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환절기다.
도대체 바이러스가 언제부터 인간을 이렇게 괴롭히기 시작했을까?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인류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가 숨어 있는 곳,
원시 바이러스의 흔적이 남아 있을 곳으로 과학자들은 미지의 땅 극지를 지목하고 있다.
철새 따라 전 지구로 이동
↑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신종 바이러스의 숙주 동물로 극지 조류를 주목하고 있다.
장보고과학기지 주변에서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해빙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극지연구소 제공
↑ 신종바이러스를 옮기는 동물로 의심을 받고 있는 아델리펭귄.
극지연구소 제공
↑ 신종바이러스를 옮기는 동물로 의심을 받고 있는 세가락갈매기.
고려대 의대 제공
↑ 신종바이러스를 옮기는 동물로 의심을 받고 있는 남극도둑갈매기.
극지연구소 제공
지난해 1월 미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바이롤로지'에 남극에서 당시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아데노바이러스가 발견됐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남극도둑갈매기의 몸에서 이 바이러스를 처음 찾아낸 고려대 의대와 극지연구소 공동연구팀은 바이러스를 구성하고 있는 유전자 서열까지 모두 분석했다.
극지에서 존재를 드러낸 낯선 바이러스의 실체가 알려지자 세계 미생물학계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인류가 모르는 또 다른 바이러스가 극지에 더 있을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엔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보이는 바이러스의 일부 유전자가 남극에서 보고됐다.
1997년엔 가금류의 전염병인 파브리우스낭병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바이러스와 맞서 싸우는 면역물질)가 남극 펭귄의 몸에서 나오기도 했다.
남극에 이 바이러스가 존재한다는 증거다.
고려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송진원 교수는 "지난해 이후 남극에서 또 다른 신종 아데노바이러스들을 찾아내 현재 논문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남극의 이런 신종 바이러스가 중요한 이유는 숙주가 사람과 가까운 조류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전파되며 살아남아 돌연변이가 생기면 사람에게도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남극도둑갈매기는 남극에서 여름을 나고 일본, 알래스카를 거쳐 태평양 해안을 따라 이동한다.
새의 이동경로를 따라 바이러스가 극지 이외의 넓은 지역으로 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사람에게 감염되는 기존 아데노바이러스는 감기를 비롯해 폐렴과 유행성각결막염, 장염 등을 일으킨다.
남극의 신종 아데노바이러스의 인체 감염 가능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언제 생길지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선 선행 연구가 필수다.
공룡 시대에도 바이러스가?
바이러스 연구자들이 극지에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수천 만년 된 빙하 속에 남아있을지 모를 원시 바이러스의 흔적 때문이다.
이를 찾아내면 바이러스가 언제부터 존재했고, 어떻게 진화해 왔고, 어떤 경로로 인간에게 병을 일으키게 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이러스가 언제 지구에 등장했는지 정확히 알아낼 길이 없었다.
그런데 송 교수팀이 2009년 우리나라 비무장지대 임진강 근처에서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키는 한타바이러스의 일종인 임진바이러스를 찾아 낸 뒤 바이러스가 인류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을 거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임진바이러스를 갖고 있던 숙주동물이 분류학적으로 식충목(食蟲目)에 속하는 우수리땃쥐였기 때문이다.
식충목은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로 꼽힌다.
공룡이 번성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지상의 많은 동물이 멸종을 면치 못했던 빙하기 때도 잡식성인 식충목은 땅 속 깊이 굴을 파고 들어가 연명했다.
이들 몸에서 나온 바이러스 역시 그 오랜 시간 동안 공생했을 수 있다.
인류가 등장하기 전 지구의 흔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인 극지로 과학자들이 눈을 돌린 이유다.
송 교수는 "최근 북극과 가까운 노르웨이 북쪽에 특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많다는 연구들도 나온다"며 "남북극 바이러스의 종류와 분포 차이를 분석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극지의학연구회가 27일 고려대구로병원에서 국내 처음 여는 '극지의학 심포지엄' 때 극지 바이러스 관련 최신 연구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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