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회
 
작가: 장호준 (aqualux199)
 

         

         ▲ 비밀의 문 (수심 5 미터)

         동해 영덕 하저리, 

         키가 이삼십 미터씩 자라는 모자반이 물속에서 아치를 만들고 있다.

         ⓒ 장호준

 

매년 전시회가 거듭되자 요령도 늘어났다.

이를테면 죽어라고 열심히 찍어서 나 스스로가 애착이 가는 사진보다도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 것이 관객의 발길을 조금 더 오래 사진 앞에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것.

 

사진을 움직이는 것은 빛이다.

빛이 모자라는 바다에서 좋은 사진을 얻는다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그러니 시야가 좋은 바다를 만날 때에 사진에 집중하라.

그리고 시야가 좋지 않을 때는 딴 짓을 하자는 것,

등등.

 

액자를 폼나게 맞춰야 사진이 산다.

어떤 사람들은 액자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액자의 선택은 중요하다!!! 중요할까?

액자가 사진을 살리면 그 사진은 뭐야? 

횟수가 거듭 될수록 회의가 밀려 왔다.

도무지 전시회가 뭐란 말이냐? 라는 정체성에 대한 의문에서 부터,

대체 이 따위 사진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일년을 오로지 전시회에 낼 사진을 찍기 위해 다이빙을 다닌다.

사진을 다 찍어 놓은 회원들은 그 해의 다이빙 의무가 다 끝난 것처럼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일년 동안 단 한 번의 다이빙에서 얻은 한 롤의 필름으로 전시회에 낼 사진 몇 장을 뽑아 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이의를 제기했다 하면 원수로 돌변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올 리도 없었다.

예술은 어디까지나 등급을 매길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저울이 없으니까.

 

어느 해, 한 번은 누가 봐도 쓰레기 같은 그림이 걸렸다.

몇 몇 사람이 그 그림의 주인 몰래 수군거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걸 그림이라고.”

 

그러나 아무도 그걸 말릴 수가 없었다.

출품한 본인은 그 그림에다 아주 특별한 자신만의 의미를 붙여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느 날 전시회를 찾은 내 친구에게 물었다.

장난 끼가 발동해서 였다.

 

“어느 그림이 젤로 마음에 드노?”

 

그는 서예를 하는, 사진이나 다이빙에는 문외한인 사람이었다.

그는 전시장을 한바퀴 돌아보며 고개를 몇 번 갸우뚱하면서 내 눈치를 살피더니,

바로 그 쓰레기 같다고 한 그림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게 젤로 좋은 것 같은데….”

 

나는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 섰다.

 

“형, 이거 이 따위로 전시회 하면 뭐해요?

그리고 누구 하나 이런 전시회를 바라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아요.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아요.

우리끼리 하는 지랄 아니요?”

“그럼 뭘 바라야 할까? 우린 내 놓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야?”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전시장도 점점 넓어졌고 횟수가 거듭 될수록 회원들의 얼굴에도 교만함이 떠올랐으나,

그것엔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것이었다.

창설 초기의 열기는 어디에도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전시회 전문꾼 같은 기분이 들어요, 쩝.”

 

주위의 친구들도 시들해졌다.

한두 번은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장을 찾던 친구들이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야, 그거 장날마다 하는 거야?”

 

그래서 아는 사람에게 돌리던 안내장도 멈췄다.

어느 해 전시장을 찾은 한 선배가,

주위를 살피며 나에게 아주 나지막이 이렇게 물은 적도 있다.

 

“어이, 이것(전시회) 하면 뭐 좀 나와요?”

 

그는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물었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피식 웃었다.

전혀 생각하지 않은 물음이었다.

그러나 그건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 보라카이 크로커다일 아일랜드

         수 많은 고기들이 카메라를 향해 달려 들어 오고 있다.

          ⓒ 장호준

 

그래서 다음 전시회 때에 우리는 작품을 판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작품에 대한 호가는 순전히 각 작품의 주인에게 맡겼다.

몇 번의 문의가 있었으나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오기가 발동한 우리들은 그 다음 해에 파격적으로 가격을 매겼다.

인화 값과 액자 값만 받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그것도 실패했다.

 

그러다, 전시회가 끝나고 작품에 대한 구매 요청이 들어왔다.

그때 우리들은 한 지방을 정해 한 해 동안 중점적으로 그 지방의 해저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지방 자치단체에서 내어준 화랑에서 전시도 했었다.

근데 그때의 사진을 본 그 지방 자치단체의 수장이 그중 마음에 드는 사진의 구매를 요청해 온 것이었다.

그걸 그 지방 청사의 본관 로비에 걸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흥분했다.

그러나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내가 잘 아는 그 지방의 다이버였고,

나는 그 사람에게 그 지방에서 다이빙을 할 때마다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였다.

 

“하하하, 돈을 좀 많이 불러 버릴까?”

 

농담이었는데,

상대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그는 자신이 지금 해당 관청에 무슨 허가를 신청해 놓고 있다면서,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고 하며 더듬거렸다.

 

“그럼, 그냥 액자 값이나 주고 가져 가라고 해요.”

 

커다랗게 뽑은 두 장의 사진을 용달차에 실어서 해당 관청으로 보냈다.

 

“하이고 이 등신아.”

 

위의 내용을 들은 동아리의 선배가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선배가 그런 관계에 있었다면,

아마 액자까지 자신의 돈으로 만들어서 보냈을 것이다.

 

설날 다이빙

 

동아리를 출범시키고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

중년의 한 조그만 사내가 우리 수중사진동아리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부산에서 치과를 개업하고 있는 의사였다.

 

그의 말인즉 자신도 수중사진을 한다면서 혼자서는 아무래도 한계를 느껴 이 동아리를 찾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은 아직 다이빙 경력도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 겸손해 했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환영했음은 물론이다.

 

그로부터 이분의 월례회 참석이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칠년을 계속해 이어졌다.

그는 월례회가 있는 매월 두 번째 물(수)요일날에는 만사를 제쳐 놓고 올라왔다.

네 시쯤에 자신이 부산에서 운영하는 병원 문을 닫고는 열차를 타고 올라 왔다.

그리고 소주 한 잔을 급하게 마시고는 다시 열차를 타고 내려 가는 것이었다.

 

“고단하지 않나요?”

“응, 아니야, 이게 내 스트레스를 확 날려 버리는 일이야.”

 

그는 다이빙도 열심이었고,

월례회 마다 내는 사진도 범상한 것이 아니었다.

경력도 일천하면서 그가 내는 마크로 사진은 하나같이 일품이었다.

 

“마크로 사진에서 저 양반은 대한민국 일등인 것 같아.”

“그래요, 정말.”

 

         

         ▲ 물고기 초상 (마크로 촬영)

         물고기의 얼굴을 카메라로 바짝 당겼다.

         ⓒ 김인영

 

설날이 코앞에 닥친 오늘 같은 날은 그 분이 생각이 난다.

어느 해 설날 아침 그는 도저히 다이빙을 하고 싶은 욕구를 누를 길이 없어서,

장비를 싣고 부산을 출발해서 영덕을 찾았다.

그러나 자신도 다이빙 숍 앞에서는 좀 망설였단다.

 

“아무래도 좀 거시기 하더구만.”

 

적지 않은 나이에· 자신의 욕망을 들킨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이빙이 더 급했다.

 

“아니, 오늘 같은 날 우짠 일이니껴?”

 

그가 자주 가던 다이빙 숍의 주인이 차례를 막 지내고 나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은 다이빙이 안 되는가요?”

 

겸연쩍게 말하는 그를 보며,

다이빙 숍의 주인은 사태를 알아 차렸다.

 

“왜 안 돼요, 오늘 같은 날 용왕님께도 세배를 하면 존 니더, 하하하,

그러나 일단 올라 오셔서 떡국이나 한 그릇 하시고 들어 가이소.”

 

열정과 집중이야 말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

명절은 나에게도 알토란 같은 시간이었다.

차례를 마치고 나면 나는 다이빙 보따리를 들고 투어에 들어가곤 했다.

명절 전후의 휴가기간이야 말로 다이빙을 몰아서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까.

 

<다음에 계속...>

 

출처: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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