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40년경, 석유와 석탄 같은 화석에너지가 고갈된 지구.
인류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이 시점을 염두에 둔 다양한 영화들은 나름의 해석을 하고 있다.
지구에서는 더 이상 자원을 찾을 수 없어 달에 기지를 세우고 자원을 캐는 영화(더 문)도 있고, ‘아바타’처럼 행성 하나를 개척하기도 한다.
이보다 현실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한 영화에서는 연료전지나 태양에너지 같은 대체에너지를 개발해 생활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아직 뾰족한 대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태양과 바람, 바닷물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들에 가능성이 있다고 보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확실한’ 대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과학자들이 있어 종종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최근 국내 과학자가 개발한 ‘수소 저장 물질’도 그들 중 하나다.

수소는 가장 가벼운 기체이면서 끓는점도 영하 252.9 ℃의 극저온이기 때문에 새어나가기 쉽다.
그래서 고압으로 수소를 압축하거나 LPG(액화석유가스)나 LNG(액화천연가스)처럼 액화시켜서 사용하려면 엄청난 비용 부담이 따르며, 폭발성에 따른 위험도 크다.

 

하지만 수소는 우주 질량의 75%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원소다.

또 사용하고 난 뒤에 특별히 공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아 미래 청정에너지원으로 꼽히고 있다.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저장할 수만 있다면 자원으로서 가치가 큰 셈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다양한 수소 저장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2010년 7월 4일자로 발표된 숭실대 김자헌 교수팀의 ‘나노 다공성 하이브리드 화합물(MOF, Metal-Organic Framework)’도 이런 아이디어 중 하나다.


다공성물질은 내부에 1~100nm 크기의 빈 공간을 가지는 물질을 말하는데,
내부 공간에 기체 분자나 촉매를 잡아둘 수 있어 수소처럼 까다로운 물질을 저장하는 데 유용하다.
 
이번에 김 교수팀이 개발한 물질은 1g이 1만㎡(100m×100m) 크기의 운동장을 덮을 수 있어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표면적을 갖는 다공성물질로 알려졌다.
 
표면적이 큰 물질은 더 많은 양의 기체를 저장할 수 있으므로 이 물질을 사용하면 대량의 수소를 저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을 활용해 수소를 저장하는 연구결과도 주목받고 있는 기술 중에 하나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 생명화학공학과 이흔 교수팀은 2005년 수소 분자를 얼음 입자 속에 저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 처음으로 밝혀냈다.

연구팀은 0℃ 부근에서 수소 분자가 얼음 입자 안에 만들어진 미세한 공간에 저장될 수 있다는 새로운 자연현상을 규명했는데,
순수한 물에 ‘테트라히드로푸란’이라는 유기물을 미량 첨가하여 얼음 입자를 만들었더니 무수히 많은 나노 크기의 축구공 같은 공간이 생기면서 수소가 안정적으로 저장됐다고 한다.

이렇게 수소가 저장된 얼음은 섭씨 3~4℃에서도 녹지 않을 정도로 안정화돼 있다.
또 물에서 생산된 수소를 얼음 입자에 저장했다가 에너지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가능성도 많아진다.
저장매체로 쓰는 얼음은 물을 얼리면 만들어지므로 어디서나 쉽게 얻을 수가 있고, 거대한 얼음 창고와 같은 공간에 수소를 대규모로 저장할 수도 있다.
게다가 앞으로 실용화 연구를 진전시키면, 수소 자동차나 수소 연료전지 등에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흔 교수팀은 2008년 서강대 강영수 교수팀과 공동으로 얼음에 수소를 저장하는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수소 원자를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소 분자를 두 개의 원자로 쪼개 얼음 안에 저장하면 다른 물질과 반응이 훨씬 더 잘 되고 결합력도 높아진다.
따라서 얼음 연료 전지를 비롯한 다양한 수소 에너지 분야에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얼음 수소’가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아직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음 대비 저장되는 수소의 비율을 높이는 문제다.
또 얼음 수소를 연료로 하는 자동차가 나오려면, 기존의 수소 자동차나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와는 다른 새로운 메커니즘을 개발해야 한다.

김자헌 교수팀의 다공성물질이나 이흔 교수팀의 얼음 수소 외에도 수소를 저장하는 기술 개발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새롭고 독특한 아이디어의 실용화가 큰 진전을 이뤄 우리나라도 수소 경제 시대의 원천기술을 가진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글 : 과학향기 편집부

※ 과학향기 제292호 ‘미래 수소 에너지 저장 우리에게 맡겨라’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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