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잃은 ‘들쇠고래’들의 잇단 좌초, 이유는?

▲ 9월6일 충남 보령시 웅천면 장안해수욕장 백사장에 들쇠고래 3마리가 떠밀려와 주민 등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최근 서해안에서 들쇠고래가 잇따라 좌초했다.

9월 초순 충남 보령 장안해수욕장 백사장에 3마리의 들쇠고래가 떠밀려와 관계당국과 주민들의 구조작업 끝에 2마리는 바다로 돌려보냈으나 한 마리는 숨졌다.

하지만 바다로 돌려보내진 2마리의 고래마저 2주일 후 숨진 채 발견됐다.

 

이보다 한 달 앞서 들쇠고래 한 무리가 제주시 해안에서 목격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리 중 새끼고래 한 마리가 해안 바위 사이에 끼어 옴짝 달싹 못하는 것을 인근 어민이 발견해 구조 작업을 벌였다.

이때 약 100m 거리에서 큰 고래 2마리가 어린 고래를 지키는 듯 헤엄쳤고,

구조된 어린 고래와 함께 다시 바다로 유영해 갔다.

 

 들쇠고래는 우리 바다를 포함한 전 대양의 온대와 열대 수역의 수심 깊은 곳에 살고 있다.

개체 수는 양호한 상태.

국제자연보존협회(IUCN)는 위험이 적은 등급(Lower Risk)으로 분류하고 있다.

무리는 소수의 성숙한 수컷과 다수의 성숙한 암컷 그리고 새끼들로 구성된 모계사회다.

보통 15~40마리, 최대 수백 마리의 무리로 관찰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무리성 때문에 들쇠고래는 무리 전체가 동반 좌초하는 경우가 많은 대표적인 종이다.

 

세계적인 고래생물학 교과서 격인 ‘whales’(1958)에는 1927~55년 사이 세계적으로 들쇠고래, 흑범고래, 향고래 등이 약 10건에 걸쳐 최대 200마리가 무리를 지어 좌초한 기록이 있다.

최근 호주 뉴질랜드에서의 집단 좌초 소식도 많이 알려져 있으며,

미국 멕시코 유럽 중동 일본 등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집단으로 좌초하는 고래류는 주로 무리행동을 하는 고래들로 들쇠고래, 흑범고래, 고양이고래 등 그 종류가 한정돼 있다.

 

우리나라에도 고래의 좌초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십육지’에는 고래가 죽는 이유를 새끼를 낳은 고래의 자궁 속으로 고기들이 들어가 물어뜯고 빨아먹기 때문에, 범고래의 공격을 받아서, 그리고 조수를 따라 올라갔다가 물이 빠져 좌초한 것이라 했다.

 

▲21일 오전 9시 충남 태안군 안면도 해안서 죽은 채로 주민들에게 발견된 `들쇠고래' [연합뉴스]


사실 고래는 살아서 물가에 좌초하기도 하고, 죽어서 좌초하기도 한다.

고래 종류에 관계없이 한 마리 혹은 수십 마리, 심지어는 수백 마리가 집단으로 좌초하기도 한다.

대형 고래는 대부분 한 마리씩 유영하기 때문에 홀로 좌초하는 경향이 있다.

병약하거나 노쇠한 고래가 가끔 좌초하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음파기능 교란으로 좌초 가장 유력


고래가 좌초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옛날 육지에 살았던 동물이기 때문에 향수를 느껴 죽을 때 육지에 올라와 죽는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무리의 개체 수가 한계 이상으로 증가하여 감소해야 할 필요가 있어 자연 조절을 위해 좌초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우연히 얕은 물가로 나가 좌초한 한 마리가 구조를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집단 본능이 강한 무리가 같이 물가로 나가 좌초한다고도 한다.


고래의 좌초는 최근 고래 음파체계의 교란에 의한 것이 가장 타당한 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연계의 먹이사슬, 천둥, 번개, 해수의 흐름, 수온, 환경, 질병, 공포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한 음파기능의 교란이다.

지자기의 이상, 갑작스런 수온이나 수질의 변화, 귓속 기생충에 의한 청각 이상은 모두 자연적인 초음파 기능의 장애 요인이다.


날로 증가하는 해양에서의 활동과 개발도 고래의 초음파 기능에 장애를 불러올 수 있다.

수많은 선박의 항해, 해양 개발에 따른 폭발음, 고래와 해양생물에 물리적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음파의 사용 등은 고래의 생리적 공포와 음파체계의 교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우리나라 충남과 제주도 연안의 백사장과 바위 사이에 들쇠고래가 좌초한 것은 3마리가 무리를 이룬 것이 특징적이다.

집단 좌초가 아니고 기본 단위 무리에서 이탈해 있던 개체들이 좌초 사고를 당한 것이다.

충남의 경우 적은 개체가 좌초 직후 사망했으며,

두 마리의 큰 개체는 좌초에서 구조까지 약 7시간 동안 살아 있었던 것으로 보아 건강한 개체임을 알 수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방향감각을 잃고 정상적 유영이 어려운 어린 고래를 2마리의 큰 고래가 보호하기 위한 이타적 행동 중에 좌초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의 경우에도 바위 사이에 좌초한 어린 고래를 2마리의 큰 고래가 떠나지 않고 주위를 맴돈 것을 보면 어려움에 처한 개체 보호를 위한 이타적 행동으로 보인다.

 

▲홍성군 속동 갯벌에 돌쇠고래 고립 [동아일보]


 고래는 폐로 호흡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좌초한 뒤에도 살아 있다.

그러나 폐나 대부분의 기관이 몸체의 압력을 받아 질식하거나, 강한 일사량으로 인한 화상과 피부 갈라짐, 계속적인 체온 상승 등으로 죽게 된다.

좌초한 고래는 몸체의 압력을 덜어주고 차가운 해수로 피부를 계속 적시면 3~4일간 살 수 있다.

물 속으로 돌려보낸 고래의 일부는 물 밖으로 되돌아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좌초한 조건들을 유심히 살펴 재차 조치해야 한다.

 

기사제공= 주간동아  글쓴: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김장근 소장 kim5676@nfrdi.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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