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환단고기」(桓檀古記)의 작자는 누구??

 

환단고기는 네 권의 책을 단행본으로 묶이어 전하고 있다.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각 4권의 저자 이름은 다르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도 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다르다.

그리고 이들 저자 중에는 이암, 이맥, 범장처럼 다른 사료에서도 그 행적이 확인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단군세기와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썼는 가에 대한 기록은 다른 사료에는 나타나 있지 않고 있다.

또한, 저자들 중에는 다른 사료에서 그 사람의 행적을 찾을 수도 없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다른 사료에 이들의 확실한 행적이나 환단고기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면,

환단고기를 다루는 정도가 훨씬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은 1911년 네 권의 책이 한 권으로 묶여서 '환단고기'라는 단행본으로 나왔다.

 

책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신시개천 5808년 곧 광무 15년 신해 5월 광개절날에 태백 유도 선천 인경 계연수가 묘향산 단굴암에서 쓰다."

이 내용을 살펴본다면,

 

1911년 네 권의 책을 묶은 사람은 계연수 이고,

환단고기를 필사한 장소는 묘향산 단굴암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계연수가 펴냈다는 환단고기의 원본은 전하고 있지 않고 있다.

계연수의 행적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다만 짐작하는 것은 대종교 지도자이며,

독립운동가였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환단고기는 이후 70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 이유립이라는 인물에 의해 세상에 공개된다.

 

이유립은 단군사상을 연구하는 단단학회의 회장을 지낸 재야사학자였다.

1979년 발표된 환단고기는 우리 나라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일본인 손에 넘어가서 새로이 번역되면서,

그것이 역수입되어 관심을 받게 되었다.

환단고기에 대해 나름대로 속시원하게 말해 줄 수 있는 이 책의 공개자인 이유립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 참고 문헌 :『환단고기』, 계연수. 코리아북스

3,.「환단고기」의 상고사와 단군신화의 비교

 

환단고기에서 가장 논거의 대상이 되는 부분은 단군고조선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단군신화와는 완전히 그 방향을 달리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과연, 단군에 대한 내용을 신화로써 인정할 것이냐,

아니면 실제 역사로써 인정을 할 것이냐의 문제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우리는 몇몇 역사 기록을 토대로 신화 쪽에 무게를 두어왔다.

하지만, 환단고기에서는 실제 역사로써 광범위하고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구체적인 비교를 하기 이전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존의 단군신화의 내용을 정리해 보겠다.

단군신화는 크게 3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첫째는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신시를 열게 된 연원을 밝힌 내용이고,

둘째는 환웅이 곰과 결혼함으로써 단군왕검을 낳게 되는 과정을 밝힌 내용이다.

셋째는 단군왕검이 조선을 개국하였다는 내용이다.

기존의 단군신화에서 '환인과 환웅'을 인간이 아닌 단지 그 이상으로 보고 있다.

 

바로 신화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써 상징성설화성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환단고기에서는 이 단어들의 명칭을 보다 구체적으로 관직이나 제사장의 명으로 보고 있다.

물론 '단군'도 마찬가지이다.

다음으로는, 환웅이 곰과 결혼하여 단군을 나았다고 했는데,

이 것은 '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당시 토착종족인 웅족으로 환웅이 그 웅족의 딸과 결혼하였다고 환단고기에서는 보고 있다.

 

기존의 단군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 처음 실려 있는데,

그곳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단군이 고조선을 통치한 기간이 1500년이며 수명은 1908세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반해, 환단고기에서는 2천년이 넘게 지속된 고조선을 한 사람이 통치한 것이 아니라 47명의 단군이 통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객관적으로 놓고 봤을 때,

기존의 단군에 대한 기록보다는 환단고기에 실린 내용이 훨 자연스럽다.

한 사람이 그렇게 긴 시간을 통치한다는 것과 더구나 천년이 넘게 살았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기에 단군에 대한 기록을 신화로 받아 들였던 것 같다.

하지만, 환단고기가 정확한 사료로서 인정이 된다면,

단군신화는 구체적인 자료를 근거로 역사적 사실로 남게 된다.

 

그렇다 문제는 그것이다.

'환단고기'란 책이 역사적 사료로서 인정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 참고 문헌:『환단고기』, 계연수. 코리아북스

 

2.「환단고기」의 내용

 

대표적인 환인, 환웅, 단군시대들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환국시대

 

환국시대환국은 천산 동방으로 '동서가 2만리, 남북이 5만리'의 방대한 문명의 대국으로 파내류국이라고도 하였다.

 

환국을 통치한 분은 안파견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만인이 아버지'란 뜻의 안파견 환인은 초대 환인으로서 환국을 다스렸다.

 

여기서 환인이란 통치자와 제사장의 관직명이다.

당시 환국은 12환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안파견 환인은 자신의 형제 9인으로 하여금 각 환국을 나누어 다스리게 하였으며,

 이를 통칭하여 '광명의 제국'이라 불렀다.

 

환국시대의 지도를 상상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배달국시대

 

다음은 배달국시대이다.

 

환국의 정신을 계승한 분은 후기 환국 말경에 당시 '자식들의 마을 (서자부)'의 수장이었던 환웅으로,

환웅은 야만 생활을 하던 인간을 널리 구제하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에 환인께서 중국의 감숙성에 있는 삼위산과 동방의 태백산을 살펴보고 태백산으로 가고 싶다는 환웅의 뜻을 허락하여 태백산으로 파견하였다.

이 때 환인천제께서는 제세 핵랑군이라 불린 문명 개척단 3천명과 천부인 3개를 주고,

개천입교, 홍익인간, 제세이화를 만세 자손의 흥법으로 하라는 명을 내렸다.

환웅께서는 이를 배달국을 여는 개국의 창시 이념으로 하였다.

 

당시 환웅의 동방 백두산 문명 개창시에 송화강, 백두산 일대에는 토착민인 웅족호족이 살고 있었는데,

원주민은 호족이었고, 이주민은 웅족이었다.

호족은 사납고 약탈에 능했으나 점차 이들은 웅씨족에 의해 융합되었다.

웅의 웅은 검이며 검은 신으로 불리었다.

또한 호는 불로, 불은 시로 변하였다.

그래서 두 민족의 협력 건국으로 인하여 환웅께서 수도를 신시라 하고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하였다.

 

신시 배달국 시대의 통치자인 환웅은 '큰 스승'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을 모신 법당을 대웅전이라 하는데 이는 거룩한 스승을 모신 성전이라는 뜻이다.

환웅이란 당시 광명 민족을 이끌어 주던 거룩한 스승이라는 뜻이다.

 

배달국 시대의 지도와 이동 경로는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배달국의 말기 환웅께서 웅씨 왕녀와 결혼하여 낳은 분이 초대 단군 성조이다.

단군 성조는 신묘년(BC 2370) 5월 2일에 탄생하였다.

 

신인의 덕으로 원근에서 외경하여 14세 되는 갑진년에 웅씨왕으로부터 비왕으로 임명받아 24년간 대읍국의 국사를 섭정하였다.

38세 되는 무진년에 단군으로부터 돌아와 마지막 환웅천황께서 돌아가시자 아사달에서 천제로 추대되어 제위에 올랐다.

 

단군왕검은 제사장과 통치자를 겸임한다는 의미의 관명이다.

단군 성조께서는 환인과 환웅 천황의 정통 정신을 그대로 이어 받아 옛 신교정신을 부흥시키고, 동방 문명의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였다.

그리고, 황아/양자강 유역, 만주 등의 동아시아 대부분을 통치하였다.

전 영토를 삼한으로 나누어 부단군 격인 왕을 두어 다스렸다.

만주와 중국 북부를 관할하던 진한은 단군의 직접 통치를 받았으며,

중국 동부는 번한,

한반도와 일본은 마한이 통치하였다.

 

단군조선은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환단고기'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 왔던 역사 지식을 완전히 뒤엎는 사실들을 담고 있다.

 

그곳에는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를 통한 위대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과거에 우리가 중국 대륙과 시베리아까지 다스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그곳에는 새롭고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 놀라우면서, 믿기 어려운 몇 가지 기록을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환단고기에는 우리의 역사 시작을 일 만년 전으로 잡고 있다.

우리가 단군 조선을 기점으로 반만년이라 이야기를 하는데,

환단고기에서는 단군 이전에 '환웅천황'의 역사 시대가 18대 1565년 동안 있었고,

또 그 이전에 '환인천제'시대가 7대 3301년이 있기에 우리의 역사는 9천년을 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영토를 이야기 할 수 있겠다.

'환단고기-삼성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파내류산 아래 환인의 나라가 있는데 천해 동쪽 땅이다. 그 땅의 넓이가 남북 5만리 동서 2만 여리에 이른다."

이 문구를 근거로 그 당시 우리민족의 영토를 짐작해 본다면,

파내류산은 지금의 시베리아 중앙고원에 해당하고, 천해는 바이칼 호수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아시아 대륙을 넘어 지금의 러시아에까지 미치고 있다.

말 그대로 남북 5만리와 동서 2만리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환국은 열 두 개의 나라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 중에 수밀이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민족의 위대성

 

이 수밀이국을 일부에서는 고대 수메르로 해석을 하는데,

수메르족은 세계의 4대 문명 중에 하나인 메소포다미아 문명을 일으켰던 민족이다.

어느 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수메르족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자생한 민족이 아니고 동방에서 이동해 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문자를 가지고 왔는데 바로 태호복희가 쓰던 팔괘부호와 흡사한 문자를 가지고 서쪽으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민족은 바로 우리라는 소리다.

 

 

 

  

다음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역사에서 중국에게 문명의 대부분을 받아 왔다고 배워 왔다.

 

그런데, 환단고기에는 그 중국의 역사가 우리 민족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환단고기-태백일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5대 환웅의 막내아들은 태호복희라고 한다. 태호복희는 삼황오제 중 첫 번째 인물로 우사라는 관직에 있다가 진으로 갔다."

태호복희는 중국의 역사에서 중국의 시조로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바로 그 사람이 환웅의 아들이었다는 기록이 환단고기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환단고기'에는 놀라운 기록들이 많다.

 

 

 참고 문헌 :『환단고기』, 계연수. 코리아북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