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귐에 있어 상대방의 성격이나 사람 됨됨이를 알려 하면 함께 여행을 떠나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여행이란 우리를 숨김없이 솔직하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가 보다.

 

평소에 얌전하게만 보이던 사람도 여행길에만 나서면,

더 이상 자신의 성격을 숨기지 못하고 거친 행동을 보이고,

한없는 욕심에 불평만 늘어 놓고,

사사건건 어디로 튈지 몰라 여행 내내 다른 사람까지 불안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변함없는 친절을 베풀고 예의 바른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항상 밝게 만들어 줘,

여행 후에 더욱 가까이 지내고 싶게 만들어 주는 사람도 있다.

 

하물며 스쿠버 다이빙이라는 공동 관심사를 가지고 여러 사람이 함께 떠나는 여행에서의 동반자는 매우 신경 쓰이는 존재이다.

이렇다 보니 다이빙 여행은 마음에 꼭 드는 사람끼리 모여 떠나거나,

현지에서도 다른 팀과는 잘 융화가 안 되는 조금은 폐쇄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평소 눈부신 활약이 두드러지는 다이빙계 유명 인사이자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와 한번쯤 함께 다이빙을 해보며 한수 배운다는 자세로 그 열정을 느껴보고 싶은 희망은 다이버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 봄직하다.

이번 제주도 취재 여행에서 필자 역시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과 훌륭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미리 기획하고 가지는 않았으나 나선 김에 기필코 한국의 자연탐험 기사거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래도 떠나기 전에 믿는 구석이 생겨나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다름 아니라 수중 생태계 안내로 유명한 서귀포 태평양 다이빙센터에 너무나 잘 알려진 수중 비디오그라퍼인 장원준 감독과 김동식 감독이 내려와 매일 촬영에 임하고 있다는 소식을 입수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기대는 어긋나지 않아,

색다른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야간 다이빙을 실시하겠다는 전화를 받고 다른 취재는 일단 하루를 미룬 후 서귀포로 차를 몰았다.

우선 자연탐험 소재를 찾았다는 기쁨보다는 그야말로 이 분야 최고의 다이버들과 함께 다이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더욱 마음이 설레었다.

현장에 도착하여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촬영 계획을 들어 보니 잠수시간은 물때에 맞춰 밤 9시이며 수심은 무려 36미터라는 말에 야간잠수에 이 수심은 흔치 않은 경우라 피사체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흔히 대왕 말미잘이라 불리는 ‘모래해변 말미잘’ 주변에 창오징어가 알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밝혀볼 목적으로 야간 촬영을 시도해 본다는 말에 저녁식사도 거르고 수중촬영준비를 서둘렀다.

31% 나이트록스에, 카메라는 광각촬영 장비를 준비한 후 밤바다를 가르며 태평양 다이빙의 김병일 대표를 비롯하여 장원준, 김동식 감독과 함께 포인트로 향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서로 추구하는 목표가 뚜렷하고 수중세계의 전달자 역할에 관한한 최고의 전문가들과 또 다른 세상의 경이로움을 찾아나서는 그 여정은 짧지만 너무나 행복하였다.

바다에 뛰어들어 조명을 켜고 끝이 없을 것 같은 바닥을 향해 가라앉으니 제일 먼저 갈치가 달려들며 우리를 맞이하였다.

대형연산호가 자생하는 바닥에 도달하니 바위 절벽이 끝나는 지점과 계속 심해로 퍼져나가는 모래지형이 맞닿아 있었다.

 

지금부터는 잠수시간과의 싸움이기에 가시거리 내에서 흩어져 말미잘을 찾아 나섰다.

워낙 경험들이 풍부하여 손발이 척척 맞다보니,

오래지않아 피사체를 찾아내 다시 모여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누가 그랬던가?

비디오와 스틸촬영은 상극이라고…….

 

비디오테이프가 돌아가는 동안은 스트로브 불빛은 화면에 거슬리기에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조금은 여유롭게 수중생물의 생활상을 지켜볼 수 있어 즐거웠고,

사이사이 몇 커트 정도는 셔터를 누를 기회가 있었다.


어쨌든 관찰과 수중 촬영의 결과를 살펴보면 경이로움 그자체로 매우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예전에 본지(2002년 7~8월호 통권 제83호)를 통해 흰오징어의 짝짓기와 산란 장면을 기사화 하였기에 꽤 많은 정보와 사진자료를 가지고 있어 비교 분석이 가능하여,

이번에 관찰된 창오징어와 모래해변 말미잘과의 공생관계로 추정되는 생활사는 큰 차이가 났다.

 

먼저 흰오징어는 수심이 그리 깊지 않은 곳에 자생하고 있는 해조류에 알을 낳는 것에 비해 창오징어는 이번에 촬영된 수심으로 보아 35미터에 이르는 깊은 곳에 산란을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천적으로부터 눈에 띄기 쉬운 모래밭에, 더구나 생물체라면 무엇이든 잡아먹는 대형 말미잘 근처에 알을 심어 놓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았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 보면 전쟁놀이 같이 재미있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어 또 한 번 자연의 신비한 세계를 경험하게 만들어 준다.
우선 말미잘 촉수의 사정거리를 조금 벗어난 곳에 알집 끝을 모래 깊숙이 심어 해류에 떠내려가거나 말미잘에 잡혀 먹히지 않도록 한 지혜가 돋보인다.

또한 모래사장에 자연스럽게 구르다보니 알집 겉에 모래 알갱이나 해초조각이 붙도록하여 적으로부터의 위장술까지 펼쳐 보호를 받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형 말미잘의 곁에 있다 보니 물고기들의 접근을 막아내는 효과도 있어 간혹 말미잘을 못보고 덤비는 물고기는 알집에 도달하기 전 말미잘의 촉수에 걸려 잡혀 먹히게 만들어 제2의 방어막 역할도 됨을 어떻게 하등동물인 오징어가 알고 있을까라는 사실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말미잘 역시 창오징어 알집이 고기 잡는 미끼 역할을 해줘 자신에게 이로울 수 있다는 사실만 놓고 볼 때 새로운 공생관계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흰오징어와 다르게 알의 숫자가 적은 만큼 치열한 약육강식의 법칙에서 살아남기 위해 산란에서 부화까지 걸리는 시간이 10일정도로 매우 빠르게 이뤄지는 점도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별도 달도 뜨지 않아 깜깜한 밤바다 깊은 곳에서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끝없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환경에 순응하며 오랜 세월을 지켜 내려오고 있는 자연법칙이지만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고 파괴만 일삼는 인간사에 견주어 오히려 아름답고 숭고하게 느껴진다.

 

*이번에 장원준 감독과 함께 찍은 창오징어와 모래해변 말미잘과의 공생관계의 화면은 SBS 스페셜 프로그램에 “오징어 서울 상경기”라는 제목으로 1시간에 걸쳐 방영 될 예정이다.*

 

출처: 수중세계

'수중 확대경 > ┃ 수중 생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징어의 서울 상경기(2)   (0) 2010.01.08
오징어의 서울 상경기(1)   (0) 2010.01.07
물개의 펭귄사냥  (0) 2009.12.27
문어 잡아 먹는 오징어  (0) 2009.12.25
펭귄의 방귀!!!   (0) 2009.12.2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