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제주도 서귀포에서 일본인들과 횟집에서 회를 먹은 적이 있다. 그때 횟감으로 나온 ‘다금바리’가 있어서, 그걸 시켜 먹었는데, 거기에 감격한 한 일본인이 눈을 지그시 감고 코를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는 것을 봤다. 냄새부터 아주 경건히 맛 본다는 메시지였겠지만, 조선 사람인 우리 눈에는 음식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는 꼬락서니가 정말 꼴값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웃은 적이 있다. 아니 그럼 그 맛있는 ‘회’를 먹지 않고 그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먹는다는 말인가? ‘회’가 전 국민적 사랑을 받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밖에 없다는 말이다. 내륙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회’ 맛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물론 이들이란 지금처럼 내륙지방에서도 쉽게 바다 물고기 회를 만날 수 없었던 시절을 살아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분들도 회 맛을 알고 모르고 와는 상관없이 횟집을 고를 때는 꼭 자연산을 판다는 횟집을 찾는다. 넙치(광어)나 도다리를 놓고 자연산이냐 양식이냐를 구분할 줄도 모르면서 자연산 횟집을 찾는 것이다. 전부 자연산이라면 대체 양식은 어디에 있는가? 세계의 어업양식 기술은 이미 대양에 사는 참치(다랑어)까지 양식하는 것에 성공을 했다. 이미 우리나라도 그 대열에 끼어 있다. 전복도 양식을 해서 어느 정도 크면 종패를 바다에 뿌려서 키우는데, 양식한 부분과 자연에서 큰 부분은 색깔의 차이가 뚜렷하다. 그러나 그 맛의 차이는 아무나 구별 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굳이 자연산을 찾는 마음이란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동경과 향수가 낳은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직도 시골에서는 신선한 회를 먹기가 힘들다. 회 맛도 다른 음식처럼 어릴 때부터 자주 먹어 본 사람이 그 깊이와 넓이를 아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자연산과 양식의 차이를 기가 막히게 구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맛을 구별하지 못한다. 물론 이는 좋다 나쁘다와는 상관이 없다. 나는 처음 이들이 나와는 다른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들이 다른 것은 철학이 아니라 입맛이었다. 회맛을 모르는 사람들이거나, 회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어릴 때의 입맛, 어릴 때에 만난 문화, 어릴 때의 친구, 이것은 아무래도 특별난 것들이라 사람들은 평생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첫사랑, 첫눈,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것들이 있듯이 말이다.
물론 필리핀의 거의 모든 다이빙리조트에서 수중사냥을 금지하지만 그때만 해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라 그들은 작살까지 빌려주면서 우리를 안내했다. 현지의 어떤 물고기가 좋은지를 몰라서 우리의 목적을 이야기하고 그들이 잡으라는 팔뚝만한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아서 주방에 맡겼더니 어른 엄지손가락 크기만 하게 뭉텅뭉텅 잘라 왔다. 거기다가 우리가 보아 왔던 물고기와는 그 색깔부터가 너무 달랐다.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색깔과 어지러운 무늬는 민무늬의 무채색에 길들어져 있던 우리 눈에 금붕어보다 더 화려한 몸꼴이어서 관상용이 아닌가하는 선입견에 선뜻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제일로 치는 횟감이 찬 바다에서 잡히는 참치(참다랑어)의 뱃살이다. 큰놈은 거의 200kg도 더 나가고 그 값 또한 몇 천 만 원에서 일억 원이 넘는 단다. 그 고기를 부위별로 해체해서 경매에 붙이고 낙찰 받은 횟집 주인들이 회를 떠서 한 조각에 얼마씩에 파는 것이다. 그들의 ‘다도’를 보면 하도 형식적인 것에 치우치는 것처럼 보여 음식에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를 한다. 다도도,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나는 알고 있다. 한 뿌리에서 나온 문화라도 자라 온 환경에 따라 이렇게 전혀 다른 꽃이 피는 것이다. 돌돔, 감성돔, 참돔, 옥돔, 등 돔 종류를 우리는 고급 물고기로 치고, 일본인들도 ‘썩어도 도미’라며 최고로 치지만 유럽이나 미주 쪽은 그렇지 않단다.
낮이면 그들이 안내하는 포인트에서 다이빙을 하고 다이빙이 끝나면 다음 목적지로 항해를 하는 것이다. 이른바 크루즈 보트 다이빙이었다. 좁은 배 안에 서로 얼굴을 맞대고 지난 지 며칠이 되자 너나 할 것 없이 스스럼이 없어졌다. 저녁 어스름 무렵 보트 승무원들이 낚시도구를 챙겨 배의 뒤 갑판으로 나왔다. 몇 마리리가 잡히자 곧 회가 쳐졌다. 일본인들도 몇 명이 있었지만 이들은 보아하니 먹을 줄만 아는 사람들이었다. 껍질을 벗기고, 살과 뼈를 발라내고, 발라낸 살들을 마른 수건으로 훔치고…. 주위에는 그 배에 탄 모든 외국인들이 둘러서 있었다. 싱가포르국적을 가진 중국인, 베트남인, 미국인, 영국인, 일본인, 그들은 회를 치는 사람의 손놀림과 그 과정을 보며 간간이 탄성을 질렀다. 소스는 두 가지, 우리가 가져 온 고추장과 일본인들이 가져 온 ‘와사비’였다. 우리는 와사비에 찍어먹고, 일본인들은 고추장에 찍어먹고, 옆에서 구경하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러는 우리의 모습이 신기해서 쳐다보고…. 회에는 술이 따르는 법, 종이팩으로 사 소주도 한 컵씩 돌렸다. 더구나 외국인들이 아닌가. 우리나라 국민들이 인정이 없다고 욕을 얻어먹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나섰다. 또 고추장을 듬뿍 찍어서 그 옆에 있는 외국인의 입에 넣어 주었다. 물론 그들은 안 먹겠다고 소리 지르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그런 것을 무시했다. 그럴수록 더욱 권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예의범절, 그는 드디어 강제로 입을 벌리고…. 그들은 회 맛을 피할 수 없었다. 갑판에서 때 아닌 소동이 일어났다. 물론 이 회를 먹인 우리 일행인 그 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갑판의 한 쪽에 수줍은 듯 서 있었다. 음식문화가 한 나라의 일상에 오르기란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아마도 그들 외국인들은 그날 우리의 회를 난생 처음으로 경험했을 것이다. 물고기라면 일단 사람들은 비린내를 생각한다. 거기다가 물이라! 왠지 더욱더 비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회다. 처음으로 그 집에서 물회를 맛 본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진정한 물회란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감동에 이런 맛은 국가가 보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것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서귀포에서 삼십여 분 차를 타고 나가면 바닷물이 집 앞 마당에서 찰랑거리는 그 집이 나오고 얼음을 둥둥 띄운 자리돔, 한치, 소라, 물회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나중에는 그 맛을 나 혼자 알아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까지 생겨 서귀포에만 가면, 그 물회 맛을 못 본 사람을 데리고 가야 할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그 집으로 안내했다. 그는 남들 앞에서 처음 먹어봤다고 말하기가 좀 거시기 했던지 식사를 끝내고 나온 나를 옆 골목으로 데리고 가더니 감동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재료가 신선하면 비린내도 없다. 고등어도 갈치도 금방 건져 올린 놈을 회를 쳐 놓으면 비린내가 없다. 어물전에서 파는 고등어가 비린내가 몹시 난다면 그것은 오래되었다는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싱싱하고 신선한 사람은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뭔가 감추고 있는 사람, 어딘가 상해가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비린내가 나지 않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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