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우연히 걸리는 고래가 1년에 360~370마리 된다는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죠. 하루에 한 마리씩 걸린다는 건데…."

서울 강남에서 고래고기 전문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혼획(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만 잡는 것)이 전부'라는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밍크고래가 제일 맛이 좋은데 혼획으로 잡히는 것은 커 봤자 8m정도"라며 "(유통되는 고래 중에는 20m가 넘는 고래도 많은데) 큰 고래는 절대로 그물로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혼획만으로는 고래고기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만큼, 사실상 포획이 꽤 있을 것이란 추측이다.

 

어시장에서 그물에 걸린 고래를 해체해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고래연구소 제공>

 

오영애 울산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도 "해양경찰청에서 집계한 연간 불법 포획 건수는 10여 건 정도"라며 "식당에서 유통되는 양과 비교해보면 상당량은 작살을 사용한 불법 포획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법포경은 고래고기 판매에서 시작된다.

현재 상업적 포획은 금지돼 있지만, 상업적 유통과 판매를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고래고기를 취급하는 음식점은 울산에만 70~80곳. 인근 부산, 포항 등 해안도시에도 꽤 밀집해 있고 서울에도 강남 일대에 10여 곳이 있다.

이들은 지방에 내려가 고래고기를 직접 사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울산에 고래고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삶아서 얼음 통에 담아 배달해 주는 식이다.

고래고기 가격은 비싼 편이다. 요리는 부위별 수육과 모듬 수육이 대부분인데 모듬 수육은은 울산 현지에서 2~3인분 한 접시에 최고 10만원 정도다.

서울로 보면 가격이 배 이상 뛴다. 특히 지방이 많아 1㎏을 삶으면 기름기가 빠져나가 양이 40~50%까지 줄어들기 때문에 값은 비쌀 수 밖에 없다.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하다 보니 더러 속이기도 한다.

한 식당주인은 "모두가 밍크고래라고 판매를 하지만 실제론 상괭이, 곱시기 같은 돌고래 종류를 섞어 팔기도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고래는 한 번 잡으면 크기에 따라 수입이 수천 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된다.

그러다 보니 어민들 사이에선 고래가 '바다의 로또'라고 불린다.

그물에 걸리면 그야말로 횡재이지만, 값이 높은 만큼 불법포획에 대한 유혹이 끊이지 않는다.

 

↑ 18일 울산 장생포의 고래고기 전문 식당 유리창에

지금은 우리 해역에서 사라진 귀신고래의 동상이 비치고 있다.

<울산=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하지만 혼획과 불법포획을 구분하는 건 쉽지 않다.

설령 불법포획을 했더라도 해경에 혼획을 했다고 신고한 뒤 작살사용여부를 확인하는 금속탐지기와 외관검사를 통과하면 혼획으로 인정받아 유통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오 실장은 "그물에 걸린 고래를 발견하면 풀어주지 않고 (질식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데 과연 작살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혼획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며 "2005년 고래 관광 가능성 조사를 나갔을 때는 작살을 장착한 포경선을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 가입 이후 27년간 모든 고래의 포획을 금지하는 등 엄격하게 관리해 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 실장은 "작살로 잡아 아예 선상에서 해체해 몰래 유통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반박했다.

규제하고 금지시켜도 불법포경이 사라지지 않는 건 그만큼 고래고기 식습관의 역사가 길기 때문이다.

국보 제 285호인 울산 대곡리의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바다동물 75마리 가운데 고래가 절반 이상인 것만 봐도 고래 식습관이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손호선 고래연구소 연구관은 "이 지역에서 배를 이용한 수렵어로위주의 식생활이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고려 고종 때인 1215년 몽고 사신이 고래 기름을 가져갔다는 역사 기록이 남아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고래수염을 진상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현대적 의미의 포경이 시작된 것은 구한말 러시아가 울산, 청진, 장전에 포경해부기지를 세우면서 부터 였다.

울산 지역 포경의 역사가 사실상 100년도 더 된 셈이다. 1904년 러일전쟁 이후 모든 포경기지 운영권은 일본으로 넘어갔으며, 일제강점기 이후 1946년 4월16일 장생포에서 한국인에 의한 포경이 시작됐다.

지금도 고래고기를 즐긴다는 장생포 주민 김 모씨는 "1970년대에는 고래고기가 소ㆍ돼지고기보다 저렴해 살코기로 불고기를 해 먹었다"며 "장생포에 고래가 들어오면 해부장(고래 해체하는 사람)이 청룡도 같은 칼로 고래를 자르는 광경이 굉장한 볼거리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울산 자체가 공업화되고 외지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에서도 고래고기 식습관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한국일보:이성기기자 hangil@hk.co.kr 
             이지영 인턴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
             전형우 인턴기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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