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컴의 내용들을 정리하다 보니 예전에 다운 받아 놓은 글중에 하나 입니다.
이글은 강대원님이 기고한 글인지,
아니면 누가 글중에일부를 그분의 글을 인용하여 올린 글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비교적 상세한 내용들이라 여기에 그대로 다시
올립니다.
(사진크기는 현재 이 블로그가 내가 원하는 크기를 할 수 없게 되어 올리기를 포기
합니다.)
*한국 다이빙의 역사 *
우선 한국의 레크레이션 다이빙 역사가 약40년이
흘렸는데도 변변하게 정리된 기록이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현재 레크레이션 다이빙에 입문한 다이버들 중에는 테크닉이 중요하지 역사는
무슨 역사냐고 할런지 모른다.
이 나라에 태어난 사람이면 단군의 신화는 알아야 되듯이 다이버라면 우리나라의 다이빙 역사 정도는 알아야
된다고 판단되어 우리나라 다이빙 역사를 요약해서 기술 해 본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었던 석기시대 또는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판명된
바닷가 옛 살림터 주변에서는 조개 무덤이라는 것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우리 조상들도 기원전 300년경부터 다이빙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본다.
문헌에서 보면,
'해녀연구' 라는 책에서는 4세기경에 해녀가 있었다고 하는 고고학적 자료를 찾을
수가 있다.
[ 강대원, 1973,
한진문화사 ]
옛 기록을 담고 있는 다이빙 관련 문헌들 중에 유일하게 나타나 있는 동양에 관한 기록은 기원전부터 활동했다고 하는 일본의
'아마(海女)' 이나 우리나라 해녀가 일본의 해녀보다 물에 대한 적응력이 월등하며,
1970년대 일본과 한국의 해녀가 모두 30,000명인데 제주도의 해녀가 11,000명인 것에서 보나,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제주도가 해녀의 발상지로 추정되며 세계최초의 여성 다이버는 제주도
해녀가 아닌가 추측된다.
다산 정약용이 경상도 장기현에 유배중
지은 '잠수하는 아가'에서 보면 물질을 하다 죽은 며느리를 기리는 어느 시아버지의 심정을 적은
것으로 잠수하는 상황이 비교적 잘 기술되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에서만 하여도 제주도 이외의 육지 바닷가에서도 많은 해녀가
활동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발명한 '거북선'을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내세울수 있는 수중에 관한 연구가 거의 없는 듯 하다.
그후
1943년 (프)쟈크 이브 쿠스토와 에멜까냥이
스쿠바를 발명했으며
1950년 6.25전쟁중에 미 해군으로부터 스쿠바 다이빙 장비와 기술이 도입되어
1953년 우리 해군에도 S.S.U(Ship Salvage Unit)와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
가 창설되었다.
우리나라
다이빙 역사 또한 해군의 유능했던 다이버들에 의해 민간인들에게 전파되었으며,
대학의 모험심 많은 젊은이들에 의해 도입되었고 보급되었다.
1963년 3월 대학의 모험심 많은 개척자들에 의해 남대문 근처의 골방에서 [ 한국
스쿠버 클럽 ]이 창설 되었다. [ (현) 대한수중협회, KUA, 김상겸, 이병두, 최초의
잠수단체 ]
고려대학교(이병두, 황치효), 연세대(윤석인, 오윤배), 한양대(노건기,김광휘),동국대(차광) 중앙대에서 스킨스쿠버 다이빙 서클이
생겼다.(1968 ~ 1969)
이 시기의 서울의 다이버라야 100~200명이었으며
활동적인 다이버는 고작 30명 내외였고,
잠수 이론서는 없었으며 장비 또한 형편없었다. (10명중 SUIT 소유자 는 7~8명, B.C는 2명, 호흡기 2~3명, 콤프레셔는 총
3대 내외)
그러나 다이버들 간에 정신세계는 매우 우호적이었고 낭만적이었다고 원로 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이때 서울에는 (주)엑심 [ (현) 썬스포츠, 김광휘 ]이라는 장비 수입을 겸한 건축자재
수입 가계가 한남동에 있었고, 우정사 (임성기)와 반도 스포츠 [ (현) 코다스포츠, 유영제
]가 서울 남대문 시장 앞에 있었다. (한국 최초의 장비점들).
1971년 제주도 수중비경을 맛보고,
1972년 일본인 PADI강사와 다이빙을 해본 김광휘는 [ (현) 썬스포츠 대표, SEA 코스디렉터 ] 1973년 스쿠바 다이빙을 배우기
위해 한국인 최초로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한국 최초 일본잠수연맹인 JUDF 강사, PADI 강사교육 수료).
1973년 한국에서도
외국교육단체로서는 처음으로 PADI (코스디렉터: 월리암스)가 들어와 한국 최초의 강사 들을 배출하고 (황치전, 조길도, 이병두,
노건기,이춘근, 유국현, 김춘광, 정민영, 현용남 제)
1980년대 초까지 여러번 강사들을 배출하게 된다.
일본에서 귀국한 김광휘는 1975년 한국에서는 최초로 제주도 서귀포
관광호텔 ( (현) 파크호텔 )에 코리아 다이빙센타 라는 RESORT SHOP 을 창업했다.
(김광휘,이철우, 황지천)
서로가 합심하지 아니하면 물속을 구경할 수 없었던 그 시절 서울 에서는 모든 다이버들이 우정사를 중심으로 장비도 구입하고 정보도 교환했다.
안정훈(아트스포츠 대표), 정일만(이민), 현용부(현 스쿠바 장비세트 대표)는 임성기(우정사 대표)를 시켜 홍보하면서 한국최초의
순수 스쿠바 다이빙 클럽인 [ 한국 잠수 동호회 ] 가 1976년 설립되었고 (현용부, 정일만,
안정훈, 김인배, 고창근, 임성기, 양태빈, 박순원, 홍근원, 오성원 [ (전) 현대중공업 구매부장, 현중 잠수연합회장 역임 ], 김인영,
오윤배, 정연평, 이건, 한형도(작고), 정석은, 김과윤, 오경민, 장준량, 이병수, 김희일) 현재까지 9명의 회원이 남아 매월 침목
다이빙을 실시하고 있다.
이때 경북에도 경북잠수동호회 [ (현) 대구잠수동호회 ] 가 생겼으며,
자매결연을 하고 서로 침목을 도모하고,
경북의 스포츠 스쿠바 다이빙 보급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 정호웅(작고), 변춘부, 김호상, 임성지, 박병훈, 배칠근, 이태균,
시흥기(작고), 이석근 ]
1977년 김광휘와 조길도, 김현웅이 배출시킨 김영수외 그 문화생들로 우리나라 두번째 순수 취미 스쿠버
다이빙 클럽인 [ 판 코리아 다이빙 클럽 ]이 결성되었고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편으로,
연대 스킨스쿠버 써클 창설의 주축 중 한사람이었던 윤석민을 중심으로 오윤배, 안정훈, 이요섭은 미도파백화점 부근에 스쿠바 다이빙 샵인 [ 바다상사 ]를 창업했으며
윤석민(작고)과 이요섭은 전길남 NAUI 강사(재미 공학박사)로부터 보조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1978년)
이들이 현재 NAUI
KOREA 의 주측 멤버들이다.
잠수 동호회 멤버였던 김인영은(SCUBA DIVER발행인) 1979년 잠수이론이 체계화 되지 못한
이 땅에 [ 스킨 스쿠버 다이빙원리 ] 라는 잠수이론서를 최초로 집필하여 발행하므로 써 잠수계에
기원이 되는 한 획을 그었다. (80년대 잠수이론 교육 시 단체와 관계없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책 임)
1979년 김봉제,
조현종, 차광, 김창환을 중심으로 창설된 KUDA(한국잠수협회) 가 문교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되었고
KUDA와 KUA는 상호 견제와 선의의 경쟁으로 현재까지 우리나라 수중계를 이끌어 오고 있다.
한때 무분별한 강사자격증의
남발로 잠수계의 비난을 받았던 KUDA는 1980년 PADI 강사가 된 지봉규(54세, 수영선수, 조오련 수영코치, (전)IDEA KOREA
대표)는 KUDA 기술위원장이 되어 1989년 DITC(DIVING INSTRUCTORS TRAINING COLLEGE) 제도를 만들어
92년까지 이론과 기술을 겸비한 강사들을 배출하므로써 KUDA 인물 역사상 한 획을 그은 사람이다.
이때 주축멤버들이 지금의 잠수계를
이끌고 있는 멤버들이다.(백상현, 정현우, 채상훈, 전순태(작고))
1950년 6.25사변과 함께 우리나라 해군에 스쿠버 다이빙이
보급되어 군복무중 다이빙을 배워 전역 후에도 계속하였거나,
그들로부터 배운 젊은이들, 그 모험심 많은 젊은이들이 써클과 클럽을 만들었던
1960년대까지를 스쿠버 다이빙의 도입기 로 본다면
1970년대는 초창기라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때 뿌리를 내린 단체를 중심으로
1980년대에는 스쿠버 다이빙이 광범위하게 보급 되었다.
1981년 우리나라 잠수계 최초로 여성강사가 탄생되었고 (PADI,
기형희)
1983년에는 윤희성(수중영상제작자), 김재영(SSI한국대표), 김용중(BASC강사), 박종섭(
BASC KOREA총무),
하승수(BASC강사)를 중심으로 10여개 대학을 묶은 [ 전국대학
잠수연합회 ] 가
결성되었으며
1990년까지 한강수중탐사, 휴전선에서 여의도까지 수중탐사, 일본 원정 등 많은 일화를 남겼다.
윤희성은 1986년
[수중계]라는 수중전문지를 창간했다.(1987년 제2호로 폐간) [전. 대 잠수연합]을 창설했던 이들은 1989년 일본으로 건너가서
BS-AC강사가 되었으며
BS-AC를 국내에 도입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BS-AC JAPAN대리점으로 있었던 BSAC는 1994년 7월 BS-AC
KOREA 로 독립하게 된다.
1987년 이전까지는 잠수하면 수중사냥과 채집이 거의 전부였다.
1980년 초까지는 어촌의 인심도 좋았으나,
무분별한 남획으로 잠수할 수 있는 POINT가 없어지던 이시기에 초창기 잠수를 도입했던 우리나라 잠수계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1987년 6월 24일 [ 한국수중사진연구회 ] [ (현) 한국 수중 사진 영상협회 ] 가 창설 되었다.
(김광휘,김인영,이장백,양태빈,이병두,이상시,이석근,김생수,장석은,권주훈 등)
이와 때를 같이해서 스킨스쿠버 다이빙 원리라는
잠수이론서를 집필했던 김인영은 1987년 9월에 수중전문지 [ SCUBA DIVER ] 를
격월간으로 발행하게 된다.
잠수관련 소식이 전무했던 그 시절 잠수이론, 수중사진, 외국소식 등을 전달하여 우리나라 수중인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으며
지금까지 많은 수중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1990년 이전에는 잠수하면 일부 특수계층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
90년 이후 국가의 발전과 각종 매스컴들의 영향으로 회사원, 자영업을 하는 일반인들에게
까지 급속도로 보급 되었다.
1992년 6월 26일 드디어 한국에도 수중계의 두뇌집단이 생겨났다.
잠수와 관련된 의학자, 생물학자, 공학자, 학술계,
수중영상전문가, 잠수관련 특수부대 책임자들이 모여 [ 한국수중과학회(KOSUST) ] 를
창립했다. (고철환 서울대교수, 제종길 해양연구소 연구원, 윤석근, 이병두, 정의욱, 김강택등 33명)
1992년 7월 썬스포츠 김광휘는 SCUBAPRO에서 보급하는 SEA (SCUBAPRO EDUCATIONAL
ASSOCIATION)을 도입했으며,
1983년 전국대학 잠수연합을 주도했던 김재영은
1994 년 일본에서 SSI를 도입 하였다.
또한 KUDA 위상을 한 단계 높였던 지봉규는 1997년 미국교육 단체인 IDEA
(INTERNATIONAL DIVING EDUCATORS ASSOCIATION)을 도입하였다.
잠수장비가 부족했고 검정 슈트가
유행했던 50,60,70년대를 거쳐 잠수가 본격 도입되었고,
장비들이 좋았던 80,90년대 초반에 이어 우리는 컴퓨터게이지 시대를 지나서
NITROX, 재호흡기 시대를 살고 있다.
본 글의 내용과 한국다이빙역사의 비디오를 보여 주신 최신욱강사님(해양인의집),
서송훈사장님(스쿠바하우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바 입니다.
감사합니다........
**********************************************
이글을 옮겨 놓으면서 이 엉터리도 ,
과거의 어려웠던 시대에 잠수를 보급키 위한 잠수인 원로의 노고 대해
머리숙여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론 잠망경 > ┏ 잠수 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수를 위한 라이센스 종류(1) (0) | 2005.01.25 |
---|---|
한국 산업 잠수 발전사(펀글) (0) | 2005.01.23 |
잠수사고 사례분석.<<퍼옴>> (0) | 2004.12.06 |
다이빙과 클라이밍의 차이점 (0) | 2004.10.09 |
머구리는 어느 나라 말일까요? (0) | 2004.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