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생물의 이름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찬찬히 내력을 더듬어 보면,
그렇게 불리게 된 수긍할만한 나름의 연유가 있다.
그 연유는,
곧 인간과 바다생물의 접촉 역사다.
해서, 그 이름들엔 바다생물에 대한 인간 지식이 압축돼 있다.
다양한 바다생물의 이름 유래를 살펴보면서 그들을 새롭게 이해하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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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말미잘

움츠린 모습이 '미주알' 닮아
영미권서는 '시 아네모네' 꽃에 비유

 
 

물 속에서 말미잘의 촉수가 말려들어간 부분을 내려다 보면 옴폭 패인 모양새가 영판 항문을 닮았다.

<<박수현 기자>>


지금까지 알려진 해양생물은 27만5000여 종에 이른다.
해양생물의 이름은 대부분 그들의 생김새에서 유래됐다.
이 가운데 말미잘에 대한 작명은 좀 특이하다.
항문을 연상하고 붙여졌기 때문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말미잘의 모습을 탈장된 창자로 묘사하면서 미주알(未周軋)이라고 명명했다.
자산어보에 등장하는 생물 표기가 당대 우리말을 한자로 옮긴,
음차 과정을 거친 것임을 감안하면 말미잘이란 이름의 유래가 미주알에 있음을 짐작케 한다.
미주알의 국어사전 뜻풀이는 '똥구멍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 즉 항문이다.
그래서 아주 하찮은 것까지 질문하는 행위를 가리켜 '미주알 고주알 캐묻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말미잘의 이름을 왜 항문에서 따왔을까?
 
말미잘의 생태를 관찰해 보면 쉽게 답을 구할 수 있다.
말미잘은 화려하게 뻗친 촉수에 있는 자포로 작은 물고기나 플랑크톤을 잡아 먹는다.
 
말미잘은 매우 민감하다.
평상시 촉수를 뻗고 있다가 작은 위협이라도 감지되면 순식간에 촉수를 강장 속으로 거둬 들인다.
 

 

촉수가 사라진 말미잘은 아무 매력이 없다.
단지 뭉텅한 원통형의 몸통과 촉수가 말려 들어간 구멍만 남을 뿐이다.
물속에서 촉수가 말려 들어간 부분을 내려다 보면 옴폭 패인 모양새가 항문을 빼닮았다.
 
아마 말미잘을 관찰한 선조들의 생각도 그러했을 것이다.
항문을 닮긴 닮았지만 차마 사람의 그것과는 비유할 순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선조들의 해학이 묻어난다.
선조들은 사람과 비교하기 곤란하거나 다소 큰 것을 지칭할 때 '말'이라는 접사를 붙이곤 했다.
말의 항문을 끌어들여 '말'과 '미주알'의 합성어 '말미주알'을 만들어냈다.
'말미주알'이 축약되면서 말미잘로 변했다.


같은 사물이라도 문화권에 따라 그 이름이 달라진다.
영미권에서는 말미잘을 '시 아네모네(Sea Anemone)'라 부른다.
 
화려하게 내밀고 있던 촉수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모양새가 봄에 잠깐 피었다가 바람결에 지는, 화려하지만 연약한 아네모네 꽃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아네모네는 바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네모스(Anemos)'에 어원을 두고 있다.

글∙사진 : 박수현 / 국제신문 사진부 기자

한국해양대학교 해양공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수중잠수과학기술을 전공했고,남극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1,300회 이상의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보고 경험한 바다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저서로는 [수중사진교본],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바다이야기], 제 24회 과학기술도서상을 수상한 [재미있는 바다생물이야기], 2008년 환경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바다생물 이름풀이사전],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북극곰과 남극펭귄의 지구사랑]이 있다.

 

참고: 제 브로그 중에 물속 삼매경 이라는 카테고리에서┃물속 사진 이라는 메뉴에

        제목이말미잘(아네모네) 사진 모음 (☜크릭)-2005.01.09자 문서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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