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6일, 중국이 또 한 번 일을 벌인 적이 있다. 

유인우주선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스텔스기로 세계를 위협했던 중국이 이번엔 잠수함을 들고 나왔다. 


자체 개발한 심해 유인 잠수정 ‘자오룽(蛟龍: 홍수를 부른다는 전설상의 동물)’호로 해저 5,038m까지 파고 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중국 해양국은 “내년에는 7,000m 기록을 세워 전 세계 해저 자원의 99.8%를 탐사할 능력을 갖추겠다”고 호언했다.

해저 7,000m까지 내려가는 유인 잠수정은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찾기 어렵다.


하지만 해양 전문가들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한 번 내려가 보는 것’과 ‘제대로 된 탐사 능력을 갖추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2011년 7월 26일, 북태평양 해저 5,038m 깊이의 잠수에 성공한 중국의 유인잠수정 ‘자오룽호’. <출처: 연합뉴스>


괴짜 과학자 어거스트 피카르, 바다로 눈을 돌리다

20세기 초, 벨기에 브뤼셀대 물리학과 교수였던 어거스트 피카르(Auguste Picard, 1884~1962) 박사는 다시없는 괴짜였다. 


그는 당시로선 미지의 세계였던 성층권에 도전하고 싶어 기구를 제작했다. 

높은 곳에서도 숨을 쉴 수 있도록 밀폐된 공간이 달린 기구 ‘FNRS 1’호를 개발해 수차례 실험한 결과 2만 3,000m 상공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이 기구는 철로 만든 둥근 공처럼 보였고,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둥근 유리창이 달려 있었다.

피카르 교수는 하늘을 정복하자 이번엔 바다로 눈을 돌렸다. 

방법은 간단했다. 

기구를 만들던 기술을 응용해 바닷속 탐사를 나선 것이다. 

그가 만든 FNRS 2호기는 잠수함이었다.

 

FNRS 시리즈의 잠수함은 점차 발전하더니 1953년에는 2,100m, 그 다음해에는 4,050m를 내려갔다. 

FNRS 시리즈의 잠수함에 붙인 별명이 심해잠수정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바티스카프(배시스케이프, bathyscaph)’다.


어거스트 피카르 박사가 제작한 FNRS 잠수함(FNRS-3). <출처: (CC) yves Tennevin at Wikipedia.org>

 

피카르 교수는 여기서 중단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해 바티스카프의 다음 모델인 ‘트리에스테’를 개발했다. 

이 잠수함은 1953년 4,049m까지 잠수하는 데 성공했다. 

1957년 미국 해군연구소는 피카르 교수로부터 트리에스테 호를 사들여 여러 곳을 개조해 트리에스테 2호기를 만들었다.

결국 미 해군은 1960년 세계최초로 바닷속 1만 916m 깊이까지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


바티스카프 시리즈는 ‘트리에스테’호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지중해와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여러 차례 잠수에 성공했다. 

사진은 미국 해군연구소가 개발자인 피카르 교수로부터 ‘트리에스테’를 구입해 개량한 ‘트리에스테 2호’. 해저 1만 916m까지 내려간 기록을 가지고 있다.

 

 

최신형 잠수정 왜 1만m 못 들어갈까


만약 트리에스테 2호기를 현대 해양과학자들에게 넘겨 준다면 얼마나 많은 과학실험을 할 수 있을까. 

‘할 것이 거의 없다’가 정답이다. 

트리에스테호는 자체 동력이 없고, 무게추를 달아 바닷속 깊이 들어간 후 추를 버리고 다시 조용히 물 위로 떠 올라오는 것이 전부다.

물론 이런 부력조종에도 적잖은 기술이 필요하지만 현대과학기술로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심해잠수정을 개발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수압이다.

트리에스테호가 1만m가 넘는 바닷속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수압에 견딜 수 있는 구조 설계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기록을 세우기보다는 ‘연구’가 목적이라 설계 자체가 달라진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도 엔진에 시동을 걸어 이곳 저곳을 누벼야 하고, 압력에 취약해지더라도 유리창을 꼭 달아야 한다.

탑승한 해양과학자가 외부를 내다 봐야 하기 때문이다.

각종 탐사장비와 조명장치, 로봇팔도 붙이고 다닌다.

바티스카프나 트리에스테에 비해 여러모로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그렇게 깊은 바다를 들어갈 이유도 찾기 어렵다.

큰 의미가 없어진 ‘깊이’를 놓고 다투기보다는 인근 바닷가를 샅샅이 살펴볼 수 있는 안전하고 활용도 높은 잠수함을 개발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심해 잠수정을 개발하고 있는 한국해양연구원 해양탐사장비연구사업단의 이판묵 단장은 “국제 학회 등을 방문하며 중국이 새로 개발한 자오룽 호에 대한 정보도 여러 차례 접했다”면서 “일본이나 미국의 4,000~5,000m급 심해잠수함이 모든 면에서 성능이 더 뛰어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현재 알려진 가장 뛰어난 성능의 유인 심해잠수정은 최대 6,500m까지만 잠수하도록 만든 일본의 ‘신카이 6500(深海 6500)’일 것”이라며 “안전문제로 6,500m로 한정해 둔 것이지 기록을 세우려 든다면 최대 잠항 기록을 갱신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두 번 깊은 바다를 ‘들어가 보는’ 수심과, 안전하게 연구활동을 펼 수 있는 수심은 큰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 해양연구개발기구(JAMSTEC)의 신카이 6500. 신카이란 ‘심해’라는 뜻의 일본어다. 

2011년 현재 존재하는 유인 해저탐사선 중 가장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맷집으로 버티고, 내공으로 막는다


하지만 6,500m도 결코 만만한 깊이는 아니다.

이 정도 깊이에 맨몸으로 들어가면 머리 위에 대형버스 한 대를 올려놓은 것과 같은 압력이 온몸을 짓누른다.

심해용으로 특별히 만든 잠수함이 아니라면 절대로 넘보지 못할 수심이다.

일반 잠수함의 잠항 깊이는 150m 이하, 최첨단 핵잠수함도 500~700m가 한계다.

따라서 심해잠수정들은 몇 가지 특별한 설계가 뒤 따른다.

가장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버티기’다.

아예 튼튼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티타늄 같은 고강도 소재를 쓰고, 최대한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 압력을 분산시켜 준다.

 

이 밖에는 잠수함 내부에서도 높은 압력을 만들어 외부 수압을 막아주는 ‘수압상쇄’ 방법이 있다.

외부 수압을 센서 등으로 감지한 다음, 모터를 이용해 물이나 기름 같은 액체를 잠수함 안쪽에 부어 넣어 안쪽에서도 높은 압력을 만들어 준다.

이론상으로는 종잇장처럼 얇은 철판으로도 외부의 수백 기압을 견딜 수 있다.

내부에서 압력을 걸어 줄때는 물보다 주로 기름을 쓴다.

같은 압력이 걸려도 물보다 조금 더 가볍기 때문에 혹시 동력이 끊어질 경우, 가지고 있던 무게추만 바닷속에 던져 버리면 잠수함을 천천히 위로 떠오르게 만들 수 있다.

그 밖에 압력에 따라 부피가 변하는, 탄성이 좋은 변형 소재로 잠수함의 일부분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보통 플로트(부력장치) 등에 이런 소재를 쓴다.

 

수압상쇄 방법이 이론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이지만 유인 잠수정을 만들려면 사람이 탑승할 공간은 반드시 공기로 채우는 수 밖에 없다.

무인잠수정이라고 해도 정밀한 실험장비가 있는 곳은 마찬가지로 공기로 채워야 한다.

결국 최소한의 공간은 반드시 버티기 수법을 써서 설계해야 한다. 

이판묵 박사는 “잠수함 부위에 따라 다양한 설계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며 “세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면서 최적의 비율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알빈. 해저 4,500m까지 내려갈 수 있다.

러시아의 미르. 해저 6,000m까지, 20시간까지 추가 보급을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

프랑스의 노틸. 해저 6,000m에서 활동할 수 있다. <출처: (CC)Binche at Wikipedia.org>

 

 

바닷속은 에너지, 식량, 생물자원 보고


바닷속을 탐사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지상에는 찾을 수 없는 심해 생물자원, 에너지 자원 등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깊은 바닷속을 들어갈 수 있다면 얻을 수 있는 자원의 숫자는 그만큼 늘어난다.

중국이 자오룽호를 이용해 탐사한 북태평양 바다도 자원의 보고다.

망간 단괴, 희소 금속을 비롯한 심해 광물자원이 풍부하다.

중국은 이번 탐사로 미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해저 3,500m 이하를 탐사한 나라가 됐다.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트리에스테 탐사의 예를 보더라도 과거 심해탐사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잠수정 ‘알빈’호는 해저 4,500m까지 내려갈 수 있다.

1985년에는 침몰한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잔해를 찾기도 했다.

현재 5,000여 차례 심해 잠수 기록을 갖고 있다.

 

일본은 현존하는 최고성능의 심해잠수정을 가지고 있다.

1989년에 건조된 신카이 6500은 해저 6,492m까지 내려가 심해 해양 경사면과 대단층면을 조사했다.

지진, 쓰나미 연구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1,000여 차례 잠수 실적을 갖고 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1987년에 만든 심해잠수함 ‘미르’ 호는 해저 6,000m까지 잠수할 수 있다.

특히 활동시간이 긴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해저에서 20시간까지 추가보급을 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

 

프랑스도 심해 탐사에 열심이다.

프랑스의 심해잠수함 노틸은 해저 6,000m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 해저생태계와 심해광물 조사에 탁월한 성능을 보였다.

1500여 차례의 잠수 실적을 갖고 있다.

 

대전 한국해양연구원 대덕분원에 있는 해양공학 수조의 모습. 잠수함이 물속에서 어떤 저항을 받는지, 물 위에 떠올라 일반 선박처럼 운행할 때는 어떤 저항을 받는지를 실험할 수 있다.

파도에 대한 저항도 발생하기 때문에 잠수함은 물속에서 운행하는 것이 속도가 더 빠르다.

한국해양연구원의 자랑 ‘해미래’. 바닷속 6,000m까지 탐사할 수 있는 무인 잠수정이다.

무인 잠수정은 탑승자 거주 구간을 별도로 설계할 필요가 없으므로 유인잠수정보다는 수압에 견디기 쉽다.

하지만 반대로 정밀한 제어장치를 연결해 원격 조정기능을 구현하는 것이 까다롭다. 물속에선 전파가 통하지 않으므로 초음파 신호장비를 써야 한다.

 

 

한국은 어떨까. 기술력은 충분하다는 것이 한국해양연구원의 입장이다.

하지만 수심이 얕은 남해, 서해는 심해잠수정이 필요 없고, 동해를 통해 태평양 탐사에 나서야 하는데 주변국가들과 영해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이 독자 개발한 과학실험용 유인 잠수정은 1987년에 개발한 ‘해양 250’이 유일하다.

탑승인원 3명으로 해저 250m까지 탐사할 수 있으며 수중카메라와 비디오, 로봇팔 등을 탑재하고 있다. 

서해 앞바다 탐사용으로 낮은 수심에 적합하게 개발했지만 서해의 혼탁함 때문에 그리 자주 운용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국도 6,000m 해저를 탐사할 능력은 갖추고 있다.

2006년 완성한 과학실험용 무인잠수정인 ‘해미래’ 덕분이다. 

한반도 주변을 탐사하려면 3,000m급으로 충분하지만 우리나라가 광구권을 갖고 있는 태평양 해역이 수심 5,000m가 넘어 고성능 잠수정을 개발하게 됐다는 것이 한국해양연구원 측의 설명이다.

 

이판묵 박사는 “6000m급 무인잠수정은 전 세계 해양의 98%를 조사할 수 있다”며 “정밀 지형지도 작성, 지질 분석, 망간단괴를 비롯한 심해자원 탐사 등 다양한 연구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자원의 고갈에 따른 해저탐사의 중요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해미래의 뒤를 이을 한국의 유인 심해잠수정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전승민 / 과학동아 기자
"인류에 도움이 되는 과학이 진짜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현실 주의자. 
대전 배재대에서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했다.

의료과학, 기계, 로봇 등 현실적인 기술에 관심이 많다.

지금은 대전 대덕연구단지에서 과학기술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자료제공 과학동아

사진동아일보, 연합뉴스

 

[출처]심해잠수정(펌)|작성자bkchoi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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