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먹었을까? <15회>

생선회(生鮮膾) 문화가 언제부터 형성됐나 하는 문제는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헌을 뒤지다 보면 조선조 중기 이후에 많이 나타난다.

이 가운데 조선조 광해군때 유몽인(柳夢寅)이 지은 어우야담(於宇野談)을 보자.

임진왜란때 명나라 군사 10만명이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주둔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선회를 먹는 것을 보고 대단히 비아냥 거리고 더럽게 여겼다.

그것을 본 우리나라 선비가 논어(論語)에 회는 가늘게 쓴 것이 좋다고 했고, 생선회나 육류를 썰어서 회를 만드는 등... 공자(孔子)도 회를 좋아했는데, 왜 그러냐고 반박을 했다는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생선회 문화는 조선조 중기 이전에 벌써 형성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융성해 살생을 함부로 하지 않는 종교적 영향으로 회를 즐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몽고 사람을 통해 육회 먹는 법을 배웠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숭유사상을 국치이념으로 삼았으므로 ‘공자가 회를 즐겨 먹었다’는 사실에 아무런 저항감도 갖지않고 회를 본격적으로 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회라면 육류든 어패류든 가리지 않고 즐겨 먹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생선회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근거는 17세기초 조선조 숙종(肅宗)때 홍만선(洪萬選)이 지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나온다.

껍질을 벗기고 살을 얇게 썰어 얇은 천으로 물기를 닦아낸 다음 생강이나 파를 생선회 접시 위에 올려 곁들여 먹고 양념으로 겨자를 쓴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름에는 얼음 위에 올려 먹는 등 생선회 문화가 오늘날과 다름없을 정도로 발달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숙종때 회 문화 발달

중국의 회문화를 보면 지금부터 2천5백여년전 공자가 쓴 논어 향당편에 음식은 정갈해야 하며 회는 가늘어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그때 이미 회를 맛깔스럽게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오중노회(吳中魚盧膾) - 중국의 진서 장안전에는 농어회의 맛에 반한 한 선비의 고사가 전해진다.

제나라에 장안이라는 벼슬아치가 고향인 오나라의 농어회맛을 그리워하다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다는 내용으로 농어회맛이 일품임을 뜻한다.

중국은 2천5백여년전 이미 생선회 문화가 상당히 발달했음을 엿볼 수 있다.

조선조 선조 때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중국 사람들은 회를 먹지 않았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공자(孔子)가 좋아했던 생선회가 중국에서 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11세기 송나라 시대까지 회를 먹었다는 기록은 매요신(梅堯臣: 1002~1060)이 회를 차려놓고 손님을 대접한다는 시(詩) 가 남아있어 이를 증명한다.

그 후 대역병(大疫病)이 유행해 많은 사람이 죽자 그 원인이 생선회에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 후로 날 것을 먹지 않고 불을 사용하는 화력요리(火力料理)가 등장했다.



사시미(刺身)의 유래는 어디서?

생선회를 대표적인 음식으로 꼽는 일본의 경우 1399년 무로마치 시대 교토의 한 신관의 일기 속에 생선회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이 일기가 일본에서는 생선회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회 기록이 처음 나타난 것이 1399년이라고 볼 때 일본이나 우리나라 모두 생선회 문화가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생선회를 일본말로는 사시미(刺身)라고 하며 '칼로 살을 찌른다'는 뜻의 살벌한 말인데 비해 '생선을 회친다'는 뜻의 우리말인 생선회는 품위가 있어서 좋다.

옛날 일본의 무사정권 시대에 오사카(大阪)의 어느 장군이 멀리서 귀한 손님이 방문해 직속 부하에게 맛있는 요리와 술을 준비하게 했다.

장군 지시를 받은 조리장은 평소에 갈고 닦은 실력을 평가받을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산해진미의 음식과 열 가지가 넘는 생선회로 진수성찬을 올렸다.
장군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선회를 손님과 맛있게 먹게 됐는데 맛에 반한 손님이 문득 "장군 이 회는 무슨 고기로 만든 것이지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생선 이름을 잘 몰랐던 장군은 당황하여 조리장을 불러 물었다.

조리장은 조목조목 횟감에 사용된 고기 이름과 조리법에 대한 설명을 잘해 손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장군은 어려운 국면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이후 조리장은 어떻게 하면 장군께서 어려운 생선 이름을 외우지 않고도 생선회를 즐길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궁리를 하던 끝에 하나의 묘안을 냈다.

그 묘안은 작은 깃발을 만들어 그 깃발에 생선 이름을 적어 생선회 살에 꽂아 상에 올리는 것이었다.

이후 장군은 조리장의 기발한 생각으로 생선 이름에 신경을 쓰지 않고도 손님들과 맛있는 회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시미의 사시(刺)는 꽂음을 의미하며, 미(身)는 몸, 물고기나 생선, 짐승의 살을 의미한다.

'생선의 살에 작은 깃발을 꽂았다'고 해서 일본에서는 생선회를 '사시미'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횟집 수조에 있는 활어는 형태, 색택 등으로 이름을 알 수 있지만 접시에 담겨 나오는 생선회 이름을 잘 아는 소비자들은 극히 일부이다.

소비자들이 생선회를 먹으면서 이름을 알게 하는 배려도 우리 업소의 경쟁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趙永濟 부경대교수. 생선회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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