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9월1~2일 강력한 태양폭풍이 몰아쳤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의 거리에서 사람들은 넋을 잃고 하늘을 바라봤다.
로키산맥의 광부들은 아침인 줄 알고 일어나 식사를 준비했다.
카리브해 쿠바에서 태평양 하와이까지 오로라를 일으킨, '캐링턴 대폭풍'이라는 천문학적 사건.
2013~2014년에 비슷한 규모의 태양폭풍이 예측되기도 했지만 큰 이변은 없었다.
세 번의 오로라를 봤다.
처음은 알래스카의 에스키모(이누이트) 마을 카크토비크에서,
두 번째는 런던에서 서울로 오던 항공기 안에서,
세 번째는 아이슬란드의 한 농가에서다.
처음 만난 오로라는 격정적으로 휘몰아쳤다.
북극해의 바닷가, 북극고래를 잡으러 나간 어른들을 기다리던 소년 소녀들과 함께 봤다.
초겨울 어둠에 빛을 잃어가던 하얀 바다얼음 위로 뿌연 연기 같은 게 흘렀다.
처음에는 해무인 줄 알았다.
그러나 천천히 녹색조를 띠면서 짙어졌고 나중에는 작은 마을을 미친듯이 휘감았다.
떠도는 녹색의 유령 때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소년소녀들은 심드렁하게 돌수제비만 떴다.
북극의 원주민마다 오로라는 다른 뜻을 품고 있다.
캐나다 래브라도의 에스키모는 갓 죽은 영혼들이 저승에 오를 수 있도록 빛의 영혼들이 하늘의 틈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우르릉 쾅쾅' 하는 소리는 선한 빛의 영혼들이 죽은 자와 대화하는 소리다.
북극의 바닷가에선 정말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린다.
사실은 바다얼음이 부딪히는 소리일 것이다.
그린란드의 에스키모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기들이 오로라를 이룬다고 믿었다.
아기들이 즐거워 춤을 추면 우아한 빛의 흐름, 화가 났을 때엔 땅으로 돌진하는 불길.
왜 화가 났을까?
새로 죽은 사람들이 그들의 영역을 침범할까 두려워서 오로라가 땅으로 다가온다고 여겼다.
대기층을 영사막 삼은 빛의 향연
오로라는 태양이 부리는 마술이다.
태양에서 날아온 전하를 띤 입자(플라즈마)가 지구 대기에 있는 입자들과 충돌한다.
자기장의 영향에 따라 입자는 남·북극으로 흘러가고 전기에너지가 방전·소진하면서 빛을 발한다.
마치 전자들이 텔레비전 영사막에 부딪히면서 빛을 내듯이, 오로라는 대기층을 영사막 삼아서 빛의 향연을 펼친다.
빛을 내던 태양의 입자는 지상 90㎞ 지점 쯤에서 에너지를 모두 잃게 된다.
여기가 향연의 최저점, 오로라의 치맛자락이다.
오로라는 보통 녹색과 적색 빛깔을 띠는데, 녹색 오로라는 90~150㎞, 적색 오로라는 150~300㎞ 정도에서 발생한다.
가까이 떠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대기권의 최상층부인 열권에서 펼쳐지는 오로라를, 대기권 최하단부인 지표에 있는 우리들이 우러러 보는 것이다.
따라서 북극에서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을수록 우리는 적색의 오로라를 볼 가능성이 커진다(캐나다 중부나 영국 스코틀랜드에선 일년에 한두 번씩 오로라가 육안 관측된다).
높이 뜨는 적색 오로라는 그만큼 지상의 먼 지역까지 자신을 뽐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처음 본 오로라는 녹색이었고, 두번째 항공기에서 본 오로라는 붉으스레하기도 했고 노르스름하기도 했다.
북반구 대서양을 횡단하는 항공기에선 오로라가 심심찮게 보인다.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캐나다를 가는 항공편도 아북극·북극권을 따라가기 때문에 관측이 가능하다.
유럽을 가고 있다면 오른쪽 창가에, 미국을 간다면 왼쪽 창가에 자리를 잡으라.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천체 관측기록을 유난히 많이 생산한 나라 중 하나다.
<삼국사기>를 살펴보면,
지금 우리의 하늘에서 보이지 않은 현상이 관찰된다.
붉은 기운(적기), 하얀 기운(백기) 등으로 묘사된 색의 기운들이다.
"여름 4월 동방에 붉은 기운이 있었다"(백제 다루왕 7년, 서기 34년)
"봄 3월 갑인 밤에 붉은 기운이 태미원에 뻗쳤는데 마치 뱀과 같았다"(고구려 신대왕 14년, 178년)
뱀처럼 하늘을 휘감은 붉은 기운은 무엇이었을까?
기상청은 2011년 <삼국사기·삼국유사로 본 기상·천문·지진기록>에서 삼국시대에만 비슷한 천문기록이 일곱 번이나 등장한다고 밝혔다.
신비로운 천체현상은 고려시대 들어서는 더욱 급증한다.
<고려사>와 <증보문헌비고>에 실린 기록만 232개다.
단순히 붉은 기운(적기)이 있었다는 표현에서부터 색의 짙기와 분포 범위를 자세하게 표현해 오로라의 세기를 추정할 수 있을 정도다.
<고려사>의 일부 기록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불같은 적기가 남방에 나타났다"(현종 3년, 1012년 6월12일)
"밤에 비단같은 백기가 하늘까지 닿았다가 갑자기 붉은 요기로 변했다"(현종 8년, 1017년 12월15일)
"밤에 적기가 북에서 서로 흩어져 하늘에 퍼지고 백기가 그 사이에 뒤섞여 일어났다가 잠시만에 흩어졌다"(숙종 6년, 서기 1101년 1월31일)
양홍진 박사(현 한국천문연구원 이론천문연구센터장)는 동료 연구자와 함께 1998년 쓴 <고려시대의 흑점과 오로라 기록에 보이는 태양활동주기>에서 이런 기록들이 오로라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양 박사가 사용한 방법은 오로라 기록이 나타난 시기와 빈도, 오로라의 강도를 통계적으로 정리해 '주기'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적기와 백기는 10년 주기로 강하게 나타났다.
이는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태양 표면의 활동은 11년을 주기로 활동이 왕성해졌다가 조용해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태양의 활동이 강할 때, 태양의 입자는 더 폭발적으로 우주에 방출되고, 오로라는 지상에서 더 잘 보인다.
그렇다면, 두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첫째, 유난히 한국에서 오로라 기록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지금 보이지 않는 오로라가 왜 고려시대에는 자주 보였는가?
첫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나라 천문 관측 기록이 서양보다 훨씬 방대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한반도에서는 중앙집권적인 왕조가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많은 역사기록을 남겼다. 역사기록에는 역법이 필수적이다.
한반도의 발달한 농경문화 또한 역법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이런 경제사회적 배경은 천문 기록을 자세히 남길 수 있는 좋은 조건으로 이어졌다.
둘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북극이 역사적으로 이동해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나침반은 항상 북쪽을 가리킬까?
그렇지 않다.
자북극은 일반적으로 서쪽으로 5년에 약 1도씩 이동한다.
지금의 자북극은 고려시대와 달리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캐나다 북극권에 있다.
양홍진 박사는 "고려시대에는 자북극이 유럽~러시아 북극권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한반도에서 오로라가 떴다는 사실은 이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천문학계의 정설로 통한다.
이를테면 2008년 영국의 천문학자 리처드 스테픈슨(Richard Stephenson)과 데이비드 밀스(David Mills)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을 분석해, 조선 중기인 1625~1628년 약 3년 반 동안 96차례의 '붉은 기운' 기록을 찾아냈다.
인조 3년 1625년 <승정원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자시와 축시에 사방에서 붉은 기운이 있다.
하늘 위에 서 있고 밝았으며 그리고 사라졌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약 11년 전인, 2003년 10월30일 새벽 경북 영천의 보현산천문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의 학생 연구원이었던 정종균 박사(현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는 100㎞ 상공의 대기 파동을 관측하고 있었다.
관측한 자료를 가지고 후반 작업을 하던 중 그는 '붉은 기운'을 포착했다.
오로라가 다시 뜬 것일까.
고감도의 전천카메라(하늘을 한 장의 프레임에 담는 카메라)가 가을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종균 박사가 8일 말했다.
"그때 전지구적으로 큰 태양폭풍이 있었어요.
워낙 커서 '핼러윈 자기폭풍'이라고 불렸죠.
그래서 나중에 프로세싱 작업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니 붉은 오로라가 나타났습니다.
육안으로요?
육안으로는 보이진 않죠."
태양활동의 극대기였다. 핼러윈인 10월31일 전후로 미국의 플로리다와 텍사스, 캘리포니아 등 미국 남부 지역에서도 오로라가 관측됐을 정도였다.
'보현산 오로라'는 남·북극에 생기는 일반적인 오로라와 비슷한 오로라로 당시 보도됐는데, 나중에 연구해보니 이와는 생성 매커니즘이 좀 다른 '중·저위도 오로라'에 가까왔다고 정 박사는 말했다.
일반적으로 붉은색을 띠는 중·저위도 오로라는 우주의 외부 입자가 지구의 산소 원자와 충돌하면서 생긴다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 정확한 생성 매커니즘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합의되지 않았다.
남·북극 오로라가 자기력선을 따라 극지로 흘러들어가면서 빛을 발한다면, 중·저위도 오로라는 어떤 식으로 자기력선을 뚫고 들어오는지가 남은 의문점이다.
세번째 오로라는 아이슬란드 동해안의 작은 마을 후세이에서 봤다. 2009년 9월, 북위 65도 서경 14도. 캐나다의 옐로나이프, 알래스카의 페어뱅크스 같은 오로라 관광지(자북극이 있는 캐나다 북극권에서 가깝다)처럼 오로라가 잘 보이는 지역도 시기도 아니었다.
오로라 예보(아북극·북극권 나라는 대부분 오로라 예보를 제공한다)를 봤는데, 태양활동은 중간 정도였다. 무작정 창문을 열고 삼각대에 카메라를 얹었다. 멀리 어슴푸레 희미한 형체가 있었는데, 안개인지 연무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1분 이상 장노출을 주자, 디지털카메라 액정에 녹색의 유령이 떠올랐다.
오로라였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카메라는 보는 오로라.
2015년은 태양활동 극대기의 터널을 이제 막 지난 상태다.
오로라는 지금도 우리 하늘을 쓱 하고 지나갔는지 모른다.
오로라는 사실 열권의 허공을 은막으로 삼은 한편의 빛의 영화가 아니던가.
누구에게는 보였고 누구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보현산에 뜬 오로라도, 아이슬란드에 뜬 오로라도 마찬가지였다.
한겨레신문사, 남종영 기자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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