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진을 읽을 것인가?

 

우리들 주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시각적 존재들이 사진적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 카메라로 들여다 본 세상의 인식 방법은 같을 수가 없을 것 입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내용들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사진에 대한 피상적인 겉핥기에서 조금 벗어나 새로운 시각과 생각으로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이며, 사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어떻게 감상해야 하고, 사진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어떻게 읽어 낼 것인가에 대해 새롭게 바라 보자는 문제 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진들을 직접 찍고 전시를 하고 남의 사진을 구경하면서 사진형식에 대한 이야기는 무수히 쏟아 내면서도(표면적 이야기) 정작 그 사진이 주는 의미 혹은 메시지(내용적 이야기)에 대해서는 소홀해 온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작품이 던져 주는 의미 혹은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에서 ‘문화재의 미적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시각은 각자 아는 만큼 느끼고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전시장을 한 바퀴 도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요?

학생시절 수학여행에서 박물관을 구경하는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고 오히려 주위 매점에서 보내는 시간이 이보다 더 많았던 기억을 하면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내가 찍은 사진이 정말 좋은 사진일까?

그러면 좋은 사진은 어떤 사진일까?

좋은 사진의 기준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시작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카메라로 보는 방법(Way of Looking Through Camera)>(임동숙 지음, 눈빛사, 사진기술총서11, 2002)에 따르면 좋은 사진의 기준을 다음 세 가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주제가 잘 표현된 사진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제는 관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며, ‘주제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주제를 잘 표현해 낼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둘째, 본인의 마음에 드는 사진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감동 받을 수 있는 사진이 남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며,

궁극적으로 본인의 마음에 드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남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객관성이 확립된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합니다.

 

셋째,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사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기 위해서는 주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작품이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무수히 많은 사진을 접하면서 어떤 사진에 대해서는 참 ‘작품이다’, ‘예술이다’와 같은 수식어를 붙이게 됩니다.

그러면 내가 찍은 사진은 어떨까?

그냥 본 대로 셔터만 꾹 누른 것에 불과한가?

한번쯤은 이런 고민에 빠져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진동선은 그의 사진 칼럼에서 사진을 분류하는 기준을 ‘사진-작품-예술-미학-역사’로 분류했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은 그냥 사진일까?

아니면 한 단계 더 발전한 작품일까?

아니면 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정도일까?

그는 사진의 최고는 역사라고 규정했습니다.

즉 사진 사조를 바꾸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사진이 곧 역사적인 사진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3등선실(The Steerage)> , <5번가의 겨울>, <종점>, <Equivalent> 등 유명한 사진들 중 미국에서 돈을 벌어 유럽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타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3등선실>은 사실주의의 대표작으로 이것이 곧 사진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앙리 까르디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A decisive moment)>은 사진미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1: The Steerage, 1907> <그림2: A decisive moment >

 

나만의 사진세계를 갖기 위한 준비로 남의 사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이 찍은 사진을 어떻게 들여다 보고 그 메시지를 읽어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나의 사진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진동선에 의하면 ‘사진은 세상을 보는 마음과 인식의 창’이라 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진 가운데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그 어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사진 그 자체의 역사적, 사회적 가치와 한 장의 사진 속에 들어 있는 예술로서, 작가 정신과 작품으로서 품격의 차등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한 장의 사진에서 흔히  읽을 수 있는 형식적 요소이든, 한 장의 사진 속에 내재 된 내용적 요소이든 그 사진과의 끊임없는 소통의 작업이 병행될 때 사진을 바라보는 인식의 창도 넓어질 것이라 생각된다고 했습니다.(진동선: <한 장의 사진미학>, 사진예술사, 2001)

 

전미숙의 사진집 <우리시대의 또 하나의 풍경(An Another Landscape of Our Time)>(전미숙 사진집, 눈빛, 1994)은 급격한 산업화가 가져다 준 결과물들에 대한 이미지를 찍은 사진으로 모순된 이미지가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비교적 쉽게 전달해 내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사진을 읽는 방법을 한번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왼쪽의 사진은 피서철이 끝나갈 무렵 해수욕장 근처 술집의 나른한 오후의 정경을 촬영한 것인데.

이 사진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이 술집에서 우선 시선을 끄는 요소로는 상품을 건 닷트 게임판,반라(半裸)의 여성사진과 벽의 낙서들로, 술집 안과 밖에 놓여 있는 이들 이미지를 한 프레임에 잡기 위해 정면에서 비껴 촬영했다.

 

술집 내부에서 길게 파고든 햇살은 대부분 도시인인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 것들(닷트판, 누드사진, 차림표)과 애써 시선을 피하는 남자를 갈라놓는 경계선처럼 보이도록 의도된 것이다.

 

애써 시선을 피하는 그를 화면 밖 어둠 속으로 빠져나갈 듯이 배치시킴으로써 자신이 누리고 있는 문화가 세련되지도 뛰어나게 잘난 것도 아니며 또한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가 보잘 것 없음을 잘 알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갖는 열등감을 암시하고자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박하선의 <문명의 저편 1 (Beyond the Civilization),1999>에 대한 진동선의 사진 읽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사진은 삶의 모드가 사진의 모드임을 보여준다.

사진 속의 사막은 단순히 사진의 대상으로서 사막이 아니며, 또 자연이 빚어낸 형상으로서 조형의 모습도 아니다.

사막은 작가의 삶의 반영이며, 주름진 모래 벌은 굴곡 많은 인생의 나이테인 것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저 주름진 사막의 옷자락에서 나, 너, 우리의 지난 삶을 반추하는 노에마(Noema)가 있다.

그것은 또한 작가와 관객이 한 호흡을 이루는 등가성의 촉매역할을 한다.

 

사진이 이처럼 예리하게 삶의 단면을 자르고 그리고 또 망각된 과거의 기억을 찌르기에 예술이라고 한다.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삶인 이상, 가장 삶의 모드가 치열하게 나타나는 사진이야말로 예술의 정의를 담보하고 있다 할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아름다운 곡선에 대한 조형적 미를 느낀 것이 아니라 주름진 모래 벌에서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기억을 떠 올립니다.

이런 해석을 통해 이 사진을 보니 이 사진이 새롭게 태어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보는 사람, 해석하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에 따라 해석의 차이와 사진을 읽는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시간적 연속성이 파괴된 한 순간을 표현한 사진일수록 더욱 더 그럴 수 있습니다.

John Berger는 이를 “불연속성의 충격”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John Berger & Jean mohr는 그의 책 (이희재 옮김, 눈빛사진신서8, 1993)에서 한 장의 사진이 얼마나 모호할 수 있고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왼쪽 사진을 본 삶의 느낌을 각 계층의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 H.M. 목사:

자기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행복한 노동자. 우리를 향한 그의 몸짓은 정말 인상적이다.

이 몸짓은 폭군의 그것과는 정반대다. 훌륭하다.

그는 나를 감동시킨다.

그는 위축되지 않는다.

이런 친구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 C.M. 여학생:

누구인지는 몰라도 행복한 사람.

막 일을 끝냈다.

 

◉ J.J.B. 정신과 의사:

하루일이 끝나서 행복하다.

조립 라인이 있는 공장이다.

작업량은 다 끝냈다.

장갑을 벗고 있다.

 

◉ I.D. 공장노동자:

우연의 일치. 우리 공장에서도 저런 롤러가 있다.

표정을 보니까 한 주일이 끝나는 금요일 저녁 같다.

그는 행복해 보인다.

주말 잘 보내시길. 

 

실제 저 장면에 대해 장 모르는 말합니다.

"서독의 한 주물공장에서 국제노동기구의 의뢰를 받아 유고슬라비아 노동자의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근처에 있던 터키 노동자가 소리쳤다.

'그래, 여기 유고 사람들만 있다 이거지!

나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군!'

그래, 그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었다."
 
사진가는 무엇인가를 보고 느끼는 감동의 순간을 시간을 단절 해 사진으로 찍게 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읽히며 해석되는지는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해,

사진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고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간단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장의 사진 속에 내재된 사진적 기호들을 찾아내고 해석해 보려고 하는 노력이 사진을 새롭게 보게 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좋은 사진, 나만의 사진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안영주 프로필

<약력>

◯ 참빛사진동우회장
◯ 경상일보사진동우회 회원
◯ 포토라이프사진클럽 회원
◯ 울산사진작가협회 회원
◯ 2007년 울산환경운동연합 사진강사
◯ 2008년 울산시민연대 사진강사


<사진경력>

• 1998년~2003년 참빛 사진동우회 정기전 5회. 울산남구문화원
• 2005년~2009년 울산 사진작가협회 정기전. 울산문화예술회관
• 2006년 한-중 사진교류전. 중국 길림성
• 2006년 경상사진동우회전(樓전). 울산문화예술회관
• 2007년 한-중 사진교류전. 울산 남구 문화원
• 2007년 5월10일~7월20일 울산환경운동연합 사진강사
• 2008년 5월13일~7월15일 울산시민연대 사진강사
• 2008년 경상사진동우회전(山寺전). 울산문화예술회관
• 2008년~2009년 포토라이프 사진전. 울산문화예술회관
• 2010년 2월 울산문화예술회관개관 15주년기념 지역작가 초대전


출처: http://www.nodongnews.or.kr 글쓴이: 안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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