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이 공감하는 징크스가 있다.
바로 ‘세차한 다음날에는 꼭 비가 온다’는 것.
비 내린 뒤 자동차를 장식한 얼룩을 보노라면 ‘세차하지 않아도 되는 자동차’ 생각이 간절해진다.
먼지나 이물질이 자동으로 씻기는 자동차는 언제 나오는 것일까?
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연구결과가 국내 연구진에게서 나왔다.
바로 연꽃잎을 모방한 나노구조 입자다.
연꽃잎은 특이한 구조 때문에 물에 잘 젖지 않는데,
KAIST 양승만 교수가 이 원리를 이용해 미세입자를 대량으로 생산할 방법을 찾아냈다.
과거에도 이런 시도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연꽃잎 구조를 갖춘 미세입자를 독립적으로 만든 것은 처음이다.
게다가 싼값으로 이 미세입자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라 산업적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커졌다.
이 결과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화학 분야 최고 학술지인 독일의 ‘앙케반테 케미’ 2010년 4월호 표지 논문으로 소개됐고,
‘네이처’ 2010년 3월 25일자에도 분석 기사로 실렸다.
<연꽃잎에 맺힌 물방울 사진과 나노구조의 전자현미경 사진과 봉우리의 모식도>
양 교수팀이 미세입자를 만든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크기가 수백 나노미터(1nm=10억분의 1m)의 유리구슬 수천 개를 특수 액체방울 위에 붙인다. 여기에 자외선을 쬐면 액체방울이 굳으면서 수천 개의 미세 유리구슬이 박혀 있는 동그란 모양의 물체가 만들어진다.
이 물체에서 유리구슬을 녹여내면 미세한 구멍이 촘촘하게 파여진 입자가 나오는데,
이 구멍을 강한 에너지를 가진 플라즈마로 깊게 파면 연꽃잎 구조가 완성된다.
이 구조를 이용하면 물 위에 물체를 띄울 수도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그런데 대체 연꽃잎의 구조가 어떻기에 이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연꽃잎이 다른 잎들보다 매끈매끈한 표면을 가졌기 때문일까?
나노 크기를 볼 수 있는 현미경으로 연꽃잎을 보면 정답이 나온다.
연꽃잎을 나노 크기를 볼 수 있을 만큼 확대해서 들여다 보면 육안으로 보는 것과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연꽃잎 표면이 3~10㎛ 크기의 수많은 혹(bump, 융기)들로 덮여 있고,
이 혹들은 나노크기의 발수성(water-repellent) 코팅제로 코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울퉁불퉁한 독특한 구조 덕택에 연잎 위에 떨어진 물방울은 잎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흘러내리게 된다.
즉, 연꽃잎 위의 물방울은 돌기 위에 떠 있기 때문에 표면에 접촉하는 면적이 크게 줄어들어 표면장력이 커진다.
실제로 연꽃잎과 물방울의 접촉 면적은 덮고 있는 표면의 2~3%밖에 되지 않는다.
물방울이 공기 위에 떠있는 모양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불안한 상황이다 보니 물방울이 모이고 합쳐져서 무거워질 때 땅으로 미끄러져 떨어지게 된다.
이때 잎에 앉은 먼지들도 물에 씻겨서 덩달아 떨어지면서 스스로 깨끗하게 씻어내는 것이다.
이런 특징을 학술적으로 ‘연꽃잎 효과(lotus effect)’라 한다.
이를 처음으로 명쾌하게 설명한 사람은 독일의 본대학교의 식물학자 빌헬름 바르트로트(Wilhelm Barthlott) 교수였다.
그는 현미경을 통해 연꽃잎을 관찰하고 나노규모에서는 거친 표면이 매끄러운 표면보다 더 강한 초소수성(疏水性 : 물과 친하지 않는 성질)을 나타낸다고 밝혔다.
연꽃잎의 표면이 울퉁불퉁해 물방울이 떨어지면 방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표면이 조금이라도 기울어져 있으면 미끄러져 내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심한 소나기가 내려도 연꽃잎은 늘 마른 상태를 유지한다.
또 연꽃잎 위에 있던 먼지들도 물방물과 함께 쓸려 내려간다.
이런 연꽃잎의 자정 능력은 비만 내리면 저절로 깨끗해지는 유리창, 물을 한번만 내리면 깔끔해지는 변기, 비를 맞으면 자동으로 세차되는 자동차의 개발을 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청소를 하지 않아도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유리창,
하얀 면바지에 콜라를 흘려도 손으로 툭툭 털어 내면 깨끗한 원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면 섬유,
가죽·나무·섬유 등에 뿌리면 물과 오염을 방지해주는 스프레이 등이 등장했다.
또 화학 및 바이오센서 등의 마이크로 소자와 액정표시장치(LCD),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등 차세대 대형 디스플레이의 표면 코팅에서도 연꽃잎 효과를 이용한 코팅 기술이 사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연꽃잎은 물방울의 상태에 따라 친수성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밀리미터 크기의 물방울에 대해서는 방수 역할을 하는 연꽃잎이지만,
응축된 수증기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성질을 보인다.
예를 들어 수증기가 나오는 위치에 연잎을 두면, 연잎 위에 작은 물방울들이 모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주 가는 입자가 합쳐져서 물방울이 되는 것이다.
수증기의 작은 물방울이 연잎에 존재하는 나노 크기 실타래 같은 것 사이에 갇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처럼 표면에 물방울이 묻으면 얇게 펼쳐지는 초친수 현상을 연꽃잎 효과와 함께 구현하면 활용범위가 훨씬 넓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잉크젯 프린터다.
잉크를 뿌려주는 노즐에 초소수성질을 응용하면 잉크 노즐에서는 잉크를 방울방울 떨어지게 만들 수 있고,
초친수성을 이용하면 종이에는 잉크가 얇게 퍼지게 뿌려줄 수 있다.
이렇게 노즐의 성질을 원하는 대로 변화시켜 적은 수의 노즐로도 다양한 인쇄가 가능해진다.
또한 약이 몸속에서 효과적으로 작용하는데도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당뇨병 환자가 정기적으로 맞아야 할 인슐린의 경우, 환자의 몸속에 뭉쳐진 형태의 약을 주입한 다음,
필요할 때 얇게 퍼지게 한다면 약효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나노단위에서는 표면에 따라 다양한 성질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를 구현하기 위한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불교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것을 비유할 때 연꽃을 든다.
진흙층이 쌓인 연못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결코 그 더러움에 더럽혀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진흙 속에서도 자신을 아름답게 지키는 연꽃잎에 대한 연구는 나노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제 우리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바꿔 놓을 것이다.
글 : 과학향기 편집부
※ 2008년 11월 12일자 과학향기 ‘연잎이 물에 젖지 않는 이유(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사진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김상연 dream@donga.com 님 글에서 카피 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