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보름달 착시에 대한 8뉴스 리포트 때문에 보름달을 찍는다고 서울 여의도를 여기저기 헤맸는데요.

생각지도 못했던 착시 현상을 직접 느낀 겁니다. 산자락이 이루는 자연스러운 스카이 라인을 뒷 배경으로 한 달을 찍고 싶었는데 여의도는 빌딩 숲이어서 적당한 장소가 없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취재팀 가운데 한 명이 빌딩 뒤쪽으로 가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취재팀은 서울 여의도에서 반포대교를 건넜고, 한남대교도 가봤고, 잠수교 밑에서도 촬영했습니다.

달을 한강 다리와 함께 찍으면 예쁠 것 같아서 촬영 포인트를 고민하며 돌아다닌 겁니다.

그런데 달은 늘 제 예상과는 다른 곳에 가 있었습니다.

반포대교에 가서 보면, 이런 그림이 나오겠지, 예상하고 막상 반포대교에 가서 차에서 내리면, 첫 반응은 늘, 어? 달 어디 갔어? 야 달 찾아봐라,

계속 이랬습니다.

저 뿐 만 아니라 함께 달을 찾아다닌 영상취재팀 선배도 그랬습니다.

이게 말로 만 듣던 달 착시입니다.

 

 

착시는 당연합니다.

달은 지구에서 38만km 떨어져 있는데, 그 막막히 멀리 떨어져 있는 지구에서, 인간은 겨우 몇 km 정도 움직이니, 머릿속으로 예상한 그림이 안 나오는 겁니다.

만약 달에서 누군가 저희 취재팀을 관찰했다면, 참 웃긴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착시 덕분에 저희는 열심히 움직였습니다.

달은 여의도 스카이 라인을 이루는 빌딩처럼 우리에게 가까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으로는 38만km 거리를 알고 있지만, 달을 빌딩과 함께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30분만 열심히 걸으면 갈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착각에 사로 잡힙니다.

달 착시라는 게 겪어보면 그렇게 신기합니다.

추석 당일인 19일은 저녁 6시 13분에 동쪽에서 달이 떠오릅니다.

추석 당일은 보름달이니 정말 구경할 만할 겁니다.

 

달은 언제 가장 커 보일까요?

여러분 마음속에 이미지로 남아있는 달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요?

누구는 500원 동전이라고 하고, 누구는 종이컵 크기만 하다고 합니다.

보름달이 떠오를 때는 그렇게 크게 보입니다.

역시 달 착시입니다.

 

달이 막 뜰 때는 우리 주변의 풍경이 함께 눈에 들어오게 마련입니다.

도심에서는 빌딩, 시골에서는 야산, 그럼 달은 그 빌딩과 야산이 있는 곳까지 훌쩍 다가와 있는 느낌입니다.

38만km의 거리를 순간 이동해, 우리 눈앞에 떠 있습니다.

'휘영청'이라는 유독 달빛을 묘사할 때 쓰이는 우아한 단어는, 분명 달 착시 효과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입니다.

달 착시는 기원전 4세기부터 알려진 현상입니다.

조선 시대의 화가 김홍도도 달 착시를 느꼈던 것이 분명합니다.

달은 조선시대에도, 지금도, 거의 똑같은 크기로 보일 것입니다.

보름달을 향해 팔을 쭉 뻗으면, 육안으로는 어른 손톱의 절반 크기로 보입니다.

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김홍도의 '소림명월도'(1796) 를 보면 수풀 사이로 휘영청 떠오르는 큼지막한 보름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달은 손톱 절반이 아니라, 손톱의 몇 배 크기로 보입니다.

화가는 착시라는 걸 알았을까요? 착시를 알고도 적절히 이용한 것일까요?

착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달이 중천에 뜬 달보다 2배 이상 커 보인다고 하는데, 소림명월도의 보름달도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달 착시는 크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빌딩 사이로 보름달을 보면, 뇌는 우리가 알고 있던 빌딩의 크기를 참고해, 달의 크기를 자동으로 보정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서울대 심리학과 오성주 교수는, 그래서 한밤중에 달을 보면 크기를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착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교수가 보여준 사진입니다.

왼쪽 조각상 높이를 물어보기에 2m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했더니, 오른쪽 사진을 보여줍니다.

엥? 완전 다르게 보이죠. 빌딩을 참고해 달의 크기를 가늠하듯, 실제 사람의 크기를 참고해 조각상의 크기를 다시 추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비교 대상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달이 떠오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색깔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도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보름달이 지평선에서 막 떠오를 때는 약간 불그스름한 빛이 납니다.

반면 달이 하늘 천장에 걸렸을 때는 상대적으로 뽀얗게 보입니다. 하얀 얼굴입니다.

이건 대기의 산란 때문입니다.

달이 막 뜰 때는, 달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의 두터운 대기를 통과하면서 짧은 파장의 푸른빛은 산란됩니다.

그래서 산란되지 않은 붉거나 노란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낮에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대기 중에서 햇빛의 파란빛이 산란되기 때문이죠.

지구의 유일한 위성인 달. 달은 자전 주기와 공전 주기가 정확히 같아서 우리에게 늘 한쪽 얼굴만 보여주지만, 대신 표정은 이렇게 다양합니다. 한가위에 달맞이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런 착시와 대기 산란 효과를 알아두시는 게 도움이 됩니다.

이른바 달맞이 명소로 소문난 곳들은 대개 산성이나 사찰, 해안 등이라서 가족과 시간을 내서 가보기가 쉽지 않은데, 도심에서 스카이 라인 배경과 함께 달을 바라보는 것도 꽤 괜찮습니다.

스카이 라인이 없으면 동네에서 여러분이 잘 아는 건물을 이용해도 됩니다.

저희야 누구나 아는 건물을, 상징적인 건물을 찾아야 했기에 여의도를 어슬렁거린 겁니다.

달맞이는 물론 초저녁이어야 겠죠.

보름달은 그만큼 당신의 눈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SBS: 박세용 기자(psy05@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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