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장호준 (aqualux199)   

 

            

            ▲ 잠수하는 해녀

            해녀가 이제 방금 바닥으로 잠수해 내려가고 있다.

            제주 서귀포

            ⓒ 김병일

 

어느 해 우리는 동해안의 삼정으로 다이빙을 갔다.

벌써 몇 주째 일요일이면 우리는 이곳을 찾고 있었다.

마침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잔물결이 일고 있는 바다는 햇빛을 하얗게 반사시키며 물고기 비늘처럼 번뜩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눈부신 속에서도 개 한 마리만 어슬렁거릴 뿐, 동네는 너무나 한적했다.

우리의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던 동네의 어선 두 척과 그 배를 몰고 갈 선장 이외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일요일 오전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두 일터로 나간 어촌의 풍경이었다.

선착장에 대어 놓은 배를 탄 우리들은 그 바다를 '빠삭하게' 아는 선장의 안내에 따라 포인트에 도착했다.

이어서 장비를 짊어진 사람들이 한 명씩 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바람에 날리는 꽃잎 같다.

 

그때 나는 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S와 함께 짝을 맺고 떨어졌다.

S는 다이빙 마니아 중에서도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는 스킨으로 가볍게 15미터 정도를 내려갈 수 있었고,

김밥 몇 줄을 비닐봉지에 넣어서 바다로 들어가면 그걸 물 위에 띄워놓고 해녀처럼 여섯 시간이나 일곱 시간쯤은 그냥 스킨으로 물질을 하는 사람이었다.

 

해녀야 작업이라는 목적이 있지만,

S는 단순히 물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S는 또 스쿠버를 할 때는 공기통의 공기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꼭꼭 짜서 모조리 다 마시고 올라오는 습벽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는 스쿠버의 안전수칙을 무시하는 행위여서 다이빙에서는 금지하는 일이었다.

 

S는 폐활량도 좋아서 똑같은 양의 공기를 메고 들어가도 보통사람보다 평균 이십분은 더 오래 물 속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를 항상 열외로 쳐 두다가도, 한 번씩 염려가 되어서 나무라면 자신은 절대 돈이 아까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며, 물에 미쳐서 그러는 것도 아니라면서,

자신은 일단 물에 들어가면 공기통에 있는 공기는 다 먹어치우고 올라오는 것을 예의로 생각한다면서,

그것이 자신의 다이빙 방식이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야가 일 미터도 안 되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이빙을 포기하고 올라와도 끝까지 남아서 그 공기를 다 마시고 올라와 사람들을 애타게 하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생활면에서는 몹시 성실하고 책임감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고지식(?)해서 그가 한때 노래방을 할 때는 절대로 술을 팔지 않고 도우미 여자를 불러주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수차례에 걸쳐 딴 노래방들이 다 하는 그 짓을 하지 않으면 곧 망할 수도

있다고 협박을 하다시피 했으나 그는 결코 그 짓을 하지 않았다.

물론 그 노래방은 몇 년을 못 넘기고 망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그를 비난했다.

 “집구석을 생각해야 될 거 아이가, 이 짜석아.”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라마 돈 몇 푼에 내 원칙을 팔라 이 말이가? 그런 돈은 필요 없다. 나는 아직 그래 살고 싶지 않단 말이다.”
이렇게 말해 친구들의 복장을 또 한 번 뒤집어 놓기도 했다.  

 

           

            ▲ 문어

           문어 한마리가 사진찍는 다이버를 피해 몸을 숨기려 하고 있다.

           ⓒ 장호준

 

어쨌든 그와 물 속으로 떨어져서 느긋이 유영하며 수중 풍경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그날따라 청물이 들어와서 시야가 족히 이십 미터 쯤 나오는,

동해에서는 드물게 시야가 ‘뻥’ 터진 날이었다.

 

잔압 게이지가 70BAR 쯤 남은 상태였다.

그가 갑자기 유영을 멈추더니 내 손을 잡으며 나를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는 동시에 쏜살같이 바닥으로 내리 꽂았다.

 

우리가 유영하던 수심은 15미터 정도였고 정석대로 하자면 공기가 50BAR 쯤 남으면 우리는 올라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겨우 일,이분 더 머무르고 나면 우리는 올라 올 채비를 해야 했을 때였다.

 

바닥의 수심은 18미터였다.

바위 위로 내려간 S가 갈고리를 번개같이 휘둘렀다.

뭔가 싶어 내려다 보니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것은 바다의 포식자 대왕 문어였다.

물론 문어도 그냥 당하지는 않았다.

문어는 혼비백산했지만 본능적으로 바위 밑으로 재빨리 들어 갔다.

 

지루한 싸움이 시작됐다.

나도 가지고 있던 알루미늄 작살을 꽂아 넣었으나 문어는 요지부동이었다.

장갑을 낀 손으로 문어의 다리를 둘둘 감아 끌어당겼으나, 

바위에 오백 원짜리 동전보다 더 큰 흡반을 붙인 문어는 꿈적도 않았고 알루미늄 작살이 휘어져 부러질 지경이어서 나는 작살을 놓아 버렸다.

 

급격히 힘을 쓰는 바람에 공기는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나는 올라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갔다가 다시 오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올라 왔다.

물론 그가 나보다 이십 분은 더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시 오겠다는 내 의지는 빈말일 공산이 큰 것이었다.

왜냐하면 수면으로 올라 왔다고 해서 배를 금방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곳을 다시

찾는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그 문어에겐 별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내가 올라 오자 마치 연락을 받은 듯 

그 자리에 배가 있었고 배 위로 올라온 나는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내가 내려 간 뒤에 빨리 올라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내려 보내 달라고, 

장비를 바꿔 메고 다시 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금방 그곳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침 공기가 떨어져 올라오려고 하는 S와 바통 터치를 했다.

다시 이십여 분의 난투, 그러나 그때까지도 문어는 항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올라와야 했다. 

위에서 나를 대신 할 다이버들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 다이버들이 들어가서  문어를 건져 올렸다.

S와 나는 기진맥진해서 밧줄에 묶여 배 위로 올라오는 문어를 보았다.

문어의 키는 2 미터가 넘었고 무게도 엄청 나가서 미끄러워 들어 올릴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항구로 돌아오자, 마을의 노인들 몇 분이 문어를 구경하러 왔다.

한 노인이 말했다.
“얼래요, 크다, 한 30kg은 안 나가겠나?”
다른 노인이 받았다.
“그것도 넘지시픈데, 그놈 참 크다.”

 

점심을 부탁한 어민의 집에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잔치가 시작됐다.

문어는 솥으로 던져 졌다.

문어 숙회였다.

금방 데친 문어는 초장에 관계없이 맛있다.

문어의 맛은 담백하면서도 달았다.

 

문어는 그 지능이 무척추 동물 중에서는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대가리라고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은 몸통이다.

그 안에 내장과 호흡기관, 생식기관과 먹물주머니가 들어 있고  다리 가까운 부분에 눈이 붙어 있고 뇌가 들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생활 속에 문어는 가장 가까이 있는 생물이다.

'소고기 먹고 체한 데는 문어대가리를 삶아 먹으면 낫는다'는 민간요법도 있다.

 

우리나라에서야 문어라면 제상에도 빠지지 않고 귀한 대접을 받지만,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는 종교상의 이유로 먹지 않는다.

비늘이 없기 때문이다.

 

         

         ▲ 넙치(광어)

         50센티급 넙치 한마리가 카메라맨이 가깝게 다가가도 자신의 은신술을 믿고 꼼짝도 않고 있다.

         이들이 다자라면 1미터가 넘어가는 것도 있다.

         ⓒ 김인영

 

다이빙을 하다 보면 ‘회’는 일상이다.

다이버들이 잡든 안 잡든 바다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이 ‘회’이기 때문이다.

그 맛 또한 물고기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맛이야 개인 차가 있겠지만 제철에 만나는 회가 가장 맛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봄 도다리, 여름 멸치, 가을 전어, 겨울 숭어를 제일로 치지만,

“여름 숭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산란이 방금 끝난 물고기는 기름기가 다 빠지고 그 육질이 퍼석하기 때문이다.

 

산란철에 잡힌 알 밴 물고기를 제일로 치는 것이다.

그리고 잡는 방법에 따라 그 맛의 깊이가 다르다.

잡는 방법에 따른 맛의 일반적인 평가는 대략 다음과 같다.

 

제일로 맛있는 것은 역시 작살에 맞은 고기다.

이는 작살에 맞는 순간 조직이 경직되고, 피가 빠지며, 즉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고기가 스트레스를 받을 사이도 없이 죽어야 그 맛이 뛰어나다는 말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고기를 저온에서 숙성을 시켜야 맛이 더욱 좋아진다.

 

숙성을 시키면 감칠 맛이 나는 이노신산이라는 성분이 나와서 독특한 맛과 향기를 가지게 된다.

숙성시간은 그 종류에 따라 다르다.

육회와 마찬가지로 대략 두 시간에서 스물네 시간 정도를 숙성시킨다.

 

그 다음이 낚시로 잡히는 물고기이다.

이것도 위와 같은 이유다.

낚시꾼들 중에는 물고기를 잡으면 가급적이면 오래 물고기를 살려 두려 하는 사람이 있는데,(어차피 잡아 먹으면서)

이는 고기에게 스트레스만 더 받게 하는 짓일 뿐이다.

 

일본인들은 물고기를 잡으면 바로 ‘시메’에 들어간다.

뇌를 송곳으로 찔러 급사시킨 후 목 동맥을 끊어 피를 빼고, 이어 내장을 바로 빼낸다.

이는 가장 부패하기 쉬운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베로 싸서  얼음 위에 재운다.

이때부터 숙성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다음이 그물에 잡힌 물고기를 친다.

다이버들은 자주 물 속에서 그물을 만난다.

그때의 기분은 정말 섬뜩하다.

실제 그물에 걸려 사고가 나는 다이버도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물에 걸린 시간이 오래된 고기들은 거의 탈진 상태다.

스트레스 엄청 받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고기들도 비교적 빨리 사람들 식탁 위로 오른다.

 

그 다음이 냉동된 고기이고,

가장 맛없게 치는 것이 수족관에 있는 활어다.

잡혀서 수족관에 넣어져 손님을 기다리는 고기들이다.

이들은 먹이 활동도 없고,

스트레스로 인해 기름기도 다 빠져 버려 육질이 퍼석퍼석하다.

물론 바닷가에서 금방 잡아서 잠시 수족관에 있다가 손님의 식탁에 오르는 것들이야 예외겠지만 말이다.


우리야 전 국민이 식용하는 ‘회’이지만 외국의 식문화에는 ‘회’가 없다.

외국으로 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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