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4X400m 릴레이 1라운드에서 피스의족을 한 토리우스(남아프리카 공화국)가 첫 주자로 스타트를 하고 있다.

 

 

[OSEN=대구, 민경훈 기자] / rumi@osen.co.kr 

 

 

장애인으로서 사상 처음으로 육상 메이저 대회에 출전해 전세계 스포츠팬들에게 감동을 안긴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남아공)가 결승 무대서도 뛰는 새 역사를 쓸 수 있을 지에 뜨거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피스토리우스는 1일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600m 계주 예선에서 남아공 대표팀의 첫 번째 주자로 나서 팀이 조 3위로 결승에 오르는 데 힘을 보탰다.

2분59초21의 남아공 신기록까지 세웠다.

남자 400m에서 준결승까지만 올랐던 피스토리우스는 결승행이 확정된 후  

"정말로 기쁘다.

남아공 신기록을 세운 팀에 내 이름이 들어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지금 내 위치에 오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축복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라는 감동적인 소감을 밝혀 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세계 최강 미국, 자메이카 등 8개 팀이 나서는 남자 1660m 계주 결승은 2일 오후 9시15분 시작된다.

남아공은 미국(2분58초82), 자메이카(2분59초13)에 이어 전체 3위로 올라 메달까지도 바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종아리의 뼈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후 11개월이 되었을 때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다.

그뿐 아니라 6살이 되던 해에는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 되어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허나 훌륭하신 어머니 였던 것 같다. 그에겐 정신적 안식처이자 좋은 친구였다고 하니...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늘 그에게 말했다고 한다.

"형과 네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다리만 없을 뿐이다. 남에게 동정 받지 말아라..."

그가 15살때 어머니는 돌아가셨는데, 그의 오른 팔에는 어머니의 태어나신 날과 돌아가신 날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의족을 달고 새 인생을 시작한 피스토리우스는 18세 때 럭비를 하다가 다친 뒤 재활을 하다가 육상에 매료, 탄소 섬유로 만든 보철 다리를 달고 경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남자 100m와 200m, 400m를 모두 석권한 피스토리우스는 비장애인 무대에 도전하기로 결심, 여러차례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노렸고,
여러 논란을 뚫고 스포츠중재재판소(CAS)까지 간 끝에 비장애인과 한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고,

7월20일 열린 이탈리아 리냐노 육상대회 남자 400m에서 이번 대회 A기준 기록을 통과해 출전권을 얻는데 성공했다.

학생시절 부터 운동을 했던 피스토리우스는 "자책한다고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

"웃음과 유머가 나의 컨디션의 비결이다." 등의 말을 할 정도로 긍정적인 사고를 하였고,

그것이 그의 오늘이 있게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남자 1600m 계주 결승에 출전하지 않는다.
그는 2일 오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남자 1600m 계주 결승 대표 명단에서 제외됐다. 아쉽다"는 글을 남겼다.

남아공 대표팀의 마그다 보타 선수단장은 이날 회의에서 피스토리우스를 1600m 계주 결승 주자 명단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면서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피스토리우스 대신 남자 400m 허들 강자 L.J. 반 질(26)이 남아공 대표로 나서게 됐다.

반 질은 이번 대회 남자 400m 허들에서 동메달을 땄다.

피스토리우스의 1600m 계주 출전이 불발되면서 감동 드라마를 쓰지 못하고,

그의 '아름다운 도전'은 막을 내리게 됐다.


남자 1600m 계주 예선에서 두번째 주자 모가웨인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있는 모습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광주CBS 유영혁 기자]

45년전에 교복값을 갚지 못한 한 남성이 교복집 사장님의 찾아달라는 편지와 함께 100만원을 보내와 감동을 주고 있다.

20일 전남 장성군에 따르면 지난 18일 군청으로 '45년 전 교복집 사장님과 양복점 사장님을 찾아달라'는 사연의 편지와 함께 100만 원이 든 우편물이 배달됐다.

편지를 보낸 이는 서울에 사는 박모씨로 편지에는 박씨가 1966년께 장성에 1년 동안 머물면서 있었던 일들과 지난 잘못을 반성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심정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박씨는 당시 황룡면 황룡리의 조그만 학교에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아이들을 모아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면서 여름 교복을 단체로 맞췄는데 말 못할 사정으로 교복점에 대금을 완불하지 못한 채 장성을 떠났다.

박씨는 도 장성역에서 황룡 방면으로 가는 길 왼편의 한 양복점에서 여름양복을 맞추고 이 역시 대금을 지불하지 못했다.

박씨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 아이들 교복을 만들어 준 사장님 이름도, 상호와 장소도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며 "송구하지만 이 두 분을 찾아 각각 50만 원씩 전달해 줬으면 고맙겠다"고 전했다.

또 "이분들께 죄송한 마음으로 10년 전에 장성을 찾았지만 모든 것이 변해서 찾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며 "지금쯤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쯤 되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 관계자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이런 분이 계신다는 사실에 코끝이 찡하다"며 "현재 편지속 돈의 주인을 수소문해 찾고 있으며,

찾지 못할 경우 사연을 주신 분의 뜻에 따라 불우이웃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yuyh@cbs.co.kr

 

 
 

- - 풀빵  엄마 - -

 

 

 

 

 

 

 

그리고 제작년...

풀빵엄마가 7월 30일에

결국 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엄마 엄마 우리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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