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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지구별 자유여행  |  글쓴이 : 돌풍 원글보기
 

국내 엠블렘

차  명

엠  블  럼

설  명

기아자동차
(KIA)

 기아자동차

기아자동차는 기존에 그룹 심벌마크로 타원에 붉은색 글씨 `KIA'를 부착 해오던 것을 바꿔 파란색 원 안에 검정색 바탕의 흰색 글씨인 `K'자를 새겨 넣은 엠블렘을 새로 만들었다.  새로운 기아의 엠브렘은 기아의 영문 첫 글자인 「K」를 비상하는 봉황의 날개로 상징화했다.
엠블렘의 위치는 라디에이터 그릴 중간부분에서 보닛 윗부분으로 변경했다. 통일된 엠블렘의 원형은 지구와 우주를 상징하며 K자는 날아 가는 새처럼 세계를 향해 비약하는 기아자동차의 도전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 엠블렘은 기아가 `밀레니엄 카렌스'에 시범적으로 부착됐으며 앞으로 승용차 및 상용차 전차종에 이를 확대할 계획이다. 

대우자동차(DAEWOO)

 대우자동차

대우자동차의 엠블렘은  대우그룹의 심벌마크를 응용하여, 자동차에 적합하도록 형상화한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발전의지를 형상화한 이 엠블렘의 반타원형은 온세계, 우주를 상징하며, 위로 확산되는 형태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대우자동차의 창조적 도전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 엠블렘은 95년 부터 서유럽의 수출차량과 대형 트럭/버스에 우선 적용해 왔으며, 내수 승용차에는 '대우'의 영문 첫자인 D를 양쪽으로 맞붙여 형상화한 '더블 D' 엠블렘을 부착해 왔으나 21세기 세계 초일류 자동차메이커로의 도약을 위해 대우차의 이미지 통합차원에서 96년 11월 출시되는 라노스를 시작으로 모든 차종에 이 엠블렘을 적용하게 되었다. 이 엠블렘을 디자인한 업체는 대우자동차의 많은 차량을 설계한 이탈디자인이다. 

 삼성자동차(SAMSUNG)

 삼성자동차

삼성차의 크롬도금한 은색 엠블렘은 태풍의 눈(회오리 바람)을 표현한 것으로, 소우주 속에서 고객과 자동차의 만남이 일체화 되어 고객 위주의 신자동차 문화를 펼쳐나가는 약동감을 표출하고 있으며, 상하좌우의 대칭적 구조는 삼성자동차가 추구하는 안전성과 신뢰성을 상징한다.특히 불의의 사고로 보행자가 후드위로 넘어질 경우, 엠블렘이 부드럽게 접혀 상해를 최소화하는 안전성까지도 세심하게 고려하였다.

쌍용자동차(SSANGYONG)

 쌍용자동차

쓰리써클(Three Cicle)로 불리는 쌍용엠블렘은 쌍용자동차의 3대 기업이념인 ▲고객만족 ▲최고품질 ▲화합전진을 상징하는 3개의 원(Circle)을 하나의 고리로 묶어 형상화한 것이다.
쌍용자동차는 대우그룹에 편입되면서 한 때 대우자동차의 엠블렘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2000년 3월 24일부터 출고되는 체어맨, 무쏘, 이스타나 그리고 4월부터 출시되는 코란도 등 쌍용의 전 생산차종은 전면부와 후면부, 휠, 인테리어 부위 등에 쓰리써클 엠블렘이 부착되고 있다

  현대자동차(HYUNDAI)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심볼의 '타원'은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는 현대자동차로, 'H'는 현대자동차의 영문표기 첫글자를 속도감을 주어 두사람이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勞'와'使', '고객과 기업'이 신뢰와 화합속에 2000년대 세계속으로 웅비하는 현대자동차의 이미지 표현이다.

 

차  명

엠  블  럼

설  명

란치아
(LANCIA)

롤스로이드 

란치아(Lancia)는 피아트 레이싱 팀의 선수였던 빈센조 란치아에 의해 1906년에 설립되었다.  
그가 생각하던 자동차는 그 당시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른 미래 지향적인 것이었다. 란치아의 첫 모델인 알파는 1908년에 처음 등장했고 이후 란치아의 자동차들은 그리이스어의 알파벳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란치아의 엠블렘은 여러 번의 변형을 거쳐 현재 쓰이고 형태가 되었는데, 둥근 삼각형 방패 속에다 자동차를 상징하는 바퀴의 가운데에 'LANCIA'가 쓰인 깃발을 배치한 형태이다.

롤스로이드
(ROLLS
ROYCE
)

 날개달린 여인상

'최고의 차' 자동차의 제왕으로 불리는 롤스로이스는 1906년 창업자인 찰스 스튜어트 롤스와 프레드릭 헨리 로이스의 성을 하나씩 따 회사를 차리면서 두이름의 첫 이니셜인 "R"자 두 개를 겹쳐 쓴 모양의 엠블렘을 만들었다.  이 RR 엠블렘은 초기에는 빨간색이었지만 33년 로이스가 세상을 떠난뒤 이를 애도하는 의미에서 까만색으로 바뀌었다는 얘기와 로이스가 죽기전 엠블렘을 완전한 색인 까만색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는 얘기가 있다.
고급차 메이커인 롤스로이스는 보네트 끝에 "날개달린 여인상"으로 유명하고 이를 롤스로이스의 엠블렘으로 잘못 아는 사람도 많은데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차에 다는 장신구의 일종일 뿐이다. "스피리츠 오브 액스터시(Spirits of Ecstasy)" 또는 "프라잉 엑스터시(Flying Ecstasy)"라고 불리는 이 마스코트는 영국의 유명한 조각가 찰스 사이크스가 디자인해 1911년에 처음 나왔고, 초기에는 길이가 17cm나 되었다가 1차대전후 점점 작아졌다.  또 1930년에는 "무릎 꿇은 여인상"이 등장해 초호화 리무진인 팬텀2와 실버레이스등에 달렸는데 언뜻 보기에는 고정식 같지만 차체가 충격을 받거나 마스코트를 억지로 잡아 떼려고 하면 자동으로 라디에이터 그릴안으로 숨어 버린다.  마스코트의 도난을 방지하고 차를 닦거나 보디커버를 씌울 때 걸리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MERCEDES
BENZ
)

메르세데스 벤츠 

메르세데스가 사용하는 삼각형 엠블렘은 1909년 상표등록이 되었는데 이 별의 유래는 고트리브 다임러가 그의 아내에게 엽서를 보내며 이 별을 그려보냈는데 그 밑에 이런 말을 썼다고 한다.  
"언젠가는 이 별이 우리 공장 위에 찬란하게 빛날 것이오".  
당시 다임러는 자신이 개발한 엔진을 자동차뿐 아니라 선박과 항공기에도 응용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는데 엠블렘의 세꼭지 별이 바로 하늘과 바다와 땅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후 이별은 "품격","부","신뢰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 하였다.
한편 벤츠사는 월계수 모양의 엠블렘을 써 왔기 때문에 1차 세계대전후 두 회사가 합쳐지면서 월계수 무늬가 새겨진 테두리 원에 회사이름을 적고 그안에 세꼭지 별을 배치한 새로운 모양의 엠블렘이 탄생했다. 1933년 가는 원안에 삼각 별을 내접 시킨 벤츠의 새로운 엠블렘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1989년 테두리가 조금 더 두꺼운 형태의 엠블렘이 나오기 전까지 56년간 사용되었다.

 

차  명

엠  블  럼

설  명

볼보
(VOLVO)

볼보 

북유럽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이자 안전한 자동차의 대명사로 평가 받는 볼보는 1927년 스웨덴 당시 최대의 볼베어링회사인 SFK의 엔지니어였던 아서 가브리엘슨 (Assar Gabrielsson)과 구스타프 라슨(Gustaf Larson)에 의하여 창업되었다. 그들은 볼보의 최초모델인 OV4(Open/ Vehicle4, 일명 야곱)를 개발한후, SFK의 지원을 받아 스웨덴의 예테보리 근처에 스웨덴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 공장을 세우고 "주문후 조립생산 방식"으로 생산을 시작하였다. 두 직원에게 자본을 대준 SFK사는 이전에 자신들이 쓰던 상호인 "볼보AB"를 차 이름에 쓰도록 허락해 주었는데 이는 라틴어로 "나는 구른다 (I Roll)"라는 의미를 뜻해 회사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이 후 볼보의 창업자들은 SFK와의 특별한 관계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회전하는 베어링을 형상화한 화살표 문양의 엠블렘을 만들어 차에 달았고, 그것이 지금까지 내려와 볼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사브
(SAAB)

사브

스웨덴의 자동차 메이커인 사브는 두 개의 타원이 어우러져 하나의 원을 이루는 형태로서 사브 특유의 남색과 희색, 빨강색이 사용된다.  
두 개의 타원이 나타내는 것은 사브와 스카니아(Scania)다. 사브는 스웨덴에서 항공기를 만드는 회사 라는 뜻(Svenska aeroplan AkieBolaget : 스웨덴 항공회사)이고 스카니아는 원래 스웨덴 남쪽 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1900년 설립된 세계 4대 트럭 메이커 중 하나로 1968년 사브와 합병한 회사이다. 
이렇게 사브와 스카니아를 나타내는 두 타원이 겹치는 부분에 금관을 쓴 상징적인 동물 '그리핀'이 그려져 있다.
그리핀은 스웨덴 남쪽 지방, 즉 스카니아를 대표하는 문양이다. 그리고 현재 사브의 최고급 모델 사브 9000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브-스카니아 그룹은 1990년 미국 제네럴 모터스와의 합병으로 현재 각각 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얼마전에는 스카니아가 사브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인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트로엥
(CITROEN)

 시트로엥 

시트로엥(Citroen)사는 최초에는 기어를 만들던 회사였다. 1913년 설립된 시트로엥은 기어를 만들면서 톱니를 '세브론(갈매기 문양 : ^) 형태로 만들었고 1916년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하며 이 모양을 시트로엥의 엠블렘에 사용하였다. 
(기어의 톱니모양을 갈매기 모양으로 만든것은 톱니가 회전축에 평행하지 않는 것이 소음도 적고 효율도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자동차의 변속기에 들어가는 기어는 톱니가 회전축에 약간 비틀어진 형태인 '헤리컬 기어'가 사용된다)

BMW

BMW

1916년 뮌헨에서 탄생한 바바리아 모터 주식회사(Bayerische Motoren Werke AG)가 처음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항공기의 엔진이었다. 항공기 엔진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1923년 오토바이크, 1929년에는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가 되었다. 
BMW의 엠블렘은 원래 항공기 엔진을 만들던 회사답게 항공기의 프로펠러가 도는 모습에서 응용되었다. 끝없이 돌아가는 비행기의 프로펠러 모양을 원과 직선 두개를 수직으로 교차시켜 표현하고 자신들의 근거지인 독일 바이에른 (아직도 본사가 있는 곳)의 상징인 흰색과 파란색을 마주보게끔 배치했다. 이 단순하고도 강렬한 엠블렘은 이후 80년 동안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BMW의 또 다른 상징은 바로 '키드니 그릴'이라 불리우는 독특한 모양의 라티에이터 그릴로 누구나 이 그릴을 보면 그 차가 BMW임을알 수 있다. 
'Kidney Grill'이라는 말은 라디에이터 그릴의 모양이 콩팥 (Kidney)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은 모양이 많이 달라졌지만 BMW의 초기 모델을 보면 이해가 간다. 이 키드니 그릴은 자동차 뿐만 아니라 BMW가 생산하는 오토바이에도 사용될 만큼 그들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차  명

엠  블  럼

설  명

아우디
(AUDI)

아우디 

네 개의 고리를 1열로 연결한 모양인 아우디 엠블렘은 메이커의 탄생 스토리와 관계가 깊다.  단순함을 보여주는 동그라미 4개. 어떤 이들은 자동차 수레 바퀴수를 나타낸다고 하지만 동그라미 4개는 각각의 자동차 회사를 의미한다.  아우디는 원래 독일 삭소니 지방에 있던 4개의 군소 메이커가 연합해 만든 회사로 아우디(Audi), 반더러(Wanderer), 호르히(Horch), 데카베(DKW)가 합병되어 아우토 우니온(Auto Union)이란 단일 회사로 1932년 설립되었다. 즉 네 개의 고리는 4개 메이커의 결속을 상징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뒤 폴크스바겐에 흡수되어 브랜드 이름을 부르기 쉬운 아우디로 바꾸었지만 엠블렘만은 아우토 우니온 시절의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

알파
로메오
(ALFA ROMEO)

 알파로메오

알파 로메오(ALFA ROMEO)는 이탈리아의 공업도시 밀라노에서 출범한 자동차 회사이다. 원래의 명칭은 그냥 ALFA (Anonima Lombarda Fabbrica Automobile Milano)였으나, 1915년 엔지니어 출신의 니콜라 로메오가 기업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알파 로메오로 개칭이 되었다. 
알파 로메오의 엠블렘으로는 자동차와 기업을 상징하는 화려한 색상이 들어가있는 원반 형태가 채택되었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 두 개의 문양은 모두 밀라노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왼편의 하얀 바탕에 그려진 빨간 십자가는 밀라노시의 문장에서 따온 것으로 밀라노시의 자치성을 나타내며 오른편의 불을 뿜는 용은 밀라노시의 수호성인인 비스콘티의 용이다.

캐딜락
(CADILLAC)

캐릴락 

캐딜락은 오늘날 자동차의 메카인 디트로이트를 1701년 처음 개척한 프랑스 귀족이자 탐험가인 모스 캐딜락의 이름에서 따왔다. 200여년이 지난 뒤 캐딜락 자동차사의 창업자인 "머피"와 "리란드"는 자동차산업의 본고장인 디트로이트를 만든 그에 대해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 회사이름을 캐딜락 오토모빌 컴퍼니로 결정 했던 것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빛나는 왕관과 방패모양의 엠블럼은 캐딜락 가문의 문장이다. 7개의 진주가 박힌 왕관은 고대 프랑스 궁정에서 쓰이던 것으로 귀족을 상징하고 있다. 4등분된 방패는 십자군 원정에 참가하여 수훈을 올린 가문의 전송을 나타내고 있으며 3마리의 백설조는 영지, 풍요로움, 현명함이란 삼위일체를 뜻한다. 방패의 색깔도 각각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붉은색은 용감하고 대담한 행동을, 은색은 순결·자선·미덕을, 파란줄은 기사의 무용을 나타내고 있다.
이같은 엠블럼이 담고있는 내용과 그 이름이 주는 의미처럼 캐딜락이 고급차의 대명사격으로 자리 잡게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현재의 새로고는 20세기 유럽의 저명한 미술가인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캐딜락의 미래지향적 설계 철학을 반영하는 대담하고 힘있는 앵글을 표현하고 있다. 새로 제작된 엠블럼의 문장은 종전의 컬러 패턴인 붉은색과 은색, 파란줄을 그대로 유지하고, 지혜를 뜻하는 흑색과 부를 뜻하는 금색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화환과 문장의 배경바탕은 백금색으로 되어 있다. 이번 로고 변경은 1963년 제작된이후 27년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97년 역사를 자랑하는 캐딜락의 30회에 이르는 설계 변화 중 하나다.

 

차  명

엠  블  럼

설  명

페라리
(FERRARI)

 페라리

스포츠카의 대명사 페라리(Ferrari)의 창업자는 엔초 페라리라는  사람으로  알파 로메오의 레이싱팀의 드라이버였다.
1931년 지금의 페라리의 상징이 된 '앞발을 든 말'이 등장했는데 이  엠블렘은 'Baracca's Cavallino(바카라의 말)'로 불리는데 원래 이 말  그림은 1차대전의 이탈리아 최고의 파일럿으로 활약하다 1918년 세상을 뜬 '프란체스코 바라카'의 전투기에 그려져 있던 노즈아트로 그의 아버지인 '엔리코 바라카'가 페라리의 자동차경주를 관람하던 중 감명을 받아 페라리에게 이 말 그림을 쓰도록 허락해 주었다.
이 말 그림은 원래부터 검은 색이었고 바탕색으로 쓰인 노랑 색은 페라리가 태어난 이탈리아 모데나의 상징 색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각 자동차회사의 엠블렘을 관심 있게 관찰한 분은 알아차렸을 지도 모르지만 독일메이커 포르쉐의 엠블렘에도 페라리의 엠블렘의 말과 똑 같이 생긴 말그림이 들어있다.
어떻게 이탈리아 회사와 독일 회사의 엠블렘에 같은 그림이 들어간 것일까? 어느 쪽이 베낀 것일까?
이 의문에 관해서는 가장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는1차대전 당시 전투기 조종사들은 자신이 격추시킨 전투기의 추락 현장에서 전리품을 가져오는 것이 유행이었고 바라카도 자신이 격추시킨 독일 전투기의 엠블렘을 가져와 자신의 전투기에 그린 것이라 생각된다.  즉 포르쉐가 있는 독일의 슈트트가르트는 말 사육으로 유명해 시 문장으로 말그림을 사용하는데 이 말 그림이 바로 페라리와 포르쉐의 엠블렘에 들어있는 말 그림인 것이다. 

포르쉐
(PORSCHE)

 포르쉐

자동차 엠블렘중에는 메이커의 본거지를 상징하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페라리에 필적하는 스포츠카 메이커로 독일의 자동차 기술을 상징하는 포르쉐의 엠블렘도 그 중 하나.  방패 문양의 정 가운데에 페라리 엠블렘과 비슷한 말그림이 그려진 다소 복잡해 보이는 디자인으로 포르쉐 본사가 있고 말 사육으로 유명한 슈트트가르트시의 문장에서 빌려온 것이다. 

폴크스바겐
(VOLKSWAGEN)

 폴크스바겐

동그란 원안에 위에서 V자, 밑에는 W자가 새겨져 있는 엠블렘.
폴크스바겐(Volkswagen)의 약자로 만들어 졌다.
폴크스바겐은 독일어로 '국민차'라는 의미를 가진다.

푸조
(PEUGEOT)

 푸조

1810년 프랑스 푸조집안에서 냉간 압연 공장으로 출발한 푸조는 처음에는 커피머신, 재봉틀 등으로 시작하여 1885년 자전거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으며 1889년 드디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동차를 생산하고, 일반에게 판매한 것은 세계 최초였다.  
푸조를 만들어 내는 공장은 프랑스 북동부 엘사스 지방의 벨포르라는 중소 도시 근처에 있는데, 이 지방에는 옛날부터 벨포르 라이온이라는 동물이 수호 동물로 유명했고 푸조는 이 동물을 엘블렘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제 사자와 매우 유사한 모습이었으나 많이 간략화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 사자문양은 벨포르 라이온이 상징하는 것과 같은 '강인함', '품질', '신뢰'를 뜻한다. 

피아트
(FIAT)

 피아트

1899년 33세의 죠반니 아넬리는 이탈리아의 토리노의 유지들과 '토니노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Fabbrica Italiana Automobile Torino)'를 세우고 1902년 파리에서 세계무대에 첫 데뷔를 하였다. 이때 공장 이름인 F.I.A.T.가 두꺼운 철사줄 안에 둘러싸인 피아트의 엠블렘이 탄생했다.   피아트에게는 자동차는 기존 가치의 연장과 개선을 의미했고 이것은 회사의 트레이드 마크에도 적용되어 1910년까지는 정해진 형식도 없었다. 지금과 같은 네 개의 평행사변형 안에 'FIAT'라는 이니셜을 집어 넣은 엘블렘이 정해진 것은 1968년이었다.   이외에 피아트는 후드 끝에 다섯줄의 빗금 마스코트를 부착한다. 

 

 출처 : over the rainbow..

38선이란 무엇인가?

2차대전에서 승전한 연합국의 두 나라 미국소련이 한반도 남과 북에 진출하면서.

그 점령지의 경계선을 그은 것이 아니던가!

남북한의 분단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국가가 남북을 나눠 점령하다 보니 서로 다른 체제가 출현하였던 것이다.
 
물론 남북한 단일 정부를 세우려는 일부 인사들의 노력은 있었지만 이념적 대립은 너무나 컸다.

한쪽은 미국을 모델로 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이상으로 삼았던 반면

다른 한쪽은 자본주의를 인민에 대한 착취 체제로 규정하고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를 이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두 가지 이상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결국 하나의 정부가 아니라 남북한 각각의 단독정부 출현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리고 2년 뒤 북한은 남한을 공산주의 체제로 통일하기 위해 침공하였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한국전쟁.
 
 
 동서냉전과 한국전쟁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개된 냉전시대의 대표적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남북한만의 전쟁으로 그치지 않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에서는 냉전의 최전선에 위치한 남한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16개국의 군대로 구성된 UN 연합군이 파견되었으며,

소련과 중국 역시 북한을 도왔다.

한국전쟁은 어느 면에서 보자면 좌우 이데올로기와 진영이 한반도에서 맞부딪친 국제전 성격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3년여에 걸친 전쟁 끝에 그 어느 쪽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결국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

평화협정이 아닌 정전협정이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남북한의 대립은 끝나지 않았다.

남북한의 대립은 세계적인 차원의 냉전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미국과 소련 역시 모든 부문에서 체제경쟁을 하였다.

유럽도 공산주의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 간의 첨예한 대립을 면할 수 없었다.
 
 
 동구권 공산주의 블록의 붕괴와 북한의 선택


세월이 흘렀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 공산주의 진영 안에서 체제붕괴의 조짐이 나타났다.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정책으로부터 소련 체제 내부에서 균열이 일어 났다.

소련 체제의 균열은 동구권에 광범위한 자유화 운동을 촉발하였다.

1989년 독일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소련 연방도 무너졌다.

연방을 구성하던 다수의 민족공화국들이 소련 연방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순식간에 공산주의 블록이 와해된 것이다.
 
이러한 동구권의 붕괴 이전에 중국에서는 덩샤오핑에 의해 개방정책이 시도되었다.

공산주의 경제정책의 한계를 절감하였던 그는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고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과감한 실험을 한 것이다.

그의 자본주의 도입 시도는 성공하였다.

현재까지 심각한 정치적 혼란 없이 중국 경제의 발전과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체제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특히 북한은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하고 중국이 개방정책을 채택함에 따라 더욱 더 고립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미사일 개발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이는 두 차례에 걸친 국제정치적 위기를 초래하였다.
 


 
 제1차 북핵 위기와 제네바 합의


처음으로 북한 핵 문제가 제기되었던 1994년에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확신한 미국 클린턴 정부가 북한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검토함으로써 한반도에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카터 전(前)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회담으로 적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어 그 해 10월 북미 양국간의 제네바 합의에 의해 일단락되었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핵시설의 가동을 중지하는 대신 2기의 경수로와 매년 50만 톤의 중유를 받는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였다.
 
그리고 그에 더해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화하며 북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도 들어가 있었다.

이러한 합의의 실천을 위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설립되고,

2000년 경수로 건설에 들어갔다.(경수로 건설비용의 70%가 남한의 부담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제네바 합의는 깨졌다.
 
북미 양측은 합의 불이행의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였다.

북한이 1998년 파키스탄 정부의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핵폭발 실험을 하고 핵연료 재처리 시설도 가동함으로써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이 중유 제공을 제외한 어떠한 약속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제2차 북핵위기와 6자회담


미국 역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을 회피하긴 힘들다.

무엇보다 2001년 초에 보수적인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에 대한 유화적인 분위기가 사라졌다.

특히 9.11 테러 이후 조지 부시는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다.

 

신정부는 클린턴 정부가 한 제네바 합의도 지킬 마음이 없었다.

대북 강경파인 네오콘들은 제네바 합의를 깰 구실을 찾았다.

2002년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계획을 추진한다는 의혹이 바로 그러한 구실을 제공하였다.

부시 정부는 제네바 합의에서 약속된 경수로 건설과 중유공급을 중단하였다.

이에 맞서 북한은 다시 핵확산금지조약(NTP)을 탈퇴하였다.
 
그리하여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변국들의 외교적 노력이 전개 2003년 8월 처음으로 6자회담이란 것이 개최 되었다.

이것은 남북한을 포함하여 한반도 주변 4대 강국들이 참여한 다자간 회담이었다.
 
6자회담은 지금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열렸으나 실질적인 진전을 거두지 못했다.

작년에는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개발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대신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들여놓지 않고 또 북한을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또 북미 양국은 상호주권을 존중하고 양국간의 관계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실현될 것이라는 약속에 많은 한국 사람들이 흥분하였다.

 

그러나 이 9.19 공동선언공(空)문서로 전락하였다.

경수로 제공이 먼저냐 핵폐기가 먼저냐를 놓고 양국간의 입장이 달랐던 것이다.
 
 
 남한의 햇볕 정책과 북한의 벼랑끝 전술


북한을 테러 지원국, 불량국가, 폭정의 전초기지로 보는 미국의 시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미국은 9.19 공동선언 직후부터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를 단행하였다.

북한의 대외계좌를 동결함으로써 북한의 목을 죄려고 한 것이다.

2006년에 들어서는 경수로 건설도 중단되었다.

북한은 이에 맞서 핵탄두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미사일 발사실험을 감행하였다.
 
이처럼 현재까지 핵개발을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대립과 갈등은 몇 차례의 합의를 거쳐 해결될 듯 보였으나 여태 해소되지 않고 한반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북미간의 대립과는 달리 김대중 정부 이후 남북간의 관계는 상당히 개선되어 왔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금강산 지역이 남한 관광객에게 개방되었고,

또 남북한 경제협력사업의 근간인 개성공단이 건설되었다.

북한으로 하여금 대화와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려는 소위 햇볕정책이다.

이러한 유화적인 대북 정책은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한층 더 확대되었다.

남한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남북한간의 대립구도 해소를 통해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시키고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길을 닦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과 북한 모두 이러한 남한의 열망과는 반대로 자신들만의 길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핵을 둘러싼 북미간의 대립은 남한의 손을 벗어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동치는 한반도, 그 운명은?


그러면 여기서 다시 한 번 북한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생각해보자.

북한은 소련과 동구 공산진영이 모조리 붕괴한 이후에도 살아 남아 자기식 사회주의 체제의 고수를 외치는 나라이다.

그리고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주의를 비판하고 세계초강대국 미국에 대담하게 맞서는 나라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북한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러 외국으로부터 계속해서 식량원조를 받아야 할 지경이다.
 
북한은 이러한 인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미국이 그러한 외부의 적이었다.

북한 정권이 이렇게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미국이라는 존재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사실 북한에게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순전히 허구적인 것은 아니었다.

1994년 북핵 위기시에 보여주었듯이 미국은 실제로 북한을 공격하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강한 무기체계를 가진 미국이 공격을 한다면 북한이 오래 견디지 못할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북한은 이러한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핵무기미사일 개발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북한은 체제에 대한 완벽한 보장이 주어지지 않는 한 쉽사리 핵을 포기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북한의 핵은 미국에만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남한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도 그로부터 위협을 느끼고 있다.

중국의 경우 직접적으로 북한 핵에 대해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나,

북한의 핵개발이 일본의 군비증강을 부추기고 동북아시아 정세를 혼란에 빠뜨릴 위험성이 있다는 데서 북한의 전략에 대해 비판적이다.

더욱이 경제발전에 우선적 가치를 두고 있는 중국이 볼 때 북한의 전략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결의안에 북한의 혈맹 중국이 찬성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한이 세계에서 완전 고립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역시 미국과 맞서고 있는 이란이나 시리아 같은 나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 역시 미국에 의해 불량국가로 낙인 찍혀 면밀한 감시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북한은 막다른 길로 들어서고 있다.

핵과 미사일을 갖고 더욱더 위험한 도박을 감행하여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것 외에는 별다른 탈출구가 북한에게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북한의 협박과 도박에 미국이 언제까지 인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출처:"한한한의 비밀과 사명 운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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