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잡이의 시작
고래의 존재에 대해 알게된 것은,
해안으로 떠밀려온 고래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부터였을 것이다.
덩치가 큰만큼 살코기도 많았고, 게다가 맛있기까지 하자,
사람들은 고래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고기를 원해서였지만,
차차 사냥의 목적은 고래의 기름을 얻는 것으로 변했다.
18세기부터 산업과 탐험, 발견의 기치를 건 고래사냥은 이렇게 질 좋은 기름과 맛있는 고기를 얻기 위해 시작되었다.
초창기의 사냥법
초창기의 사냥법은 한꺼번에 많은 소형정들을 몰고나가 가능한 한 많은 작살을 꽂은 다음,
고래가 진이 빠질 때까지 배를 타고 쫓아다니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고래를 완전히 죽이려면 보통 수십차례 창을 찔러야 했다.
마지막에는 고래의 폐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고,
덕분에 고래가 숨구멍을 통해 뿜어내는 물줄기도 온통 새빨갰다.
포경선의 선원들은 ‘붉은장미’라고 불리웠던 이 물줄기를 통해 고래의 죽음을 예상했다고 한다.
한편, 중세 초기 노르웨이인들은 작은 고래떼를 해안으로 몰면서 포위망을 좁혀 사로잡는 방법을 시작했다.
또 이들 중 포위망을 탈출한 몇 마리를 추적하기 시작하면서 고래 사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고래사냥의 목적
고기와 기름 뿐만 아니라,
입 안에서 먹이를 거르는 역할을 하는 수염고래의 수염이 솔과 여성 코르셋용으로 이용되었다.
석유와 기름의 등장으로 고래 기름의 소비는 줄었지만,
다른 용도를 위해 포경산업은 계속되었다.
70,80년대
지적포유동물인 고래를 살리기 운동 시작
20세기 후반에 이르자,
사람들은 고래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했고,
70년대, 80년대에 이르면서 일반인들도 고래가 단순한 물고기가 아닌 지적 포유동물임을 알게 되었다.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그들만의 언어가 있는 고도로 발달된 지적 포유동물 말이다.
우리와 똑같은 지적 포유동물이, 포경선에 의해 대량학살되는 모습,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몸부림을 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마치 눈물을 흘리는 듯한 모습,
붉게 물든 바닷물.
이런 장면을 매스컴을 통해 접하게 된 사람들이 고래를 살리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고래사냥을 반대하는 그린피스의 작은 보트 한 척이 대형 포경선과 이들에게 쫓기고 있던 고래 사이로 뛰어든 적이 있었는데,
그 포경선이 아랑곳하지 않고 고래에게 작살을 쏘아대는 모습이 전세계로 방영되었다.
고래사냥은 물론이요, 코앞의 사람들이 작살을 맞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포경업자들의 몰상식함은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멸종위기에 놓인 고래
지적포유동물이기 때문에 또는 방법이 잔인하기 때문에 반대되었던 고래사냥은,
점차 고래가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했음이 알려지면서 전세계적인 협약이 필요하게 되었다.
흰긴수염고래(blue whale)는 이제 5,000 마리도 채 안 된다.
일부에서는 1,300-2,000 마리 정도가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도 하다.
쇠고래(gray whale)는 크게 3집단으로 나뉘는데,
한 집단은 이미 멸종했고,
한 집단은 멸종위기,
한 집단은 겨우 멸종위기를 모면한 상태이다.
긴수염고래(fin whale)는 이미 개체수의 회복이 불가능 해 곧 멸종할 것으로 예상되며,
향유고래는 덩치가 큰 수컷만을 잡아온 탓에 성비율이 맞지 않는 상태이다.
또, 여전히 밍크고래는 연간 수백만마리씩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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