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박은혜님의 질문)

얼마 전 평소 자주 찾던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늘 북적이던 곳인데, 그날따라 손님이 한 명도 없더군요.

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비 오는 날에는 생선회를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근거가 있는 말인가요?


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습니다.

많은 분들이 비슷한 질문을 하셨더군요.

답변은 대체로 '먹지 말라'는 쪽입니다.

한 네티즌은 "비가 오 는 날에는 바닷물이 순환해 가라앉아 있던 세균 등 유해물질이 떠오르고 이를 물고기들이 섭취하게 되므로, 비 오는 날 생선회를 먹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 다"며 나름대로 논리적인 해석을 내놓더군요.

정말 그럴까요?

결론부터 말씀드 리자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합니다.

 

한국해양수산연구원의 윤은찬 박사는 "바닷 물의 순환은 비 때문이라기 보다는 바람의 영향을 받고, 바닷속에서 순환이 활발하게 이뤄지면 정화작용 등 오히려 순기능이 더 많다"고 말합니다.

물론 과거라면 타당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비가 자 주 내리는 건 여름입니다.

여름은 덥습니다. 더우면? 식재료가 쉽게 부패합니다.

 

조영제 부경대 교수(식품 공학)는 저서 < 생선회학 > 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옛날 냉장고가 없고 위생에 대한 관념이 부족한 시절 바닷가 또는 재래식 시장의 노점에서 여름철에 생선 회를 썰어놓고 판매하는 것을 먹고 식중독에 걸릴 수 있었을 것이고, 지나가는 소나기에 흠뻑 젖은 생선회를 먹어보면 물기를 머금은 생선회가 맛이 좋았을 리 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것이 비 오는 날은 생선회를 먹으면 안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던 이유다."

조 교수는 실험도 해 봤답니다.

넙치의 살을 식중독균에 오염시킨 뒤 겨울철 평 균 습도인 40%, 여름철 70%, 비 오는 날 90%에서 각각 배양했습니다.

차이가 거의 없더랍니다.

식중독균의 활성화에 습도, 즉 비가 오는지 여부는 영향을 미 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게다가 요즘 생선회는 제대로 된 냉장·냉동 과정을 거쳐 유통됩니다. 활어

를 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까지 운반하는 기술도 발달했습니다.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요.

맛에는 차이가 있을까요?

서울 마포구 연남동 '진어참치'의 김철송 사장은 "과 학적 근거도, 타당성도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합니다.

업계에서 '참치박사'로 통 하는 그는 "습도가 높은 날, 덥고 끈적끈적한 날은 생선회만 맛이 없는 게 아니 라 모든 음식이 맛없게 느껴진다.

입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참치처럼 급속 냉동한 식품을 해동해서 먹는 경우 습도는 더더욱 관계가 없다"고 말합니 다.

상대적으로 비린내가 난다는 분도 있을 겁니다.

김 사장은 "참치의 경우 해 동 뒤 1시간마다 3~5%씩 산화가 이뤄지고 더운 날에는 그 속도가 조금 빨라진 다.그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는 있겠지만 큰 영향은 없다고 본다"고 합니다.

창밖에는 아직 비가 오고 있습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걸까요? 

빗소리를 들 으며 맛있는 생선회에 소주라도 한잔 기울이고 싶은 오후입니다.

[한겨레21][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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