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자연유산 물범
아주 우연히 이들이 스치듯 지나가는 것을 목격하거나 아니면 스쿠버 다이버의 호흡소리에 어느 정도 길들여진 돌고래 등을 만나볼 수 있는 것도 큰 행운이라고 여긴다.
이나마 전 세계에 이런 다이빙 상품을 내놓고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으며 우리가 찾기엔 너무나 먼 곳에 위치하고 있고 경비 역시 녹록치 않다.

또한 물개나 바다표범科에 속한 종은 극지방이나 구소련, 북미 일부지역에 주로 서식하고 있으며,
그나마 일반 잠수인들은 여행 경비가 거의 천만원대에 육박한다는 갈라파고스에나 가야 수중에서의 조우가 보장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 영토에도 오히려 해외에서 더 잘 알려진 유명한 물범 서식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내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이들의 생활사를 우리나라 방송국 취재팀에 의해 낱낱이 밝혀낸 수중 다큐멘터리가 곧 방송될 것이라는 것도 참으로 그 의미가 크다고 본다.

본지를 통해 그들의 모습과 생활사를 소개하여 그 감동을 독자들과 공유해 보겠다는 꿈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능한 국내에서 그 대상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으며 그중 하나가 바로 물범이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백령도에 이들의 서식지가 있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해 본 결과 워낙 영리하여 육상으로도 사람의 접근을 허용치 않는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뿐더러 무모하지만 수중촬영을 시도해 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백령도의 지리적 특성과 군사문제 등의 악조건으로 개인이 접근하기에는 거의 불가능 하였다.
이런 가운데 KBS 자연다큐멘터리 제작팀에서 수중촬영을 주로 맡고 있는 김동식 강사에게 이런 사실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프로그램 소재로 채택하기 위한 사전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후, 첫 촬영을 실행한지가 4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 당시 아주 미약한 가능성만을 가지고 작년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다.
그 이후 2년간 그야말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은근과 끈기로 물범의 접근을 기다려 왔고,
그 중 1마리가 수중세계의 이방인에게 마음을 열어 주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노력과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은 뒤였다.
인간과 물범간의 우정이 싹트기 시작하였다는 표현이 잘 어울릴 정도로 김동식 강사가 바다 속에 자리를 잡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긁거나 물을 빠른 속도로 휘젓는 신호로 자신의 방문을 알리면 아무리 길어도 1분 내로 쏜살같이 다가와 인사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그 뒤로는 물범 스스로가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하면서,
때로는 장난까지 걸어올 정도까지 친해 졌다.
물개와는 다른 식육목(食肉目) 바다표범科 의 포유류로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331호로 지정되었다.
몸길이는 약 1.4m이며 몸무게 90kg 정도로 19종의 바다표범무리 중 가장 작으며 정확한 이름은 ‘잔점박이 물범(Phoca largha)’이다.
몸 색깔의 변이가 많은데 주로 황갈색이며 옆과 등에 검은 반점이 나 있다.
청어, 명태, 노래미 등의 물고기와 대형 플랑크톤을 잡아 먹으며,
번식기가 되면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는데 동중국해 보해(Bohai Sea)의 리아오동만(Liaodong Bay) 빙하 위에서 출산하며,
번식 시기는 1월에서 2월에 걸쳐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 후 초봄에서 여름까지 먹이 자원이 풍부한 남쪽의 바다로 이동하여 백령도 인근 해안에서 서식한 후 다시 겨울이 시작되면 중국으로 북상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져 있다.
최근의 조사 자료에 의하면 백령도 인근해에 300에서 500여 마리가 매년 찾아오고 있으며,
이 숫자는 유전적 다양성 측면에서 안정적인 개체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인간에 의한 외부적인 요인이 증가하고 있으며 시급한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고 한다.
평균 수명은 30년 정도로 보고 있다.
본지도 물범의 수중사진을 찍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으나 이번 취재의 주체가 아니다 보니 촬영 가능한 시기를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촬영 막바지에 접어든 지난 10월초 김동식 강사와 필자 단 둘이서 꿈에 그리던 백령도로 향하였다. 그 여행길에 물범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다 보니 촬영이 아주 수월 할 것 같은 예감에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어렵게 얻은 기회인 만큼 평소보다 몇 배나 더 꼼꼼히 촬영준비를 마친 후 물개바위에 도착하였다.
우선 가장 놀란 점은 입수지점이 북방한계선(NLL)의 완충지대에서 불과 몇 백 미터 안 떨어진 지점으로 중국 어선들이 바로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잘못하여 조류에라도 떠밀리기 시작하면 바로 이북으로 넘어가겠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으나,
바위에서 쉬고 있던 수십 마리의 물범들이 우리의 접근을 눈치채고 급히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광경에 두려움도 잊고 바다 속으로 조용히 잠수하였다.
막상 입수해 보니 수중시야가 예상대로 2m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이 지역에서는 최상의 조건이라고 하니 과연 물범의 모습을 필름에 잘 담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백령도 특산물로 가로 폭이 거의 30cm에 육박하는 아주 건강하고 무성한 다시마 밭이었다.
지금 동해에서는 이상수온으로 인해 다시마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걱정이 태산 같은데 이곳은 아주 넓은 해조류 숲을 이루고 있었다.
먼저 물범의 주요 이동 길목에 자리 잡고 유인을 위해 산 물고기가 든 통발을 놓고 기다려 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꽤 오래 경과 됐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김동식 강사를 살피니 아주 의외라는 듯 당황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 후 물범을 부를 때 보내는 신호로 바닥의 자갈을 힘차게 문질러 보기도하고 물고기 파동같이 손으로 물을 빠르게 휘젓기를 계속적으로 시도 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이곳저곳으로 장소를 옮겨도 보고 혹시 바위 밑에 잠들어 있는 놈이라도 찾아볼 심산에 서로 흩어져 찾아보았으나 모두 허사였다.
아주 큰 실망감에 사로잡혀 상승하다보니 어렴풋이 물범 같은 형체가 접근하였다 쏜살같이 도망가는 광경을 본 것이 전부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거의 4년여를 오매불망 물범의 수중촬영을 고대해오다 드디어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가 생각 했는데 실패로 끝날 것 같은 방정맞은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김동식 강사는 나한테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고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그동안 찍은 영상자료를 보여주기까지 하였다.
하긴 김동식 강사도 물범과 마주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과 공을 들였다는데 낯선 나를 경계하는 건 당연하겠다는 추측은 해 보았지만,
며칠 안 되는 조금 때가 지나가 버리면 다음을 기약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해볼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일념에 다음날 일찍 서둘러 물개바위를 다시 찾았다.
그날은 가장 빈번한 왕래가 이루어지는 길목에 몸도 은폐하고 호흡주기도 최대한 줄이며 뚝심 있게 버텨 보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온몸이 추위로 서서히 떨리기 시작할 무렵 물범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통발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수중시야가 허락하는 거리에서 더 이상 접근을 안 하였다.
그나마 수중카메라 스트로보를 터트리거나 카메라를 바닥에서 들어 올리면 바로 도망가 버렸고 다시 나타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후부터는 다이빙 칼은 물론 탐침봉 등 뾰쪽한 쇠붙이는 물론 어떻게 보면 괴물같이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우징카메라에서 스트로보도 모두 떼어낸 후 Nolight로 촬영을 시도 하였다.
이런 점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날이 갈수록 서서히 거리를 좁혀 오기 시작하였고 나중에는 손으로 만져도 가만히 있었으며 내 오리발을 가볍게 무는 등 장난까지 걸어왔다.
수중에서 만남의 첫인상은 마치 한 마리 애완동물인양 너무나 생김새가 귀여웠고 하는 행동이나 표정 등에서 이들의 감정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지능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야생의 난폭함이나 조심성을 찾기 힘들 정도로 아주 친근함 있게 나를 대해 주었다.
어떤 때는 토라지기도 하고 먹이를 달라고 응석부리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아기 같았고 뭐 그리 신기한 것이 많은지 각종 잠수장비와 카메라에 높은 관심을 갖기도 하였다.

이들이 갖고 있는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그야말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물때가 바뀌면서 수중시야가 거의 제로에 가까워오자 아쉬운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손으로 만져본 물범의 몸통은 너무나 부드러웠고 그 까맣고 동그란 눈망울은 마치 천사의 미소인양 포근함을 전해 주었다.
백령도의 잔점박이 물범은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자연유산이 틀림없다고 본다.
출처 : | 엑스마린 | 글쓴이 : 난지도뱃넘 원글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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