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환단고기」(桓檀古記)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논쟁


ㄱ.「환단고기」는 사료로서 무가치하다는 주장

 

사료로서 무가치를 주장하는 쪽은 대부분 학계이다.

 

그들은 먼저 환단고기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음을 들고 있다.

환단고기 저자들의 행적이 확실치 않으며,

그들에 대한 기록이 다른 사료에 자세히 나와 있지도 않고,

어느 곳에도 그들이 환단고기를 지었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환단고기를 단행본으로 만든 계연수의 행적도 알 수 없으며,

70년 후에 이유립이 책을 발간하였는지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책의 출처가 정확하지 않기에 학계에서는 사료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부정 이유인 듯 하다.

 

다음은 환단고기의 책에서 발견되는 근거들이다.

 

환단고기에는 이런 문장이 기록되어있다.

"백성들과 더불어 산업을 다스리니 한 사람도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이가 없었다."

"학교를 세워 학문을 일으키니 문화가 크게 진보하여 명성이 날로 드러났다."

이 문장은 단군세기에 나오는 부분이다.

 

단군세기는 고려시대 이암이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쓰인 '산업, 문화'같은 용어는 근대에 등장한 단어로 고려시대에 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단어'국가, 인류, 전세계, 남녀평등'이란 말이 환단고기 곳곳에 등장하는데,

이런 단어들은 고려와 조선시대의 단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환단고기는 사료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환단고기를 인정하지 못하는 근거는 또 있다.

그것은 다른 책을 베낀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환단고기의 기록 중에는 많은 부분이 다른 사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환단고기에 기록된 단군조선시대 호구가 1억 8천만 구로써, 인구로는 9억이 넘은 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인구통계표가 천만을 넘지 못하는데,

너무 무리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러한 근거들로 인하여 환단고기는 학계에서는 찬밥신세다.

아무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ㄴ.「환단고기」는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는 주장

 

사료로서 가치를 주장하는 쪽은 주로 재야사학계이다.

 

주장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고조선의 영역에 나타나는 비파형 동검의 출토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 있다.

 

마지막으로는 환단고기에 나타난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들이 과학적으로 사실로 판명이 된 것이다.

 

먼저, 환단고기를 토대로 고조선의 영역을 추정해보면,

지금의 북경에서부터 만주의 전지역과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한 시대의 영토를 추정하는 방법 중에는 문헌에 나타난 기록과 그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는 지역을 참고로 추정하는 방법이 있다.

 

청동무기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대표적인 무기로,

당시 지배층의 독점물로써 중앙에서 만들어 지방에 공급하였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같은 청동기가 사용된 지역은 한 통치집단에 의해서 지배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비파형 동검이 지금의 북경지역, 만주, 한반도 전지역에서 출토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고조선의 영토는 북경지역, 만주, 한반도 전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환단고기에서 이야기하는 고조선의 영토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에 '수서령'이란 부분이다.

수서령은 조선시대 세조와 예종, 성종 때 팔도 관찰사에게 명령해서 옛부터 전해져 온 희귀서적을 전국에서 거두어들인 일이다.

 

지금은 전하지 않으나, 이 수서령이 내려진 책 중에서 환단고기에 실려있는 책과 제목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삼성기'이다.

수서령의 대상이 되었던 책이 환단고기의 제목으로 나타나는 것은 계연수가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책들을 참고하였다는 근거를 낳게 된다.

 

○ 참고 문헌 :『환단고기』, 계연수. 코리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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