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사용한 최초의 선풍기는 1882년 발명됐다.

날개를 이용한 그 방식은 127년간 변하지 않았다.”


영국의 가전제품 기업, ‘다이슨(Dyson)’ 본사에 가면 이렇게 쓰인 스티커를 볼 수 있다. 127년간 변치 않은 선풍기 방식에 혁신을 가져온 회사다운 문구다.

2009년 이 회사가 만든 ‘날개 없는 선풍기’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으니까.

이 선풍기는 2010년 1월부터 우리나라에도 상륙해 한여름 무더위를 이길 아이템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사실 127년간 날개 있는 선풍기만 봐온 사람들에게 다이슨의 선풍기는 낯설다. 날개도 없이 어떻게 바람을 낸단 말인가? 하지만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James Dyson)’은 거꾸로 생각했다.

“왜 선풍기는 꼭 날개를 써야 하지?”

선풍기는 날개가 돌아가기 때문에 바람이 끊기는 경우도 있고, 날개를 분리해야 해 청소하기도 어렵다.

또 아이들이 돌아가는 선풍기에 손가락을 넣는 경우도 있어 위험하기도 하다.

이런 불편함을 없애겠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선풍기의 틀을 깼다.


[그림 1] 날개 없는 선풍기 ‘에어 멀티플라이어(Air Multiplier)’. 사진 출처 : 동아일보


이 선풍기는 동그란 고리 모양의 윗부분과 작은 원기둥으로 이뤄진 아랫부분을 가졌다.

정식 명칭은 ‘에어 멀티플라이어(Air Multiplier)’. 말 그대로 바람을 몇 배나 강하게 만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람을 강하게 만드는 원리는 비행기에서 빌려왔다.

원기둥 받침대에는 비행기의 제트엔진 원리가, 고리 모양의 원에서는 비행기 날개 모양이 발견된다.

비행기에 사용되는 제트엔진은 날개를 돌려 바깥 공기를 안으로 빨아들인다.

이 공기가 연료와 섞여 타면 고온의 기체가 나오는데,

이를 밖으로 배출하면서 비행기가 앞으로 가게 된다.

날개 없는 선풍기의 받침대에도 작은 모터와 날개가 들어 있다.

이들이 돌아가면서 바깥에 있는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

이 선풍기에 사용된 모터는 1초에 약 20ℓ의 공기를 빨아들일 수 있다.

받침대에서 빨아들인 공기는 위쪽의 동그란 고리로 올라간다.

여기로 올라간 공기는 시속 88km 정도로 빠르게 흐르다가 고리 안쪽에 있는 작은 틈으로 빠져나오게 돼 있다.

이때 고리 모양 때문에 더 강한 공기 흐름이 만들어지게 된다.

속이 빈 비행기 날개처럼 생긴 고리의 단면이 바람을 몇 배나 강하게 만드는 비밀인 셈이다.


[그림 2] 날개 없는 선풍기의 원리를 나타낸 그림.

위쪽 고리의 단면을 살펴보면 비행기 날개 모양과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고리의 바깥쪽은 평평하게, 안쪽은 둥그렇게 생겨서 고리 안쪽의 기압이 바깥쪽보다 낮아지게 된다.


보통 비행기 날개는 윗면이 볼록하고 아랫면이 평평하게 생겼다.

이 때문에 날개 위아래에서 공기가 다른 속도로 흐르게 된다. 윗면의 공기가 아랫면의 공기보다 빠르게 흐르므로 윗면의 기압이 아랫면보다 작아진다.

그래서 비행기 날개가 위로 떠오르는 힘인 양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날개 없는 선풍기의 고리를 잘라 단면을 보면 고리의 바깥쪽은 평평하고 안쪽은 둥그렇다.

단면만 놓고 본다면 비행기 날개를 뒤집어놓은 모양이다.

비행기 날개에서처럼 공기는 둥근 면에서 더 빠르게 흐르므로 고리 안쪽을 지나는 공기가 바깥쪽보다 빠르다.

고리 안쪽의 틈에서 나온 공기가 빠르게 흘러가면 고리 안쪽의 기압이 바깥쪽보다 낮아진다.

공기는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고리의 바깥쪽보다 안쪽의 기압이 낮아지면 주변 공기가 고리 안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때 고리를 통과하는 공기의 양은 받침대에서 빨아들인 공기의 양보다 15배 정도 많아지게 된다.

이런 원리로 바람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날개 없이도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날개 없는 선풍기가 만드는 바람은 일반 선풍기보다 더 시원하다.

또 일정한 바람의 세기를 만들 수 있다.

날개가 돌아가면서 불규칙한 바람을 만드는 선풍기보다 우수한 점이다.

에어컨을 사용할 때처럼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물론 가격은 30~70만 원까지 나가서 에어컨에 맞먹을 정도로 비싸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100년 넘게 가지고 있던 생각의 틀을 깬 제임스 다이슨.

그가 날개 대신 공기역학 법칙을 활용하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얻어낸 결과다.

어쩌면 날개 없는 선풍기의 시작은 다이슨의 대표 상품인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부터일지도 모른다.

먼지봉투 때문에 진공청소기의 흡입력이 약해진다는 걸 알게 된 제임스 다이슨은 이를 개선하려 했다.

그는 무려 5,126번의 실패를 거친 뒤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이후에도 연구개발은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이슨은 엔지니어들이 진공청소기 모터로 손을 말리는 장면을 보게 됐다.

모터에서 나오는 바람이 손을 말리기에 좋았던 것이다.

이는 곧 ‘손 건조기(Air Blade)’ 개발로 이어졌다. 작은 모터를 회전시켜 바람을 일으키고 이것으로 손을 말리는 방식인데,

손 건조기의 가운데 움푹 파인 곳에 손을 넣으면 자그마한 틈새로 시속 640km의 공기가 뿜어져 나온다.

이 바람은 마치 칼날처럼 강력하게 손에 있는 물기를 쓸어가 버린다.

손 건조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은 적은 양의 공기를 빨아들여 16~18배 많은 주변 공기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원리는 다시 날개 없는 선풍기에 적용돼 선풍기 몸체에 모터를 설치하게 됐다.

모터가 작은 바람을 흘려보내주면 주변의 바람과 합쳐지면서 큰 바람을 일으키게 만든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발명품은 고정관념을 깨는 발상과 수없는 노력에서 나온다. 날개 없는 선풍기에서 바람이 나오는 원리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최선을 다한 엔지니어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제임스 다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실패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매번 실패에서 무언가를 배웠고, 그것이 내가 해법을 찾는 방법이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자기공명 방식 이용, 근거리 충전기술 개발

 

"스마트폰 배터리가 떨어졌어. 급하게 연락 오기로 한 곳이 있는데 어쩌지?"

"저기 무선충전이 가능한 커피 전문점이 있네. 차 한잔할 겸 잠깐 들어가자."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커피를 주문한 뒤 휴대전화를 탁자 위로 꺼냈다.

곧바로 '충전 중'이라는 글자가 액정에 나타났다.

30여 분이 지나자 휴대전화에는 '충전 100%'라는 표시가 떴다.

무선랜(와이파이) 지역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듯이 '무선충전 지역'에서 자동으로 휴대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으로 기대된다.

전원을 연결하지 않아도 전자기기의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공명 방식 연구 경쟁

시중에서 판매되는 무선충전기기는 대부분 '전자기 유도 방식'을 이용한다.

전자기기에 자기장을 걸어 주면 전류가 만들어지는 원리다.

하지만 충전 거리가 수 mm에 불과해 충전하려면 전원에 가까이 놓아야 만 하는 한계가 있다.

과학계에서는 먼 거리에서도 충전이 되도록 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무선충전 기술은 자기공명 방식이다.

2007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마린 솔라서치 교수가 개발한 기술로 두 개의 코일을 하나는 전원에, 하나는 전자기기에 연결해 같은 주파수로 맞추면 '공명'이 발생해 전류가 흐르는 원리를 이용한다.

자기공명 방식은 충전 거리를 수 m까지 늘릴 수 있어 애플, 인텔, 삼성, LG 등의 글로벌 전자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자기공명 방식을 이용해 전선 없이 전류를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 등에 보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지난달 발표했다.

ETRI는 40인치 크기의 LED 액정을 전원부 근처에 설치해 전선 없이 전류를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컴퓨터 전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성인 손바닥 크기의 수신기를 노트북 밑에 부착하면 전원부와 최대 1.5m 떨어져 있어도 충전이 가능하다. ETRI 미래전파기술연구팀 윤재훈 책임연구원은 "주파수와 출력을 조절하면 휴대전화 등 다양한 전자기기에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우리 연구진 '징검다리 중계기' 개발

무선 전원이 제 역할을 하려면 1m로는 부족하다.

전원이 있는 1m 내에서만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있고 충전을 위해 전원 근처에 둬야 해서 '무선'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먼 거리까지 전류를 보내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 연구진들이 '징검다리' 형식으로 전류를 전달해 주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자기장에서 생성된 에너지가 전달되는 '중계기'를 사용해 최대 5m까지 전류를 보내는 것이다.

한국전기연구원 전기정보망연구센터 박영진 책임연구원(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 겸임교수)은 중계기를 이용해 전원으로부터 3m 떨어진 곳에 있는 200W급 전자기기의 충전 시연에 성공했다.

충전효율은 80∼85%에 달하며 기존의 무선충전 방식과 비교해 출력과 충전 거리 모두 향상됐다.

전원과 연결된 송신기에 전류를 흘려주면 코일에 자기장이 생성되면서 에너지가 발생한다.

이 에너지가 중계기를 통해 전자기기와 연결되어 있는 수신기로 흘러간다.

수신기와 연결된 전자기기는 전원을 꽂지 않아도 전기를 받아 작동한다.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중계기를 하나 더 설치하면 최대 5m까지 무선충전이 가능하다.

박 책임연구원은 "송신기와 수신기가 무작위로 배열되어 있어도 충전 효율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기에 가능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자기공명 방식에 사용하는 송신기와 수신기의 위치에 따른 충전 효율을 정확히 분석할 수 없어 무선충전 거리를 늘리는 것이 어려웠다.

또 그는 "무선으로 전자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거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효율도 증가하고 있다"며 "앞으로 1, 2년 내 벽걸이TV나 청소기, 다양한 모바일 기기 등을 집 안 어디에 둬도 무선 충전이 가능한 시대가 올 것"으로 내다 봤다.

[동아일보] 원호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won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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