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오지] 또는 [개호지]라는 말은 개호주라는 범의 새끼를 가리키는 경상도 방언이다.

 

"윗니 빠진 소호지 아랫니 빠진 개호지"하며 마치 동요처럼 부르는 이 말은

경상도 지방에서 어린이들이 6살 정도 되면 이갈이를 하는데,

젖니가 빠지고 영구치로 교체될 때 이 빠진 아이를 보고 또래들이 놀려대는 말이다.

 

여기서 소호지라는 말은 송아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소는 윗니가 없고 호랑이는 아랫니가 없는 데서 온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개오지]는 또 다른 뜻으로 패류(貝類)의 일종인 복족류(腹足類)의 한 무리의 이름으로,

기구한 운명 속에서 난산에 난산을 거듭한 끝에 태어난 소라류의 한 이름이다.

패류(貝類)라고 하는 조개 패(貝)자는 이른바 이 조개 즉 개오지 무리의 모양에서 따온 상형문자라고 한다.

화폐(貨幣)니 재화(財貨)니 하는 글자들은 모두 조개 패자가 들어 있다.

이는 옛날 개오지의 패각이 화폐로 널리 통용되었음을 뜻한다.

오늘날에도 남태평양 어느 부족사회에서는 화폐로 이 조개껍데기를 쓰고 있으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장신구로 개오지를 이용하고 있다.


다소 지루할지는 모르겠으나 조개 패자가 들어있는 글자들을 몇 자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이 돈과 관계가 많은 것 같다.

부채(負債), 탐욕의 탐할 탐(貪), 책임의 꾸짖을 책(責), 저금의 쌓을 저(貯), 세대(貰貸), 귀할 귀(貴), 매매(賣買), 자질(資質), 가치(價値), 등 등...

이외에도 많은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의 원시사회에서 화폐로 개오지라는 조개껍질이 사용되었음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개오지]의 패각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 각구(殼口)의 생김새가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하여

여성들이 이 조개를 몸에 지니고 다니면 다산(多産)하고 순산(順産)안산(安産)을 하게 된다고 믿었고

또 속설에는 남편이 다른 여자에 한 눈을 팔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다가라-가히(보패, 寶貝)라고 부르고 장신용구로 매우 귀하게 여기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이 개오지를 열쇠고리에 장식물로 달고 다니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다.

서양 사람들은 카우리(cowrie 또는 cowry)라고 부른다.

물론 조개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말이나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꽤나 귀족적으로 생긴 것 같다.

즉 길고도 좁은 입구를 가진 계란 모양의 조개라고 한다.

Cow는 물론 암소를 가리키는 말로 생물 이름에서는 주로 앞에 붙여 여성을 나타낸다.

[개오지]라는 우리말 이름이 탄생하기까지 꼬박 1년하고도 3개월이 걸렸었다.

젊은 시절 한국동물학회 산하에서 무척추동물의 이름을 우리말로 정리하고 있을 때 일이다.

이 조개의 우리말 이름은 마땅한 것이 없고,

일본 이름을 그대로 쓰면 보배조개, 보배고둥이 되며,

서양 사람들이 부르고 있는 [카우리]도 별로 신통치 못하고 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말 이름이 없을 경우 동식물의 이름을 붙일 때는 몇 가지 유의해야할 점이 있다.

그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르고 있는 이름의 뜻을 고려하거나,

생김새나 그 특징 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말

또는 학명의 어원 및 뜻을 참고하기도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우리나라 각 지방을 널리 답사하며 순수 우리말인 방언을 찾아내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개오지]는 방언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남부 해안지방과 남쪽 다도해 여러 섬에서는 널리 통용되고 있는 방언을 이미 조사해 놓고 있었다.

이름하여 개보지, 여우 보지, 꼬내기 보지(꼬내기=고양이) 등이었다.

 

이 조개는 난류성이기에 우리나라 중북부에는 서식하지 않는다.

헌데 이 방언이 아무리 널리 통용되고 있다손 치더라도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저속하고도 직설적인 여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낯을 붉히게 하는 원색적인 단어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대로는 쓸 수 없고 어떻게든지 뜻과 모양을 상징하는 방언을 살리면서 순화된 이름으로 바꿔보기로 했다.

즉 [개브지], [개부지]하고 가운데 [보]자의 [ㅗ] 대신에 [ㅡ]로, [ㅜ]로, 이렇게 바꿔놓았다.

그러나 아무리 받아들이려고 해도 역시 찜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몇 달이 흘렀다.

이젠 이름 짓는 일을 더 미룰 수도 없고 해서 개[ㅂ]지 하는 [ㅂ]자를 바꾸어보기로 하였다.

[개고지, 개노지, 개도지, 개로지, 개모지, 개소지, 개오지, 개초지, 개코지, 게토지, 개포지, 개호지,...]
이런 식으로 한자 한자 떠올리면서 생각에 잠겨 있는 데,

[개오지]라는 말이 머리를 탁 치는 것이었다.

옳다 !. 생물 이름에는 앞에 '개'자가 붙는 말이 많다.

머루 개-개머루, 살구 개-살구, 개-가죽나무, 개-갓냉이, 개-고사리, 개-국수나무, 개-느삼, 개-다래나무, 개-벗나무, 개-별꽃, 개-비름 등등...

여기서 '개'란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또는 [개꼬리 삼년 두어도 황모 안된다]라는 개자가 아니라,

가짜 또는 비슷한 것, 또는 다소 못 미치는 것이라는 뜻에서 우리나라 식물 동물들의 이름 앞에 흔히 볼 수 있는 글자이다.

[개오지]의 '개'는 그렇다 손치고 '오지'는 무엇인가.

오지그릇은 흙으로 빚어 불에 구원 만든 질그릇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오지'는 분명 자연물이 아니라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인조물이다.

다시 말해 [개-오지]란 가짜 인조물 즉 자연물이라는 말이 된다.


패류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일반 사람들은 이 개오지를 보면 대부분이 도자기처럼 구워 만든 인조물로 착각한다.

왜냐하면 색채가 다양하고 화려하며 무늬가 아름답고 광택이 유난히 반짝일 뿐만 아니라 여느 조개와는 그 생김새가 아주 독특하기 때문이다.

[개오지]란 이름은 보잘 것 없는 한낱 이물에 지나지 않지만,

가짜 인조물 즉 자연물이라는 뜻을 가진 그 이름은 일반인들이 그저 무관심하게 부르고 있지만,

나에게는 묘한 느낌의 이름이라는 생각과 함께 오랜 각고 끝에 만들어졌기에 명명 된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흐믓한 마음과 더불어 입가에 남모를 미소를 감출 수 없게 한다.


 

저       자 :  류종생 선생님<한국패류학회 고문>

저자 소개 :  이미 작고하신 한국 최초의 패류학자

저       서 :  "원색한국패류도감"-일지사-

                  최초의 한국패류도감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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