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태권도 양말사건' 대만은 왜?

 

'대만 태권도의 희망' 양수춘의 광저우아시안게임 실격패와 관련 한국, 대만 정부가 동시에 "한국은 관련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양국간 감정 다툼이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이다.

마잉주 대만 총통은 아시아태권도연맹에 공식 사과를 요청하며 끝까지 싸울 뜻을 천명했다.

지난 17일 여자 태권도 49㎏급 1회전에서 양수춘은 발 뒤꿈치 부분에 불법 센서가 부착된 전자양말이 문제가 돼, 9-0으로 앞서던 종료 12초 전 실격패를 당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유력한 금메달 후보인 양수춘의 불법 양말 문제를 제기한 것이 한국인으로 알려지면서 반한 감정이 들끓기 시작했다.

온라인에는 원색적인 반한 감정을 담은 동영상들이 넘쳐나고, 대만 네티즌들이 잇달아 올린 '양수춘은 속이지 않았다(YANG Shu Chun is "NOT A CHEATER")'등 동영상은 이미 수십만 클릭을 넘어섰다.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제 경기에서 공식 장비를 쓰지 않은 것은 당연히 실격 사유다.

'소녀시대 사과' 운운하며 태극기를 불태우고 한국라면을 부수는 '반한 퍼포먼스' 역시 도를 넘었다.

하지만 실격패 당일 '참아야 한다'고 말한 대만의 차관급 체육인사가 사임할 만큼 한 나라의 국론을 들끓게 한 사건이라면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만 국민들은 양수춘의 '양말 사건'에 왜 그렇게 격분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하필 한국을 걸고 넘어지는 것일까.

 

 

◇양수춘이 9대0으로 앞서던 종료 12초 전 경기가 중단됐다.

광저우아시안게임 공식 전자호구업체인 라저스트사의 전자양말은 발등과 발바닥 2군데에 감지 센서 패치가 붙어 있는 데 비해

양수춘이 신고 나온 양말은 2007년 단종된 모델로 뒤꿈치에도 탈부착식 감지 센서가 붙어 있는 제품.

경기 직전 코치가 뒤꿈치의 센서를 떼어내는 모습이 화면에 비쳐진 후 경기가 속행됐으나,

결국 종료 직전 불법 전자양말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실격패했다.

그리고 종료 12초 전 경기장 밖에서 양말의 문제점을 지적한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반한 감정을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대만 네티즌들이 경기를 중단시킨 한국인으로 지목한 사람(검은 양복)은 당초 한국인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으나,

확인 결과 아시아태권도연맹 홍성천 부회장인 것으로 밝혀졌다.

필리핀 한인협회장 등을 역임한 홍 부회장은 '아시아 태권도의 대부'로 불리는 한국계 필리핀인이다.

늦게라도 부정 장비를 적발, 적법한 조치를 취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대만인들 입장에서 보면 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자양말의 진실?

 

광저우아시안 게임 공식 호구제조업체인 라저스트사의 전자호구는 몸통용 호구와 발등과 발바닥 두 부분에 감지 센서가 달린 전자양말로 구성된다.

이날 양수춘이 신고 나온 양말은 2007년 이미 단종된 제품으로 발등, 발바닥 외에 발 뒤꿈치에도 감지 센서 패치가 붙어 있으며 탈부착이 가능하다.

뒤꿈치 센서는 얼굴용 후려치기를 감지하도록 고안됐으나, 얼굴 공격 채점은 심판이 직접 하기로 하면서 단종됐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납품한 전자양말의 패치는 탈부착이 불가능한 봉제형이다.

구형의 발 뒤꿈치 패치를 떼어낼 경우 성능은 동일하지만 컬러와 외양은 전혀 다르다.

 

양수춘의 경기 동영상을 보면 시작 전 주심이 전자호구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기실 등에서 이미 1-2차 검사를 마친 후다.

그런데 심판 앞에 나란히 선 베트남 선수의 흰 양말과 양수춘의 검은 양말은 육안으로 봐도 완전히 다르다.

몸통 부분 전자호구 점검을 끝낸 양수춘이 돌연 대만 코치들이 있는 쪽으로 내려가 양말 뒤꿈치 쪽의 패치를 떼어낸다.

 

문제는 이 부분이다.

애초에 공인되지 않은 구형 전자양말을 신은 선수의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고 뒤꿈치 패치를 떼어내는 미봉책으로 경기를 진행한 점은 석연치 않다.

심판, 조직위나 아시아태권도연맹의 진행 미숙이 지적되는 부분이다.

 

한편 대만의 유나이티드 데일리 뉴스 18일자 온라인판에 따르면 양수춘에게 양말을 제공한 업체는 "구형 양말을 연습용으로 제공했으며, 실제 경기에 신고 나갈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신참이라면 몰라도 백전노장 양수춘이 실수로 2007년 이미 단종된 규정에 어긋나는 양말을 신었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 국내 태권도계 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격패에 한국인 개입?  

 

종료 12초 전 양수춘이 9-0 스코어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고 있던 상황에서 경기장 바깥에서 누군가가 경기를 중단시킨다.

알려진 대로 이날 경기의 주심은 필리핀인이었고, 부심 중에도 한국인이나 한국계는 없었다.

필리핀 주심에게 경기 중단을 요구한 인물은 본지 확인 결과 홍성천 아시아태권도연맹 부회장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국적은 아니지만 대만 네티즌들의 한국인 관련설이 어느 정도 사실로 밝혀진 셈이다.

한국계 필리핀인인 홍 부회장은 서울 출생으로 성균관대를 나와 전기설계사로 일하다 1976년 태권도 사범(9단)으로 필리핀에 건너가 필리핀태권도협회를 조직했다.

이후 필리핀 한인 총연합회 회장과 아시아태권도연맹 부회장으로 일하며 '아시아 태권도의 대부'로 통하는 인물이다.

국제경기에서 공식 장비 대신 구식 장비를 쓴 선수를 뒤늦게라도 발견해 적법하게 조치한 사실을 문제 삼아서는 안되겠지만,

대만 네티즌들 입장에선 미울 수밖에 없다.

아시아태권도연맹 홈페이지 해킹이나 들끓는 반한 감정에는 이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국민 태권도 영웅 양수춘이 실격패 후 경기장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대만 국민들은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국민 스포츠스타, 다 이긴 게임에 고춧가루?  

 

심판이 경기 시작 전 구형 양말이 발견된 즉시 '임의대로 전자호구를 개조해서는 안된다'는 세계연맹 규정을 들어 경기를 중단시켰더라면 깔끔했을 것이다.

일방적인 스코어로 양수춘의 승리가 확실시되던 종료 12초 전의 실격패는 국민적인 공분을 불렀다.

장비 검사를 마친 후 경기를 진행시켜 놓고, 다 이긴 경기에 실격패를 선언한 것은 억울하다는 것이 대만 네티즌들의 주장이다.

 

대만에서 태권도는 야구만큼이나 인기 높은 종목이다.

대만의 첫 올림픽 금메달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49㎏급과 남자 58㎏급에서 나왔다.

 

뿐만 아니라 미모의 양수춘은 CF모델로도 활약하는 김연아급의 국민적인 스포츠스타다.

도하아시안게임 49㎏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미모 못지 않은 실력을 입증했고 이번 광저우아시안게임의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라이벌인 중국의 우징위가 이 체급 금메달을 따내면서 '한국-중국이 짰다'는 식의 음모론도 인터넷을 후끈 달궜다.

국민적 영웅인 미모의 그녀가 졸지에 불법 센서 패치를 붙인 파렴치한으로 몰려 경기장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는 장면에 대만 국민들은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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