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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덕암 (김영주)

 

2012년 런던 올림픽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며 다양한 육상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육상 경기는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달리고, 뛰고, 던지는’ 동작 없이 이루어지는 스포츠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보다 빨리!(Citius), 보다 높이!(Altius), 보다 힘차게!(Fortius)의 올림픽 표어도 결국은 육상의 정신과 같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숫자가 가장 많은 종목도 육상으로, 무려 47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육상 경기라 하면 100m, 200m, 마라톤 등의 달리기 외에 멀리뛰기, 높이뛰기,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등을 통틀어 말한다.

육상 경기의 유래는 고대 5종 경기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 5종 경기는 달리기, 멀리뛰기,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레슬링으로 고대 병사들의 종합적인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런 고대 5종 경기에는 원시 사냥의 흔적이 남아 있다.

먹잇감을 쫓으려 달려야 하고(달리기), 개울을 훌쩍 뛰어 넘어야 하고(멀리뛰기, 높이뛰기), 돌을 던지거나(포환던지기, 해머던지기, 원반던지기), 창이나 화살을 날려야 한다(창던지기).

육상은 ‘인간이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흔적’이고, 인간이 사냥을 안 해도 먹고살 수 있게 되자 스포츠로 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부터 기원후 393년까지 1169년 동안 그리스 제우스 신전에서 5일간 펼쳐졌다. 첫째 날에는 개회식을 열고, 제우스 신을 기리는 제사를 지냈다.

둘째 날에는 약 700m 길이의 U자 트랙 경기장에서 5종 경기가 열렸으며,

다음날부터는 그 외의 육상 경기가 펼쳐졌다.

마지막 다섯째 날에는 완전 무장을 한 남자 선수들의 중거리 경주가 벌어졌다.

고대 올림픽 종목은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열리면서 시대에 맞게 바뀌게 된다.

오늘날 육상 경기는 크게 트랙 경기, 필드 경기, 도로 경기, 혼성 경기 4가지로 나뉜다.

우리가 잘 아는 달리기는 100m, 200m, 400m등의 단거리와 800m, 1500m의 중거리, 5000m, 1만m의 장거리가 포함된 트랙 경기다.

트랙을 벗어나 도로를 달리는 마라톤은 도로 경기에 속한다.

그런데 100m, 200m 등 딱 떨어지는 거리를 달리는 필드 경기와 달리 마라톤은 42.195km를 달려야 한다. 40km도 아니고 42.195km가 된 이유가 있을까....

마라톤의 유래는 전설로부터 시작된다.

기원전 490년 아테네군 1만 명과 페르시아군 10만 명이 아테네 동북방으로부터 40.2km 떨어진 마라톤 평원에서 대전투를 벌였다.

아테네군은 격전 끝에 페르시아군을 물리쳤고,

이 기쁜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라는 병사가 아테네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이디피데스는 아테네에 도착해 수많은 시민들에게 “기뻐하라, 우리가 정복했다.”는 한마디를 전하고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

페이디피데스가 달린 거리가 42.195km라서 이를 기리기 위해 마라톤 거리로 정해졌다고 전해지지만,

알고 보면 이 이야기는 전설에 불과하다.



[그림] 마라톤 경주로에 세워진 페이디피데스의 동상.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마라톤 전투를 자세히 기록한 헤로도토스의 『역사』 책은 물론, 플루타르크가 기록한 마라톤 전투에도 위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 전설은 기원후 2세기 때의 작가 루키아노스에 의해 처음 언급됐는데,

아테네까지 달려간 병사가 페이디피데스라고 하는 것도 의문이 많다.

페이디피데스는 원래 페르시아군이 마라톤 평원 근처 해안에 상륙하자 아테네군 사령부가 241.4km 떨어진 스파르타에 긴급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보낸 병사의 이름이다.

그는 꼬박 이틀 동안 달려 원병을 요청했지만 스파르타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틀 동안 241.4km를 달려가서도 끄떡없었던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평원에서 전투가 끝난 뒤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아테네까지 40km를 달린 뒤 쓰러졌다는 것도 의문의 여지가 많다.

일부에서는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평원에서 스파르타까지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달렸던 내용이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가설이 맞는다면 마라톤 거리가 241.4km가 돼야 한다.

아무튼 아테네에서 열린 제 1회 근대 올림픽에서는 이 마라톤 전쟁의 이야기를 스포츠로 승화시켜 마라톤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마라톤 경기의 첫 우승자는 그리스의 목동 스피리돈 루이스(Spiridon Louis)였다.

국왕은 루이스에게 금메달과 우승자의 증서, 그리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루이스는 물을 나르는 데 필요한 좀 더 좋은 마차와 힘센 말만 받겠다고 했을 뿐이다.

한 초콜릿 공장에서는 그에게 평생 무료로 초콜릿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으며,

결혼하자는 청혼도 많이 받았다.

그만큼 당시 마라톤 우승자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렇다면 마라톤 거리가 42.195km로 결정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의 거리로 결정된 것은 1908년에 열린 제 4회 런던 올림픽에서부터다.

처음에는 출발 지점을 주경기장으로 해 총 42km를 달리기로 정했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영국 황실 사람들이 “마라톤 출발 모습을 보고 싶다. 출발선을 윈저궁 황실 육아실의 창 아래로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거리가 195m 더 늘어났고, 이후부터 42.195km로 굳어졌다.

그러나 1912년 스톡홀롬 올림픽 마라톤 거리는 또 변해 40.2km였고,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 땐 42.75km나 됐다.

이렇듯 올림픽 마라톤 코스 길이는 주최 측의 사정에 따라 달라졌다.

결국 1924년 파리 올림픽 때 ‘1908년 런던 올림픽 때를 기준으로 하자’는 의견이 채택돼 현재의 42.195m로 확정됐다.

당시 영국은 모든 분야에서 영향력이 가장 강력했기 때문이다.

육상 경기 중 최장시간이 소요되는 마라톤은 인간의 지구력 한계를 시험하는 극한의 스포츠다.

총 거리도 길지만 트랙이 아닌 도로를 달리는 경기이기 때문에 더위나 주변 소음, 완만하지 않은 경주로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린다.

오는 8월 12일 남자 마라톤 경기가 열린다.

전쟁에서 시작해 이제는 만인이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 잡은 마라톤.

마라톤에 얽힌 역사를 알고 보면 경기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글 :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 전문 기자

 

 

매일 된장찌개 사먹는 노인은 날마다 재래시장
어귀에 있는 돼지갈비 연탄구이집을 찾아갑니다.
저녁 6시경 아직 손님이 붐비지 않을 때
구석 자리에 앉아 혼자 된장찌개를 먹습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 홀로 식사를 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쓸쓸하고 초라해 보이지만


노인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개를 들지 않고 식사를 합니다.

 

노인이 식당을 처음 찾아온 것은 지난 초겨울 어느 날
해질 무렵이었습니다.

 

돼지갈비를 주로 파는 집을 찾아와
노인은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40대의 주인 여자는 연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생각이 나
장삿속과는 거리가 먼 대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메뉴에는 된장찌개가 없지만 고기를 먹고 난 손님이
식사를 할 때 내는 게 있다고 하자
그거면 된다고 노인은 굳이 부탁을 하였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 주인 여자는 노인에게 식사비를
받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식당 메뉴에 있는 변변한 된장찌개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서였는데 노인은 3000원을 내밀며
연탄 2장을 달라고 했습니다.

 

연탄을 건네주자 노인은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는
재래시장 뒤쪽의 산동네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날 이후 노인은 날마다 저녁 6시경 식당으로 내려와
된장찌개를 먹고 연탄 2장을 손에 들고 산동네로 올라갔습니다.

 

하루 한 끼의 식사만 하고

두 장의 연탄으로 난방을 해결하는
노인이 안쓰러웠지만 내색을 하는 게 외려
노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것 같아 주인 여자는
다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식사를 끝낸 노인이 주인 여자에게 작은
메모지 한 장을 건넸습니다.

 

거기에는 남자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를 확인하고 주인 여자가 고개를 들자
몹시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던 노인이 힘겹게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식당으로 사흘 이상 밥을 먹으러 내려오지 않거든
그곳으로 전화를 걸어주시오.

 

"노인은 오늘도 고개를 숙이고 된장찌개를 먹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 3000원을 내고
연탄 2장을 받아 양손에 들고 산동네로 올라갑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길을 걸어 올라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주인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오늘처럼 내일도 무사히 다녀가시길 비는
마음에 연민이 가득합니다.

 

사흘이상 식당으로 내려오지 않는건

노인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노인이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 아니라
방치당하는 주검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기별을 부탁한 것일 터이니
주인 여자의 마음이 편할 리 없습니다.

 

하루 한 끼 식사와 2장의 연탄으로 연명하는 여생,
젊은 시절에는 보살피고 거느린 사람도 많았을 터인데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누추하고 남루한 여생을 어루만지듯
펑펑 함박눈이 내리는 밤입니다.

= 가슴 아픈 현실을 바라보며 퍼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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