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스토리 옮김)

<<쉬리님이 보내주신 사진>>


[사형수의 아내]

세상이 싫습니다... 신이란 것이 존재 한다면...

원망하고 또 원망합니다... 행복한 삶을 살고있는...

우리가 무슨 그리 크디큰 죄를 지어서...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기에 감히 글을 띄웁니다

내나이 열여덟 살에 양갈래 긴머리의 학생이었죠...

친구의 애인을 빼앗았습니다... 나쁜짓이죠... 하지만

서로 처음봤을 때 느낀 것이 우연 아닌 필연이었다고...

어둠의 세계에 있던 그는 남들이 말하는

건달이란 사람이었어요...

매일같이 만나 놀러다니고 쇼핑하고 즐거웠고 행복했어요...

저는 후회않지만...

오빠 만나기 전까지 순진한 여고생이었어요...

나의 생활은 바뀌어 가고 있었죠...

처음으로 너무나 사랑한단 이유로 몸을 허락했어요...

술을 많이 마셔 비틀거리는 날 부축해 간 곳은

화려한 네온싸인에 둘러쌓인

커다란 모텔...

그곳을 오빠와 껴안고 들어가는 모습을 정말 재수없게도

학교 선생님께 목격을 당했죠...

바로 퇴학이란 상상할 수 없었던 처벌이 내려지고...

집에서 받는 손가락질에 감당치 못하고 집을 뛰쳐나와

그때부터 어린 나이에 오빠와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행복했어요...

가끔 집이 그립기도 했지만...

너무나 행복하게 해줬어요 나의 오빠가...

큰집에 좋은가구들... 잦은 쇼핑... 철이없었죠...

심통도 많이 부렸죠... 늦게 들어 올때도 많구...

새벽에 자다가도 전화받구 나가고...

하지만 사랑한다는 이유로 용서했었죠...

스무살이었어요... 몸이 이상해 병원을 찾았죠...

병원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 산부인과로 가보세요! '

어려보여서 인가봐요... 임신이더라구요... 임신 7 주...

좋았어요... 당연히 울 오빠도 좋아할줄 알고 선뜻 얘길는데...

오빠가... 날 보고 항상웃고 있는 오빠가

어두운 표정을 하고 나에게 내아기를

아니 우리의 사랑하는 애기를 지우래요...

절망스러웠죠... 오빠의 얼굴이 너무나 미워보여

방으로 뛰쳐 들어오니 오빠가 따라 들어와 나를 살며시 껴안으며

' 애기가 애기를가졌다니... 요만한 체구로... 신기하네...

울지마... 아직은 오빠가 안될것같아...

애기하고 나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아직은... 이해해줘... 애기야...

삼년만... 기다릴 수 있잖아... 미안해... 울지마... '

하며 가늘게 떨리는 오빠... 오빠 역시 슬펐던 거예요...

같이 울었죠... 아주 많이...

그러면서 사랑을 확인하고...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행복했죠

나를 보는 그의 한결함에...

내가 느끼는 그의 대한 사랑에...

하지만 불안함이 자꾸 밀려오기 시작한것이...

잦은 병원 출입이었어요...

그것도 항시 배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

저러다 죽으면 어쩌나... 무서운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이 자꾸 뇌리를 스치더라구요...

그래도 항상 웃는 오빠...

그래도 그와의 행복함음 꺼질줄 몰랐죠...

같이 생활한지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을때...

난 두번째아기를 가졌었죠... 무서웠어요...

또 지우라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근데요... 정말 좋아하면서 애들같이 좋아 하면서

내손을 잡으며 내배를 안으며...

' 애기야... 오래 기다리게해서 미안하고 또 고마워...

오빠 이제 준비됐다... 애기는 뱃속에서 잘 키우고...

배많이 나오면 꽃보다 이쁜우리 애기 드레스 못입으니까

빨리 결혼하자... 그리고... 오빠 이제 이런 일 안할거야...

우리 여보야 걱정되니깐... ' 말 못하고 울었어요...

행복해서 세상을 전부다 가진듯 태양을 가슴에 안은듯

넘 좋아서 7년이란 세월동안 한결같이 나만 바라보며

사랑해준 오빠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오빠는 고아예요... 형이 있다는데 찾질못하고...

먼저 우리집엘가 오빠가 그리고 내가 용서를 빌고 작은 사업을 한다는

말에 형편이 넉넉치 못한

부모님들이 인상이 좋아보인다며

그런 일하는 사람치고 썩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눈이 선하고 예쁘거든요... 웃는얼굴이 예쁘고...

야단은 많이 받았지만 승낙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혼인신고를하고...

제일 행복한 결혼식날 우리집땜에 오빤 장난스레 더 많은 축의금을

꼬맹이 땜에 포기한다며 조그맣게 치뤘죠...

재빠른 진행에 피곤도 한지라 신혼여행은 나중으로 미뤘었어요...

아쉬웠지만...

25살 되던 해에 10월8일날 우리둘의 분신인 아가가

세상의 빛을 보았어요... 오빠를 닮은 사내아기...

좋아서 너무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건가 할 정도로 행복했죠...

오빠가 얼마나 좋아할까...

자기닮아서 투덜대진 않을까...

지방으로 급한일루 가서 미안하다며 하긴했는데 너무 늦는건 아닌지...

그래도 좋았죠... 좋아할 모습을 상상하니...

퇴원을 막 하고 집에 들어가서 아기랑 누워있을때

오빠가 집에 돌아왔어요... 어김없이 ' 애기야...! ' 하며

근데 오빠가 아기를 가슴에 안더니 표정이 그리고 손이 떨리는거예요...

' 왜그래...? 히히 오빠랑 똑같아 '

오빠는 씨익 약간은 어두운 표정으로 웃더니 나에게 ' 힘들었지...

곁에 있었어야 했는데... 애기가 얼마나 아팠을까...?

미안해... 용서해 줄거지...? '

그러면서 날 안는 오빠 숨소리가 이상했어요...

틀렸어요 아주 많이... 근데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죠...

숨기는것이 없는 남자이니까...

삼일인가 지났나봐요...

새벽 2시가 넘어서 술에 만취되여 들어오는거예요...

들어오자마자

날 반쯤감긴 슬픈눈을하고 뒤를돌려 안는거예요

독한술냄새에 속삭이기 시작하는데 난 심장이 그대로 멎어 버리는줄 만 알았죠...

' 지금부터 내가 하는얘기 잘들어~~ 오빠 우리 큰 애기한테...

죽을죄를 졌다... 사실... 오빠는 빨간줄이 좀 많아...

첫번째 애기 지우라고 했을때 사고를 쳤었거던...

근데 운이 참 좋았지... 사람을 써서 집행유예로 해결이 되었어...

그리고 일 그만둔다는 조건 으로 사람을...죽...였...다...

큰액수의 돈도 받고...

근데 어쩌나 나 애기랑 단 하루도 헤어져 있기 싫은데

저쪽에서 날 부르네...

죽이기만 하면된다해서 맘잡고 같이 살아보려고...

그래서 했는데... 인간쓰레기같은 형님이라는 그 개자식이

날 배신했다... '

혼미해져 가는 정신에 마지막 처음들어보는 오빠의 무서운 말은

잘 듣지 못한것 같았어요... 정신을 차렸죠...

내손을 잡고 숨죽여 울고있는 오빠... 미칠것 같았어요...

' 오빠!! ' 얼른 눈물을 훔치고 웃더라구요...

' 그럼 어떻게 되는건데...? '

' 조금만 기다려... 7년을 기다려 주었잖아

착한 울 애기가... 5년만 기다리면 되...

그럴수 있잖아...! 그치? '

난 한없이 울며 고개만 끄덕였죠...

나 이제 어떻해야 하죠... 이번달 16일 마지막 재판에

오빠 내 사랑하는 오빠가... 사형선고 를 받았어요...

난 거의 실성한 사람이었어요...

마지막면회가 될지모르겠어요... 어제 다녀왔는데...

무척이나 수척한모습 영진이를보고 나를보고 웃는거예요...

바보같이...

매일 웃기만해요... 팔년이란 세월동안...

' 왜이렇게 말랐니...? 많이 먹어야지 영진이도 잘 자라지...애기야

미안하다... 사랑하는거 알지...? ' 그게 마지막 말이었구요...

뒤돌아 힘없이 눈물흘리지도 않고 뒤도 한번 보지않고 걸어 들어 가더라구요...

눈물이 얼굴에 범벅이 되어 집에 돌아와 화장대에 앉아 거울을 보았죠...

오빠의 슬픈얼굴이 겹쳐지는것 같아 가슴이 미어지는것 같아요...

이제는 또 다시 면회를 가지 말아야 하나...

슬픈얼굴을 볼 용기가 없거든요....

서랍을 열었어요... 수감전 드라이브하며 동해 서해

여기저기를 사흘간 드라이브만 하고 먹고 자고...

내내 사진을 몇장찍 었었거든요...

사진을 꺼내어보려고 하는데 오빠의 짧은 편지가 있더라구요...

'사랑하는 내 아내에게.. '

정아야...! 세상에 태어나 너를 만나 가장 행복했고

너를 만질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었다

슬플때는 네가 아플때 몸이 많이 약해 많이 아플때

못난 오빠를 여태 사랑해줘서 고마웠다

다음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면

난 애기의 동생이 되고 싶구나 헤어지지 않게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가슴아팠을 때가 언제인줄

아니... 바로 지금 이순간 널 볼수없는 곳에 가야 한다는것...

너를 만질수 없다는것...

사랑했고... 위에서도 사랑해줄게... 아프지말아라...

신이있다면 빌고 싶습니다 어두운생활에 접해

좋지않은 삶을 했지만 죽기에는 너무나 착한

우리 오빠... 살려줄수 없다면 영혼이되어...

내가 느낄수 있게...

사랑하는 우리 오빠야... 항상 잘웃는 오빠...!

눈감을 때에도 날보듯 그렇게 웃어야되... 알았지?


 

우리

한국인이라면

꼭!!!

이런 마음 잊지 말고,

깊이 깊이 간직하며 살아요.

그래서 엉터리같은 세상이 안되길.......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꼭 읽어 보세요...

.

.

전세계 감동시킨 '푸껫의 의인'

 

"눈 앞이 캄캄하고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본 세상은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간 피피섬은 처참했습니다.

살았다는 안도감보다는 사방에 쓰러진 여행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음하고 있는 여행객들을 닥치는 대로 보트에 태웠습니다.”

태국 푸껫 인근 피피섬에서 ‘히포다이버스사’ 등 스킨스쿠버 업체 2곳을 운영 중인 하문수 사장(48)은 29일 전화통화에서 해일이 덮친 ‘26일의 기억’을 되묻자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히포아저씨’로 불리는 하사장은 26일 오전 8시30분 푸켓에서 스킨스쿠버를 경험하고 싶은 한국인 여행객 7명을 태우고 피피섬으로 떠났다.

평소 2시간이면 도착하는 피피섬.

하지만 이날은 한국인 여행객 7명을 태운 배의 출발이 지연됐다.

여행객들의 늑장 때문이었으나

결국 이같은 게으름이 여행객은 물론 하사장의 생명을 건지게 했다.


오전 11시께 배가 도착하자 이미 섬은 아수라장이 된 이후였다.

해안에는 의식을 잃은 여행객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하사장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태워 날랐다.

파도가 만만치 않게 일었으나 그의 ‘생명 살리기’는 이튿날까지 이어졌다.

일부는 피피섬 인근에 구조나온 태국 군함으로 옮겼다.


그러나 그마저도 넘쳐나 일부는 부인 김경인씨(48)가 운영하는 푸껫 시내 식당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제 그는 피피섬 재건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낯선 ‘손님’들로 북적대는 한식당을 뒤로 한 채

그는 이날도 피피섬으로 출근했다.

직원 15명과 함께 시신 수습은 물론 쓰러진 주택 등을 보수하는 데

작은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운영하는 스쿠버가게 2개는 해일의 타격을 이기지 못하고

간판만 남았으나

그의 ‘일’은 이제 피피섬 재건사업이 됐다.

그래도 하사장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처음 푸껫에 왔을 때도 맨손이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새로 시작하면 됩니다.”

경향신문
〈오승주기자 fai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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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여기를 방문하여 다이빙을 하였을 때 찍은 사진으로,

제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진 몇장 올립니다.

히포다이빙샵

 

츠나미로 인해 이 샵의 전경은 온데 간데 없다고 합니다.

 

히포의 하문수, 사장

 

이글의 주인공이자 "히포다이빙샵"의 사장이신 하문수씨 이십니다.

 

브리핑저녁식사

 

 

 

 

 

 

 

 

 

 

 

 

 

 

다이빙하기 전에 브리핑을 하고 있읍니다.         우리부부와 저녁식사를 같이 했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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