NAUI, TDI/SDI의 코스디렉터들의 교육 수준과 배출 강사들의 실력을 심사해서 자격이 안 되는 강사를 배출하는 단체의 광고를 거부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광고 역시 기사다'라는 언론계의 금언이 있다. 스쿠바다이버에 광고가 나가는 것은 풍등출판사와 그 발행인이 그 단체 강사들의 자격을 독자들에게 인증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홀로 다이버
발행인은 홀로다이버들이 안전의 사각지대에 있고 마치 무점포 강사들이 그들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전문 숍에서 강습 받은 다이버들은 다이빙을 그만둘 때까지 모두 그 숍에 남아 계속 교육을 받고 그 강사의 지도아래 다이빙을 다니는가?
현실은 어떤가. 많은 다이버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처음 배운 숍(유점포 강사)을 떠나 홀로 다이빙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행인은 마치 프리랜서 강사들의 회원들만이 홀로 다이버가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숍이 문을 닫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10년 넘는 숍에 소개된 강사도 점포를 접었다. 이처럼 문을 닫는 숍의 회원들이 현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프리랜서 강사들의 회원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프리랜서 강사와 유점포 강사 중 어떤 그룹이 많은 수의 문제의 ‘액티브 홀로 다이버’를 배출 하는지 조사한 객관적인 자료나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발행인은 홀로 다이버의 문제를 일방적으로 프리랜서 강사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게다가 발행인은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자칫 다이버들의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을 무책임하게 하고 있다. 소위 <천덕꾸러기> 논이다.
발행인의 논리라면 강습생은 최소한 마스터 다이버의 실력을 갖추기 전에는 최초 강습한 강사의 품을 떠나선 안되며, 떠난다면 사고를 당하는 등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강사에게 가면 천덕꾸러기가 되니 최초 강사를 떠나는 순간 다이빙을 접어야 한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오픈워터 과정을 막 마친 다이버가 제주로 이사 간다면 그 다이버는 교육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고, 제주 바다에는 들어가지 말고 서울의 강사를 따라 다이빙을 다녀야 한다’ 라는 말이다.
만약 강사가 맘에 안 들면 어쩔까? 강사가 무례하다던가 너무 돈만 밝힌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교육 받았고 장비를 샀으니 죽으나 사나 붙어 다녀야 하나? 다른 강사와 비교해 보니 내 강사가 너무 성의 없고 무능력 해도 꾹 참거나 다이빙을 접어야 할까?
동호회(클럽)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사회에서 소속 집단을 옮기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직장은 물론 동호회의 가입과 탈퇴는 흔한 것이 현대 사회다.
그 와중에 그 집단에 적응하는가 못하는가는 개인과 집단의 성향(코드)가 맞느냐 안 맞느냐의 문제다. 그런데도 발행인은 이를 프리랜서 강사의 문하생들은 다른 곳에 가면 적응을 못한다고 말하면서 이들은 결국 사고를 당한다고 겁을 주고 있다.
홀로 다이버가 과연 다이빙계의 문제아인가?
오히려 경쟁력 있는 강사에게 홀로다이버들은 좋은 시장이다. 그들을 자신의 회원으로 흡수하면 되는 것이다.
오픈워터 교육을 하고 새로운 장비를 판매하는 것만큼 재교육과 계속 교육, 투어, 장비 재구매 시장 역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반드시 초보강습을 했던 강사가 그 다이버의 실력과 고칠 점을 안다는 발행인의 주장은 스스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다이빙 강사들의 기준을 낮춤과 동시에 무시하는 처사다.
제대로 된 강사라면 새로운 다이버라도 이야기와 테스트 다이빙, 투어 등을 통해 그 다이버의 결점을 발견하고 교육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고쳐줄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을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강사는 그들을 껴안을 강사로서의 능력과 소양이 부족하거나, 자신의 실력 부족을 변명하려는 말일 것이다.
동호회가 문제인가?
발행인은 글의 끝에 동호회를 문제 삼았다. 소위 잘 나가는 동호회는 숍에 속한 동호회 이거나 통신/인터넷 동호회다. 대표적인 예가 C 동호회다.
문제의 C 동호회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다이빙계의 새로운 물결 혹은 대안으로 제시한 곳이 스쿠바다이버다. 일개 동호회를 적극적인 홍보 기사를 통해 다이빙 산업(발행인이 말하는 인더스트리)이라는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 때까지 교육단체, 수입상, 잡지사, 소매상, 강사, 다이버 라는 구조에 ‘인터넷 동호회’를 추가한 장본인이 스쿠바다이버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동호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발행인은 불과 몇 년 앞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에도 지금도 C 동호회는 무점포 강사들이 책임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공교롭게 스쿠바다이버의 전직 기자 역시 그 곳의 책임강사 출신이다.
지금 스쿠바다이버의 객원기자 역시 그 동호회의 회장(시숍)을 지냈고 지금은 고문으로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취재에 동호회 사람들을 대동하고 기사에 그들을 소개한다. 그는 취재라는 미명아래 시장(투어)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란 말인가? 기사와 현실과 사설이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히려 ‘혼란’은 발행인과 스쿠바다이버가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탓하는 형상이 아닌가?
----------------------------------------------------------------------------------------
출처: 한국강사협의회(http://scub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